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13화 (13/287)

< [3장-3] 동해로 가는 길 >

촤아아악!

그런데 한 놈이 무일의 [반격]을 역으로 이용하는 돌발행동을 했다.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긴 발톱’에 적당히 베여주며 자신의 피를 사냥감의 얼굴에 뿌린 것이다.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다수의 괴수를 상대하면 이게 문제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괴수들은 빠르게 학습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한다. 필요하다면 희생과 협동도 감수한다.

“1종 따위가 까불지 마!”

무일은 은색 피로 젖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어떤 괴수인지, 1종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빈틈이 생겼다.

그 허점을 노리며 남은 괴수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경이로운 학습속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아온 카르 4세다. 카르세리안 레이소는 놈들의 발톱보다 날카롭다.

그리고,

칼집은 그 이상으로 튼튼하다.

퍽!

카르 4세는 모든 힘을 쥐어짜듯 휘둘러 어떻게든 마지막 녀석까지 베어냈다.

하지만 그 직후에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나자빠진 ‘가볍고 여린 몸뚱이’는 눈밭 위를 몇 번이나 굴렀다.

마지막에 벤 괴수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무일을 노려봤다.

연약한 인간의 몸을 갈라버리기 직전에 단단한 무언가의 방해를 받았다. 그게 분해서 죽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의 강렬한 눈동자는 곧 그 빛을 잃고 말았다.

“푸아아아! 살았나? 살았네?”

도저히 피할 길이 없었던 최후의 일격을 검집으로 막아낸 무일은 드러누운 상태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물리저항 0’에 가까운 절삭력을 자랑하는 카르세리안 레이소도 아닌 그저 단단하기만 한 검집으로 괴수의 공격을 막은 건 훌륭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게 유일한 생존방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괴수(怪獸)의 무지막지한 괴력(怪力)은 교통사고에 버금가는 부담과 충격을 몸에 고스란히 주기 때문이다.

푹신한 눈밭이 아니었으면 타박상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에고…. 검집은 봄에나 찾으러 와야겠네.’

어딘가로 날아간 검집에도 도난방지센서가 내장되어 있으니 땅속에 묻히지만 않는다면 강원도 어디에 있든 되찾을 수 있다.

허벅지에 난 큼직한 상처를 제외하고는 어디가 얼마나 다쳤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된 무일은 좀비처럼 몸을 질질 끌며 유일한 구명줄인 소형차로 향했다.

정말, 이대로 죽어도 할 말 없다.

【암투나 / 1종 소형】

옆구리에 지느러미 대신 팔이 달린 ‘참치’ 따위에게 죽을 뻔했으니 말이다.

평소에는 땅속에서 생활하지만, 대지가 꽁꽁 어는 겨울이나 동토(凍土)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오는 ‘땅굴 참치’다.

워낙 은둔형 괴수라서 신경 끊고 있던 게 화근이었다.

유선형의 날렵한 몸뚱이는 공기저항을 극도로 낮춰주고, 땅을 파는 용도로 쓰이는 팔은 엄청난 거리를 단숨에 도약하게 해준다.

심지어 육지에서 불필요해 보이는 꼬리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는 공중에서 먹잇감까지 최단거리로 떨어지는 방향조절에 쓰인다.

그야말로 기습(奇襲)에 최적화된 괴수다.

‘더 짜증 나는 건 협공한다는 거지.’

저 거대한 덩치가 땅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터널을 전부 혼자 뚫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암투나는 십여 마리씩 군집생활을 한다.

만약, 무일이 몸 상태가 멀쩡했고 날씨도 좋았다면 ‘심마니!’를 외쳤을 것이다.

이 은둔형 참치들은 그 희소성만큼이나 미식가들이 찾는 별미에 속하기 때문이다.

부르는 게 값!

하지만 당장 죽을 판국에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게다가 이런 소형차로는 뒷좌석이랑 옆좌석, 트렁크에 토막으로 나눠서 넣어도 간신히 한 마리 분량밖에 소화해내지 못한다.

“......그래도 식량으로 챙겨야지.”

이런 몸으로는 동해에 도착하자마자 꼼짝없이 요양해야 한다. 당연히 사냥꾼의 특기인 수렵활동도 전면중지!

암투나를 서울까지 남겨가서 생활비에 보태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은 게 절대 아니다.

다 죽어가는 주제에 가장 맛 좋은 살점만 골라내는 무일.

사투(死鬪)보다 뒷정리가 더 오래 걸리고 있었다.

푹!

검집을 잃어버린 관계로, 뒷좌석에 실은 암투나의 몸통에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조심스럽게 찔러넣었다.

이번에도 무일의 목숨을 구해준 330억(중요!)짜리 여자친구의 몸에 물고기비린내가 배는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별을 모르는 이 절단기를 대충 놔두면 이까짓 소형차는 사소한 흔들림만으로도 순식간에 양분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혹시라도 칼날이 튀는 날에는 카르 4세도 무사할 수 없다.

‘그 진동은 암투나 무리가 통통 튀는 소리였나?’

괴수의 발걸음 소리가 아니라 참치들이 차례차례 도약하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정말 오랜만에 빗나간 [예측]이다.

덕분에 죽을 뻔했다.

사지 중 유일하게 멀쩡한 오른팔만으로 운전대를 쥔 무일은 쌓이기 시작한 눈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속력을 올렸다.

바퀴가 미끄러져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나, 바퀴가 제자리에서 헛도는 조난을 당하나, 죽는다는 결과는 똑같기 때문이다.

이왕 위험하다면 그래도 전자(前者)로.

절벽에서 떨어지면 별 고통 없이 순식간에 죽을 테니 말이다.

“...졸리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응급처치했다고는 해도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다행히 통증 덕분에 수마에 빠지진 않았지만, 통증에 익숙해지면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다.

동해에 도착할 때까지, 못해도 눈이 잘 쌓이지 않는 해안까지만 가서 잘 수 있으면 생존율이 많이 오를 것이다.

도중에 숫자를 까먹어서 다시 하나부터 세길 다섯 차례.

무일은 지긋지긋한 설산이 끝나고 눈 덮인 들이 보이기 무섭게 차를 갓길 밖으로 무작정 돌진해서 박았다.

‘잠든 사이에 죽으면 어쩔 수 없고.’

계속 미뤘던 진통제를 허벅지 상처에 발랐다. 분명 미치도록 아파야 정상인데 통각이 마비된 것인지 살짝 쓰라린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괴수의 피를 중화해주는 백신을 허벅지의 동맥 부근에 꽂고 피스톨을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여기서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주사하지 않고 그냥 뽑았다.

여기서 미쳐봐야 다칠 사람도 없고, 괴수의 피는 일시적으로 회복력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후우…. 어떻게든 되겠지.”

사람의 키보다 큰 들풀이 사방에 둘러싸여 있다. 여기에 눈이 조금만 쌓이면 커다란 바위로 자연스럽게 위장될 것 같다.

암투나의 피비린내가 괴수를 불러들일지 쫓아낼지는 미지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동해로 출발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고 각오했던 일이지 않은가?

계속 빗나가길 바라고 바랐던 재난과 습격을 당했다고 해서 ‘나는 불행해!’라고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약간의 운에 기대야 할 때였다.

‘......음. 흐음….’

순식간에 기절했다가 다시 눈을 뜬 무일이 가장 먼저 본 광경은 새하얀 눈으로 덮인 자동차 앞유리였다.

시동과 히터까지 끄고 잤기 때문에 동사(凍死)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소형차 내부는 그럭저럭 살만한 편이었다.

덮고 있는 눈이 이글루처럼 보온효과를 해줬던 걸까?

새로운 생활지식을 얻었다고 기뻐할 정도의 이유를 되찾았다.

‘팔다리 이상 무.’

차가 멀쩡하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확인해봐서 나쁠 건 없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팔다리를 가볍게 움직이며 굳은 근육을 푼 무일은, 발톱인 줄 알았던 암투나 이빨에 물렸던 허벅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력에 지장 없길 바라지만 어떨지….’

애초에 제자리에서 적의 공격을 [예측]하여 [반격]하는 연계기를 주특기로 하는 카르 4세에게 기동성이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흘린 피만큼 몸이 둔해졌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

과연, 몸이 얼마나 따라줄까?

그런 고민할 시간에 새로운 피를 만드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한 무일은, 뒷좌석에서 조심스럽게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뽑아 옆좌석의 생선 덩어리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이거 쉽지 않은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회를 치다가 잘못하면 하나뿐인 이동수단을 자를 판이다.

하지만 그는 카르 4세였다.

괴수도 아닌 여자친구를 잘못 다뤄서 죽었다는 불명예와 굴욕만은 절대로 비석이나 사망원인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신중해진 무일은 칼끝만을 이용하여 암투나의 살점을 베어냈다. 조심스럽게, 한 점, 한 점….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도 먹음직스럽지 않은, 상품가치 0점의 ‘괴수 참치회’가 완성됐다.

“...호오~♪”

하지만 절로 입에서 감탄과 노래가 뒤섞여 나올 정도로 맛만은 훌륭했다. 미식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을만한 맛이었다.

그렇다고 무일이 암투나를 처음 먹어보는 건 아니다. 죽음의 위기를 이제 막 간신히 벗어나면서 ‘뭘 먹어도 맛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운 것뿐이다.

‘이대로 차 안에서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상처가 나으면 이동할까?’

실현 가능성 없는 생각을 하며 공복감을 채운 무일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니, 그전에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부터 확인해봐야 했다.

후드득.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고 운전석 창문을 조금만 내렸다. 눈 떨어지는 소리가 커서 살짝 불안했지만, 그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가 잠들어있던 시간은 꼬박 하루.

계속 폭설이었다면 꼼짝없이 동해 앞까지 와서 발이 묶여버린 셈이다.

그냥 발만 묶였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여기서 100km 떨어진 사냥꾼 초소까지 눈밭과 괴수를 해치며 걸어가야 한다.

돌아갈 방법?

무일은 처음부터 서울에 빨리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눈이 녹는 봄쯤에나 돌아갈 계획이다.

내년에 내야 하는 ‘여자친구 몸값’ 할부금은 헌병대에서 월급과 포상금, 성과금 등의 명목으로 나오는 ‘입막음 보상’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급할 게 하나도 없다.

‘좀…. 모호하게 쌓였는데?’

내년에는 빚 압박 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다고 전망하던 무일은, 올해 운세는 ‘모호했다.’는 걸로 점증적 결론을 내렸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며 기뻐할 불특정 다수를 욕하며 차를 후진했다.

강원도 산길에 버려둔 암투나 다수와 검집으로 모자라, 그나마 조금 주워온 참치회랑 자동차마저 버린다면 내년에는 잠자리가 뒤숭숭할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분하게도!

이 약해빠진 애송이 몸뚱이로 눈밭을 밟는 건 자살행위다.

“오오! 나간다, 나가.”

그렇게 기뻐하고 있을 때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죄송하지만 운전 중입니다.)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운전 중에 전화받는다고 죽을 가능성 따위는 이런 평지에서 조금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방에게는 꽤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다.

무척 당황한 목소리로,

(어머? 죄, 죄송해요! 절대 고의가-, 에잇!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상당히 귀엽고 깜찍했던 미성이 뚝 끊겼다.

그걸로 통화는 종료됐다.

“......뭐지?”

무일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7종 계약자 윤소영의 목소리였다.

집 주소를 부탁 한 방으로 끝낼 정도면 휴대전화번호 따위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저번에는 그렇다 쳐도 이번에는 어째서 전화했을까?

스마트폰을 다시 열어보니 부재중 통화가 23건이나 있었다.

전부 같은 번호.

윤소영이 연락한 것이었다.

“아! 전부는 아니었네.”

예외가 하나 있었다.

또 일본인가?

이번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카레 짱~♥’이라고 하려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너무 뻔해서 놀랍지도 않다.

주머니에 다시 스마트폰을 찔러 넣은 무일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해안선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3년 만에 다시 보는 바다.

무서운 여성우월시대를 살아가는 연약한 남자들의 마음과 한을 이해해주는 건, 남자의 어깨처럼 넓은 저 푸른 바다밖에 없지 않을까.

‘죽을 뻔했지만, 오길 잘했어!’

여기까지 오니 수도권에서는 보기 힘든 고라니와 다람쥐 등이 아무렇게나 뛰어다니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수도권 인근은 동물, 식용식물의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밖으로 멀리 못 나가는 초보사냥꾼들이 닥치는 대로 채집, 사냥한 탓이다.

하지만 여기는 서울에서 먼 동해다.

사냥꾼이 없으니 괴수 아닌 동물들도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매가 청설모를 낚아챘다.

“내 기분 물어내!!”

방음이 완벽한 차내에서 뭐라고 외친들 전해질 리 없었다. 창문을 열더라도 저 높은 하늘까지 닿을 리도 없을뿐더러 의사소통도 안 된다.

저 매도 땅 파서 사는 건 아닐 테니….

도토리 까다가 봉변당한 청설모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세상은 원래 약육강식이다. 거기에 선악을 나눌 필요는 없다.

있다면 개인의 ‘양심’뿐.

매가 먹지도 않을 청설모를 무분별하게 사냥한다면 생태계는 파괴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양심적으로 사는가?’

무일은 자문했다.

약자의 편이란 법규도 깊게 파고들면 겉만 번지르르한 개살구다. 타인을 지배하기 좋은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늘 있다.

카르 4세는 서울의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지만, 힘이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은 것도 아니지만, 진전이 없다.

그가 약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변화가 없어.’

MID 덕분에 인류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지만, 이 주변만 봐도 세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용하지 않는 아파트.

사용하지 않는 자동차.

파묻히고 파괴되긴 했지만 100년 전의 참극이 어느 정도였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이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식량 부족과 인구 팽창으로 나라들은 국민의 죽음을 은근히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그걸 해결하려면 주거지와 농토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안주하고 있다.

도시란 우리에 갇힌 가축처럼 먹고 자기만 하며, 좋은 일로만 가득한 가상현실게임 속에 매일 파묻혀 살고 있다.

힘든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따르릉~♪~♬

살짝 염세주의에 빠진 것 같은 감상의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분위기 깨는 전화벨이 울린다.

잠기 고민한 무일은 안 받기로 했다.

하지만 멋대로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 [3장-3] 동해로 가는 길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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