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2] 5평짜리 단칸방 >
곱게 자란 계약자에게 음성통화로 폭언했던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마지막에 ‘잊지 않겠다.’라는, 고전 중의 고전 삼류소설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읊었었다. 그러니 의심해볼 여지는 충분했다.
아니, 십중팔구 확실하다.
그의 [예감]과 [예측], 양쪽에서 똑같이 정답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엉망이란 건 ‘무식한 사냥꾼’인 카르 4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원한도 없는 ‘군인’을 이렇게까지 박대하진 않는다.
왜냐면,
『쿠데타』
개념과 상식이 박혀 있는 정치인이라면 마지막 ‘한계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
중국은 그 실수로 말미암아 벌써 넷 차례 정권이 바뀌었다.
괴수대응본부가 정부로 탈바꿈한 것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계약자가 아닌 사냥꾼이다. 계약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도록 정치인들이 ‘정치’한 것뿐이다.
이유?
[예감]과 [예측]이 없는 민간인(계약자)을 암살하는 건 너무나 손쉽기 때문이다. 그 대단한 바람의 여왕도 ‘독살’만은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
계약자가 정치?
그럴 시간이 없다.
전래동화 속의 ‘아리따운 공주님’은 숨만 쉬어도 예뻐지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 까닭이다.
뱃살, 주름, 발육부진….
이 세상에는 아름다움을 위협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성형수술의 힘을 빌리면 쉽지만, 수호자가 원하는 ‘자연미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머리 아픈 정치?
주름 늘리고 싶으면 뭔들 못하리오.
하지만 사냥꾼은?
국회의사당에 침투해서 수류탄 하나만 던져도 정권이 바뀐다.
모르는 사람은 말처럼 그게 쉬울 리 없다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카르 4세쯤 되면 혼자서도 쉽게 가능하다.
‘역시, 복수가 아닌 앙심인가.’
그 정치인이 멍청해서 저지른 ‘시비’는 아닌 것 같다. 멍청하다는 부분도 어느 정도 적용됐겠지만 말이다.
딸의 생떼에 어쩔 수 없이 프로사냥꾼에게 덤빈 걸까?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정찬호의 말은 완전히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프로사냥꾼을 적대하고도 무사한 정치인은 여태 없었으니까.
아무도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 이 좁은 서울 땅덩이에서 사냥꾼이 정치인의 사주를 받고 사냥꾼을 사냥하진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검은 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
암살자.
하지만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개인의 ‘정치 생명’이 끝나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실패하면 본부가 정부로 탈바꿈한다.
줄줄이 엮는 ‘가재는 게 편’이란 공식으로 쓸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천적은 계약자가 아닌 사냥꾼이다.
그 사냥꾼은 계약자에게 또 물리지만….
“그 계약자가 누군데?”
“임보연. 고(故) 임철중 의원의 둘째 여식입니다. 극비리 정보인데 헌병대장이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알려줬습니다.”
“위험한 곳으로 아들을 보냈네?”
“글쎄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선배님. 혈기왕성한 사내대장부에게는 카르 4세 옆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되는데요.”
계약자 곁은 결코 안전한 곳이 못 된다.
야생괴수보다 수호자가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임보연? 잠시만…. 기억에 있어.”
“그럴 겁니다. 고 임철중 의원이 임원선거 때마다 꺼낸 공약이 바로 이 잘난 계약자 딸내미였으니까요.”
“그녀의 수호자가 아마 ‘로니콘’이었을 거야. 4종 보통.”
“맞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계약하기 쉬운 괴수. 속칭, 야색마(野色馬).”
괴수의 취향은 제각각이지만 ‘종(種)’마다 갖는 평균적인 심미안과 기준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4종 괴수 로니콘은, 문세웅의 말처럼 ‘젊고 예쁜 처녀이기만 하면 무조건 OK인 괴수’였다.
외형은 페가수스와 유니콘을 합쳐놓은 초대형 말.
능력도 전래동화 그대로 답습했다.
하늘을 나는 바람둥이 야생마(野生馬)!
이 로니콘과 몇몇 괴수 때문에 아주 오랜 과거부터 괴수가 세상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4종 괴수 로니콘의 특성이다.
초식이 아닌 잡식성이지만 ‘아름다운 처녀가 입고 있는 팬티’를 좋아하는 색마(?)다.
그래서 ‘계약이 가능한 미계약자’와 ‘자연미인, 처녀라고 우기는 거짓말쟁이’를 분별하는 용도로 자주 쓰이는 괴수다.
로니콘이 팬티를 안 먹어주면 실패자.
프라이버시를 들먹이며 거부하는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도 ‘계약 가능성’을 알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죽여도 무탈하겠군.”
3종도 아닌 4종 괴수를 쓰러트리겠다고 말하는 카르 4세.
문세웅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재차 확인했다.
“그게 가능합니까? 이 녀석이 아무리 변태 말이라도 4종인데요.”
“후배. 인간이 쓰러트릴 수 있는 괴수는?”
“3종까지요.”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인간은?”
“6종, 아!”
“갑각류(甲殼類)만 아니면 4종도 카르세리안 레이소로 벨 수 있어. 여기에 추가로 이것저것 장비를 추가하면 혼자서 쓰러트리는 것도 가능해.”
“오오….”
이전의 카르 4세라면 상상할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가능하다.
무슨 수로?
일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7종 계약자 윤소영의 생떼가 유감없이 발휘된 덕분이다. 여기에 특공대장 선지혜가 ‘퇴원선물’이라며 힘을 보탰다.
“짠! 봐라!”
무일은 득의양양하게 양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그건 가죽장갑이었다.
색감은 낡은 가죽처럼 칙칙하고 투박한 연갈색이었지만 가격과 희소성마저 투박한 건 아니었다.
귀부인들이 손가락에 끼우는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일류검사라면 누구나 꼭 차고 싶어하는 장비다.
『앙그류 그랑모리(용암으로 무두질한 손아귀)』
얇은 고무장갑처럼 피부에 짝 달라붙은 이 ‘앙그류 그랑모리’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물리충격의 85%를 스펀지처럼 흡수해준다.
놀랍지 않은가?
이해를 못 한다면 간단히 설명해주겠다.
이 세상은 물리법칙에 따라 ‘작용과 반작용’이 존재한다.
게임이랑 달리 ‘때린 만큼 아프다’는 뜻이다.
무일이 여태 4종 괴수를 쓰러트릴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RPG 게임으로 치면 카르 4세는 ‘공격력 999’에 ‘방어력 0’인 극단적인 캐릭터다.
가상현실게임이라면 이런 부조화가 신묘한 컨트롤로 먹혔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3종 괴수는 어찌어찌 된다.
하지만 4종 괴수에게 ‘공격력 999’를 먹이면 고스란히 되돌려받는다!
그래서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젠 아니란 말씀!’
반동으로 되돌아오는 반사피해(?)를 획기적으로 감소해준다.
때린 만큼 아플 걱정이 사라진 것이다.
무일에게 ‘앙그류 그랑모리’는 최고의 아이템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장갑에도 단점이 있다.
제조방식 때문에 투박할 수밖에 없는 디자인을 뺀 유일한 흠이 있는데 그건 지나치게 짧은 유효기간이다.
아무리 잘 가공해도 이 장갑의 수명은 길어야 10년이다. 이후에는 효능이 빠르게 떨어지다가 끝내 부식되어 사라진다.
그런 일회용(?) 장갑.
하지만 카르 4세는 괜찮았다.
그렇게까지 오래 살 수 있다고 전망하지 않는 까닭이다.
“선배! 그게 정말로, 정말로 그 유명한! 소문만 무성하던 ‘손이 자는 호텔’입니까?! 국내에 단 한 짝뿐이라는?!”
“맞아.”
특급호텔을 전세 낼 수 있는 가격의 장갑.
이 녀석 앞에서는 카르세리안 레이소도 한 수 접어줘야 한다.
더 비싸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능은 훌륭하지만 짧은 수명이란 치명적인 단점 탓에 가격대성능비가 너무 떨어진다는 의미에서다.
세상에서 3번째로 날카로운 검, 카르세리안 레이소처럼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장식품으로도 못 쓰는 사치품이다.
“선배가 한국에서 가장 비싼 남자였군요.”
돈으로 ‘3급 사냥꾼’의 한계마저 뛰어넘었다!
장갑 하나 바꿨을 뿐인데 순식간에 세상에서 손꼽히는 프로사냥꾼 반열로 급부상했다. 여태까지 한국에 없었던 ‘4급 사냥꾼’의 탄생.
이건 완전히,
온라인 RPG 게임이었다.
“그럼 뭐해? 둘 다 팔 수 없는 장물아비인데.”
카르 4세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에게는 사냥꾼 서열보다 돈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사겠다는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그리고 국가에서 보상이랍시고 던져준 이 장갑도 마찬가지였다.
저주는 없지만 짧은 수명 탓에 선뜻 구매자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이 ‘손이 자는 호텔’은 매년 값이 내려간다. 가격이 유효기간만큼 계속 차감되는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구매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무조건’ 하락하는 ‘앙그류 그랑모리’를 사고 싶어 하는 상인이나 고객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주문제작만 받는 물건.
경매장과 암시장이랑 인연 없는 장갑이다.
하지만 카르 4세의 치명적인 약점을 덮어줄 수 있는 최고의 장비이기도 했다.
“그래도 영 신통치 않네요. 다른 나라에서는 그보다 더한 조건을 걸었을 텐데.”
“아쉽지.”
“그런데요?”
“하지만 가족과 조국이란 원래 그런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국이 카르 4세에게 내건 조건들도 나쁘지 않았다. 그게 국가 차원의 원조가 아닌 ‘개인’ 같아서 좀 많이 찜찜했지만.
외국으로 튀지 말라고 특공대장이 여러모로 손을 썼다.
“가출하신 선배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심통이냐?”
“네, 심통입니다! 제 애마(愛馬)가 장갑보다 헐값이라는 게 너무 기가 막혀서!”
“앞으로 그 스포츠카는 탈 일도 없잖아.”
이 동네로 직장을 이전한 헌병대원 문세웅에게 최고급 스포츠카 ‘나브랑모스 레비터’는 필요 없다.
파출소와 동사무소가 보도로 3분 거리에 있는 까닭이다.
“본부에 일 생길 때마다 꼬박꼬박 타고 갈 겁니다!”
“그 꽉 막힌 도로를?”
“선배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데요. 파주 신도시로 이전한다고 서울 인구가 쫙 빠졌습니다.”
“잉?”
이건 또 무슨 전개래?
파주 땅에 들어선 신도시는, 앞으로 6개월 뒤에 무일이 분양받을 예정인 저층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 시범도시 ‘개성’ 바로 밑이었다.
위치상으로 보면 위에서부터 ‘개성-파주-서울’ 순이다.
세 도시가 바짝 붙어있는 형국.
인천까지 합치면 넷이다.
괴수의 위협으로 맨땅에 신도시를 개발할 수 없게 된 모든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영토확장법’이었다.
그 대표국이자 최대규모인 미국은 30년 전에 ‘보스턴-뉴욕-워싱턴’을 하나의 도시로 잇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반면에 한국은 서울 바로 위에 붙은 파주나, 아래에 위치한 수원을 잇는 것도 난향을 겪는 중이었다.
시민들이 서울에서 죽어도 안 떠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죽을 상황’에 처하니 파주로 떠나기 시작했다.
‘서울의 고질적인 인구밀집문제가 이런 식으로 해결될 줄은….’
볼트윙의 침입에 속수무책이었던 이 모든 상황이 누군가의 계획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너무나 잔혹하지만, 효과적인 방식이란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이 기세로 인구만 늘고 삶의 터전은 그대로라면 누군가 죽어야 유지되기 때문이다.
무일은 어쩐지 이 일의 배후를 알 것 같았다.
한국에서 가장 냉철하고 합리적인 정치가를 알고 있는 탓이다.
‘와이츠!’
사람의 목숨을 ‘인구1’로 계산하지만, 그 ‘인구1’조차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움직이는 철두철미한 용신.
와이츠는 100년 동안 수많은 정책을 시행했고 보란 듯이 성공했으나 한 가지만은 쭉 실패해왔다.
인구이전.
위대한 용신도 고대부터 전해진 한국인들의 격언만은 어쩌지 못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반강제적으로 내보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서울로 되돌아오는 ‘한국인의 정서’는 용신의 의지보다 강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와이츠가 버티고 있는 서울은 인구밀도가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도 높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대륙에서, 지구 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이건 용신이 자초한 실패.
너무나 뛰어난 안보대책이 불러온 패착이었다.
‘그랬던 와이츠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정비과 엄친아 정찬호는 정치인들이 막말해서 떠났다고 했지만, 와이츠가 서울에 보금자리를 막 틀었던 약 95년 전의 과도기를 생각하면 애교 축에도 못 든다.
개미가 성질 낸다고 발끈하는 인간은 없다.
마찬가지로, 와이츠도 모든 괴수가 그런 것처럼 아름다운 계약자 외의 인간은 그저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MID 신제품과 정치경제간섭도 그 일환.
계약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는 것뿐이다.
“선배님. 무슨 생각을 그리도 오래 하십니까.”
“...이것저것.”
“그런 무성의한 대답은 굳이 안 들어도 압니다!”
“하하. 흥분하지 마. 아직 확신이 안 들어서 그래.”
“뭔데요?”
문세웅의 재촉에 카르 4세는 다시 한 번 사색에 빠졌다.
그건 모든 사냥꾼의 기본기인 [예측]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경악시켰던 신기(神技)이기도 했다.
‘와이츠가 없어도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던 시기. 또다시 실패한 인구이전정책. 미완성으로 놔둔 MID 실패작. 볼트윙의 기습에 늦은 대응. 와이츠 전(前) 계약자의 간섭. 파주시의 대지주는…. 맙소사! 어째서 그걸 이제야 떠올린 거지?!’
너무나 탁탁 들어맞는 상황에 무일은 경악했다.
세상을 큰 그림으로 그려보니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이젠 어깨까지 흔들며 묻는 문세웅에게 말했다.
확언하듯,
“와이츠가 돌아올 거야.”
“용신이요?”
“그래. 녀석이 원하던 한국이 막 완성됐으니까.”
수많은 프로사냥꾼을 저승으로, 외국으로 떠나보낼 만큼의 값어치 있는 ‘계획’이었는지 카르 4세는 천천히 되짚어봤다.
허탈하게도 답은 ‘Yes'였다.
와이츠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낭비를 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 보면 손해지만 장기적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은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수백만의 희생?
수호자에게는 한 명의 아름다운 계약자보다 무가치한 목숨이다.
그리고 냉철한 와이츠라면,
『산아(産兒) 정책에 혹한 수백만의 암컷이 1년만 수고하면 채울 수 있다.』
...라고 아주 간단명료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용신의 판단을 비난할 수 없는 게 또 작금의 현실이었다.
인류는 ‘살 땅’이 부족하지 ‘살 사람’이 모자라진 않기 때문이다.
늙지 않는 신약의 개발로 고대(古代)부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인류는 출산의 의무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그럼에도 줄긴커녕 늘기만 하는 인구.
사람은 죽지 않는 것에 반해, 불장난으로 열의 한 쌍만 아기를 낳아도 머릿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선배님. 계약은 파기됐잖아요?”
문세웅이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하지만 무일은 코웃음 치듯 반박했다.
“누가 그렇게 말했지?”
“그야…. 계약자 본인 아닙니까.”
“맞아. 와이츠가 자취를 감추자마자 특공대장이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녀가 신년행사 때 했던 말.”
“...애 낳으라고 강요하면 대통령도 고자로 만든다고 했었죠.”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정말로 애 낳기 싫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계약자가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요인인 금욕적인 삶까지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피임약을 먹고 즐겨도 됐다.
하지만 카르 4세가 아는 ‘전 와이츠의 계약자’인 특공대장은 여전히 숫처녀다. 본인은 ‘카르 4세에게 따먹혔다.’고 주장하지만.
아무튼, 계약자를 분별하는 일에 자주 쓰이는 4종 괴수 로니콘은 그녀의 팬티를 봐도 무관심했다.
선지혜도 딱히 새로운 계약을 하겠다는 열정이 없었다.
있다면 ‘평화롭게 사는 선배를 어떻게 괴롭힐까?’라는 매우 안 좋은 심보로 머릿속 한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모든 잘못과 원인은 ‘남자’에게 있었다.
『여자의 청혼(請婚)을 스트라이크로 걷어찼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것 같다. 낯간지러운 고백을 어렵게 꺼낸 특공대 후배는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무일은 그 욕망을 뿌리치고 단호하게 설득했다.
다시 계약자가 되라고.
자존심을 접고 간신히 용기를 짜낸 ‘고결한 후배’에게는 ‘비루한 선배’의 거절이 아주아주 큰 ‘마음의 상처’가 됐던 모양이다.
그 뒤부터 시작됐다.
천사처럼 착하던 후배는 ‘음란마귀’가 됐다.
선배가 다른 여자를 만나지 못하도록 악의적인 소문을 사방에 뿌리고 다닌다.
“선배.”
“왜?”
“모든 여자가 섹스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문세웅이 허점을 지적했다.
특공대장 선지혜가 몸을 주고 싶은 만큼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어서 금욕적인 생활을 고집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성적 욕구가 훨씬 높아. 생리적으로 1분에 한 번씩 충동을 느끼는 남성이랑 달리, 여성은 하루에 한 번꼴로 격하게 느끼고 말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오해하는 부분이지.”
“...선배.”
“또 왜?”
“자세히 아시네요.”
“크흠! 너도 이 나이 돼봐라.”
막 성인식을 치른 소년의 얼굴로 그렇게 변명해봐야 설득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와이츠가 곧 돌아온다.’라는 제법 진지한 주제를 머릿속에서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곧 시작된 두 남정네의 음담패설.
하지만 이 저질스러운 주제에 지나치게 몰두했던 걸까?
현관문을 살짝 열고 누군가 엿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았다.
무일의 5평짜리 임대주택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집주인과 관리소 경비원 말고도 또 한 명 있다.
“무일 오빠가 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좀 많이 충격적인데요.”
“윤소영 양?!”
< [6장-2] 5평짜리 단칸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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