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9화 (29/287)

< [7장-2] 이 길이 오지랖일지라도. >

“뭐냐, 꼬맹이.”

“...나를 못 알아보는 걸 보니 1년도 안 된 신입이군.”

지하철과 자기부상열차, 보도를 병행해서 이동하길 대략 1시간.

무일이 도착한 곳은, 한강이 서울이랑 헤어지는 강서구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김포시였다.

볼트윙이 대중교통시설 일부를 파괴하지만 않았어도 좀 더 일찍 도착했을 거란 불만은 있지만, 서울 인구가 확 줄어든 점을 고려하면 걸린 시간은 이전이랑 별 차이 없었다.

각설하고,

카르 4세가 이곳, 김포시를 방문한 이유는 별거 아니다.

방위산업단지.

서울에서 쓰고 버린 폐수를 정화해서 재활용하는 공장들이 몰려 있는 소도시다.

그중에서도 무일이 찾은 곳은 철조망과 철벽, 감시탑 등으로 감옥 못지 않은 삼엄한 경계를 받는 공장이었다.

MID 부품공장이니 어련할까.

나사처럼 작은 부속품도 평범한 샐러리맨 평균 월급을 호가하니 미친 척하고 훔치려는 좀도둑(걸리면 경고 없이 총살형이다.)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그 과보호 탓에 비밀도 많은 곳이다.

“저…. 누구십니까.”

덩치 큰 경비원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이제 막 ‘성인식 치른 나이 때의 소년’의 당찬 목소리나 거침없는 움직임은 ‘진짜 꼬맹이’들이 할 법한 부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박자 늦게 소년의 허리에 찬 검으로 시선이 갔다.

무기소유자.

국가에서 흉기를 소지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하물며 이 경비원도 나름 MID에 한 발 걸치고 있는 관계자였다. 저 검이 모조품이 아니라면 ‘시가 330억 MID 절단기’ 카르세리안 레이소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말단 경비원으로는 평생 가도 못 만져볼 물건이다.

“됐습니다. 저 감시카메라로 나를 봤다면 안에서 마중 나오겠지.”

정말로 경비초소 안쪽에서 누군가 뛰쳐나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서 밤새 추위에 떨며 보초를 섰던 남자는 소년을 향해 넙죽 절할 기세로 깍듯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카르 4세!”

“사장은?”

여기에 대한 무일의 보답은 간결했다.

좋은 일로 왔다면 ‘잘 지냈어?’ 같은 인사치레라도 한마디 던졌겠지만, 엄연한 살인사건 때문에 방문한 공무수행 중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겠지만, 경비병은 섭섭하다는 기색 없이 말했다.

“안에 계십니다!”

이 남자에게 카르 4세는 인상 깊은 사냥꾼이었다.

괴수보다 더한 괴물로.

괴수는 그 강력한 육체로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한다면, 눈앞에 소년은 없는 힘을 쥐어짜서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킨다.

대략 10년 전,

이런 삼엄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3종 괴수의 난입으로 아비규환이 된 공장에 홀연히 들어가 1분 만에 종결시킨 소년이 있었다.

당시에는 ‘세상에서 3번째로 날카로운 절단기’ 같은 것도 없었다.

이 공장에서 제조한 총알이 들어간 산탄총과 옆 공장에서 양산하는 1억짜리 장도(長刀) 하나씩뿐이었다.

남자는 그때 문뜩 생각했다.

이 소년에게 괴수 같은 힘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하고.

그건 상상만으로도 무시무시하지만, 같은 사내로서 흥분되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잠시 무단출입하도록 하지.”

“편히 머물다 가십시오, 카르 4세!”

말단 경비원은 그 깐깐한 선임의 깍듯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카르세리안 레이소가 무척 비싼 MID 도검이란 건 알지만, 알부자가 은근히 많은 한국에는 그 소유자가 은근히 많았던 탓이다.

소년이 공장 안쪽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한 직후,

그는 선임에게 물었다.

“저 카르 4세라는 이상한 이름의 소년은 누구입니까?”

“이상한 이름? 허! 너는 저 별명의 의미도 여태 모르고 이 직장에 지원했어? 거참! 너란 녀석은 정말 청소 빼고 쓸모없구나!”

대한민국에서 ‘TOP10’ 안에 들어갔던 ‘힘없는 프로사냥꾼’의 이름이다.

힘없는 남자라면 몰라선 안 되는 이름이다.

성장이 멈춰버린 약한 몸 탓에 ‘반쪽짜리 사냥꾼’이란 불명예가 붙었지만, 그러고도 정점을 찍은 전설적인 남자다.

가상현실게임 세상밖에 관심 없는 서울 시민들은 ‘카르 4세’를 포함한 프로사냥꾼 전부를 호구로 알지만, 비슷한 처지의 남자라면 절대로 몰라선 안 된다.

그건 ‘남자의 예의’가 아니다.

그런데 설마하니 후임병이 모를 줄 몰랐다. 정말로 깜짝 놀랐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라 간과하고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누구입니까?”

선임의 갈굼은 하루 이틀도 아니기에 기죽을 필요 없다.

반대로, 모르는 걸 아는 척했다가 나중에 된통 걸리면 그게 더 큰 문제다.

모르는 건 모릅니다.

똑바로 밝히고 배움을 청하는 게 후임의 도리고, 거기에 올바른 답을 가르쳐주는 게 선임이 할 일이다. 갈굼은 옵션이고.

“한국,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남자다.”

“저 왜소한 몸으로요?”

“그래서 운명이란 참 재미있는 거야! 성인 체구만 됐어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로 불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텐데!”

몸집이 작으면 민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부른 잘못된 편견이다. 힘 좋은 어른을 희롱하는 ‘어린이 용사’를 설정하다 보니 자연히 그리된 건데….

그렇게 민첩하고 빠르다면 육상선수는 전부 미성년자가 됐어야 정상이지 않은가?

현실은 현실답게 잔혹한 법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카르 4세가 ‘카르 4세’가 된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기적이란 전설을 쌓은 프로사냥꾼이 바로 저 왜소한 사내다.

“...잘 아시네요.”

“생명의 은인이니까.”

“저 카르 4세란 남자가 선배의 목숨을 구해줬군요?”

후임은 아직 말귀를 제대로 이해 못 한 것 같다.

생명의 은인이라서 기억하고 있다는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여기에 대해선 ‘같은 남자’로서 진지하게 따로 얘기할 시간을 가져봐야 할 것 같다.

선임은 말했다.

“아니. 나는 10년 전 당시에 순찰하고 있어서 그 끔찍한 재난을 피할 수 있었지. 그에게 구원받은 건 내 목숨이 아니라 인생이다.”

젊은 시절에는 제법 잘 나가던 3급 사냥꾼이었던 이 남자가 임금 적은 공장 경비원이 된 건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정신병 탓이었다.

수전증.

손을 떨어서야 무기를 제대로 쥘 수 없다.

더구나 ‘저격수’인 그에게 이건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하지만 괴수 두려운 줄 모르는 특공대원이라도 정말로 죽다 살아나면 트라우마 한두 개쯤은 생겨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는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그 자괴감에 알코올 중독자까지 갔던 그가 다시 재활훈련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카르 4세였다.

저 소년의 곁에서 다시 한 번 괴수를 사냥하고 싶다고.

한 번 특공대는 영원한 특공대.

인류 위에 선 포식자를 쓰러트린 순간의 쾌감은, 월급날에만 사랑스럽게 변하는 마누라에게서 찾을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다.

중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목숨을 걸어야만 느낄 수 있는 쾌락이다.

“인생이라…. 오늘의 선배는 무게감 있으십니다?”

“그러냐?”

“하지만 선배. 그래도 따지고 보면 외부인인 그를 막 출입시켜도 되는 겁니까? 아얏! 왜 때리십니까!”

“카르 4세가 입고 있는 옷을 똑바로 봤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지!”

“어느 대학의 운동복 같았-, 아얏! 또 왜 때리십니까!”

“저건 특공대 활동복이다! 어디서 체대생 운동복 따위랑 비교해!”

전직 특공대원은, 특공대를 모욕한 후배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이렇게 보면 수전증을 겪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서구문명사회에서는 특공대를 나이츠(Knight)라고 부른다.

준귀족(準貴族).

일본의 천왕 가(家)와 영국의 하이로드 왕가(王家) 같은 일부 가문은 예외지만, 계급제도는 지구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비슷한 관직(官職)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게 특공대, 나이츠.

공공기관부터 사설기관까지 허가 없이 ‘출입통보’만 하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이 바로 특공대다.

하지만 이래서는 ‘준귀족’이라고 할 수 없다.

권력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누구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공대는 여기서 한술 더 뜬다.

꼭 공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막대한 금전적 손실’만 안 끼치면 사적으로도 얼마든지 출입할 수 있다.

그들은 그래도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들은 ‘인류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돌아오신 겁니까.’

작년에 봤을 때만 해도 후줄근한 평상복이었던 카르 4세.

그가 다시 특공대 정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다시 특공대로 돌아갈 때가 됐다.

11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저격수로 손꼽히던 ‘타로 5세’ 이승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타이타니 로니오’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손만 떨리지 않는다면 [예측]과 [예감]만으로 스포츠카보다 빠른 괴수의 발목이나 날갯죽지를 정확히 저격할 자신 있다.

이 미덥지 않은 후임병에게만 공장 경비를 맡기긴 불안하지만….

그도 ‘카르 4세’를 알게 된다면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은 추운 밖에서 경비 서지 않아도 되게 됐다고 희희낙락할 것 같지만 말이다.

“...뒤통수가 간지럽네.”

무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감시카메라조차 없는 뒤편이 신경 쓰이는 이유가 뭘까?

위험의 조짐은 아니었지만, 딱히 기분 좋은 느낌도 아니었다.

박민혁 때처럼 끈적끈적한 무언가였다.

“인기 많은 남자의 뒤통수는 늘 간지러운 법입니다, 형님.”

카르 4세의 중얼거림을 받아친 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미청년이었다.

영화배우라고 소개하면 믿을 수밖에 없는 멋들어진 외견. 실제로 그는 은퇴한 계약자의 하룻밤 파트너로, 정자를 제공한 전적이 몇 번 있다.

계약자가 태어나려면 모친 못지않게 부친의 유전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남자도 부모의 우월한 미모를 적지 않게 물려받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일도 축복받은 축에 속하지만, 상대가 안 됐다.

얼굴뿐?

그건 또 그렇지 않다.

이 미청년의 야생마처럼 긴 다리와 큰 신장, 딱 벌어진 어깨 등은 성장기에서 멈춘 카르 4세가 흉내 낼 수 없는 ‘이상적인 남체(男體)’였다.

“무슨 의미로 한 말이지 모르겠는데.”

“잠시 감성적으로 변한 것뿐입니다.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내가 온 이유는 알겠지?”

“총알이 필요해서 오신 건 아니란 정도는 알겠습니다.”

이 탄약공장의 사장 ‘유지수’는 비싼 홍차로 입술을 축이며 대답했다.

카르 4세랑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면, 이 프로사냥꾼은 미청년의 ‘생명의 은인’이다.

전 사장이었던 유지수의 부친은 10년 전의 괴수소동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부친의 재치로 강철 금고에 숨어있던 그는 살아남았다.

금고가 부서지기 직전에 도착한 이 소년이 괴수를 처리해준 덕분이다.

어떻게 보면 그뿐인 관계.

하지만 그때 닿은 인연이 10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소년보다 작았던 소년은 듬직한 어른이 됐고 현재는 역으로, 물리적으로 내려다보는 입장이 됐다.

“몇 시간 전에 수제폭탄을 이용한 계약자 살인미수사건이 있었다.”

“아하! 형님은 ‘또’ 이 아우를 의심하는 겁니까?”

손뼉 치는 과장된 행동을 보이며 웃는 유지수.

그 일련의 모습에 무일은 차분히 대응했다.

“넌 화약공장 사장이니까. 불에 대한 내성이 강한 프로칸이 놀랄 만큼 강력한 화약을 민간인이 제조했다고 보지 않아.”

4종 괴수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는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그 수제폭탄은 애초에 괴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계약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화력보다는 범위에 초점을 뒀다.

그렇다고 해도 확실한 물증은 없고 근거도 부족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곳 김포시에만 MID 화약을 다루는 공장이 수십 곳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 많은 공장 중에 여기만 콕 찍어서 온 건 순전히 프로사냥꾼의 ‘감’이다.

“이거 섭섭한데요. 하지만 쌀쌀맞은 형님이 이렇게 못난 아우를 찾아와주셨으니 그 폭탄마(爆彈魔)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 하하!”

“...왜 그랬냐?”

“사람이 사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동문서답이었지만 아니라고 딱 잘라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유지수는 친형처럼 따르는 한무일에게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 대신 대답하기 꺼려지면 이런 식으로 회피한다.

“목적 없는 삶은 공허하지.”

“형님을 볼 때마다 10년 전의 일이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늘 똑같이 한쪽으로만 흐르는 한강도 조금씩 변하는데 형님은 하나도 안 변하시니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무일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소년이 그러고 있으니 뭔가 우스꽝스러웠다.

안타까울 정도로 말이다.

“모든 계약자가 나쁜 건 아니다.”

“누가 뭐랍니까? 계약자도 사람인데 나쁜 년이 있으면 착한 년도 있겠지요. 제 가족은 재수 없게 나쁜 년에게 걸린 거고.”

10년 전의 참극.

그건 야생괴수가 아닌 수호자가 저지른 학살극이었다.

이 사실이 그대로 알려지면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모든 계약자의 위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대형사건이었다.

그래서 외부에는 3종 수호자가 아닌 야생괴수의 단독범행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단독범행.

실수가 아닌 고의성 살인을 저지른 계약자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 직접적인 피해자이자 유일한 생존자인 유지수에게조차 살인을 저지른 괴수의 ‘진짜 배후’인 계약자가 누구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분노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 방향이 잘못됐다.

어제 처음 계약한 여인이 10년 전의 학살을 주도했을 리 없잖은가.

“이번에는 네가 아니라는 거냐?”

“언제나 제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이 아우가 아니라고 부인해도 형님은 의심하실 거잖습니까. 저보다 감을 신뢰하니까요.”

“......”

“홍차가 식겠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이렇게 보면 괜한 의심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그 정도로 허술하게 할 거였으면 시작조차 안 했으리라.

무일은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프로사냥꾼인 그의 [예측]과 [예감]이 뛰어난 건 맞지만, 그 정확도가 높을 때는 ‘위기’와 ‘괴수’ 관련으로 한정됐다.

사적으로는 그리 편리한 기술이 아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이나 결정적일 때만 즉흥적으로 발동되는 것이다.

카르 4세는 탐정도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수사를 할 능력이나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무일도 ‘국가반역자’를 감쌀 생각은 없었다.

원한이든 질투든 계약자를 공격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건 무관한 타인을 슬프게 할 뿐인 악행인 까닭이다.

계약자가 부러워?

그렇다면 고결한 계약자들이 누리지 못하는 가상현실게임을 해라.

아무도 ‘실패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아니라고 하니 더는 캐묻지 않겠다. 다만,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라고 구해준 목숨이 아니란 것만은 늘 기억해다오.”

“10년이면 고통도 아련한 추억이 될 시간입니다, 형님.”

잊지 못할 원한이란 그리 많지 않다.

무일은 유지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지만,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많이 변했네. 작년에 잠깐 봤을 때보다도.”

분노가 절제되어 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정말 유지수가 안 꾸민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지른다면 정말 대형사고를 칠 기세.

지금처럼 ‘겨우’ 4종 계약자 하나에 만족할 것 같지 않다. 노린다면 한국을 전복(顚覆)시킬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고위계약자를 겨냥하리라.

유지수가 홍차를 다시 따르며 말했다.

“그러는 형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습니다. 계약자만 사람으로 아는 이 빌어먹을 나라의 어디가 좋다고 계속 남으시려는 건지, 이 아우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빚이 좀 있어서.”

“그게 뭔 대수입니까, 카르 4세에게.”

미청년은 오랜만에 찾아온 ‘어려 보이는 형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짜증 날 정도다.

강대국에서는 카르 4세를 영입하겠다고 난리다. 본부에서 비열하게 중간연락망 대부분을 차단하지만 않았어도 그는 매일 각국의 대사관을 들락날락하고 있었을 것이다.

빚?

외국의 화폐는 통용되지 않지만, 그까짓 빚을 청산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대신 청산해주겠다는 국가가 사방에 널렸다.

괴수의 공격으로 빌딩 하나만 무너져도 그 손해액이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재난피해액을 생각하면 90억은 정말 돈도 아니다.

“남의 돈으로 갚아서는 의미가 없으니까.”

“정당한 보수입니다.”

“내 ‘양심’이 탐탁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야. 너도 사냥꾼 기초훈련을 받았다면 알겠지만 [예감]은 절대적인 믿음이 없으면 형성되지 않아.”

“또 그 감입니까….”

“내가 너랑 일대일로 붙으면 누가 이길까?”

아무리 봐도 어린이와 어른의 대결이다.

남자의 최대 약점인 사타구니라도 노리지 않는 이상, 어린이가 어른을 이길 방법은 없다.

더구나 유지수는 운동으로 단련된 몸.

이 자리에서 무일과 팔씨름한다면 열이면 열 그의 압도적인 승리일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제 패배입니다.”

공정하고 화기애애한 운동경기라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건 싸움이라면 기습이든 비겁이든 이길 가망 따위는 없다.

[예감]은 죽음의 위기에서 가장 큰 빛을 발한다.

아무리 운동으로 단련됐어도 1종 괴수보다도 약한 유지수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괴수마저 벤 남자’를 이길 가능성이란 없다.

그건 10년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공장의 감시카메라에 찍힌 전투장면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기관총마저 피해내던 괴수의 양쪽 눈에 총알을 박고, 검집에 착검하듯 달려드는 괴수의 미간에 자연스럽게 장검을 박아넣는 기교.

그 모든 과정이 짜고 치는 액션영화처럼 이질적이었다.

“전부 감의 힘이지. 잃으면 정말 평범한 애송이에 지나지 않아.”

“그 때문에 못 떠나신다는 겁니까?”

“...유지수.”“네, 형님.”

이 말만은 꼭 해줘야겠다.

지금이 아니면 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 [7장-2] 이 길이 오지랖일지라도.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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