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5] 동해로 가는 길 >
남성을 선택하는 괴수.
카르 4세가 확실하게 아는 정보란 이 정도뿐이다.
서식지도 불명이고 위험도는 ‘1종 특수’로 일단은 분류되어 있다.
겨우 1종밖에 안 되는데 모든 나라가 공개를 거부하고 꽁꽁 감쳐두는 이유가 뭘까?
무일도 남들이랑 똑같은 의문을 가졌던 때가 있었지만, 남자랑 계약하는 ‘유일한 괴수’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술독점!
모든 괴수가 ‘미남’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국력은 순식간에 2배로 불어날 것이다!
이 정도면 비밀에 부치기에는 충분하다.
“본다고 손해 볼 건 없잖아.”
남성을 선택하는 유일한 괴수, 에쏘드.
고자가 아니라면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다.
카르 4세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시선을 마주하고 말았다.
일본의 귀중한 재원인 계약자 아가씨가 비루한 사냥꾼 하나를 놀려먹으려고 바다를 건너진 않았을 거란 상식적인 판단도 있었다.
모든 남자의 꿈인 에쏘드를 보고 죽는다면 여한도 없으리라!
그런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카와이! 카레 짱! 기대에 찬 초롱초롱 눈동자가 정말 귀여워!”
“네 심미안은 어떻게 된 거야?!”
무일은 유키 짱의 수호자가 이 근방 어딘가에서 은밀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고 꽥 소리 지르고 말았다.
어리다는 폭언을 자주 듣지만, 귀엽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곧 27살이 되는 남자에게 ‘귀엽다.’는 건 욕이나 다름없다.
“화내는 모습도 귀여워! 카와이~!”
“......안 추워?”
외모의 정체성에 대해 따지는 건 포기하기로 한 무일은 눈앞의 일본인 처녀를 위아래로 쓱 보며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유키 짱은 스타일부터 파격적인 묘령의 아가씨였다.
저 산타클로스 미소녀 버전은 뭘까?
당장에라도 얼어 죽을 것처럼 새하얗게 질린 주제에 새하얀 솜털이 레이스처럼 달린 새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보폭이 불일치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입고 안 추우면 그게 더 이상하지.
훤히 노출된 다리는 구제할 수 없지만, 일단은 하의 못지않게 헐벗은 상의부터 해결해주기로 했다.
“아리가또, 카레 짱~♥”
무일이 입고 있던 두꺼운 외투를 벗어주기 무섭게 걸치는 유키 짱.
놀랍도록 정밀한 올곧은 이목구비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묘령의 아가씨’라고 소개하듯 지적인 분위기로 넘쳐났다.
하지만 복장은?
아무런 생각 없어 보임!
신장은 161cm, 삼부 수치는 위에서부터 82-56-81. 가슴 패드는 괴수도 봐주는(신경 안 쓰는) 항목이기 때문에 저 가슴이 진짜인지는 확인-.
“헉!”
무일은 숨을 들이켰다.
약간, 아니, 좀 많이 불순한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사냥꾼의 [예측]이란 때때로는 이렇게나 위험한 기술이다.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유키 짱은 더 봐도 된다는 뉘앙스로 생긋 웃으며 상체를 살짝 숙였다.
오롯하게 드러나는 가슴골.
유키 짱은 눈속임 없는 완벽한 자연산이라고 몸소 주장하며 말했다.
“괜찮아. 엑시온은 아기 빼고 신경 안 써.”
“...진짜냐.”
조금은 안도하며 ‘남자답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일본산(?) 가슴을 자세하게 관찰하려 할 때였다.
‘그것’은 카르 4세의 [예측]과 [예감]보다 빠르게 그 둘을 덮쳤다.
동해의 시원한 겨울 풍경이 홍염(紅焰)으로 뒤덮였다.
“아레아레~♪ 레드군 데스까.”
온 세상이 활활 타올랐다.
일본이 타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걸까, 태평스럽게 웃어 보이는 유키 짱의 혼잣말에 무일은 모든 신경이 곤두섬을 느꼈다.
레드군은, 카르 4세에게 완전히 무관한 괴수가 아니다.
7종 계약자 윤소영의 수호자.
하지만 그 레드군이 서울에 있는 미소녀와 이렇게까지 멀리 떨어져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정답은?
야생 레드군!
미녀랑 계약하지 않은 7종 괴수가 분명했다.
그 무시무시한 용왕의 브레스가 작열했으나 유키 짱과 무일만은 무사했다.
화염의 재앙으로부터 보호해준 거대한 기계가 있었다.
“저건…. 로봇…?”
은(銀)의 기사였다.
일본만화나 미국영화에 나오는 ‘인간미’ 넘치는 강철인형은 결코 아니었다.
철저하게 ‘기능성’만을 추구한 대량살상병기.
천사의 날개처럼 등에 달린 6쌍의 부스터를 제외하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첨단무기로 도배한 ‘형태만 인간인 화약고’였다.
아니, 그뿐만이었다면 MID가 난무하는 24세기에 놀라울 것도 없으리라.
레드군의 브레스에 녹아내린 부위가 순식간에 복구되며 새로운 무기로 탈바꿈한다!
변신로봇의 규격을 아늑히 초월한 ‘괴물’이었다.
“카레 짱~♥ 소개할게.”
“소개?”
“나의 수호자 판타이탄. 가상세계 하느님이야!”
“아! 저것이! 아니, 저 괴수가….”
모든 괴수가 ‘순수한 생명체’인 건 아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저 기계 괴수다.
【판타이탄 / 7종 특수】
서기 2222년 3월 1일 1시 1분.
인류와 괴수가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겨루는 ‘4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 승자는 압도적으로 괴수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일방적이고 절망적이었던 상대는 ‘가상세계 하나님’이었다.
모든 종류의 첨단기계 무력화.
그걸로 모자라 통제하고 변형하고 진화한다!
4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판타이탄을 괴수가 아닌 ‘경쟁국에서 보낸 바이러스’로 오인하는 바람에 인류연합은 결성되자마자 해체됐다.
현재는 MID 백신 프로그램으로 방어하고 있지만….
저런 응용도 가능했을 줄이야!
콰과광! 쾅쾅!
동해바닷가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레드군은 회피하기 바빴다.
판타이탄은 인간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전투기, 구축함, 동물 등으로 순식간에 변신하며 최적의 공격만을 하고 있었다.
정밀하게.
예리하게.
강력하게.
단단한 용의 비늘은 판타이탄이 쏘아내는 거의 모든 공격을 맞고도 끄떡없었지만, 피해는 회복보다 빠른 속도로 누적됐다.
게다가 갈수록 일방적인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레드군 움직임이 읽히고 있어!’
공격력, 방어력, 생명력, 그 모든 면에서 판타이탄보다 월등히 뛰어난 레드군이 속절없이 얻어맞기만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사냥꾼이 괴수를 잡는 방식.
괴수의 다음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똑같은 ‘7종’인데 저렇게까지 실력차이가 극심할 수 있는 걸까?
둘의 차이가 있다면, 레드군은 덩치가 동물이랑 비슷한 ‘소형’이고, 판타이탄은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는 ‘특수’라는 점이다.
조건과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강해질 수도, 약해질 수도 있는 특수.
유키 짱이 말했다.
“카레 짱. 이게 일본의 저력이야, 예요.”
“...어째서 여기서 국력 얘기가 나오는 건데?”
야생 괴수를 처리하는 것뿐이다.
목숨을 구원받은 카르 4세의 음성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의문.
일본 아가씨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저 레드군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수호자잖아, 예요. 한국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그 ‘엘로엘’이 아닌 게 조금 아쉽지만.”
“그럴 리가…?”
무일이 경악하는 사이에 레드군이 바다로 잠수했다.
용은 하늘과 땅만 제패한 게 아니다.
현명한 용답게 움직임이 읽힌다는 걸 깨닫자마자 전장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수룡(水龍)이 아닌 비룡(飛龍)에 속하는 레드군이 장기인 화염 브레스를 포기하고 승산이 있을까?
순식간에 유선형 잠수함 형태로 바꾼 판타이탄이 레드군을 따라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퍼엉! 퍼버버버벙!
어뢰 수천 개가 터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졌다.
하지만 느긋하게 그걸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레?”
“뛰어! 유키 짱! 해일이야!”
멍청한 얼굴을 한 아가씨의 손목을 잡고 해변 밖으로 뛰었다.
피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는 카르 4세는 아까부터 전혀 발동하지 않은 [예감]에 살짝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대략 5초 뒤에 해일에 휩쓸릴 텐데 위기가 아니라고?
막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거대한 기계의 손이 두 사람을 낚아채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카레 짱. 그 레드군 제법인데? 이런 식으로 허점을 만들어서 도주할 거라고는 엑시온도 예상 못 했대.”
“정말로…. 윤소영의 레드군이었다고…?”
“하잇! 서울 방향으로 멀어지는 생체반응이 둘이야. 레드군과 소녀~♪”
“......”
정말이라면 걱정됐다.
안 그래도 최근에 겪은 사고로 힘들어하는 아이인데….
서쪽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소년의 얼굴을 빤히 보던 아가씨가 말했다.
“추적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만 여기서 더 소란스럽게 하면 유키 짱도 곤란하니 포기할래. 카레 짱. 짐작 가는 바 없어? 방금 나랑 같이 죽을 뻔했잖아.”
“...순찰이려나.”
“쏘까~♪”
욕처럼 들린 건 착각이겠지-? 쌓여있던 눈을 순식간에 증발시키며 활활 타오르던 동해바닷가는, 해일이 휩쓸고 간 끝에 검은색 잔해만 남았다.
일방적이었다고 하지만, 재난으로 취급되는 7종 둘이 격돌했던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자연재해였다.
흉흉한 천사의 형태로 돌아온 판타이탄이 육지에 착륙했다.
땅에 내려선 무일은 이 무지막지한 로봇을 올려다봤다.
‘덩치가 줄었다?’
그야 당연할 것이다.
아무리 일방적으로 싸웠다고 해도 판타이탄이 사용했던 미사일은 전부 몸을 구성하던 ‘부품’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 판타이탄이랑 싸운다면 장기전으로 끌고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3급 사냥꾼하고는 인연 없는 전략이었다.
판타이탄의 덩치가 얼마나 줄던 온몸에 덕지덕지 달고 있는 레일건으로 1초만 집중포화해도 그는 찍소리 한 번 못 해보고 숯덩이로 변할 테니까.
“그나저나…. 여기서 해돋이 보긴 힘들겠네.”
“카레 짱. 그럼 일본으로 갈래? 해수욕은 아직 무리지만, ‘오키나와’의 에메랄드 바다는 정말 아름다워.”
“...말은 고맙지만 사양할래.”
그렇게 되면 동해까지 힘겹게 온 보람이 사라진다.
무엇보다도 말이다.
이 난리를 치고 떠나면 모국(母國)이랑 영영 안녕이다. 아니, 떠나는 건 둘째치고 ‘위험한 여자’가 쫓아올까 두렵다.
안 그래도 특공대로 돌아오라고 난리인데….
아예 나라를 뜨겠다고 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억지로라도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이미 6년을 기다렸으니 조금 더 기다려 줄게.”
“유키 짱.”
“하잇!”
“6년 동안 일본에 에쏘드 계약자가 안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계약자를 잃은 에쏘드가 폭주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반대로, 계약자를 잃은 에쏘드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대서특보 된 이후부터 여러 나라에서 발표하기 시작했다.
계약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인체실험이나 뭐 그런 것 때문일까?
에쏘드도 괴수니 계약자를 보호하려고 애쓰겠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자와 계약하는 괴수’라서 확신할 수 없었다.
유키 짱이 말했다.
“그 6년 동안 계약자가 373번 바뀌었어, 예요. 그리고 전부 죽었어, 예요.”
“......”
계약자가 거의 매주 바뀐 꼴이었다.
카르 4세는 에쏘드의 계약 조건을 모르지만, 그 계약자 모두가 ‘프로사냥꾼’ 수준이었다고 가정하면, 일본이 사냥꾼 결핍으로 허덕이는 이유도 충분히 수긍 됐다.
수렵품목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이 상승한다.
가격이 오르면?
사냥꾼 지원자가 늘어난다.
하지만 ‘괴수로부터 살아남는 비결’을 가르쳐줄 선배가 없다면 초심자들의 생존율은 소수점 밑으로 떨어진다.
후진국에서 많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냥꾼이 실력 좀 쌓였다 싶으면 조국을 등지고 선진국으로 이민 가버리니, 후진양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일본이 사냥꾼 천국이라더니 이런 속사정이….’
용을 2마리나 보유한 MID 선진국인 동시에 강대국이기도 한 일본이 계속 이민을 받아들이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신용할 수 없는 외국인에게 에쏘드를 맡기진 않았을 것이다. 계약하고 튀면 정말 통탄한 노릇일 테니까.
즉, 일본인 남성만 363명이 죽었다.
게다가 유키 짱은 ‘6년 동안’이라고 했으니 그 이전에 더 많은 계약자가 부질없이 저승길에 올랐을 것이다.
그 사망자 숫자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려나?’
여성이랑 비슷하게 ‘동정 미남’이라면 일본은 현재 추남뿐이 안 남았을 것 같다.
그리고 뛰어난 사냥꾼이라면?
일본에 ‘프로사냥꾼’은 둘째치고 ‘3급 사냥꾼’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1종 괴수 에쏘드.
계약자(외모에 하자가 없다는 전제하에)가 죽거나 배신하기 전까지 바꾸는 법이 없는 수호자가 그렇게 많은 사내랑 계약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카르 4세는 [예측]했다.
에쏘드는 계약자가 ‘아무 남자’라도 상관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 이전의 계약자 중에는 유키 짱의 아빠도 있었어, 예요.”
“저런….”
계약 조건에서 ‘동정’을 뺐다.
무일은 그녀에게 위로의 한마디라도 해주려고 했다.
유키 짱의 다음 대사만 없었다면 말이다.
“계약하고 딱 한 달째인 첫 실전에서 괴수 밥이 됐어, 예요.”
“애수에 젖은 얼굴로 막말하지 말아줘, 유키 짱!”
돌아가신 부친께서 무덤에서 통곡하신다고!
거대한 로봇 괴수가 즉석에서 만든 전기난로 앞에 쪼그려 앉는 미니스커트 아가씨. 과감한 검은색 팬티가 무일의 생명을 위협했다.
하지만 판타이탄은 무관심.
기계라서 카르 4세가 못 느끼는 걸지도 모르지만, 꿈쩍 않고 서 있는 모습은 계약자가 칠칠치 못해도 좋다는 것 같았다.
정말, 이 수호자는 아기 빼면 이대로도 괜찮은 겁니까?!
“유키 짱은 한국어 잘해, 예요. 괴수가 아빠를 먹기 좋게 썰어서 꼭꼭 씹어 먹은 건 사실이야, 예요.”
“한국말을 누구한테 배웠는지 궁금해졌어!”
“다메!”
“다메? 그게 이름? 제2 교포인가.”
“안 돼! 몰라도 돼, 알면 안 돼, 알려고 하지 마, 알았지? 카레 짱~♥”
“......”
이유는 모르겠지만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무시무시한 7종 계약자의 팬티와 브래지어를 보고도 무사할 수 있는 일본인들은 축복받은 게 분명하다.
유키 짱을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쓴웃음을 지은 무일은 아까부터 계속 ‘카와이!’를 외치며 껴안으려는 일본인 아가씨의 장단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살인마가 쫓아와도 이렇게 무섭진 않을 것이다.
유키 짱은 계속 피하는 ‘카레 짱’을 향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심통 났다고 항의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기계 괴수의 인내심을 시험해보고 싶진 않다.
계약자가 안전하다고 했어도 ‘예외’가 발생하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우우…. 카레 짱. 약속대로 에쏘드를 보여줄게.”
꿈쩍 않고 있던 판타이탄이 벙커처럼 모습을 바꾸더니 두 사람을 순식간에 감쌌다.
보안과 보호를 동시에 해결한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범용성에 무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찢고 태우는 게 장기이자 전부인 레드군을 능가하는 전투력으로 모자라서 생활력까지 겸비하다니!
카르 4세는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계약자가 부럽기는 진정 처음이었다.
아늑하기까지 한 판타이탄(벙커) 내부.
사령실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스크린이 한 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거기에 비친 사진들.
“이것이….”
카르 4세는 이해했다.
지금까지 품었던 몇 가지 의문점들이 전부 풀렸다.
【에쏘드 / 1종 특수】
이 괴수의 위험도는 ‘1종’으로 해주기도 아까운 수준이었고, 남자랑 계약하는 유일한 괴수라서 ‘특수’로 불렸던 것도 아니었다.
어째서 계약자들이 그렇게나 많이 죽어났는지도 어렴풋이 이해했다. 각국에서 악착같이 비밀로 하는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카르 4세가 멍하니 서서 그 사진들을 보고 있을 때,
유키 짱이 무언가를 내밀며 말했다.
“카레 짱. 좀 늦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
“이건….”
눈에 익숙하다 못해 각인된 카르세리안 레이소의 칼집이었다. 중간쯤에는 암투나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가 태백산맥을 넘던 중에 잃어버린 물건이다.
이게 없어지는 바람에 여간 귀찮고 위험했던 게 아니었다. 까딱 한눈팔면 손가락 한두 개 잘리는 건 일도 아닌 까닭이다.
“선물은 마음에 들어?”
“...눈물 날 정도로.”
이렇게 젊고(외모만 보면) 예쁜 아가씨가 주니 황송할 지경이다.
더군다나 무일이 간절히 필요로 하던 물건을 떡하니 주니 감격 안 하고는 못 배겼다.
이걸로 여자친구에게 옷을 입힐 수 있게 됐다.
온종일 벌거벗고(?) 있어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고마우면 앞으로 스마트폰 끄지 마.”
“...좋아.”
“바로 고백?!”
“아니야!”
“방금 좋다고 했잖아, 예요!”
“알겠다는 뜻이었어! 한국말 잘하긴 개뿔!”
온몸으로 부정하는 소년에게 ‘카와이!’라고 외치며 소란을 피우던 유키 짱은 ‘오늘 일은 전부 비밀~♥’이라고 경고한 후에 떠났다.
아름다운 계약자를 특등석에 태운 ‘판타이탄 수직이착륙 여객기’가 이륙하더니 순식간에 동해 너머로 날아갔다.
까맣게 탄 폐허에 홀로 남겨진 프로사냥꾼은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저 괴수의 범용성은 한계가 있긴 할까…?
무일은 유키 짱이랑 했던 약속대로 주머니에 든 스마트폰 전원을 켰다.
‘음? 내게 문자 올 때가 다 있네?’
유키 짱은 논외지만, 카르 4세의 휴대전화기는 괴수대응본부의 회선에서 한 번 걸러내기 때문에 그 흔한 광고 문자 하나 없는 공백이 특징이다.
모든 용무는 전화로 해결한다.
문자는 목소리나 억양 등을 알 수 없기에 ‘사기’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목소리 변조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외국의 첩자가 경비대 통제실을 해킹해서 무모한 지시나 거짓 정보를 대원들에게 하달하면 몰살하는 건 순식간이다.
카르 4세는 처음 받아보는 문자의 ‘암호해석’에 난향을 겪었다.
발신자는 일단….
7종 계약자 윤소영인 모양이다.
문제 내용은 이랬다.
『멍게, 해삼, 말미잘! >ㅇ』
< [3장-5] 동해로 가는 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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