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42화 (42/287)

< [10장-3] 난자 강탈사건 >

입으로는 모신다고 해놓고 손으로 납치하듯 옆좌석에 선배님을 밀어 넣은 문세웅은 빠르게 출발했다.

승차감, 안정성 등이 떨어지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나브랑모스 레비터’는 아무나 몰 수 있는 똥차가 아니다.

비싸서?

가격문제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괴수처럼 빠른 속도 탓에 ‘좌우 대충 살피고 무단횡단하는 시민’이랑 사고 날 위험이 매우 크다.

꼭 무단횡단만이 아니다.

헌병대장 아드님은 혼잡한 서울에서 신호등, 표지판 등을 반쯤 무시하고 있다. 그 많은 ‘질서’를 다 지켰다가는 현장에 사후보고 받을 때쯤에나 도착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사람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장애를 [예감]과 [예측]으로 요리조리 피해 가는 문세웅의 운전실력은 프로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화(特化)된 거겠지.’

카르 4세도 운전이라면 잘한다.

꼭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이걸 이렇게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같은 마음가짐으로 조종대를 잡아도 전투기, 잠수함, 탱크 등을 베테랑 수준으로 몰 수 있다.

설명서? 도우미?

있으면 더 좋겠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정말 터무니없는 ‘감’으로 펼치는 기교지만, 딱 여기까지다.

그 이상은 아무리 용써도 발전이 없다.

아니면 ‘감’에 의존하지 않는 정규코스를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는 수밖에 없다.

카르 4세는 검객(劍客)이다.

손에 익은 검에 한해서 첨단기계보다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 달인이지만, 이 이상은 과욕이고 만용이다.

“세웅! 목적지는 노원구 구청이다.”

“노원구요? 그 실종된 여자. 위험한 동네에서 사네요.”

노원구는 여의도(본부)를 중심으로 서울 북동쪽에 자리한다.

그 지리적인 요인이 노원구를 ‘위험한 동네’로 만들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대륙이랑 이어진 북쪽에서 가장 많은 괴수가 내려온다.

만주(滿洲)와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내려온 놈들은 와이츠 둥지가 자리한 북한산을 선회해서 서울 북서쪽이나 북동쪽으로 침투해온다.

그 북동쪽에 해당하는 노원구.

서울에서 가장 많은 괴수가 출몰하는 지역이다.

“외곽이라 교통체증을 걱정 안 해도 되고 좋잖아?”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선배님.”

“응? 거기 도로는 혼잡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네. 제대로 보셨습니다. 하지만 총각 냄새 풀풀 나는 스포츠카만 보이면 맹수처럼 도로로 뛰어드는 여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동네가 노원구입니다.”

“헐…. 뛰어든다고?”

“농담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노원구에는 괴수만큼이나 사냥꾼들도 자주 들락날락한다. 그리고 사냥꾼은 사망률이 높은 대신 위험수당도 높다.

즉, 사냥이나 수렵에 성공한 직후의 사냥꾼은 재정이 풍족하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미녀도 있는 법!

용감한 사냥꾼과 아리따운 무희의 만남을 축하해주는 숙박업소와 단란주점이 노원구에는 매우 많다.

하지만 용감한 사냥꾼님(물주)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굳이 노원구가 아니더라도 ‘명품가방을 새로 장만하고 싶어하는 성형미인’은 서울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원구 아가씨들은 위험한 육탄공세로 ‘스포츠카 타고 떠나려는 오빠’들을 잽싸게 낚는다.

“그건 몰랐네.”

유감스럽게도 스포츠카를 운전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총각 냄새 풀풀?

그 페로몬(?)이 미녀들을 끌어들이는 모양이다.

무일은 자신이 여태 결혼하지 못한 원인을 ‘스포츠카가 없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정말로 그럴까?

할부의 노예, 요절할 운명, 어린 몸뚱이, 평범한 얼굴….

결정타는 ‘질투의 여신’ 선지혜가 찍었다.

꼭 멋진 스포츠카가 아니더라도 결혼 못 하는 이유로 떠오르는 것들이 많았지만, 프로사냥꾼은 깔끔하게 외면했다.

“아아, 이래서 이 동네는 오기 싫습니다.”

신호등의 존재를 무시하고 달리던 문세웅의 나브랑모스 레비터는 노원구 안에서만 벌써 3번째 급정지하는 중이었다.

뻔히 오는 걸 보고도 뛰어들다니!

노원구에 사는 여자들은 강심장인 걸까?

멈춰선 스포츠카의 보조석으로 자연스럽게 타려던 미녀는 선객인 소년을 보고는 ‘아들? 그렇게 안 보였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물러났다.

이 또한 벌써 3번째.

카르 4세의 자존심은 밑바닥까지 추락한 상태였다.

“...갑자기 서울이 낯설어졌어.”

괴수가 많이 출몰하는 노원구는 무일도 심심찮게 오는 곳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논다.’는 목적으로 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카르세리안 레이소.

그 주인은 함부로 술을 마실 수 없는 탓이다.

단합이든 의기투합이든 한국인들은 흥취니 분위기니 하면서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내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는 늘 빠져야만 했다.

안 마시고 놀기?

혼자만 멀쩡한 탓에 밤새도록 뒷정리했다.

안 취했다고 소리 지르며 무기 들고 행패 부리려는 동료들을 재빠르게 기절시키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해진다.

녀석들은 그가 ‘카르 5세’였을 때부터 곁에 있으면 줄기차게 마셨다.

취해도 어떻게든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 것이다.

‘예쁘지도 않은 민폐 덩어리들이었지.’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소지하고 있지 않던 시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구가 영락없는 소년인 무일은 술에 약한 탓이다.

그렇다고 무기를 집에 놔두고 돌아다니다가 걸리면 벌금이 장난 아니다.

사냥꾼은 ‘용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인이 휴가 중에도 군복을 착용하는 것처럼 사냥꾼은 언제 어디서나 ‘괴수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비상경계령.

사냥꾼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참전해야 하는 수도방어전이다.

하지만 괴수는 시간을 예고하고 쳐들어오지 않는다.

당연히 이때 무기나 장비 없이 맨몸으로 허겁지겁 ‘출석’했다가는 벌금이 문제가 아니라 괴수에게 살해당한다.

무기 대여?

전설의 용사에게도 깐깐한 사람들이 병졸 따위에게 빌려줄 것 같은가!

어림없는 소리다.

‘안 좋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나네.’

하지만 전부 지나간 추억이다. 안 좋았던 일도 미화돼서 추억으로 남았다.

이제는 술 마시고 행패 부릴 친구도 없다.

전부 그의 곁을 떠났으니….

잠시 감성적으로 변했던 카르 4세는 홍영희가 실종된 모텔에 도착했다.

“...대낮에 모텔이라고?”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선배님.”

“하지만 이상하잖아. 모텔은 밤에 이용하는 곳인데.”

해가 비치는 낮 시간대를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는 카르 4세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귀중한 시간을 침대 위에서 허비한다니?

중국인 남자친구는 겉보기에 ‘한가한 백수’라는 설정이니 괜찮지만, 홍영희는 주말에도 방심할 수 없는 기자다.

낮과 밤의 생활이 뒤집히면 업무에 악영향을 준다.

“...선배님.”

“왜?”

“선배님의 몸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동정(童貞)의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이게 중국 무림의 전설로 전해지는 ‘동자공(童子功)’이란 건가!

숨겨진 대마법사일지도 모른다.

카르 4세의 ‘힘의 원천(?)’을 깨달은 문세웅은 한탄했다.

목표로 삼은 사내의 경지가 너무 높다. 따라잡을 엄두가 안 난다.

“내가 뭘 어쨌다고?!”

“자, 어서 가시죠, 선배님! 첩자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끙….”

앓는 소리를 낸 무일은 모텔로 들어갔다.

문세웅이 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은 ‘왜소한 소년’이었지만, 앞모습을 똑바로 마주한 모텔주인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절대로 중고생이 아니야!

나이를 속이고 여자친구랑 오는 녀석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눈앞에 소년은 ‘어른 행세’하는 애송이가 아니다.

거친 손님(사냥꾼)에 익숙한 노원구 토박이로 25년째 모텔영업을 해온 주인은, 자신의 앉은키랑 비슷한 ‘작은 사내’에게 위축됐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손님.”

모텔에 오는 이유야 뻔하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모텔주인이지만 그래도 물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짜 사냥꾼이다!’

두둑한 지갑을 노리는 아가씨의 몸을 더듬으며 왕(王)이라도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던 놈들하고는 기세부터 달랐다.

일반인들은 못 느낄 것이다.

하지만 모텔주인의 25년 경력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별 거지 같은 사냥꾼까지 전부 상대해봤던 그는 자신의 눈썰미를 믿었다.

“특무대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협조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감사는 무슨! 협조 안 했으면 바로 ‘공무방해죄’로 토막 낼 것 같구먼!

모텔주인은 외쳤다. 마음속으로.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는 문세웅은 고개를 갸웃했다.

웬만한 사냥꾼은 맨손으로 때려잡을 것 같은 모텔주인이 벌벌 떨며 굽실거리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손님을 기다리며 단련한 근육들이 거품 같지는 않았다. 얼굴의 흉터를 포함해서.

가만히 앉아서 평화롭게 방값만 챙기는 ‘인자한 주인’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세웅.”

“네.”

“무기를 뽑아라. 녀석들은 아직 이 모텔에 있다.”

“알겠습니다!”

흥분으로 상기된 표정이랑 다르게 문세웅은 침착한 손놀림으로 등에 차고 있던 기관단총에 탄창을 끼우고는 전방을 조준했다.

매우 안정된 자세다.

노련한 군인을 상대로는 너무 정직해서 탈이지만, 인간을 상대해본 적 없는 괴수가 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문제라면 지금의 적이 ‘인간’이란 점인데….

“주인장.”

“네! 말씀하십시오!”

“지금부터 모텔을 좀 부술 계획인데…. 본부 민원과에 얘기해둘 테니 나중에 보상금을 받으면 될 거요. 보험을 들어뒀다면 이익이 생길 수도 있겠군. 청구할 곳이 외국이라서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예?”

카르 4세는 기습적으로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뽑아 모텔주인을 벴다.

세상에서 3번째로 날카로운 절단기는,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공기를 베듯 부드럽게 모든 걸 갈랐다.

피가 낭자하진 않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반응?

인지하지도 못했다.

약간의 오차라도 있었다면 머리카락이 아니라 두개골이 베어졌을 것이다. 반들반들하게 변한 정수리가 그 증거다.

“주인장의 머리에 감시카메라를 숨기다니. 제법이군.”

“...선배님. 꼭 베어야 했습니까? 까딱 잘못했으면 살인자가 될 뻔하셨는데요.”

“그러면 늦어.”

뛰어올라 문세웅의 어깨에 왼손을 얹고 한 번 더 도약한 카르 4세는 모텔 천장을 흉악한 절단기로 휘저었다.

미세한 실선이 생겼다.

배관이 터졌는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싶은 순간이었다.

우르르 천장 콘크리트가 무너져내렸다.

“으아아아?!”

“세웅! 당황하지 말고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를 봉쇄해라! 상황이 어렵다면 무리하지 말고 통로를 파괴해라!”

“선배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배후에서 쳐야지.”

물에 닿은 전기배선이 위험한 스파크를 튀겼지만, 카르 4세는 망설이지 않고 뛰어올라 자신이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서 2층에 착지했다.

그 직후에 들려온 여자의 비명은 뒤따른 총성에 삼켜졌다.

카르 4세는 총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는 얘기는?

총을 든 적이 카르 4세를 공격했다는 뜻이다.

“선배님! 무슨 일입니까!”

“...별거 아니다. 하지만 저격에 주의해라. 만만히 봤다가는 영문도 모른 채 죽는 수가 있다. 무장이 예상보다 뛰어나군.”

“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해 봐.”

먼지가 휘날리는 구멍 안쪽에서 들려온 선배의 목소리.

문세웅이 1층 로비에서 들은 총성의 연사속도는 기관총 계열이었다. 복도라면 어떻게든 피했겠지만, 여자의 비명으로 보아선 침대가 있는 방이었다.

그런데도 무사했다.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평온한 말투다.

후배의 어깨가 활짝 펴졌다.

저런 대단한 사냥꾼이 내 선배구나 싶어서.

“알겠습니다, 선배님!”

“자세한 설명은 끝난 후에 해주겠다.”

침을 꼴딱 삼킨 청년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병대라서 다행이고 장비가 두둑해서 또 다행이다.

괴수와 싸우는 평범한 사냥꾼들이랑 달리 ‘인간’과 교전을 벌일 가능성까지 상정한 헌병대의 교범은 실전경험이 부족한 초심자에게 큰 도움이 됐다.

‘대장님, 조금은 감사합니다.’

헌병대장 문장춘이 들었다면 기뻐했을 발언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문세웅은 계단에 휴대용 지뢰를 뿌렸다.

크기는 보리쌀이랑 비슷하지만, 일단 터지면 사람의 하체쯤은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는 흉물이다.

당연하게도 아들의 안전에 만전(萬全)을 다하는 헌병대장이 준 것이다.

명백한 대량살상무기!

자격증과 허가증 등의 장벽도 아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문세웅은 휴대용 지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사냥꾼이 ‘위기’를 포착 못 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문제없이 봉쇄한 거려나?”

< [10장-3] 난자 강탈사건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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