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59화 (59/287)

< [14장-4] 정치는 나비처럼. >

“우아아아아?!”

카르 4세는 비명을 내질렀다.

찢어진 낙하산이 ‘발광하는 비둘기’의 거대한 새대가리를 덮었고, 낙하산이랑 연결된 그도 덩달아 끌려갔다.

신드버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뱃속에 침범한 ‘가시’가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속도는, 무엇이든 먹는 신드버드가 소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내장이고 뼈고 닿기만 해도 썰린다!

더는 비행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3종 비둘기는 땅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하지만 낙하산에 가려서 앞을 전혀 못 본다는 게 문제였다.

그대로 버려진 콘크리트 건물에 머리를 박았다.

쿠궁!

보통의 괴수였으면 콘크리트 두께가 얼마나 됐던 부쉈을 것이다. 하지만 괴수치고 너무나 연약한(!) 신드버드는 혀를 빼물고 힘없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래도 발버둥이 완전히 헛되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충돌의 관성으로 비둘기 몸속에서 쫓겨난 ‘가시’는 다시 주인의 품으로 위험하게 날아갔다.

이렇게 공교로울 수 있을까?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카르 4세는 감으로 대충 손을 뻗어 자연스럽게 카르세리안 레이소의 안전부위만 잡았다.

손잡이.

나머지는 주인이고 뭐고 쑥쑥 썰어버린다.

손 말고 다른 곳을 잡으면 가만 안 둔다는 ‘츤데레 아가씨’의 흉흉한 예기도 산들바람처럼 흘려넘겼다.

“어디 보자…. 여기가 평양인가?”

괴수가 휩쓸고 지나간 버려진 도시 대부분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조금만 손보면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상태.

하지만 직접 살라고 하면 어디부터 손봐야 좋을지 난감해서 살기 싫은 동네다.

그런 평양이지만 사람은 산다.

‘둘. 그리고 이제 셋. 살기(殺氣)는 없군.’

다 먹지도 못하고 부패할 것 같은 초대형 비둘기가 떡하니 죽어있으니 사람이 몰릴 만도 하다. 하지만 몰렸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그 숫자는 적었다.

이것이 평양의 단면(斷面).

계약자와 수호자가 보호하지 않는 도시와 마을의 실태다. 법보다 힘이 우선시되는 세계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극소수만 살고 있다.

무리를 이루면 괴수의 습격을 받는다.

그렇다고 안 뭉치면 맹수의 습격을 받는다.

그 딜레마 속에서 적절히 흩어져 생활하는 것이다. 문명의 혜택을 못 받는 ‘야생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학자들은 예견했지만, 벌써 100년째 버티고 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여기가 평양입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한 무일은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제대로 왔군.

대련하기로 한 장소까지 1km 남짓이다.

『야생인류』

야생동물이 침입하기 불가능한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여자들이 둘이나 셋씩 짝지어서 생활하고 남자들이 수렵활동을 한다.

일단은 그렇다고 하는데….

그랬던 시절은 80년 전이고 현재는 ‘순수한 야생인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렵이란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 까닭이다. MID 무기로 무장한 사냥꾼도 팍팍 죽어나는 판국에 평범한 비전투원이 무슨 수로 채집하겠는가.

그렇다면 저들은 누구?

서울에서 도망친 범죄자들이다.

사형 확정인 자들이 감시카메라로 도배된 서울에서 숨어 살 수 있는 가망은 없다. 사형수를 감춰주는 자들도 묶어서 사형이니까!

어차피 죽을 바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는 심보다.

그도 아니면 추방됐던가.

‘창작의 자유도 좋지만, 적당히 해야지.’

도시에서 추방되는 1순위는 ‘괴수옹호론자’다.

인간의 죽음은 약육강식에 따른 자연의 섭리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 혹은 그런 성향이 드러난 작품활동을 하는 자들이 쫓겨난다.

그 섭리대로 너나 죽으란 뜻이다.

다음 2순위는 가장 많은 ‘전쟁낭만주의자’다.

괴수 사냥을 유희나 모험처럼 해석하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냥꾼 남녀가 괴수 사냥으로 재벌이 돼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던가?

정말 그런지 확인해보라고 내보내는 것이다.

3순위는?

본인들이 왜 쫓겨나는지도 모르는 ‘사랑절대론자’다.

『로미오와 줄리엣』

세기의 명작이란 이유로 금서(禁書)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셰익스피어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바로 추방 감이다.

사랑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이런 바람이 계약자에게 들어가면 국가적인 위기이기 때문이다. 교칙과 보건수업을 무시하고 순결을 내던지는 여학생들도 문제다. 부추기는 남학생을 포함해서.

그 밑으로는 순번을 정할 수 없다.

인구감소를 위해 국가에서 법으로 지정한 ‘추방대상’ 목록이 너무나 많은 탓이다.

사형 아니면 추방!

변호사가 괜히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다.

“사냥꾼님! 잠시만, 잠시만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음?”

발걸음을 멈춘 카르 4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울에서 추방된 시민 중에 여자들도 당연히 있지만, 멀고 먼 평양까지 죽지 않고 왔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다음으로는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

이런 척박한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것치고는 무척 곱다. 식량을 대가로 남자들에게 몸을 주며 버텨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놀라울 것도 없다.

무려 15년이다.

카르 4세가 사냥꾼이 되어 한국의 이곳저곳 돌아다닌 세월은, 야생인류의 온상을 하나부터 열까지 샅샅이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당연히 추방된 미녀들도 적지 않게 봐왔다.

“제 딸을 살려주세요! 제발!”

“어째서 어린애가 도시 밖에 있는 겁니까?”

그렇다. 아무리 인심(人心)이 야박해도 어린애를 추방하진 않는다.

부모가 추방되어 돌볼 사람이 없다면 국가에서 책임지고 성인이 될 때까지 지원한다. 주로 홀몸인 사냥꾼에게 맡기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형식이다.

부양가족이 딸린 사냥꾼은 강하다!

거기까지 노린 정책은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이 아이는 여기서 태어났어요.”

“제정신입니까?”

추방되는 여자들은 ‘불임수술(不妊手術)’을 무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힘없는 여자들이 도시 밖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자비인 셈이다.

아니, 어미를 잘못 만나서 태어나자마자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 ‘새 생명’이 없도록 하려는 작은 양심이다.

여자의 99%가 이 불임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예외는 어디에나 있는 법. 사랑은 그 어떤 시련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랑절대론자’들이 간혹 거부한다.

그 결말은 정해져 있다.

배 속의 아기와 함께 아사(餓死)한다면 그나마 인간적이다. 온갖 끔찍한 방식으로 자진해서 낙태(落胎)한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산부는 생활력이 극도로 떨어진다. 씨를 뿌린 남편이란 작자가 먹고살기 힘들다고 도망치면 그걸로 끝.

“무슨 병인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어디 있습니까?”

“...9년 전에 떠났어요. 제가 다른 남자들에게 구걸해서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 악마 같은 놈은 간신히 비축한 식량마저 훔쳐서 달아났어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던지 여자는 몸서리쳤다.

무일은 어미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소녀를 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의로 지저분하게 위장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영양결핍으로 왜소한 체형은 나이를 추측할 수 없게 했다.

그래도 한가지 [예측]하자면,

병에 걸린 대상은 딸이 아니라 어미였다.

“매독(梅毒)입니까?”

여인의 가랑이에서 나는 악취가 무일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했다.

추방된 여자들은 고대의 매춘부보다 위생상태가 나쁘다. 씻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런 비위생적인 성관계를 계속 가지다 보면 없던 성병도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병은 매우 드문 일이다.

여자를 추방(간접살인)하면서 예방주사를 놔주는 심보는 뭘까?

그 덕분에 발병률은 떨어졌지만, 약발이 영원하고 완벽한 건 아니다.

“제 딸을 살려주세요.”

성병에 걸린 여자는 아무리 예뻐도 남자가 찾지 않는다. 그 탓에 비축해둔 식량은 진즉 동났고 옛정을 생각해서 돕는 척하던 자들은 딸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 지옥에서 간신히 키운 딸이다.

불임수술은커녕 예방주사조차 받지 않은 아이가 남자와 접촉하기 시작하면 1년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건 카르 4세도 같은 생각이다.

어미가 지은 죄로 자식마저 고통받을 이유는 없다. 저 여인이 성병에 걸리고 말고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죄 없는 아이가 힘겹게 살고 있다.

고민도 죄악(罪惡)이다.

“이름이 뭐니?”

“최희망. 엄마를 구해주세요.”

꾀죄죄한 소녀의 눈동자가 사냥꾼을 올려다봤다.

여자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카르 4세는 다정한 어감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 아저씨의 힘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곳 평양에 사는 모든 사람을 구해야 한단다. 그러니 들어줄 수 없구나.”

형평성과 공정성이란 매우 중요하다.

누구만 특별대우해준다면 사회체계가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안 갈래요. 끝까지 엄마랑 살 거예요.”

“그럴 순 없단다. 대신…. 네 엄마의 고통을 덜어줄 순 있단다. 희망은 모르겠지만 네 엄마는 지금 대단히 고통스러울 거야.”

“엄마….”

여인은 ‘엄마’를 부르는 딸의 손을 떼어냈다.

사냥꾼의 말처럼 죽고 싶을 만큼 대단히 고통스럽다. 그리고 곧 찾아올 죽음의 공포로 두 다리마저 떨렸다. 하지만 주저앉지 않고 있는 힘껏 딸을 밀쳤다.

삐쩍 마른 아이가 힘없이 사냥꾼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괴수조차 피하지 못한 칼날이 여인의 몸을 가차 없이 베었다.

이 야생에서 아주 오랫동안 버텨온 추방자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형평성? 공정성? 좋다. 원한다면 누구든 죽여줄 수 있다.’

체구가 작은 자신의 품에도 쏙 들어올 만큼 왜소한 여자아이를 안았다.

깔끔하긴 했지만, 딸에게 보여줄 정도는 아니다.

소녀는 사냥꾼의 가슴을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벅찬지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애처로웠다.

‘죽을 수 없는 이유가 또 늘었군.’

여인은 처음 보는 남자를 믿고 딸을 맡겼다.

그 ‘의지(意志)’에 보답하려면 카르 4세도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됐다. 괴수대응본부에 요청해도 되지만 그걸로 괜찮을까?

이유야 어떻든 아이의 모친을 해쳤다.

사회구조와 어른들의 사정을 아이에게 강요할 순 없다. 그러니 최희망이 배우고 성장해서 그를 이해하고 용서해줄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카르 4세의 ‘정의’였다.

“이 아저씨의 이름은 한무일. 잊지 말렴.”

카르 4세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다.

그가 죽더라도 평양 땅에 또다시 버려지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안 잊어요. 저는 엄마를 때린 아저씨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니. 똑똑하네.”

자다가 어린애에게 목 졸려 죽진 않겠지?

그렇게 지옥으로 떨어지면 염라대왕이 배꼽 잡고 박장대소할 게 분명하다. 실제로 벌어진다면 [예감]으로 조기에 예방되겠지만.

무일이 찾은 곳은 ‘평양 월드컵경기장’이었다.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과 올림픽은 22세기 유물로 사라졌다. 경기장을 허물어서 주거지와 농경지로 바꾸기 바쁜 판국에 스포츠는 무슨.

그 자리를 가상현실게임이 차지했다.

건전한 운동게임부터 퀴즈게임, 연애게임, 역할게임, 슈팅게임, 카드게임, 대전게임, 전략게임, 추리게임 등으로 그 종목도 다양하다.

재미?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휩쓸고 다녀서 기대도 안 되는 국제축제다.

하지만 그건 카르 4세만의 생각이고! 세계인들은 4년마다 있는 ‘프로리그’를 준비하거나 보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설하고,

평양 월드컵경기장에는 며칠 전부터 도착해서 귀빈을 맞이할 채비하는 본부 요원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음? 너는 따로 온다더니 애를 만드느라 그랬냐?”

순찰 중이던 사내가 무일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의 뒤편으로는, 먹을 걸 달라고 애원하는 추방자들과 경비대원들의 실랑이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차라리 죽여라!

누군가 말했고 정말로 쏴 죽이면서 시위는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매정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행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소란 안 피운다는 조건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주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가공식품을 더 달라고 욕심부리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경비대장님. 이렇게 큰 애를 무슨 수로 만듭니까.”

“너는 불가능도 가능한 남자잖아.”

옛 상관이자 검술스승인 경비대장 임진철이 웃었다.

카르 4세는 그의 자랑이었다. 세상과 집안에 불만 많은 13살 가출소년이 경비대 수련생일 때부터 독립할 때까지 봐왔다.

이게 바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걸까?

경비대장 임진철은 과분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후학을 양성한답시고 나태해진 3급 사냥꾼 밑에서 4급 사냥꾼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늙은 고양이가 호랑이를 길러낸 격이다.

“온몸이 쑤시니 빨리 들여보내 주세요.”

“오냐. 그런데….”

“하실 말씀이라도?”

“다리 좀 그만 떨어라. 겨우 여자애 하나 들고 쩔쩔매.”

< [14장-4] 정치는 나비처럼.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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