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1] 흔한 사냥꾼의 귀환 >
[4장] 흔한 사냥꾼의 귀환
【암투나 / 1종 소형】
학명: 암투나(팔이 오래가는 참치)
서식지: 토양
특징: 겨울에만 잠깐 나와요.
위험도: 1종 소형
비고: 별미지만 찾기가 별 따기☆
***
카르 4세의 경력에 대해 짧게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맨몸으로 13살에 가출한 소년은 괴수대응본부 경비대 수련생 자격으로 2년의 연수과정을 ‘최우수’로 통과했다.
한국정부에서 정한 최소연령 15살 성인식날에 ‘연륜 부족’으로 1지망이었던 헌병대에서 떨어지고 2지망 수색대는 ‘체구 미달’로 거부됐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특공대!
사망률이 가장 높은 부대에서 1년의 합숙훈련을 거치고 16살이 되던 해에 2급 사냥꾼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헌병대와 수색대에 다시 입대원서를 냈으나 ‘1차 자격심사’에서부터 참패의 쓴맛을 맛봤다.
원인은?
『성장이 멈췄다.』
15살 성인이 되자마자 지원한 임상시험의 ‘부작용’으로, 사춘기 이전의 성장기에서 발육이 완전히 중단된 것이다.
국민이 신뢰할 ‘관상’이 아니라서 헌병대는 힘들었다.
실력은 있지만 ‘체력’이 부족해서 수색대도 난항!
홀로 2종 괴수를 사냥할 수 있는 2급 사냥꾼으로도 입대가 안 되는 불합리한 차별대우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에 ‘특례’에 대해 알게 됐다.
특공대에 정식입대해서 3년을 채우거나 3급 사냥꾼이 되면 헌병대나 수색대 중 원하는 곳에 입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계속 특공대!
또다시 2년,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끝에 특공대 3년을 채우고 3급 사냥꾼으로도 진급했다.
18세 동정남 한무일.
꿈에도 그리던 수색대에 특례로 입대했다.
환영식날,
『수색대장의 팔을 잘랐다.』
1지망이었던 헌병대에서 죄인 신분으로 조사받고 ‘무죄판결’로 석방됐으나 수색대에서는 강제명예전역. 사실상, 해고였다.
퇴직금이란 명목으로 받은 피해보상금과 목돈으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길 1개월.
예전부터 쭉 갖고 싶었던 ‘카르세리안 레이소’가 헐값에 올라왔다는 정보를, 특공대 후배로부터 입수했다.
세상에서 3번째로 날카로운 MID 절단기!
시가가 무려 330억이나 하는 명검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97억 할부로 샀다.
그렇게,
『그는 할부의 노예가 됐다.』
단 한 번도 부러지지 않고 주인만 4번 바뀐 ‘저주받은 검’이었다.
특공대 후배의 부추김에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비싸게’ 사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은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이다.
되팔려고 해봤으나 가격은 29억.
그딴 가격에는 절대로 팔 수 없었다.
특공대로 돌아오라는 후배의 뻔뻔한 감언이설을 뿌리치고 다시 사냥꾼이 됐다.
『경비대』
괴수대응본부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부대에 들어갔다.
그의 주력상품은 염소 젖.
한국우유 사장이랑 각별한 사이가 됐다.
24살에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5번째로 오래 소지한 ‘카르 5세’란 별명을 얻었고, 그다음 해에 ‘카르 4세’가 됐다.
경비대 소속으로, 총동원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한 34회 토벌전 외에도 특공대장 지목으로 186회 섬멸전 참가.
그리고 최근,
27세 동정남 한무일은 완전히 포기했던 1지망 헌병대에 입대했다!
그 불가능한 꿈을 이룬 남자는 현재 무얼 하고 있을까?
‘......나를 흔적도 없이 태워죽이는 데 실패한 직후에 보낸 문자. 누군가의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시기나 발신자가 너무 공교로워.’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헌병대와 수색대를 정복한 카르 4세는,
암호해독으로 머리 싸매고 있었다.
텐트부터 영양제까지 전부 해일에 쓸려갔기 때문에 겸사겸사 사냥꾼초소도 찾고 있지만 별 기대는 안 하는 중이었다.
아까 전의 해일 정도면 산등선에 위치한 헬기장까지 쓸려갔을 테니까.
그보다,
『멍게, 해삼, 말미잘! >ㅇ』
과감하게 주어, 동사를 생략하고 목적어만 3개.
그 뒤는?
보류. 해독불가.
“하아…. 어쩔 수 없지.”
카르 4세는 [예측]을 동원하기로 했다.
일단, 7종 계약자 윤소영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건 이해했다.
죽이려고 동해까지 원정 올 정도면 원한 수준!
이유로는…. 부재중 통화만 114건(전원을 꺼둔 사이에 늘었다.)인 것이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에도 무시.
감수성 풍부하고 자부심 강한 소녀 계약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찮은 사냥꾼’이 전화통화를 받지 않은 건 대단히 상처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성질 더러운 레드군이 호응!
무일의 ‘상식’으로 거기까지는 어찌어찌 이해했다.
문제는….
‘보복조치에 실패하자마자 암호문을 보낸 이유인데….’
소녀의 자비심으로 용서해주겠다는 희망적인 해석을 해도 괜찮을까?
카르 4세는 긍정적으로 [예측]해보기로 했다.
『동해에서 신선한 멍게, 해삼, 말미잘을 구해주면 목숨만은 살려줄게요!』
제법 신빙성 높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멍게, 해삼.
7종 계약자쯤 되면 이렇게까지 식단이 풍성해지는 걸까? 다큐멘터리를 안 보는 평범한 주부들은 바다에 이런 해산물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멍게, 해삼은 바다에 특화된 사냥꾼들이 목숨 걸고 채집하는 ‘별미’다.
해변에 널린 미역으로 미역국 끊이는 게 한계인 ‘육지형 사냥꾼’인 카르 4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요구였다.
말미잘.
이건 윤소영의 분노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육지형 사냥꾼 중에는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말미잘 촉수에는, 물고기를 즉사시키고 사람은 호흡곤란 일으키는 맹독이 들어있다.
...이것도 먹을 수 있나?
고급레스토랑처럼 집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려는 걸지도 모른다.
‘아가씨들의 고상한 취미란 거겠지.’
일단은 이 정도로 해석 완료.
물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격언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뒤에 ‘>ㅇ’만은 카르 4세의 해독능력 밖이었다.
도대체, 괄호를 뒤집어서 배치하고 가운데 동그라미를 놓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기울어진 작대기는 뭐지? 차라리 똑바로 세웠으면 ‘1’이라고 판단했을 텐데….”
무일은 수색대에서 쫓겨나더라도 암호해독이나 암구호 정도는 소양으로 익혀뒀어야 했다고 뒤늦게 자책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카르 4세이기 때문이다.
괴수랑 심해전투만 치르지 않으면 죽지 않으리란 자신감 정도는 있었다.
무모한 도전이 절대 아니다.
‘태양신이시여, 올해까지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목숨이 간당간당할 숙제를 연말에 너무 많이 주신 거 아닙니까요?’
카르 4세는 토속신에게 투덜대며 올해를 마무리했다.
유키 짱에게 휴대전화기를 안 꺼두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장 배터리를 충전할 방법이 없으므로 약속은 불가피하게 잠시 보류됐다.
부족한 식량으로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스마트폰까지 챙길 여력은 없었던 까닭이다.
겨울만 아니면 이 정도로 고생하진 않을 텐데….
빨래하면서 돌려 입을 계획이었던 옷도 짐을 잃어버리면서 단벌이 됐다. 벗었다가는 그대로 얼어 죽기 십상!
최악이다.
그는 해돋이를 보러 온 거지 원시체험 하러 온 게 아니다.
“......생각해보니 겨울에 잠수한다는 선택지부터가 자살행위일지도.”
윤소영은 처음부터 그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오기가 발생했다.
새해의 첫 태양이 드디어 수평선 너머로 떠올랐다. 이걸 보려고 서울에서 동해까지 죽을 고생 하며 왔다.
해돋이를 감상하며 한무일은 응어리를 토해내듯 태양신에게 외쳤다.
“무병장수하게 도와주십시오!!”
본격적으로 살아남기 작전에 돌입했다.
겨울잠 중인 반달곰을 습격해서 동굴을 빼앗고,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 정도로 알고 덤벼든 호랑이와 늑대로 식량과 의복을 해결했다.
구하기 가장 난해한 영양분은 섬유질이었다.
밤과 도토리로 탄수화물에 해당하는 곡류는 어찌어찌 됐지만, 비타민을 보충할 채소류만은 정말 난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뭐…, 그래도.
괴수의 위협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다.
‘카르세리안 레이소. 과연…. 물의 저항까지 베다니. 하지만 몸이 못 따라가 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 이러다 1종 피라미에게 물려 죽으면 대대손손 창피….’
겨울 바다에서 나오는 무일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보들보들한 아기 피부의 소년은 전라(全裸)였다. 훈련하지 않는 성인쯤은 간단히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은 근육이 조금씩 자리하고 있었다.
털 하나 없는 밍밍한 겨드랑이와 사타구니가 소년을 우울하게 했다. 크기까지 생각하면 왜 사는가 회한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허벅지에 난 흉터가 카르 4세의 기분을 조금 풀어줬다.
조금은 남자답게 변한 게 아닐까?
“꺄아아아아!”
그런 기분을 단숨에 날리는 여성의 비명!
어디서? 누가?
이제 막 바다에서 기어 나오느라 녹초가 된 무일의 얼빠진 정신이 바짝 섰다. 이 추운 겨울에 동해에 놀러 온 얼빠진 계약자가 있던 걸까?
아! 있었군, 유키 짱.
바로 코앞에서 들린 소리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 이렇게.
“어라?”
따뜻한 정도를 넘어 덥지 않을까 싶은 코트와 모자로 무장한 소녀였다.
누구인지 1초 정도 생각하던 무일은 서둘러 아래부터 가렸다.
이불로 번데기처럼 온몸을 똘똘 말고 있던 소녀랑 싱크로율 100%였던 까닭이다. 변태로 오인하면 얼어 죽는 게 아니라 불타 죽는다.
7종 계약자 윤소영.
어째서 그녀가 여기 있는 걸까?
“빠, 빨리 뭐라도 입어요!”
“......제 옷을 그렇게 밟고 계시면 못 입습니다, 윤소영 양.”
“이 걸레요?”
“걸레 같아서 죄송합니다. 무두질은 제 영역이 아니라서 그나마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서둘러 심장마사지를 한 무일은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무일의 엉덩이를 본 소녀가 또 한 번 귀여운 비명을 질렀지만, 파도소리에 파묻히는 바람에 잠수한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러길 3분.
“......뭐예요, 그건.”
딱 봐도 서투른 장인의 정성이 묻어난 망사 주머니였다.
100년 전의 고대인 어부들이 사용하던 그물을 수선해서 만든 것 같았다. 정말 그뿐이었다면 윤소영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저 안에 들어있는 징그러운 것들은 도대체 뭘까요?!’
주먹만 한 주황색 곰보가 여러 개.
매끈한 돌처럼 보이는 푸딩이 또 여러 개.
끝으로, 돌에 붙은 알록달록 흐물흐물 거리는 이상한 생명체가 셋.
주머니에 든 애벌레(?) 때문일까?
벌거벗은 소년이 점점 다가와서일까?
무일은 뒤로 후다닥 물러선 윤소영이 서 있던 자리에서 ‘실패작 8호’로 물기를 닦고 ‘가죽옷 3호’를 몸 위에 걸쳤다.
“...윤소영 양이 보낸 문자 아니었습니까?”
“문자요?”
“멍게, 해삼, 말미잘. 그리고 암호문.”
동해바닷가 서바이벌 보름째.
여전히 ‘>ㅇ’를 해석하지 못한 카르 4세는 부끄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언제 죽이러(!) 오겠다는 시간을 표시해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 가운데 동그라미는 태양을 뜻하는 게 아닐까?
다짜고짜 자신을 불태우지 않은 것만 봐도 상당히 신빙성 높은 해석이라고, 천생 사냥꾼(스스로 상식인이라고 굳게 믿으며)은 멋대로 판단했다.
“아! 그, 그건….”
미소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까지 포기해가며 뭘 하나 궁금해서 동해까지 찾아왔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엄청난 미녀랑 화기애애(윤소영 눈에는)하게 웃고 떠들더니 급기야 술래잡기(윤소영 눈에는)까지 하는 것 아닌가!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며 그녀는 그냥 분했다.
그래서 근처 사냥꾼초소에 ‘부탁’해서 방을 빌리고 침대에 누워 펑펑 울었다.
『멍게, 해삼, 말미잘! >ㅇ』
이건 그때 심정을 담아서 보낸 문자였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전송 완료!
서둘러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오빠.’라는 변명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수호자 레드군이 다짜고짜 창문을 깨고 들어와서는 그녀를 안고 서울까지 날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러서.
이후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심기가 매우 안 좋아 보이는 레드군을 달래기 바빴던 탓이다.
“아가씨가 보낸 게 맞는 모양이군요.”
< [4장-1] 흔한 사냥꾼의 귀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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