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9화 (9/287)

< [2장-4] 부탁은 부탁인데…. >

괴수대응본부의 거짓보도를 지적하는 윤소영이었다.

무일은 이 소녀가 집에 쳐들어온 이유가 대충 짐작되기 시작했다.

“흠…. 아픈 아이에게 몸에 좋은 ‘쓴 약’을 달다고 거짓말해서 먹이는 거랑 비슷합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도 하죠.”

“그게 뭐예요. 너무 얼렁뚱땅하잖아요.”

“...7종 계약자가 아닌 16살 윤소영 양.”

쭉 저자세였던 무일이 눈에 힘을 주고 불렀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 못 한 소녀가 허둥댔다.

“뭐, 뭐에요, 갑자기?! 갑자기, 숙녀의 나이를 들이밀고요?!”

변화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걸렸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나.

무일은 수명이 더 줄기 전에 이 무단침입자를 내보낼 요령으로 목숨 걸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오늘 하루가 그냥 지나갈 것 같았으니까.

“한꺼번에 모든 걸 알려고 무리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어른들에게 어리광부려도 괜찮은 나이니까요.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귀중한 시절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신경 쓰인다면….”

카르 4세는 가출하던 날을 떠올렸다.

세상의 부조리와 악의가 넘쳐나던 과거를.

“오빠?”

“...그날의 경험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 다시 돌이켜보면 됩니다. 지금, 윤소영 양이 할 일은 열심히 학교 다니며 남자친구-, 레드군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겁니다.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

위험한 말실수를 할 뻔했다.

남자친구는 절대로 안 될 말이다.

그 남자는 물론이고 서울이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훌륭한 어른…. 그게 뭐예요.”

“어른들은 다 똑같은 말만 한다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외모가 신뢰도를 뚝뚝 떨어트린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레드군이 저를 여태 죽이지 않은 이유는 계약자에게 도움되는 얘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용은 현명하니까요.”

어울리지 않게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어린 계약자는 집에 돌아갈 조짐이 없었다!

이제 어쩐다?

할 말은 다 떨어졌고 오늘 일정은 밀려있다.

“오빠.”

“네.”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너무 배고파서 집중이 안 돼요.”

집중하지 않아도 되니 이만 돌아가 줘!

무일의 소리 없는 절규가 하느님이나 부처님에게 닿은 걸까, 이 집에서 약 27시간 동안 쫄쫄 굶으면서 지샜다고 수줍게 변명한 소녀는 밥 한 끼 얻어먹고 떠났다.

그래서 결국은 왜 왔던 걸까?

윤소영의 목적을 알 것 같았는데 마지막 한마디로 전혀 모르게 된 무일은 얼룩진 이부자리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녀가 지나간 자리에 향기가 남기는 개뿔.”

향기는커녕 눈물과 콧물의 흔적만 한가득했다.

시간 되면 침대 옆에 티슈부터 갖춰놔야겠다. 윤소영이 가까운 시일 내에 또 올 것 같다는 진한 [예감]을 받은 탓이다.

무일은 그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세탁소 아저씨에게 이불과 베개를 포함한 침구류 일체를 맡겼다. 그리고 장롱 속에 들어있는 여름 이불 일체를 꺼냈다.

춥진 않으려나?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던 무일은 공용식당가 쪽의 일을 떠올렸다.

그도 오늘 처음 가본 곳이었다.

‘돼지고기가 너무 많은걸….’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2종 괴수 플라돈 고기였다.

무일의 콤플렉스가 제대로 작렬한 셈!

불만스럽지만 도심도 아닌 이런 외각에 자리한 식당에서 고급 재료를 쓸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다.

서울은 사람 살 땅도 부족한 형편이다. 그런데 한가하게 가축 키울 여력 같은 게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달걀은 빌딩 옥상에 설치한 닭장에서 소규모로 생산되고 있지만, 가격이 정말 ‘황금알’ 수준이다.

돼지도 키우긴 한다.

제주도산 ‘흑돼지(똥을 잘 먹는다는 모양이다.)’가 서울 시민들이 매일 싸지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배설물을 처리하고 있다.

풀 뜯어 먹는 소는 부자들도 얼마 못 먹는 음식재료다.

그럼 부족한 식량은 어디서 구할까?

『경비대(Free Peace Forces)』

무일이 6년째 소속 중인 괴수대응본부 경비대에서 하는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 밖으로 나가서 식량을 구해오는 것이다.

당연히 위험하지만 그만큼 벌어들이는 수입도 적지 않다.

사냥꾼이란 명칭은 ‘괴수를 사냥하는 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구하기 쉽지 않은 채소와 과일, 곡류를 채집하는 ‘수렵꾼’의 개념이 더 강하다.

괴수 사냥?

이건 돈이 안 된다.

4종 이하의 괴수 대부분이 식용(食用) 아니면 쓸모없는 뼈와 고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러니 괴수랑 접전이 벌어지면 무조건 손해라고 생각하면 된다.

파괴되고 소모된 장비를 보충하는 비용은 정말 피눈물 나올 수준이다. 그리고 괴수를 죽이고 쌓인 [업보]는 영구지속이다.

즉, 괴수는 최대한 안 마주치는 게 정답.

괴수에게 딱히 유감이나 복수심을 불태울 이유가 없는 무일도 마찬가지다. 괴수 사냥은 거의 ‘자기 보호’ 수준이고 그의 주력상품은 ‘염소 젖’이다.

“먹거리가 문제인데….”

이 동네는 비싼 닭고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돼지고기만은 사절인데 이걸 어쩌나?

물론, 플라돈 외에도 식용으로 쓰이는 괴수 고기는 많다. 다만, 그건 정말 극소수고 대부분은 너무 질겨서 사람의 이빨로 씹을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방부처리 해서 자동차 타이어로 쓰이고 있다.

물에 사는 괴수가 또 별미에 속하지만, 물량이 적어서 마찬가지로 수도권처럼 외진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평범한 물고기는….

자꾸 고향 생각나서 무일의 입맛에 안 맞는다.

‘그래도 어떻게 사는 걸 보면 신기하다니까.’

괴수가 그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는 것도 놀랍지만, 사냥꾼도 아닌 시민이 하루 셋 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다는 건 더욱 신기하다.

사냥꾼들이 낮과 밤, 계절을 안 가리고 수렵하는 건 사실이지만 서울 시민은 그 이상으로 압도적인 숫자다.

게다가 사냥꾼은 ‘돈 안 되는 식품’은 취급 안 한다.

지나가는 길에 감자가 보여도 무시한다고 할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서울 한강공원에서 생산되는 쌀과 보리 등으로 이 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역사학자의 말처럼 ‘제2 한강의 기적’이라 불려도 손색없다.

딩동!

괴수대응본부의 지엄한 어명에 따라 돼지고기 한 점 없는 김치찌개와 보리밥 등으로 버티길 나흘째.

정말 오랜만에, 정말 오랫동안 마음 편히 집 안에서 뒹굴고 있던 무일은 초인종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찾아올 사람이 있나?

7종 계약자 윤소영은 아니다.

그 미소녀라면 초인종 누를 시간에 비밀번호로 손이 갈 테니까.

잠든 척할까도 생각했으나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첫 방문객’이니 만큼 나가보기로 했다.

헌병대장이 보낸 택배 기사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살짝.

“누구세요?”

“홍영희 기자입니다. 기억하시죠?”

기대를 조금만 해서 다행이다.

위험한 계약자보다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여성 0순위가 찾아왔다.

기자라면 정말 지긋지긋하다.

“저는 몸조리 중인 관계로 인터뷰는 사양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특별법 보호대상으로, 언론인은 내년 11월 27일까지 접촉해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경고했음에도 안 돌아가시면 곧바로 헌병대에 신고하겠습니다.”

무일은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본부에서 가르쳐준 대로 읊었다.

다행히 윤소영 때처럼 비밀번호까지 노출된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집 주소가 알려진 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본부에 항의전화 하면 어떻게 되려나?’

곧바로 이사시켜줄 것이다.

이왕이면 인천항으로 보내줬으면 좋겠다. 플라돈과 돼지고기를 아예 못 먹는 그에게는 해산물이 그나마 풍부한 지역이 좋기 때문이다.

괴수대응본부에서 멀어지는 만큼 위험해지겠지만, 사람이 적게 사는 지역은 그만큼 괴수의 침공도 적으니 꼭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수도권이나 인천이나 거기서 거기다.

문제라면 ‘카르 4세’에게 날마다 가입권유 하는 특공대장이 순순히 보내줄 것 같지 않다는 사소한 고민거리가 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오늘은 기자가 아닌 민간인 신분이에요. 카르 4세. 아니, 한무일 씨.”

“허! 참으로 뻔뻔하게 나오시는군요.”

그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3급 사냥꾼 한무일은 어리지 않다.

외모가 어려 보인다고 얕잡아 보인 걸까?

“정 못 미더우시면 대화내용을 녹음하셔도 돼요. 그러니 이 문부터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숙녀를 오랫동안 밖에 세워두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당신은 당해도 쌉니다.”

“그러지 말고 열어주세요. 이웃들이 이상하게 본다고요?”

“괜찮습니다.”

“당신이 즐겨 먹는 염소 치즈도 챙겨왔는데도요?”

“...좋습니다.”

무일은 김치찌개에 질려버린 혀끝을 탓하며 문을 열어줬다.

현관에는 기자회담이 끝난 후에도 휴게실까지 몰래 찾아와서 질문공세를 퍼붓다가 헌병대에게 붙잡혀 쫓겨났던 묘령의 여기자가 있었다.

무릎까지 덮는 회색 치마가 돋보이던 정장이 아닌 알록달록 분홍빛 색채가 귀여움을 자아내는 겨울옷 신상품이었다.

“다시 인사할게요. 반갑습니다, 한무일 씨. 홍영희 25살, 직업은 서울방송 기자입니다. 오늘은 집들이차 방문 왔어요.”

“아, 네. 들어오세요.”

주문예약으로밖에 못 구하는 비싼 염소 치즈다.

그 주재료인 염소 우유 공급업자에 해당하는 ‘카르 4세’가 치즈를 못 먹는 이 사태에 그저 참담한 심정이었다.

홍영희는 여태 괴수랑 계약하지 못한 이유를 모를 만큼 맵시 있는 미인이었다. 굳이 원인을 분석해보자면 괴수가 싫어하는 얼굴화장 때문일까?

예쁜 얼굴이 아까운 짙은 화장이었다.

화장과 향수는 괴수와 계약하길 포기한 여성의 전유물이다.

계약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는 미녀가 화장하는 이유는 오직 2가지뿐이다.

‘처녀가 아니거나….’

부모와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소녀가 좋아하는 남자랑 몰래 육체 관계를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후 얼마나 대단한 절세미인으로 성장하든 괴수랑 계약은 영영 안녕이다.

나중에 후회하며 처녀막복원수술을 받더라도 불가능.

남편은 속일 수 있어도 괴수는 속일 수 없다!

‘혹은, 인공 미녀란 거겠지.’

또 하나는, 의학의 힘을 빌린 경우다.

괴수는 고집스럽게 ‘자연미인’만을 추구한다.

성형수술은 성관계와 마찬가지로 괴수랑 계약하길 포기했다는 선언이랑 다름없다.

그래도 성형외과를 찾는 처자들의 발길은 끊기지 않는다.

성형수술을 받고 계약에 성공했다는 유언비어와 ‘괴수가 속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성형기술(사람만 속는다.)’ 때문이다.

『실패자』

자연미인임에도 괴수랑 계약하는 데 실패한 여자들에게 붙는 꼬리표.

똑같이 아름답지만, 국가정책은 냉소적이고 괴수의 태도는 삶과 죽음을 가를 만큼 엄격한 차별대우다.

하지만 겉보기로는 괴수만 분간할 수 있다. 남편은 아내의 어릴 적 사진이나 은밀한 속살을 보기 전까지 눈치챌 방도가 없다.

당연히 길거리에서 계약자로 오해받는 건 필연.

그 시선을 즐기는 ‘실패자’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마음의 상처가 되어 짙은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외출한다.

홍영희도 마찬가지다.

“한무일 씨가 무슨 생각 중인지 알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제가 짙게 화장하고 다니는 이유가 뭘지 생각 중이셨죠? 둘 중 뭐라고 생각하세요. 맞추시면 다음에는 염소고기를 사올게요.”

치즈 다음은 고기인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던 무일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랑 달리 눈빛은 신중했다.

무의식적으로 기합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무려 [예측]하기에 이르렀다.

‘남자를 대하는 눈빛이나 태도, 경박한 걸음걸이, 칠칠찮은 앉기 자세로 봐서는 처녀일 가능성 희박. 성형수술 여부는 짙은 화장 탓에 불확실.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콧대 수술도 안 한 걸로 봐서는 자연미인일 가능성 절반 이상.’

무일은 종합적으로 ‘처녀가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예감]이 발동하면서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둘 다입니다.”

“나누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돼서요?”

실패자는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둘 다 건드리게 되어있다.

계약자가 될 수 없는 건 결과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니면 성형수술을 망설일 이유가 없고, 성형수술을 했다면 십중팔구 남자친구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약자를 제외한 모든 여성이 실패자라는 건 아니다.

개성 있는 본연의 얼굴과 순결을 중요시하는 여성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모호해서.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괴수 관련 문제는 ‘박사학위’를 따도 될 수준이라고 자부하던 카르 4세로서도 드물게 자신감 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홍영희는 눈을 크게 뜨며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이것이야말로 괴수를 ‘본능’으로 처치하는 사냥꾼들의 저력일 것이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여태 아무도 못 맞춘 건데!’

기자생활을 하며 홍영희는 무수히 많은 사냥꾼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이 수도권 인근에서 안전하게 돌아다니는 신출내기였지만, 간혹 숙련자와 전문가도 있었다.

원활한 취재를 위한 심심풀이 퀴즈.

그들은 둘 중 하나라는 대답을 내놨다.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프로사냥꾼은 처음 상대해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프로필과 자격증 같은 거에는 ‘프로사냥꾼’이란 명칭이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3급 사냥꾼’일 뿐이다.

“...다음에 올 때는 염소고기 사올게요. 으으…. 내 월급 절반이…. 어머! 실례. 참고로 양은 얼마 안 될 거예요. 서울방송은 대어를 물어오기 전까지 박봉이거든요.”

“됐습니다. 냉동고기는 사절이라서.”

시중에서 판매되는 염소고기는 거의 다 냉동이고 부위도 기대하기 어렵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생고기를 구할 수 있었던 카르 4세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을 리 없다.

그보다는 홍영희가 선물이랍시고 가져온 치즈가 든 봉투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치즈만은 공정과정 때문에 무일도 자주 못 먹는 별미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우유를 독점 중인 회사 한국우유.

그곳 유제품 공장에서 매번 거래해줘서 고맙다고 추석, 설날 때마다 선물세트로 보내주는 걸 제외하고는 맛보기 힘들다.

“그런가요? 저는 큰 맘 먹고 제안한 건데.”

“그보다는 정답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측]보다 적중률이 높은 [예감]을 따랐지만, 모르는 건 죽어도 모르는 거다.

고개를 끄덕인 홍영희는 월급이 굳었다고 안도했다.

이제 익숙하다는 듯이 그늘진 부분 하나 없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인공임신으로 태어났어요.”

“아!”

“사고로 은퇴한 계약자의 난자를 아버지가 고가에 매수해서 어머니 자궁에 착상시켜 낳은 게 저예요. 어머니는 제가 실패자란 확정판정이 떨어지자마자 아버지랑 이혼하셨죠. 의학적으로 안 된다는 결론이 진즉 나왔었는데, 아버지는 귀가 무척 얇으시거든요.”

무일의 머리는 맹렬하게 회전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홍영희의 친모가 누구인지 추적해보는 것이다.

사고로 은퇴?

수호자의 보호를 받는 계약자가 ‘사고’로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덤으로 본부랑 연줄이 여전히 닿은 여성이어야 한다.

‘계약자의 난자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장물아비가 아니지.’

머리카락에서 유전자를 채취한다면 또 모를까, 계약자의 신성불가침영역인 국부(局部)에 ‘이물질’을 넣어 난자나 난자세포를 추출하는 만행은 명백한 ‘아웃(out)’이다.

죽고 싶으면 뭔들 못하리오?

그렇다고 이대로 죽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자만 훌륭하다면 높은 확률로 계약자를 출산하는 계약자가 폐경을 맞이하면 후대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했다.

『인공임신』

< [2장-4] 부탁은 부탁인데….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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