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77화 (77/287)

< [19장-1]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10

[19장]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학명: 신드버드(아주 신들린 새)

서식지: 조류

특징: 새가 커지고 또 커집니다!

위험도: 3종 대형

비고: 멀리서 보면 평범한 새인데...

***

현재, 전 세계의 첩보위성 중 상당수가 ‘하나’만을 주시하고 있다.

카르발트.

인간임에도 괴수로 불리는 남자의 이명(異名)이다. 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으며 특히, 사냥방식은 하나도 빠짐없이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다.

2종 계약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무식한 생각을 하는 관료주의자들도 더러 있다.

5분 타임아웃(?)이란 치명적인 결함(!)이 밝혀지면서 흥미는 많이 식었지만, 그래도 그 가치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일반적인 계약자는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미모 관리로 허비한다. 거기에 비하면 5분 싸우고 20분 휴식인 카르발트는 행동이 자유로운 편이다.

특히,

호위로 안성맞춤이다.

“기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내 같군요.”

“그렇습니다, 여왕 폐하.”

유사시에 6종 괴수하고도 맞서 싸울 수 있는 카르발트는 ‘에쏘드 계약자’보다 훨씬 유용하고 유지비는 팬티값 정도일까.

에쏘드 계약자는...

보조해줄 ‘용사 일행’을 줄줄이 달고 다니지 않으면 2종 괴수조차 혼자 처리하지 못하기에 소규모 전장에서는 쓸 수 없다.

영웅은 혼자 싸운다.

모든 부와 명예, 미녀를 독식하기 위해서.

하지만 용사는 함께 싸운다.

인류를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동료들을 모아서 거대한 적에 대항한다. 그리고 동료들이 만들어준 기회를 이용해서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하는 ‘전설의 검’이 ‘에쏘드’다.

그렇다면 카르발트는 영웅일까?

늘 따라다니는 1급 사냥꾼이 있지만 혼자 싸우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영웅보다는 용사에 가깝다.

검소하고 엄격한 생활태도를 보면 로열기사의 귀감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출신과 관계없이 대공(大公) 후보로 올려보도록 하지요.”

“그자가 원치 않을 겁니다, 여왕 폐하.”

지구에서 ‘여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얼마 없다.

엘로엘 계약자 박선영처럼 전부 별명이고 ‘직책’인 여성은 단 한 명뿐이다.

영국 여왕.

엘리시엘 하이로드.

풍성한 은발과 가슴이 매력적인 여왕님은 높은 왕좌에서 패기 넘치는 아들을 내려다봤다.

홀을 둘러싼 충성스러운 로열기사들도 여왕의 말에 정면으로 부정한 ‘당돌한 왕자’를 무표정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귀족들보다 상석에 앉은 다른 자녀들, 왕자와 공주들도 살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유를 들어보고 싶군요, 카이서스.”

엘리시엘 여왕은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고 이유를 물었다.

영국왕실의 현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다.

그건 전통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초대 하이로드 왕가를 일으킨 루시아 하이로드는 8종 계약자였다. 무너져가는 영국을 수호자 와이츠의 도움으로 복구하여 14년간 통치했다.

영국 와이츠 ‘모드레무스 멀리온’은 계약자의 ‘번식’을 허락했고 이렇게 태어난 ‘공주’ 중에서 가장 강력한 계약자가 ‘여왕’을 계승했다.

왕자는?

당연히 동등하게 ‘왕위’에 오를 기회를 줬다.

왕녀만 편애한다면 남성이 대부분인 귀족(정치인)들이 크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자가 돼야 한다는 조건은 똑같았다.

“카르발트는 약혼녀가 있습니다.”

그 기회를 살린 왕자는 여태 없었다. 어릴 적부터 검술을 갈고닦고 기사수업을 받은 그들 중에 ‘에쏘드 계약자’가 탄생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첫 전투에서 대부분 죽었다.

아니면 일찍 왕위계승을 포기하던가.

그렇게 점점 귀족과 기사들도 ‘왕’을 포기하고 있을 때, 특출난 왕자가 등장했다.

그 이름은, 카이서스 하이로드.

파티를 꾸려 8종 야생괴수를 쓰러트림으로써 그 능력을 입증한 ‘에쏘드 계약자’에게 수많은 귀족과 기사들이 지지를 보냈다.

영국 하이로드 왕가 최초의 왕!

모두가 그 기대로 부풀어 있을 때였다.

“오라버니께서는 억측이 심하시군요. 카레 경은 홀몸입니다.”

영국에 2번째 8종 계약자가 탄생했다.

대마법사로 불리는 괴수, 듀크마는 ‘공작부인’이 될 운명이었던 어린 공주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수호자의 ‘마법’으로 영국 전반의 실생활을 과거보다 풍요롭게 바꾸며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카이서스 하이로드에게 기울었던 왕위계승권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밀려난 것도 아니었다.

여성을 은근히 편애하는 여왕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기사와 귀족들이 ‘왕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평행선인 상태였다.

에쏘드는 9종 야생괴수까지 저지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다.

반면에, 듀크마는 ‘가장 약한 8종’인 대신 다재다능하다.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

“그건 내일 있을 그자의 생일파티를 보면 알게 될 거다, 실바니아.”

“생일...?”

“많이 아는 것처럼 말하더니 생일 날짜도 몰랐던 게냐.”

참석하는 미혼녀들이 하나같이 대단하다.

그 많은 여자가 전부 ‘평범한 친구’일 리 없다. 그건 도청한 통화내용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계약자란 절대적인 장벽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똑같이 계약자라면 어떨까?

에쏘드 계약자인 카이서스 하이로드가 다수의 ‘아름다운 계약자’를 거느린 것처럼 말이다.

여자들만 오는 게 아니다.

초대받지 않은 국가들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괴수의 위협으로 국경이 봉쇄됐음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그만한 안전대책을 준비했겠지만 말이다.

여객기는 무리지만, 극소수라면 웨일풍처럼 다양한 편법이 있다.

“한국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오르는군요.”

잠자코 있던 여왕이 화두를 던졌다.

그 흐름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으나 왕자를 지지하는 귀족과 기사들은 안다. 여왕이 수세에 몰린 왕녀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럴수록 카이서스 왕자를 추대하려는 자들이 늘어나면서 장기적으로 보면 실바니아 왕녀에게 불리해지겠지만, 엘리시엘 여왕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시비를 불러 한국에 전화했다.

왕족이 불청객이라면 체면이 우습게 되기 때문이다.

‘선지혜는 힘듭니다. 영국 왕실을 우습게 아는 여자이니.’

그래서 만만한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여왕이 직접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왕녀’가 ‘사적인 이유’로 방문하는데 양해나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그 왕녀는 8종 계약자.

대통령이 감당할 수 없는 무력의 소유자다.

(양국이 앞으로도 우호적인 관계가 계속되길 빌어요.)

(조금 갑작스럽지만, 조치하겠습니다, 이만.)

무서운 두 여자의 중간연락망으로 쓰인 대한민국 대통령만 불쌍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이 이 시대의 여자들이 가진 힘.

엘리시엘이 실바니아를 조금씩 응원하는 이유다. 남자들이 입김이 강해지면 그만큼 계약자들은 누려왔던 많은 특권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줬던 걸 뺏는다.

그렇게 되면 영국은 계약자 전력에 누수가 생길 것이다.

기사와 귀족들은 와이츠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꽉 붙잡고 있는 탓에 불만은 있을지언정 이민을 택하진 않지만, 계약자는 그렇지 않다.

쓰임이 적은 1종 계약자마저 남작(男爵) 이상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카이시스 하이로드가 왕이 되면?

지지해준 귀족과 기사들을 위한 나라가 될 게 자명하다.

“카이시스. 네 말대로 실바니아는 그자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구나. 그래서 내일 생일파티에 참석시키고자 하는데 이의 있느냐.”

“없습니다, 여왕 폐하.”

카이시스 하이로드는 차분히 대답하며 물러났다. 여왕의 판단은 [예측] 범위 안이라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서두를 필요 없다.

실바니아 하이로드에게 승산은 없기 때문이다. 계약자들이 지지해주고는 있지만, 그녀들의 응원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외모관리로 하루에 18시간씩 할애하는 계약자는 정치랑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에쏘드 계약자’는 다르다.

체력과 기력이 무한하다!

규칙적인 근력운동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수면도 필요 없다. 식욕을 견딜 수 있으면 물만 먹고도 살 수 있다.

그야말로 전설의 용사!

지쳐서 고꾸라지는 추태 따위는 없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정치와 민생에 쏟아부을 수 있는 카이시스 하이로드가 패배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왕위계승이 ‘많이’ 늦춰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지.’

카이시스 하이로드는 어리석지 않다.

아둔했다면 ‘용사의 정령’에게 ‘용사’로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왕자는 경계했다.

여동생이 ‘정말 대단한 후견인’을 구한다면 전세는 뒤집힐 수 있다.

또 다른 에쏘드 계약자를 구해온다거나, 카르발트를 영국인으로 끌어들인다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변한다.

하지만 카르발트는 힘들다.

그는 스스로 한국정권을 뒤집을지언정 절대 떠나지 않는다.

“실바니아, 가서 왕실의 명예를 드높이고 오세요.”

“명을 따르겠습니다, 여왕 폐하.”

영문도 모른 채 공작부인이 될 뻔했던 왕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다.

고위 계약자로 성장할 싹이었던 여동생을 일찌감치 꺾으려 했던 오라버니에게 이대로 순순히 패하고 싶지 않았다.

정략혼이 정해진 건 12살.

당시는 지금처럼 아름다운 숙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에쏘드 계약자가 되기 전까지 4급 프로사냥꾼이었으며 ‘카르 4세’로 불렸던 카이시스가 실바니아의 장래성을 [예측] 못했을 리 없다.

듀크마가 하루 늦게 찾아왔다면...

실바니아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자식을 일곱쯤 봤을 것이다.

‘압니다, 일국의 공주로서 정략혼은 당연한 거지요.’

그래도 12살은 너무나 가혹한 처사다.

수명의 한계가 흐릿해진 24세기에 결혼과 출산은 서두를 필요가 사라졌다. 계약자가 될 수 있는지 확인될 때까지만, 못해도 성인식까지만 기다려줄 수 없었을까?

그러니 이건 간접적인 ‘암살미수’다.

영국왕실의 이해득실하고 전혀 상관없는 정략혼.

복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만치 않은 누이동생’이란 것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다.

하지만 쉽지 않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 두렵다.

애초부터 4급 프로사냥꾼으로서 무시무시한 [예감]과 [예측]을 가지고 있던 카이시스 하이로드는 에쏘드를 만나며 ‘완전무결한 기사’로 거듭났다.

에쏘드 능력은 간단명료하다.

『적이 강할수록 강해진다!』

무한한 체력과 기력은 부차적인 능력이다.

8종 수호자 듀크마를 ‘적’으로 간주하는 순간부터 ‘용사 카이시스’는 마법에 대한 완전내성을 갖게 된다.

여기에 ‘물리속성 마법’마저 [예감]과 [예측]으로 피해버리면?

마법이 전부인 괴수에게 승산은 없다.

하늘 높이 도망쳐서 일방적으로 마법을 퍼부은다면 어찌어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마녀(魔女)’로 알려질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대일 상황일 경우.

용사 곁에는 늘 든든한 동료가 있다.

그녀들의 수호자는 2종, 3종으로 보잘것없지만, 듀크마의 ‘비행 마법’만 방해해도 승패는 순식간에 정해진다.

그러니 최악의 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실바니아, 무슨 생각을 그리하느냐.”

대전(大殿)을 빠져나오는 길에 에쏘드 계약자가 넌지시 물었다.

남자는 약자? 남자는 호구?

여기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용사의 정령’의 힘과 지혜를 휘두르는 ‘전설의 용사’는 조금도 약하거나 못나지 않다.

아름다운 처녀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듀크마 계약자는 발걸음을 멈추고 담담히 답했다.

“...영명하신 오라버니라면 이미 짐작하고 계시리라 사료됩니다.”

“너무 무리하진 마라.”

“안면이 있는 기사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는 것뿐입니다.”

“그래?”

“......”

프로사냥꾼쯤 되면 복잡하다는 ‘여자의 속내’도 간단히 간파한다.

거짓된 사랑 고백쯤은 눈 감고도 분별할 수 있다.

카르 4세의 ‘정의감’이 어떤 종류인지 몰라서 살짝 걱정되긴 하지만, 내정간섭이란 걸 알게 되면 깨끗이 물러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실바니아의 미모에 승산이 있긴 할까?

8종 계약자인 여동생의 매력은 인정하지만, 카르발트쯤 되면 외모는 기본으로 깔고 마음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왕위계승권을 뒤집어보겠다는 사심이 가득하다. 심지어 쟁쟁한 경쟁자도 너무 많다.

가망은 없다.

그것이 카이시스 하이로드의 [예측]이다.

“왕자님!!”

“아아, 먼저 실례하마. 나의 레이디가 곧 위기에 빠질 것 같아서.”

“어, 어엇?! 꺄앗!”

프릴이 잔뜩 달린 검은색 치마를 밟고 복도에서 자빠지기 직전이었던 미녀는, 잽싸게 달려간 왕자가 부축해준 덕분에 볼썽사나운 꼴은 면했다.

정말로 꼴불견이었을까?

엉성한 왕실예법조차 요염한 20대 소녀(小女)는, 화가의 손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몸매의 절세가인이었다.

당연하다.

순수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쏘드.

왕자의 약혼녀란 위조신분을 쓰고 있는 ‘용사의 정령’이다.

“룬 엘리자베스...”

< [19장-1]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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