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79화 (79/287)

< [19장-3]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

무일은 태어난 이래로 이렇게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긴 처음이었다.

떨린다는 기분은 없다.

보통, 단상에 오른 사람이 떠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일까를 몰라서 하는 걱정이다.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의상이 이상하지 않을까, 귀찮아하지 않을까….

하지만 무일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예측] 범위 안이다.

다만, 알고도 대처할 수 없는 부류가 둘.

정말 상상도 못 했던 다양한 복장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아가씨들은 ‘그림의 떡’이라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수호자가 저를 죽이길 바라십니까…?

생일파티장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임산부들은 더 난감했다. 강남구 쿠데타의 주범들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

거기에 비하면 각국 사절들은 웃으며 맞이할 만하다.

‘가더발트를 실제로 보고 싶은 거겠지.’

미국의 상황을 보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패했다고 여겨졌던 ‘남성 계약자 프로젝트’가 실제로 벌어졌고, 흥분하며 똑같이 따라 했는데 어째선지 계약이 안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쩌면 한국과 중국이 합작한 속임수, 사기극일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이 자리에 모인 것이리라. 분명 평양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거의 매일 있었던 전투장면을 첩보위성으로 보았을 텐데도 믿지 못한다.

쉬이 믿을 수 없는 것도 이해한다.

이 연구는 거의 100년 가까이 진행됐으나 여전히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성공작이 등장했으니 애가 탈만도 하다.

그 심정은 이해하는데….

“생일 축하해, 카레 짱!”

유키 짱이 다가와서는 잽싸게 팔짱을 꼈다.

보통의 계약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과감한 스킨쉽! 이건 낳아준 아빠와 진짜 친오빠라도 예외가 아니다.

피부접촉을 한 남자의 목숨도 사라지지만, 수호자 계약 자체도 흔들릴 수 있기에 개념 있는 계약자라면 절대로 안 하는 짓이다.

하지만 근처에 대기 중인 휴머노이드, 7종 괴수 판타이탄의 화신은 자유분방한 계약자를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표정만 보면 ‘친오빠’ 같다고 할까.

여동생이 어떤 남자와 사귀는지만 확인하고 참견하진 않겠다는 태도였다.

“어…. 응. 고마워.”

“카와이! 역시 귀여워!”

팔짱을 넘어 껴안으려고 돌진하는 일본 아가씨.

하지만 신묘한 움직임으로 팔을 뺀 프로사냥꾼은 자연스럽게 옆에 섰다. 그래도 보는 눈이 많아서 피하거나 몸을 빼진 않았다.

그러면 유키 짱이 망신당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배려였다.

“흠흠. 오늘은 일본대표로 온 거잖아.”

“너무해 카레 짱! 생일파티인데 아무렴 어때!”

당신은 일본의 전권대사로 온다고 분명 말했습니다만.

하지만 유키 짱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다시 한 번 일본 정부에 묵념.

절반은 파티 분위기, 절반은 외교 분위기. 이게 무슨 정치인의 사모임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카르 4세는 사냥꾼이다.

다만, 조금 특별한 사냥꾼.

무일의 복장은 늘 그렇듯 특공대 정복이었다. 간편한 평상복을 입을 예정이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 명단을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갈아입었다.

당연히 허리에는 명검 ‘카르세리안 레이소’가 채워져 있고 장갑인 ‘앙그류 그랑모리’는 호주머니에 들어있다.

‘정장을 입었어야 했나?’

후줄근한 연구복만 입는 정찬호마저 백색 양복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왔다. 헤어스타일은 올백이었고 앞주머니에는 장미꽃 한 송이가 꽂혀 있다.

초식남 주제에 여의도 제비처럼 차려입고 왔구먼.

하지만 잘난 얼굴과 뛰어난 옷걸이가 ‘정비과 엄친아’임을 제대로 인증했다.

정찬호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아아! 카르 4사아아아알!!’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지만 말고 ‘강보라’와 ‘최은설’에게 말이라도 걸어보는 게 어떠냐고 권해주고 싶다.

당연히 생명은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나마 이 둘이 가망 있다.

나머지 아가씨들은 주위에서 건드리면 화풀이할 것처럼 부글부글 끓는 얼굴이다. 특히, 윤소영은 살짝 충격받은 표정이다.

정찬호 옆에는 임진호로 보이는 남성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저게 민간인의 당연한 반응.

하늘은 거대한 웨일풍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것처럼 장악했고, 창문 밖에서는 성인 머리통만 한 ‘썬피스트의 황금색 눈동자’가 번뜩인다.

가장 압권인 공포조성은 레드군의 ‘그르르르’ 거리는 용의 숨결 소리.

당장에라도 화염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선배. 뭐부터 할까? 케이크를 자를까, 아니면 나부터 먹을래?”

“생일파티순서에 성희롱을 넣지 마!”

“용사님이 공주님의 몸을 주무르며 입술을 훔치는 에필로그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 매우 건전하고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해.”

“그런 걸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것부터가 이상해….”

거대한 5단 케이크였다.

모형이 아닌 실제 빵으로 그 양이 어마어마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인원수를 생각하면 한 조각씩만 돌려도 남을 것 같지 않았다.

페이 링과 시링 팽. 두 중국산 아가씨들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시선이 5단 케이크 꼭대기 장식물에 고정되어있다.

뭐가 있길래?

뒤늦게 유키 짱도 보고는 깜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피규어(figure) 데스네!”

정교하게 만들어진 ‘카르 4세’ 인형이었다.

당연히(?) 알몸이 아니었는데, 허리에 가더발트를 두르고 있었다. 덤으로 검은색 삼각팬티가 성인용품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외국에서 온 공주님들의 눈에 탐욕의 빛이 일렁거렸다.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은 걸까?’

여자들은 수집품의 의미로 진한 관심을 보였다면, 남자들, 각국 대사들은 카르 4세의 몸보다 가더발트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뭐가 됐든 ‘알몸 한무일’이 구경거리가 됐다.

모조인형을 정도껏 세밀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MID 기술까지 사용한 모양이다. 살아 움직이지만 않을 뿐, 카르 4세를 완벽하게 축소한 모습이었다.

내 초상권은 어떻게 된 걸까.

푸념해보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선지혜 사마! 저거 가져도 돼, 예요?”

피규어가 무척 갖고 싶은지 유키 짱이 선지혜에게 친한 척했다.

유키나 미나미가 일본에서 큰 입김을 발휘하는 건 사실이지만, 인형 하나 만들어달라고 생떼 부릴 정도는 아니다.

그에 반해, 한국 회장님은 그런 개념이 없다.

무일의 초상권을 무시한 티셔츠에서도 알 수 있듯, 마음 내키는 대로 권력과 재력을 남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생일케이크부터 자르고 나중에 경매할 거야.”

“경매!”

“자세한 설명도 그때 해줄게.”

“하잇!”

선지혜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던 유키 짱은 순한 고양이가 됐다.

그건 시링 팽도 마찬가지.

윤소영만 ‘경매’라는 단어에 좌절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가 ‘최연소 7종 계약자’고 방송으로 번 ‘용돈’이 꽤 있더라도 상대들은 ‘전통 재벌’이었다.

여학생의 재량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다.

‘과연…. 선지혜….’

불필요한 일로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간다.

생일축하노래를 무슨 오케스트라합주처럼 웅장하게 부르는 묘한 경험을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의 거장’이란 남자가 오늘 행사를 위해 작곡한 축하곡이 이어졌다.

이거 내 생일 파티 맞지…?

염소 한 마리 잡고 퉁 치려 했던 무일이 [예측]할 수 없는 ‘호화판’이었다.

영국 왕녀님은 처음의 우왕좌왕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이런 분위기가 맞는 듯 자연스럽게 이 흐름을 즐기고 있었다.

살짝 적응 못 하는 사람은 무일뿐인 것 같았다.

적어도 이들은 최소 한두 번씩은 ‘가상현실게임’에서 이보다 더한 호화로운 파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놀람과 감탄은 있었다.

“현실에서 이 정도로 준비하더니….”

“게임 속에 있는 기분인걸.”

“시시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군.”

현실에서 댄스가수로 종사하는 ‘여성 5인조 그룹’이 나와서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괴수의 눈에는 시답잖게 보이겠지만, 성형수술로 ‘완벽미’를 자랑하는 여가수들의 선정적인 옷차림과 율동은 남자들에게는 직격이었다.

그 사이에 무일은 ‘제 생일파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형식적인 말을 하며 테이블을 돌아다녔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이들?

남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감시하는 아내처럼, 알게 모르게 예의주시하는 계약자들 때문에 ‘평범한 여자’들을 쳐다볼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누구를 위해 초청한 걸그룹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손님들(특히 정찬호가 좋아했다.)을 위한 공연이다.

“이다음은 선배의 업적을 소개하는 시간이야.”

“내가? 그런 거 없는데?”

“많이 있던걸.”

무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취득한 업적이나 경력 등이 대형 스크린에 주르륵 나열되기 시작했다.

사냥꾼답게 전투적인 측면이 많았다.

3급 사냥꾼, 4급 무기허가증, 1급 살인면책권처럼 흔한 것부터 ‘최연소 4급 사냥꾼 - 26년 8개월’처럼 내세울 수 있는 기록도 있었다.

이어서 ‘최단시간 4종 사냥 - 0.9초’나 ‘연속 4종 연속 사냥 - 5마리’처럼, 모바일게임의 업적 같은 것도 본부에 있었다.

마침표는 ‘최초의 5급 사냥꾼 - 26년 11개월’이었다.

그 밑으로 ‘최초의 6급 사냥꾼 - (예정)이란 의미심장한, 굳이 쓸 필요 없는 것도 들어있었다.

4급은 거의, 5급 사냥꾼은 아예 미개척 영역이다 보니 기록을 쓸어담은 모양이다.

“...생일파티에 이런 거 해도 되나?”

“응. 봐봐. 좋아하잖아.”

포르 11세(포르 8세가 죽어서 순위가 올랐다.)인 시링 팽은 완전히 뿅 갔다. 계약자이면서 사냥꾼이기도 한 소녀다운 반응이었다.

그건 평양에서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쥐었던 페이 링도 마찬가지였고, 윤소영과 최은설, 강보라는 ‘뭔지 모르겠지만 대단하네.’라는 표정이다.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가벼운 감탄사.

유키 짱만이 당연히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듯 살짝 지루해했다.

“아까, 경매라고 했지?”

“응.”

“거기서 오늘 행사비용을 충당하는 건가?”

“맞아! 물론, 주체자인 내가 행사비용의 상당 부분을 ‘생일선물’로 제공했지만, 오늘 생일파티의 클라이맥스는 경매야. 마음껏 기대해도 괜찮아, 선배.”

“역으로 불안하다만.”

“기분 탓.”

그 기분이 틀린 적이 별로 없다는 게 유감이다.

전직 6종 솔라충 계약자였던 김민지, 4종 로니콘 계약자 임보연을 포함한 여인들은 임신한 몸으로 왜 왔나 싶을 만큼 시종일관 조용했다.

무일과 인사 나눌 때도 그렇고, 우연히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잔잔한 미소로만 회답하며 말을 아꼈다.

목적을 [예측]할 수 없다.

‘이유를 물어볼까?’

하지만 ‘동정남’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애로운 어머니’ 분위기인 그녀들에게 무일은 다가가는 것조차 벅찼다.

심리적으로 무언가 죄를 짓고 짓눌리는 기분이었던 까닭이다.

아무튼,

카르 4세의 27살 생일파티의 마지막을 장식할 경매 타임이 왔다.

조용히 생일파티를 즐기던 손님들, 정확히 말하면 각국 대사들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뀐 것도 이쯤이었다.

톡, 톡, 톡.

유키 짱은 다리를 꼬고 앉아서 신용카드 모서리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리며 경매가 빨리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방에 피규어를 구매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여기에 맞서는 시링 팽은 신용카드를 양손으로 꼭 쥐고 ‘게임친구’ 외의 경쟁자가 또 있는지 살피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경매상품은 총 3개인 모양이다.

피규어는 알겠는데 나머지 둘은 뭐지?

단상에 올라간 선지혜가 첫 번째 상품을 설명했다.

“저와 카르 4세가 처음 만나고부터 1년 후, 그가 17살 되던 해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생활부입니다.”

“뭐…?”

“여기에는 무슨 훈련을 했고 언제 화장실을 갔으며 뭘 먹었는지 등의 상세한 데이터가 빼곡히 들어있습니다. 계속 독식할 예정이었는데 10주년 기념으로 1명에게만 공유☆”

“잠깐! 내 인권은?!”

어째서인지 카르 4세의 항의가 당연하게 무시됐다.

이 자리에 모인 각국 관계자들은 모두 이걸 노리고 왔으니 당연하다.

한국의 와이츠가 ‘실패작’이라고 단언한 약품은 윤리의식이 없는 미치광이들에 의해 수많은 소년에게 실험됐고 단 ‘1명’만이 성공했다.

똑같이 따라 했는데 왜 안 될까?

해답은 간단하다.

한국 본부 의무대에서 놓친 ‘과정’에 열쇠가 있다.

하지만 카르 4세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그래서 첩보위성 등으로 알 수 있는 정보도 최신뿐이었다.

막막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무시무시한 ‘스토커’가 있다.

무려 11년 동안 이 남자만 바라본 여자가 있었다!

“단위는 1천만. 경매시작가는 5천만입니다.”

이딴 걸 5천만 원이나 주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무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카르 4세의 [예측]은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빠르게 가지. 300억.”

“참 빠르군. 500억.

“그것도 돈인가. 900억.”

“......”

가파르게 상승했다.

단위는 경매 시작과 동시에 무시당했다.

< [19장-3]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 끝

ⓒ 파르나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