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1] 부탁은 부탁인데…. >
[2장] 부탁은 부탁인데….
학명: 프로칸(개구리 왕자)
서식지: 호수
특징: 벌레와 병균 청소기☆
위험도: 4종 소형
비고: 물총과 혓바닥을 주의하세요.
***
서로에게 좋은 덕담을 날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최소한의 안전준비’를 마친 무일은 괴수대응본부 민원과에 들러 이름을 댔다. 그랬더니 ‘12개월 무상, 5평 임대주택’이 떡하니 나오는 것 아닌가!
‘그 아가씨가 정말로 해줬네?’
살던 집에 비하면 환경은 최악이었지만, 누구의 방해도 안 받고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되찾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공동부엌, 공동화장실, 공동샤워장이란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수도 외각인 만큼 공공시설은 좋게 꾸몄을 확률이 높다.
『인간장벽』
인구밀집이 심한 서울 내부로 괴수가 직행하지 않도록 유인하는 ‘미끼’가 수도권이다.
청와대 앞에서 ‘가난한 사람은 괴수의 먹이냐!’며 시위하는 시민단체 간부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여의도에 산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아무튼, 공짜 집이 생겼다.
‘3년 전에 살던 임대주택은 그래도 부엌을 따로 썼는데.’
배부른 푸념을 늘어놓으며 본부를 나와 인근 은행으로 향했다.
친구가 절약해준 시간을 활용해야 할 때다.
“음…?”
무일은 은행 자동문 앞에서 살짝 멈칫했다.
그가 100% 신용하는 [예감] 경보가 여의도 한복판 ‘서울은행 본점’에서 맹렬하게 울린 탓이다.
하지만 뒤에서 빨리 들어가라고 눈치 주는 아줌마(겉모습은 20대 중반이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안쪽으로 옮겼다.
‘어째서 이 은행 안에서만 안 좋은 촉이….’
대기표를 뽑고 구석진 소파에 앉은 무일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관찰했다.
그가 예상하는 위기상황이란, 총기류를 소지한 은행강도.
콘크리트 벽을 등지고 시선을 좌에서 우로 천천히 움직이며 손님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괴수도 아닌 눈먼 총알에 맞고 죽으면 억울하잖은가?
‘...계약자인가?’
짙은 선글라스 위에 꾹 눌러쓴 모자,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을 만큼 펑퍼짐한 코트를 입은 여인이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이지만, 계약자의 사회활동 복장이기도 했다.
길을 걷거나 운전 중인 사내들에게 전부 눈 감고 있으라고 할 순 없잖은가? 그러니 아름다운 그녀들이 외모를 가리고 다니는 것이다.
부족한 게 없는 계약자가 은행강도일 리는 없을 터.
무일은 [예감]을 무시하기로 했다.
저 계약자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수호자가 4종 이상의 강력한 괴수라서 자연스레 긴장하게 된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였다.
“시민 여러분! 대피하세요!”
은행 수동문을 발로 차며 들어온 소녀가 외쳤다.
어리둥절해 하는 손님들이 답답했던 걸까, 소녀는 쓰고 있던 두꺼운 뿔테안경과 야구모자를 벗어던졌다.
머리카락만 검게 색칠한 서양밀랍인형이 그곳에 있었다. 다급한 표정이 너무나 생동감 넘쳐서 인형이라고 할 수 없었다.
삐이이이!
갑자기 등장한 소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고객들보다 먼저 제정신 차린 은행원이 책상 밑에 비상버튼을 눌렀다.
신원은 저 우월한 미모가 보장해주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미녀 = 계약자』
그리고 계약자의 경고는 어떤 위협이 다가왔다는 예언에 가깝다.
수호자의 ‘생존본능’은 교감 중인 계약자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위기상황임을 깨달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은행 출구로 우르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은행마다 의무적으로 있는 경비병이 서둘러 통제하는가 싶었으나 가장 먼저 사태파악 하고 줄행랑치는 바람에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저런 바보 같은!’
은행을 빠져나가는 대신 소파 뒤에 숨기로 작정한 무일은 화들짝 놀랐다.
공교롭게도 입구를 막는 위치에 섰던 계약자가, 이성을 잃고 살기 위해 도망치는 손님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있었던 까닭이다.
안 돼!
카르 4세가 그렇게 외치려던 순간이었다.
콰직!
아무리 다급해도 계약자를 저런 식으로 ‘간접폭행’하면 사달 날 수밖에 없다.
빌딩 옥상에서 대기 중이던 수호자가 은행 앞으로 뛰어내렸다.
그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졌고, 계약자와 수호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방해물’들을 갈기갈기 찢어졌다.
‘저 계약자, 엄청난 초보네.’
무슨 재난인지 모르겠으나 막으려다가 더 많은 인명피해를 낸 게 아닐까?
괴수에 대한 무지하거나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서울시민이 몰려있는 여의도 한복판에서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생긴 비극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서울에서는 무려 2년 만에 터진 괴수 사건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현장경험 미숙.
하지만 어떤 계약자가 왔더라도 상황은 비슷했으리라.
여전히 소파 뒤에 숨어서 대략적인 상황만 파악 중이던 무일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챙그랑!
은행 내부에는 계약자가 둘이었다.
약간의 시차가 있었지만 2번째 수호자가 두꺼운 이중창문을 깨고 난입하여 계약자 앞을 방패처럼 섰다.
그 직후,
콰과과과광!
은행에서 무언가 터졌다.
풍향으로 보아선 은행 입구 쪽에서 무언가 폭발한 모양.
간신히 폭발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던 무일은 무심코 가정했다.
‘지나가던 헌병대 멍청이가 놀라서 수류탄이라도 던진 걸까?’
계약자를 지키고자 달려온 수호자가 사람 좀 죽였다고, 겁에 질린 대원이 무턱대고 공격했을 확률이 높았다.
대략 2년 전에 ‘청계천 학살사건’이라고 명명한 괴수침공 때보다 이미 더 많은 시민이 사망한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대처가 신속했던 덕분에 수만 명이 될 뻔한 사상자를 한 자릿수로 줄이는 놀라운 쾌거를 일궈냈지만, 지금은….
타다다다다다다!
이제 끝났나 싶었던 무일은 깜짝 놀랐다.
초토화된 은행 내의 생존자는 그와 계약자 둘, 그리고 책상 밑에 숨어있던 은행원 몇 명뿐이기 때문이다.
총격을, 그것도 민간인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헌병대란 있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수류탄도….’
총기류만큼이나 폭탄류도 도심 내에서는 소지하는데 제약이 많았다. 관리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하면 무고한 시민 수백 명쯤 죽는 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계약자를 공격할 정도로 미숙한 헌병대원에게 대량살상무기를 맡긴다는 건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꺄악! 살인이다!”
“도망쳐!”
“사람 살려!”
은행 밖은 총성이 뒤섞인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늘 긴장하고 사는 수도권이랑 달리 본부가 코앞인 여의도의 평화로움에 젖어있던 서울시민들이 일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었다.
‘십여 명 죽은 걸로 학살사건이라고 할 정도니 뭐….’
사냥꾼은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한두 명씩 꼭 죽는다. 그럼에도 조간신문 구석에조차 실리지 못하는 신세다.
같은 인간인데 대접이 너무 다르다고 한탄하길 잠시.
무일은 이번 사건이 괴수가 아닌 사람의 소행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안 돼! 엘카르! 진정해줘! 제발!”
귀에 익은 소녀의 목소리가 처절한 비명이 되어 울려 퍼졌다.
꼭두새벽에 만났던 7종 계약자였다.
어떤 괴수가 사람을 그리 죽여대나 싶었는데 역시!
용이지만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며 성질 더럽기로 세계 'TOP3'에 들어가는 7종 괴수 레드군이었다.
아무래도 이 다혈질 용왕님은 화가 부쩍 많이 나신 모양이다.
“소영아! 뒤로 빠져! 저들이 노리는 건 나-, 꺄악!”
“언니?!”
수호자가 보호해주고 있지만, 사방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모든 총탄을 막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계약자 전용 방탄코트가 튼튼하긴 해도 만능은 아니다.
‘......다행히 머리는 피한 건가?’
두 계약자는 본부에서 가르쳐준 교본대로 바닥에 엎드려서 방탄코트를 뒤집어쓰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안쪽으로 전해진 충격에 뇌진탕이라도 빠지면 진짜 큰일이다.
계약자가 기절하는 날에는 교감이 일시적으로 끊기고 ‘통제 불능’에 빠진 수호자가 무차별적으로 날뛸 것은 자명하다.
윤소영이 언니라고 부른 계약자가 어딘가 부상당한 모양이지만 그녀의 수호자는 레드군보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 같았다.
“가질 수 없다면 널 죽이겠다! 최은설!”
“하핫! 아름다우신 은설 양. 괴물 뒤에 엎드려서 뭐 하시나, 앙?”
“저년도 죽이자. 남의 일에 웬 참견이야.”
“빌어먹을! 하필 레드군? 하지만 브레스(breath)는 참아달라고~. 여길 불바다로 만들면 이년도 무사하지 못한다는 걸 잊지 마. 푸하하하!”
무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시끄러운 총성과 비명에 뒤섞인 사내들의 목소리.
멀리서부터 사격하던 그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쯤은 순식간에 썰어버릴 수 있는 레드군이랑 일정 거리를 두면서 ‘최은설’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헌병대가 빨리 와주길 기대했으나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게다가 안전한 도심의 평화에 젖어있기는 헌병대도 마찬가지다.
설상가상으로 우왕좌왕하는 시민 모두가 인질이나 다름없는 상황.
무일은 천천히 오른손을 좌로 뻗어 칼집에 든 카르세리안 레이소 손잡이를 꽉 쥐었다.
빠르게 [예측]했다.
‘남자는 총 13명. 레드군이랑 5m 거리를 유지하며 일렬로 이동 중. 시선과 총구는 두 계약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기관총을 교대로 연발 중. 은행 입구를 지키는 자가…. 넷? 늦어도 5초 안에 이 자리도 발각 예정. 그러니 그전에-.’
선공한다!
무일은 허리를 바짝 숙이고 당장에라도 앞으로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자세로 돌진했다.
뿌연 부유 먼지 속에 가려진 프로사냥꾼의 발소리는 무분별한 총성에 파묻히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
시체를 밟으며 전지하던 사내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은행 입구를 지키던 둘의 몸이 발도(拔刀) 한 획에 사선으로 부드럽게 베어진 후였다.
“뭐, 뭐야?!”
“수호자가 또 있었어?!”
동료들의 몸이 총기째 토막 나며 피 분수를 쏟아내는 광경을 가까이서 접한 사내들이 경악하는 틈에 희생자는 둘이 추가되며 넷이 됐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괴수가 아닌 소년이란 걸 파악하고 총구를 옆으로 돌리면서 또 둘. 몸을 360˚ 회전하며 가속도를 더한 가르기에 조금 떨어져 있던 둘의 팔이 총기째 잘려나갔다.
타다다다다다!
공포에 젖은 사내들이 괴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무일에게 양팔이 잘린 둘은 동료들의 총탄 세례에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화약파티’는 딱 거기까지였다.
남은 생존자 다섯은 분노가 극에 달한 레드군의 손톱과 이빨에 팔다리가 찢기며 끔찍한 단말마를 내질렀다.
“으아아?! 아아악!!”
“크어어어엌!!”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텐데도 천천히 힘을 가하는 잔혹함.
하찮은 원숭이 주제에 위대한 용왕에게 반항하고 모욕을 준 만용에 대한 앙갚음이자 보복이었다.
같은 시각,
“후아! 주, 죽을 뻔했다!”
기관총이 난사되기 1초 전에 은행 밖으로 헐레벌떡 구르다시피 빠져나온 무일은 미친 듯이 펌프질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숨을 골랐다.
1종 괴수처럼 저항감 없이 잘리는 인체.
사람을 ‘처음’ 죽였다는 죄책감을 느끼기에는, 그동안 엽기적인 살인을 너무 많이 목격해서 별 감흥 없었다.
무엇보다도,
한 발만 맞아도 관 짜게 생겼는데 그런 감수성 넘치는 마음을 품을 틈이 어디 있겠는가?
“피다!”
“살인이다!”
온몸을 피로 뒤집어쓰고 있던 무일이었다.
아차! 했지만 때는 늦었다.
국가안보 정신이 투철한 시민들의 빠른 신고로 1분도 안 돼서 헌병대에 체포됐다.
‘이럴 때만 빠르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날 때는 도망치기 바빠서 신고할 틈이 없었던 사람들도 드디어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사건 발생 3분 만에 현장 근처에서 붙잡힌 무일은 변명 한마디 못해보고 괴수대응본부 헌병대 지하감옥에 투옥됐다.
“젠장, 괜히 나섰어.”
정비과 친구에게 받고 1시간도 안 된 ‘새 장갑’ 낀 손바닥으로 총알을 막으며 생긴 피멍과 무릎의 타박상을 문지르며 무일은 투덜댔다.
잘 때든 씻을 때든 1m 이상 곁에서 떨어트린 적 없었던 여친을 빼앗긴 채 차가운 감옥살이가 시작된 탓이다.
대처가 늦은 헌병대는 용의자를 잡았다고 대대적인 선전 중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을 곧바로 감방에 처넣지 않았으리라.
‘...좋지 않아.’
[예감]은 조용했지만, 정치적인 판단이 그랬다.
은행으로 조사단이 파견되고 사실 판명이 날 것이다. 그리고 무일이 8명을 살해했다는 걸 빌미로 거래를 제안해올 게 분명하다.
그날은 감방생활을 시작한 닷새째였다.
“만나서 반갑네. 카르 4세. 아니면 본명으로 불러줄까?”
“...편하신 대로 불러주십시오. 헌병대 대장님.”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은 인물을 만났다.
딱딱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무일은 자세를 바로 했다.
“카르 4세. 프로사냥꾼인 그대라면 잘 알 걸세. 사실(事實)과 보도(報道)는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오보(誤報) 대상이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괴수대응본부 헌병대 총책임자는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할 것 같았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래. 이번 일은 6종 계약자 최은설 양의 팬클럽 회원 일부가 저지른 테러였네. 전원이-.”
“수색대 출신이었지요.”
무일은 대장의 말을 자르며 단언했다.
가만 놔두면 ‘통보’ 식으로 대화가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본부를 의심하는 건가?”
“한국은 민간인의 무기 소지를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밀수해왔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사용한 기관총은 수색대에서 1종 괴수를 몰이하는 데 사용되는-, 총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그거였습니다. 어떻습니까?”
“...계속 해보게.”
“그 자리에 있었던 피해자는 7종 계약자 윤소영 양과 6종? 지금 알았습니다. 6종 계약자 최은설 양. 괴수대응본부 앞마당에서 벌어진 테러에 헌병대는 1분 넘게 아무런 대응도 못 세웠고 그 결과, 레드군의 폭주로 인한 사망자가 스물다섯?”
“스물일곱이었네.”
헌병대장은 꽉 쥔 주먹에 식은땀이 생기는 걸 느꼈다.
보고서에는 무식한 칼잡이라고 쓰여있는데 실상은 딴판이었다.
“목소리와 발소리가 작아서 긴가민가했는데 역시나! 희생자가 조금이라도 적길 바랐는데 스물일곱이었군요.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이 세상일에 휩쓸렸군요.”
부모를 따라온 사내아이 둘이 있었다.
무일은 본인의 착각이었길 빌며 스물다섯이라고 말했는데 [예측]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씁쓸했다.
반대로 헌병대장은 소름 돋는 기분이었다.
“...보도된 무고한 피해자는 일곱이네. 그렇게 알아두게.”
“흠. 레드군이 빌딩 위에서 내려오며 밟은 넷이랑 은행 입구에서 가장 먼저 나왔던 셋은 목격자가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군요.”
“......”
“뭘 놀라십니까, 대장님. 헌병대에서도 기본적으로 배우는 기술입니다. 괴수랑 싸우는 저희가 이 정도 [예측]을 못해서야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무일의 표정이나 말투는 비꼬는 기색 없이 시종일관 담담했다.
내가 아닌 헌병대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똑같이 [예측]했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
서울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헌병대는 외부로 나가는 홍보처럼 ‘최정예’가 아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평화에 찌들면서 골동품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헌병대 수장이 그런 부끄러운 속사정을 말할 순 없었다.
“...4초 만에 많이도 파악했군.”
감시카메라에 찍힌 무일의 활동시간은 단 4.7초.
은행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완전무장한 수색대원 6명을 죽이고 2명을 무력화시키는데 3초도 안 걸렸다.
< [2장-1] 부탁은 부탁인데…. > 끝
ⓒ 파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