< [20장-1] 너는 뭐하는 시민? >
[20장] 너는 뭐하는 시민?
학명: 듀크마(마법의 공작)
서식지: 고성
특징: 현실판 대마법사입니다!
위험도: 8종 소형
비고: 은둔형 외톨이☆
***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여러 ‘구(區)’로 나누어져 있다.
고대부터 꾸준히 확장, 세분됨에 따라 현재는 55개나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세금 낭비, 국회의원 머릿수 늘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낭비를 싫어하는 와이츠가 통합하려고 했지만, 국회의원들이 목숨 걸고 사수하는 바람에 55개씩이나 남고 말았다.
서울은 4등분 해서 보면 그걸로 충분하다.
동서울, 남서울, 북서울, 여의도.
서쪽이 빠진 건 인천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기에 나눌 의미가 없는 까닭이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에 있는 섬 ‘여의도’는 도시 중앙에 있고 ‘중심’이란 지리적 특성답게 가장 중요하다.
국회의사당, 괴수대응본부, 청와대, 부자동네….
대한민국의 권력, 재력, 무력 등이 총집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의도는 힘들겠군.”
“네, 보스(Boss). 한국의 감시가 가장 삼엄한 곳입니다.
“...북서울은?”
서울 북쪽은 한강을 기준으로 위쪽, 북서울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와이츠의 둥지가 있는 북한산을 병풍처럼 끼고 있는 덕분에 가장 평화롭다.
그래서 주거지보다는 농경지로 쓰인다.
괴수에게 사람이 살해되면 또 낳으면 장땡이지만, 경작지가 파괴되어 총수확량이 줄어들면 생사람을 죽여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까닭이다.
평야 같은 느낌?
아니다. 고층빌딩 내부를 층마다 흙을 깔고 인공태양으로 면적대비 수확량을 극대화하느라 볼트윙 테러 때도 피해가 상당했다.
가시적인 인명피해가 적었을 뿐.
만약 이날 테러로 서울 인구가 확 줄지 않았다면 식량값이 폭등했을 것이다.
“은신하긴 좋습니다만 권하진 않습니다, 보스.”
“사람이 너무 안 살아도 문제군.”
“그렇습니다. 인간이야말로 저희의 식량이니까요.”
“동서울은 어떻지?”
아시아 대륙에서 내려온 야생괴수들이 북한산을 우회해서 서울로 침입하려면 필연적으로 도시 동쪽과 서쪽을 노리게 되어있다.
하지만 서쪽은 적다.
그 위에 자리한 파주시에서 엘로엘 계약자 박선영과 ‘국모 선유나’의 추종자들이 꽉 틀어막고 있는 까닭이다.
자연히 만만한 동쪽, 동서울로 야생괴수들이 몰려든다.
이 탓에 동서울은 줄초상이 끊이지 않고 사냥꾼도 가장 많이 포진해있는 지역이다.
그 대표지역이 노원구로, 당연히 사냥꾼들을 위한 유흥업소와 ‘비싼 여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고 그만큼 난잡하기도 하다.
“어떻습니까, 보스.”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사냥꾼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하나뿐입니다.”
“남서울이군.”
“네, 보스.”
서울에서 여의도 다음으로 사람 살기 좋은 동네가 남서울이다.
야생괴수가 적당(?)해서 백화점, 학교, 주택 등이 가장 많이 몰려있다. 동서울보다는 땅값이 비싸지만, 여의도와 북서울에 비하면 헐값이나 다름없다.
그런 특징들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던 곳이 강남구.
다만, 강남구는 빈민층이 섞이면서 ‘싸구려 여자’가 많고 ‘가난한 사냥꾼’들이 그녀들의 몸을 찾으면서 치안이 확립된 이상한 구도를 띄고 있다.
부하의 설명을 들은 보스가 고개를 끄떡였다.
테이블에 펴놓은 서울 전도(全圖)에서 ‘강남구’를 콕 찍으며 말했다.
“여기가 좋겠네.”
“영명하신 판단입니다!”
과연 그럴까.
강남구 바로 아래에는 ‘성남구’가 있다.
세계에서 ‘단신(單身)’으로 가장 강한 남자가 사는 동네였다.
조만간 더 위험한 개성시로 이사 갈 예정이지만, 아직은 이 누추하고 적당히 위험한 수도권에 살고 있다.
그 5평짜리 단칸방에서 삐쩍 마른 소녀 옆에 앉아 학교숙제를 도와주던 그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뒤통수를 콕콕 찌르는 기분이었는데.”
친구놈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보다도 불쾌한 느낌이었다.
대놓고 무시당한 것 같다고 할까.
카르 4세의 중얼거림을 들은 최은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저씨. 저 혼자 할까요?”
“아니. 이거 때문이 아니야. 이 아저씨가 아무리 학교 다닌 지 오래됐어도 초등학교 1학년의 수학문제로 두통을 겪진 않아.”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한민국의 의무교육은 초등학교 3년, 중학교 3년으로 되어있고 고등학교 3년, 대학교 3년은 선택이다.
하지만 중학교까지만 나와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남자는 사냥꾼, 여자는 계약자뿐이라서 보통은 고등학교 졸업까지를 의무교육으로 친다.
법적 효력이 있는 성인식은 15살.
초등학교 최소입학 나이는 6살.
즉, 유급되지 않고 고등학교까지 ‘하이패스’ 하면 졸업과 동시에 어른으로 인정받고 정상적인 사회활동 및 결혼, 출산, 육아 등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성인식 전까지 중학교만 졸업해도 ‘영재’다.
“이거 어려운데….”
“어른을 무시하지 마.”
학년별 시험이 어렵기도 하지만, 일단 학생들의 태도가 글렀다.
섹스, 살인, 폭력만 빠진 ‘미성년자용 가상현실게임’이란 강력한 유혹을 이겨내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는 천연기념물 수준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출석 일수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교만 꼬박꼬박 나와도 졸업시켜주는 나라가 적지 않지만, 용(龍)이 머무는 선진국은 예외 없이 빡빡하다.
MID 신기술개발 때문이다.
인간이 너무 멍청하면 써먹을 수 없는 까닭이다.
대학교까지 나왔다는 ‘나름 똑똑하다는 원숭이’가 자기 말을 하나도 이해 못 하면 지근지근 밟아버리고 싶어진다.
와이츠가 있었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시험성적이 나빠서 유급(留級)하는 학생이 매년 75%쯤 된다.
“앞으로 9년을 공부해야 한다고요?”
“열심히 공부한다면.”
무일이 생각하기에 열심히 할 것도 없다.
시험기간에 가상현실게임 안 하고 벼락치기만 잘해도 턱걸이로 유급만은 어떻게든 면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증거가 카르 4세 본인이다.
사냥꾼 훈련으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공부해서 단 2년 만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패스했다.
정찬호처럼 현실파 ‘천재’는?
15살 성인식 전에 대학교까지 졸업한다.
“우우….”
“최은비가 몸을 소중히 아낀다면 6년으로 줄겠지.”
“계약자요?”
“그래. 괴수와 친구가 되면 공부를 조금 덜 해도 된단다.”
막말로, 예쁘고 순결하면 장땡인 계약자는 똑똑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녀들은 ‘상식’을 배우는 중학교까지만 나오면 된다. 너무 꼴통이면 계약자의 지식과 문화를 습득한 수호자도 멍청해지기에 이것만은 필수다.
가까운 예로 7종 계약자 윤소영이 있다.
그녀의 나이는 현재 17살.
성인식이 끝나고 2년째 접어드는데도 여전히 중학교 1학년이다.
‘그 아가씨는 어쩔 수 없나.’
공부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없다.
계약자의 일상인 피부관리, 수면, 운동, 출동업무 외에도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위계약자 겸 ‘영웅’으로서 방송출연이 빡빡하게 잡혀있다.
학교 다니는 게 기적이라고 할까.
이쯤 되면 검정고시가 더 나을 것 같지만, 그렇게 시간을 벌어봐야 방송출연만 더욱 늘어날 게 자명하다.
윤소영에게 학교는 안식처(安息處)인 셈이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네요.”
“완전히 안 할 순 없지.”
“우우….”
최은비는 올해 12살이다.
겉보기에는 초등학교 1학년의 평균 나이인 8살 아이들이랑 다를 게 없지만 이미 4년을 지고 시작했다.
물론, 수명의 한계가 흐릿해진 현대에서 나이는 20살 이후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배움이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철부지 어른만큼 민폐인 골칫덩어리도 드물다.
“은비는 생일 날짜가 어떻게 되니?”
“가을에 태어났다는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엄마도 모른대요.”
“흠. 그럼 아저씨를 만날 날로 하자.”
“아! 네!”
최은비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무일은 창밖을 내다봤다.
상상을 초월했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생일파티(스페인대사 왈)’가 끝나고부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겉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본능이 말해주고 있다.
드디어 ‘걱정’이 사라졌다고.
한무일이란 인간의 모든 걸 공개한 결과, 강대국들의 감시와 경계가 풀렸다.
인권적인 측면에서 보면 선지혜의 계획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보다 더 평화적인 방법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 하나 희생으로 끝났으니 됐잖아.’
삶 자체가 까발려진 건 안타깝지만, 그렇게 함으로써도 주변 사람들과 서울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쁜 것도 아니다.
남자도 계약할 수 있다는 실마리가 잡혔다.
그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카르 4세’를 연구한다면 ‘인류적인 측면’에서 진보의 발판이 마련된 걸지도 모른다.
기술독점?
무일은 그런 부류를 혐오한다.
『나만 최고면 돼!』
이딴 마음가짐의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과 영화를 싫어한다.
어려운 사람을 구해주는 건 차선책이다.
생산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전투기술도 익히라는 건 억지지만, 강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가진 모든 걸 전수해야 한다.
지식이 닳는 것도 아니잖은가?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는 하나여야 한다고 누군가 정해놓은 것도 아니다.
여러 용사가 힘을 합쳐 쓰러트리면 피해는 더 줄어든다.
마찬가지다.
프로사냥꾼이 늘어나면 괴수를 더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물론, 기술을 독점한다면 수많은 이점이 따른다.
압도적인 힘으로 부와 명예를 쓸어담을 테고, 좋다고 안기려는 미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됐다고 무일은 확언할 수 있다.
‘소설과 현실의 차이라는 거겠지.’
개인의 영달(榮達)을 위해 기술을 독점하다가 마왕이나 괴수에게 인류가 멸종 내지는 학살당하면 어쩔 텐가?
내가 좀만 더 강했더라면!
다 망하고도 이런 뻔뻔한 막말이나 지껄인다면, 그야말로 이기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인간쓰레기다.
카르 4세는 그렇게 되길 원치 않는다.
자신처럼 ‘괴수와 계약한 남성 프로사냥꾼’이 늘어난다면 인류의 삶은 이전보다 윤택해질 것이고, 남자들의 어깨는 당당해질 수 있다.
『악용의 소지가 있으니 나만 익히고 봉인하노라!』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주고 싶은 변명이다.
지가 ‘운명의 신’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가능성과 희망을 완전히 닫아놓고 ‘악용’과 ‘위험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악용(惡用)이고 위험한 판단이다.
그렇다고 그런 자들을 ‘나쁜 놈!’이라고 무일은 비난할 생각은 없다.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다만, 으스대지 말고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한다.
‘인류의 미래’와 ‘자신의 영광’을 저울질하는 이기주의자에게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최은비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일단 자렴.”
“후아암! 네에….”
까짓거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된다.
현재 이 소녀에게 최우선사항은 남은 성장기를 알차게 보내서 예쁘게 자라는 것이다. 계약자가 될 계획이 없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침대에 눕자마자 잠든 최은비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려 덮어준 무일은 커튼을 쳤다.
그리고는 옷을 하나하나 벗었다.
마지막으로 팬티를 내린 무일은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스르륵.
착용형 괴수는 계약자도 아닌 숙주의 의지에 따라 아래 중심을 순식간에 감쌌다.
하지만 조몰락거리지 말라는 ‘주문’만은 따르지 않는다.
가더발트는 촉수 4개의 해파리처럼 생긴 벨트다. 그리고 계약자나 숙주가 생기면 브래지어와 삼각팬티가 추가된다.
자력으로는 해제불가.
경험자인 ‘페이 링’의 고백에 따르면 대소변 때를 제외하고는 한순간도 가만 놔주질 않는다고 한다.
잠잘 때도 마찬가지!
괴롭힘에 지쳐 기절하듯 잠드는 식이다.
그에 비하면 무일은 양반이었다.
다만,
‘이 원인을 모르겠군.’
< [20장-1] 너는 뭐하는 시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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