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3] 흔한 사냥꾼의 귀환 >
끌려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보다 조금 더 큰 덩치의 붉은 용은 소녀가 손톱에 긁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안고는 경이로운 속도로 창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마법.
분사하는 별다른 추진제 없이 2쌍의 날개만으로 제트기 수준의 속력을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저 작은 몸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 화염이 동해바닷가를 태운 것처럼 괴수가 ‘자연과학을 무시한 처사’는 한둘이 아니다.
MID가 그러하듯.
괴수가 쓰는 물리법칙은 인간이랑 그 궤를 달리한다.
‘서울까지 1분도 안 걸리겠는데?’
활주로 없이 수직이착륙, 감속과 가속, 방향전환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바람은 괴수의 비행을 방해하긴커녕 이끌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연의 배려가 털 없는 원숭이(소년)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전에 얼어 죽을 것 같지만!’
이미 팔다리뼈는 탈골된 것 같았다. 허리와 목도 단단한 검집으로 보조하지 않았으면 정말로 출발과 동시에 꺾여서 죽었으리라.
대기가 희박한 성층권이었다면 지금보다 공기저항이 더 적어서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이것도 결국은 최고속도는 아니란 뜻이다.
수호자 레드군이 계약자 윤소영을 고려한 비행속도다.
수시로 고도(高度) 등이 변하는 것도 수호자가 정신감응 중인 계약자의 몸 상태를 봐가면서 조절 중인 까닭이다.
자기 아가씨에게는 정말 신사로구먼!
게다가 그 수호자는 인류보다 똑똑하다고 공증받는 용. 자연과학을 웬만한 천재들보다 통달한 박사다.
‘저 옷이 윤소영, 한 사람만을 위해 제작된 평상복이란 건가.’
그렇지 않다면 이만한 기압에서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벌에 얼마쯤 할까? 진짜 전투복은?
함께 챙겨온 해산물들이 냉동식품처럼 꽁꽁 얼었을 때쯤이었다.
서울까지 정말 순식간에 도착한 레드군은 감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쇠사슬로 연결해서 딸려오던 중인 무일에게는 지금이 가장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곤두박질치면 즉사인데.’
평범한 괴수였다면 그런 것까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용은 거기까지 계산한 모양이다.
죽이지 않겠다고 했으니 안 죽일 것이다. 문제는, 윤소영이 번역했던 것처럼 정말 ‘안 죽이기만’ 할 거란 점이다.
풍덩!
한강에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수면에 충돌하며 빠졌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잠시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카르 4세는 한강공원에 시체처럼 뻗은 상태로 깨어났다. 겨울에도 채소와 과일 등을 재배하기 위해 쏘아지는 인공햇볕이 따스한 광명처럼 그의 얼굴을 내리쬈다.
팔다리 사용불가.
온몸에 감각 없음.
본부 의무대 2주 예약이요….
“무일 오빠! 서울에 오신 걸 환영해요!”
“...고맙습니다.”
숨만 붙어있으면 살려내는 현대의학을 믿기로 했다.
소년은 자신 앞에 멀쩡히 서 있는 소녀의 환영인사에 말로만 답례했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동해 오지에서 원시인처럼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진심이다.
지금은 질리도록 먹은 식당 김치찌개도 감사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빠의 상태로 봐서는 자주 사용할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엘카르 말로는…. 용의 언어는 너무 길어서 번역하기 너무 어려워요. 그냥, 전치 3주 정도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나중에 병문안 갈게요~.”
“3주….”
“그리고 이건 제가 가져갈게요. 제 크리스마스 선물 맞죠? 멍게, 해삼, 말미잘.”
“맞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가 끝난 지가 언젠데….
하지만 괜한 트집으로 명을 재촉하진 않기로 했다.
‘어쨌든 살았으면 된 거지.’
남의 집 불구경 좋아하는 서울시민의 빠른 제보로 구급차에 실려 괴수대응본부 의무대에 입원했다.
곁눈질로 대충 본 것만으로 ‘전치 3주’를 예견한 용왕님의 눈썰미에 감탄과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진단 결과, 정말로 전치 3주.
마비된 통각을 살리는 작업부터 내장에 고인 피를 빼내는 수술 등으로 이래저래 참담한 몰골이 된 무일 덕분에 오랜만에 의무대가 분주해졌다.
오랜만인 이유?
『부상자가 매우 드물다.』
괴수대응본부는 ‘괴수’랑 관련 없는 일에는 일절 손대지 않는다.
댈 수도 없다.
그게 ‘괴수대응연맹’에서 정한 법이고 관례였으며 전통이고 역사다.
본부에 소속된 사냥꾼이라도 괴수랑 싸우다가 다친 부상이 아니라면 일반 병원을 가야 할 정도로 엄격하다.
그 탓에 의무대는 장례식장과 시체소각장만 분주하다.
괴수와 싸우면 ‘압승’ 아니면 ‘죽음’뿐이다. 그 탓에 부상자는 1년에 몇 명밖에 없고 그마저도 대부분 근처에서 알짱거리다가 얻어맞은 타박상!
카르 4세는?
전투는 아니었지만 ‘레드군’이랑 관련됐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이 프로사냥꾼은 본부 의무대밖에 쓸 수 없다.
『기니피그(실험동물)』
성장이 어정쩡하게 멈춘 그는 ‘와이츠 실패작’의 실험피해자였다.
말은 ‘피해자’지만, 그 실상은 사소한 데이터조차 민간병원에 흘러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한국정부의 의지다.
아무튼,
개구리 왕자, 프로칸의 전신마비를 3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장대했던 수술이 끝나고, 온몸에 붕대와 깁스를 두른 무일은 새것처럼 깨끗한 병실에 눕혀졌다.
하지만 카르 4세는 매일 그 요양기간을 갱신 중이었다.
입원에서 퇴원까지 겨우 2주!
간호사가 떠먹여 줘야 했던 첫날을 제외하고는 전부 혼자서 했다. 그리고 오늘은 의사에게 최종진단을 받고 내일 퇴원해도 된다는 허가가 떨어진 날이었다.
“카르 4세. 3주 꽉꽉 채워봐♪”
“싫습니다.”
입원 첫날, 간호사 호출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무늬만 간호사인 계약자’가 오는 바람에 이래저래 고생했던 무일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의 회복력은 인간치고 놀라운 수준이었다.
초진(初診) 때의 ‘전치 3주’는 재활훈련을 제외한 ‘최소한의 치료기간’이었다. 그런데 카르 4세는 2주 만에 재활마저 끝내는 기염을 토했다.
만약, 1주 차에 있었던 ‘해부검사’만 없었다면 더 빠른 퇴원이 가능했으리라.
당연히 무일은 이 사실을 모른다.
치료에 꼭 필요한 수술이라고 주치의에게 설명 들은 탓이다.
‘수술비, 입원비가 안 나와서 다행인가.’
서울에 던져놓고 나 몰라라 할 줄 알았던 윤소영이 상당히 신경 써주고 있었다. 역으로 너무 신경 써줘서 불안할 지경이다.
레드군이 판타이탄처럼 ‘임신 빼고 전부 오케이!’라고 허락하리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 카르 4세다.
용의 변덕으로 숨이 붙어있는 것뿐이다.
오랫동안 함께한 수호자 중에는 ‘매우 낮은 확률’로 계약자가 순결을 포기하고 아이를 잉태하더라도 괜찮은 경우가 있다.
질투와 취향을 넘어선 헌신이랄까!
하지만 그걸 고의로 시험해보는 나라는 없다.
실패하는 날에는 광분한 수호자에 의해, 그 계약자와 남편의 목숨은 물론이고 막대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소영은?
7종 괴수 레드군이랑 계약한 지 얼마 안 된 초심자다.
충분한 신뢰관계를 쌓지 못한 수호자는 계약자의 사소한 언행에도 민감하기에 얼마든지 질투하고 의심할 수 있다.
‘관계가 너무 호전된 것 같아.’
무일 본인은 그런 계기를 만든 적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게 꼭 만나야만 호감이 쌓이는 건 아니다. 그저 매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일련의 행동만으로도 마음이 기울기도 한다.
입양된 아이가 얼굴도 본 적 없는 친부모에게 애증 비슷한 감정을 품듯이.
“그런데 카르 4세.”
“네.”
“강보라 누~나~♪ 라고 불러야지.”
“...네. 누나.”
“너도 어지간히 인복이 없구나? 어째 찾아오는 사람이 남정네뿐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살아있는 게 신통방통하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가까이서 본 윤소영의 외모가 어땠냐고 묻는 동정들이 그중 또 절반.
내 지인이란 작자들이 전부 이런 놈들뿐이어도 괜찮은 걸까?
이렇게 장기간 입원해보기는 태어나서 2번째인 무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카르세리안 레이소가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남들은 ‘저주받은 검’이라고 떠들지만 함께한 시간이 어느새 8년째 접어들었다.
‘어째서 가격이 안 오르지?’
이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주인보다 먼저 부러져야만 ‘아! 드디어 저주가 풀렸구나!’라고 판단하려는 것처럼 가격은 요지부동이었다.
부러지면 무슨 소용이람.
정가는커녕 반값에 사겠다는 사람조차 여태 나오지 않고 있다.
감정사에게 한 번 진지하게 물어볼까?
카르 4세는 퇴원하자마자 휴대전화판매장과 경매장부터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르 4세.”
“네. 또 뭡니까, 누나.”
“뉴스에서는 네가 졸다가 빨랫줄에 걸려 허둥대다가 마침 근처를 날아가던 레드군 꼬리에 끌려갔다고 보도됐는데 사실은 아니지?”
“...그 빨랫줄은 정체가 뭐랍니까, 강선이라도 된답니까.”
“일반인들은 믿는데?”
레드군이 제트기보다 빠르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본부 관계자 중 극히 일부.
로켓엔진 같은 추진제도 없이 날개만으로 그런 미친 비행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부터가 물리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은 일반인.
시민의 눈과 귀인 기자도 일반인.
그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줄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무시무시한 치유력 외의 능력을 쓰는 3종 괴수 이상을 보지 못한 2급 사냥꾼과 1급 사냥꾼마저 허풍으로 취급하니 말 다했다.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무지(無知)한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괴수가 정말 그렇게 강하다면 인류는 멸종했을 거야!』
그럴듯한 공통된 주장이다.
모든 국가가 합심해서 역사를 왜곡한 결과다. 공포가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게 내리면 그 어떤 정책도 진행할 수 없는 까닭이다.
가상현실게임 권장!
이 또한 현실에서 국민들이 고개를 돌리도록 만드는 수단이다.
무일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패스하고부터 쭉 본부에서 생활했다. 가상현실게임을 할 시간은 당연히 없었고 부족한 역사는 일반교과서가 아닌 ‘원서’로 배웠다.
100년 전의 참극을 그나마 제대로 알고 있다.
『인류는 괴수의 상대가 못 됐다.』
『괴수는 괴수만 상대할 수 있다.』
세계 모든 국가가 국정안정을 위해 거짓된 역사를 편찬했다.
괴수의 보호 없이는 살 수 없는 인류.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인류는 괴수가 키우는 가축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계약자와 수호자의 중요성과 진실을 ‘군비절약’ 혹은 ‘세금감소’란 부수적인 효과로 감췄다.
그게 지금의 대한민국.
지구에 사는 현상인류(現狀人類)다.
“한동안 ‘반쪽짜리 사냥꾼’이란 오명 대신 ‘빨랫줄 사냥꾼’이라고 불리겠네요. 속인 정부가 나쁜 건지 속은 국민이 대단한 건지….”
“그게 중요해?”
“아니요.”
“맞아. 이 누나만 안 비웃으면 된 거야, 안 그래?”
“왕자님이 오해할 발언은 자제해주시죠!”
양서류 주제에 의무대 정원에서 한가롭게 일광욕 중인 프로칸.
저 슈퍼개구리에게는 8층 병실까지 뛰어오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어? 심장박동수 올라갔다.”
“누나가 사람 불안하게 해서 그렇잖습니까!”
“어머♬ 누가 뭐라고 했니? 그냥 심장박동수가 올라갔다고.”
“...됐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그를 놀리는 강보라에게 무일은 백기를 들었다.
남자들만 우글우글 찾아오는 것보다는, 예쁜 수다쟁이 누나가 찾아와서 심심하지 않도록 자주 말을 걸어주는 건 분명 축복일 것이다.
목숨이 담보로 잡히지만 않았다면.
문명수준이 덜떨어져서 불편하니 어쩌니 해도 조상님들은 정말 행복한 세상에서 살았다고, 카르 4세는 확언할 수 있다.
“저…. 실례합니다.”
조심스럽고 작은 종달새 같은 목소리.
감귤이 든 바구니를 양손으로 꼭 쥔 소녀였다.
난방설비가 훌륭한 의무대인 탓에 코트 지퍼를 내리고 상의 단추도 두 개쯤 푼 그녀는 어떤 의미로 상당히 위험했다.
“윤소영 양…?”
“어머! 소영이네? 와보는 게 당연하려나~♪”
“아! 제대로 찾아왔네요, 의무대 병실은 처음이라서 살짝 헤맸어요.”
꾹 눌러쓴 모자를 벗어 빈 침대에 올려놓고 그 옆에 걸터앉은 윤소영이 말했다.
무늬만 간호사인 강보라는 ‘즐거운 시간 보네~♪’라는, 의미심장하긴커녕 무섭기만 한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피했다.
난감하네.
카르 4세의 솔직한 심정을 단적으로 표현한 단어였다.
습관적으로 시선을 피하고는 있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녀의 얼굴에 익숙해졌다.
그녀의 ‘인간다운’ 호의가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목숨이 여벌로 여러 개 있지 않은 한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이 이 시대의 남자다.
탓하려면 그녀가 아닌 ‘힘없는 남자’에게 있다.
“윤소영 양.”
“네?”
< [4장-3] 흔한 사냥꾼의 귀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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