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장-3] 정치는 나비처럼. >
시링 팽을 서울 여의도의 괴수대응본부에 데려다 준 나브랑모스 레비터는 운전기사 문세웅과 무일을 태우고 쏜살같이 북(北)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평양까지 직진은 무리였다.
괴수의 위협도 문제지만, 나브랑모스 레비터는 반듯한 도로가 아니면 조그만 충격에도 차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정은 이랬다.
일단 파주시에 간다. 그리고 거기서 2차선 포장도로로 연결된 개성시에 들려 완공된 전셋집에서 하루 쉰다.
문세웅은 거기까지 동행한다.
카르 4세는 개성시청에서 제공해주는 헬기를 타고 비행형 괴수가 뜸한 새벽 시간대를 이용하여 평양까지 단숨에 날아갈 예정이다.
‘차별도 이런 차별이 없단 말이지.’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비서실장, 정보과 차장, 주치의 오돈혁 선생은 귀빈으로 몬스터카 4대에 나눠타서 올 예정이다.
그 뒤를 정비과, 의무대, 헌병대, 경비대에서 차출한 인력이 호버크라프트 6대에 여러 물자와 함께 이동하는 모양이다.
호위로 강습반 계약자들이 붙은 건 당연지사!
일설로는 윤소영도 온다는 것 같다.
“그런데 선배님은 왜 따로 이동하는 겁니까?”
“나도 모르지.”
이유라면 짐작 가는 바가 있다.
선지혜와 박선영이 그들과 따로 오는 거랑 비슷하다.
이번 대결은 겉보기에는 ‘친선전’이다.
두 사냥꾼이 목숨을 건 대결이란 것까지는 똑바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결의 발단과 승패의 중요성에 대해선 하나도 모른다.
누가 이겼네?
거의 모든 사람의 감상은 이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양국을 대표하는 8종 계약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대결이다.
‘내가 동행하면 위험해지지.’
수호자가 괴수 몰이로 습격해온다면 전멸할 수도 있다.
정말로 그 7종 다혈질 용왕님이 따라왔다면 일행이 전멸할 가능성은 낮지만, 피해가 작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따로 이동.
진짜 위기는 헬기로 이동할 때다. 도망칠 곳 없는 하늘에서 [예감]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비행시간이 매우 짧지 않았다면 카르 4세도 이 방법은 피했을 것이다.
‘여왕님은 행패 부리러 갔으려나?’
카르 4세가 평양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죽어서 기권패 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면 보호해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건?
박선영은 수비와 방어보다 ‘일방적인 공격’을 선호한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선수와 일행이 한국 땅을 보지도 못하고 바다에 빠져 죽도록 은밀하게 손을 쓰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암살은 그녀의 특기니까.
바람직하진 않지만, 힘없는 사냥꾼은 묵묵히 앞만 볼 뿐이다.
“선배님! 여기가 정말로 파주시일까요?”
“...그러게. 특공대장 사유지처럼 황량한 동네였는데.”
분양 안 된 빌라 사이로 빈 버스만 돌아다니던 예전의 파주시가 아니었다.
자가용차의 사용과 소유가 엄격히 제한된 파주시는 만원 버스와 자기부상열차가 쉴 틈 없이 승객들을 나르고 있었다. 보이진 않지만, 지하철도 다닌다고 들었다.
엄청나군.
와이츠가 고안한 계획도시는 낭비란 게 없었다.
모든 도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보다도 질서정연했고, 도시를 관통하는 임진강은 너무하다 싶을 만큼 농업, 공업, 식수로 혹사당하고 있었다.
여객선은 포기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수영장 하나쯤은 양보해도 좋은 텐데….
무일과 문세웅은 혀를 내둘렀다.
“어? 선배님.”
“그래. 나도 봤다.”
가상현실에만 존재하는 유원지의 관람차가 저층 빌라 너머로 보였다.
사람 살 땅이 부족해서 멀쩡한 놀이동산을 전부 철거한 게 1세기 전이다. 그런데 보란 듯이 토지를 낭비하는 저 관람차는 뭘까?
위치를 대충 어림짐작해보니 파주시청 앞이다.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국모 선유나’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저분도 4차원일지도?
무일은 관람차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거면 고층빌딩을 쭉쭉 올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저렇게 ‘눈에 띄는 구조물’을 괴수가 가만 놔둘 리 없다는 순수한 걱정이 앞섰다.
“현실에서 놀이기구를 볼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짧은 감상을 끝으로 파주시를 지나 개성까지 쭉쭉 달렸다. 아직 개방이 안 된 개성시로 향하는 차량은 없다시피 했다.
그 덕분에 신이 난 건 운전기사 문세웅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밟아보느냐는 마음가짐으로 신들린 것처럼 나브랑모스 레비터를 몰았다. 암살보다 교통사고로 먼저 죽겠는데?!
파주시부터 개성시까지 5분 만에 주파한 미청년은 말했다.
“제가 살아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캬아!”
“...나는 죽는 줄 알았다만.”
서로 다른 감상을 늘어놓으며 스포츠카에서 내렸다.
파주시가 와이츠의 결벽증과 완벽주의가 전반적으로 반영됐다면, 개성시는 여러 기업의 협찬을 받은 합작품이란 걸 증명하듯 난잡한 거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익숙한 사람 냄새.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란 느낌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 차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거란 ‘희망’도 보였다.
아쉬운 점이라면….
‘계획도시가 미완성으로 완공됐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남구 투기에 뛰어들었던 기업과 투자자들이 무더기로 도산하는 바람에 어설프게 공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내 집은 부실공사가 아니길 빌어본다.
무일이 한 달 뒤에 이사 와서 살 예정인 집은 5층 아파트다. 완공은 진즉 됐지만, 가구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무기한 연장 상태였다.
“...선배님. 차에서 침낭이라도 가져오겠습니다.”
“그, 그래.”
텅텅 비었다!
최첨단설비 어쩌고 했던 집은 어디로?
집구경을 5분 만에 끝낸 무일과 문세웅은 시청에 들려 잘 부탁한다고 인사치레를 한 후에 시거리로 나왔다.
그래도 개성시 나름의 장점이라고 할 게 있었다.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개성시는 토성(土城)으로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괴수조차 무시 못 할 정도로 높게.
이집트에서 주로 쓰는 방식이다.
존재 자체가 규격 외인 9종 ‘모래의 정령’ 힘으로 사방에 널리고 널린 모래를 단단하게 굳혀서 사막의 모래바람과 야생괴수를 막는 벽을 세웠다.
피라미드를 가볍게 비웃는 그 벽의 높이와 규모는, 고대의 파라오가 현대에 재림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선배님. 이거 떼죽음 당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나름의 방책도 세워뒀겠지.”
괴수는 친절하게 육상(陸上)으로만 난입하지 않는다. 고대의 문언에 나온 것처럼 하늘에서, 물에서, 땅속에서, 별(우주)에서…. 심지어 사람에게서도 튀어나온다.
개성시는 시민의 도주로를 막은 배수진이다.
이집트의 ‘이즈헬’처럼 완전무결한 힘을 갖추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어설프네.’
개구리 왕자님, 프로칸만 해도 이 정도 높이의 장벽은 가볍게 뛰어넘을 것이다.
즉, 이 벽은 괴수보다 사람에게 더 위협적이다.
카르 4세 같은 프로사냥꾼도 모르는 획기적인 방책이 없다면, 괴수대응본부하고도 상당히 멀리 떨어진 개성시는 금세 폐허로 변할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안 살아서 괜찮다.
모든 괴수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다수 야생괴수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만 습격하기 때문이다.
개성시로 이사 오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카르 4세도 그 직접적인 관계자(시민)로서 간과할 수 없었지만 당장은 평양에서 있을 대결이 더 큰 문제였다.
‘반칙 같은 무기는 사양인데.’
인류끼리 치고받고 싸웠던 3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괴수가 아닌 인간을 잘 잡는 무기는 숱하게 널렸었다.
하지만 재생력과 방어력, 저항력 등이 무시무시한 괴수의 등장으로 ‘양보다 질’이 우선시됐다.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가장 먼저 바이러스, 박테리아, 독가스 등의 생화학무기가 폐기됐다.
괴수에게 전혀 효과가 없고 아군만 계속 희생된 탓이다.
그 뒤를 이어 기관총, 화염방사기 같은 광범위무기 대부분이 해체됐다.
자원낭비가 심하고 괴수에게는 간지러운 수준이었으니까.
용을 주축으로 한 MID 군수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전인 23세기의 무기들은 살인(殺人)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쓸모가 적었다.
혹시 모르니 소장?
그 대량살상무기들이 보관된 무기고와 연구소 같은 시설을 습격받으면 괴수보다 인간이 먼저 죽는다.
‘나 하나 죽이겠다고 만들진 않았겠지?’
일대일 대결이라고만 했다. 괴수에게 깡통 취급당한 고대의 거대로봇에 탑승해도 규칙에는 전혀 하자가 없다.
양심과 생각이 있다면 그러진 않겠지만.
그 표독스러운 여왕님이 결과에 승복할 리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이기면 중국의 위상과 체면은 밑바닥까지 떨어질 것이다.
이건 비공개전투가 아닌 양국의 ‘친선전’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인들이 보는 생방송이다.
“선배님. 필승입니다.”
“오냐.”
하지만 카르 4세는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서 현재 대한민국에는 카르 4세만 독보적인 실력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3급 사냥꾼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이름 좀 있는 프로사냥꾼들은 볼트윙 사건으로 전부 죽거나 망명한 탓이다.
떠나지 못한 소년만 외로이 조국에 남았다.
그건 대단히 큰 약점이다.
‘반칙으로 재경기를 유도한다면 큰일인데.’
카르 4세부터 일단 죽이고 ‘아! 양심적으로 이건 아닌 것 같네요. 공평하게 재경기하죠.’라고 뻔뻔하게 나오면 답이 없다.
중국은 널리고 널린 게 프로사냥꾼이니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카르 4세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를 대처할 수 있는 인재도 없고 ‘선배’도 없다.
“출발하겠습니다.”
“네. 평양까지 잘 부탁합니다.”
개성시청 옥상에서 소년을 태운 헬기가 서서히 이륙했다.
직후에 무서운 속도로 한 방향으로만 쭉 날아갔다. 어째서 제공권을 포기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시원시원한 이동수단이었다.
도착까지 1분 남았다고 기장(機長)이 설명할 때였다.
“...비상착륙할 준비를 해주십시오.”
“예? 제길!”
도시 밖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서 [예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프로사냥꾼의 경고를 무시할 정도로 눈치 없진 않다.
카르 4세의 말을 듣고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조종사는 망설이지 않고 연막탄을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과연 도움이 될까?
조금은 된 것 같다. 하지만 [업보]가 문제였다. 괴수만이 느낄 수 있는 ‘위협(威脅)’이 프로사냥꾼의 위치를 가르쳐주고 있다.
눈살을 찌푸린 무일은 다짜고짜 헬기 문을 베어내고 자유낙하를 시도했다.
“이봐요?!”
뒤에서 비명을 내질렀지만, 거기에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당장은 [예측]하기 바빴던 탓이다.
‘헬기의 속도는 대략 550km.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순 있지만 바로 습격할 정도로 빠르진 못한 비행형 괴수는? 까까오, 신드버드. 그리고 아직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걸로 봐서는 신드버드. 녀석의 새대가리로 취할 수단이라면…. 셋, 둘, 하나.’
무일은 낙하산을 펼쳤다. 땅에 내리꽂을 기세로 추락하던 작은 육신은 부유감과 함께 낙하 속도가 급감했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를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새가 그의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낙하산을 조금이라도 늦게, 혹은 빠르게 사용했다면 새의 단단한 부리가 단숨에 그의 몸을 낚아챘을 것이다.
【신드버드 / 3종 대형】
몸집만 커진 평범한 새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신드버드는 조류(鳥類)가 아닌 기생형 괴수이기 때문이다.
신드버드의 숙주(宿主)가 된 새는 무엇이든 먹으며 빠르게 커진다. 정말 ‘하늘의 신’이라도 될 기세로 끊임없이!
하지만 괴수의 전매특허인 무한재생을 못 하고 힘도 물리법칙을 준수한다. 그래서 좀 커진다 싶으면 강한 괴수에게 잡혀먹히며 생을 마감한다.
‘다행히 숙주가 비둘기군.’
영리한 맹금류였으면 찍소리도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늘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특히나 맨몸으로 내던져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징그러울 정도로 큰 비둘기가 크게 선회하며 되돌아왔다.
원근감에 따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크게 보이는 게 당연하지만, 끊임없이 커지다가 끝내 시야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난쟁이가 된 기분인데?
하지만 감상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구구!”
신드버드의 비둘기 소리는 가소롭긴커녕 무시무시했다!
카르 4세는 [예감]이 시키는 대로 낙하산의 한쪽 멜빵을 자른 후에 여자친구를 하늘 높이 가볍게 던졌다.
직후, 구멍 난 낙하산이 빠르게 추락했다.
먹이가 땅에 떨어져서 납작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초대형 비둘기가 뒤따라 강하(降下)를 시도했다.
...방금 뭐였지?
괴수는 세상에서 3번째로 위험한 ‘가시’를 삼켰다.
< [14장-3] 정치는 나비처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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