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2] 제 이름입니다. >
“하아…. 산 넘어 산-?! 웩! 우에에엑!”
용이 먹다 남긴 초대형 돼지의 잔해.
무일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최, 최악이야….’
무일은 집이 사라진 걸로 모자라 뱃속에 든 것마저 전부 끄집어낸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 한탄했다.
부엌에는 먹을거리가 많이 남아있지만 가까이 갈 엄두가 안 났다.
돼지 냄새.
그건 무일에게 괴수보다 더 무서운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처리는 알아서 하겠다고 왜 그랬을까, 살기 위해서라고 해도…. 이건 이것 나름대로 또 생명의 위기란 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플라돈의 시체만은 당장 어쩔 도리가 없었다.
꾹 참고 부엌까지 가는 도중에 또 한 번 토했다가는 정말로 위액이 역류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릴 적에 돼지 괴수에게 치여 죽을 뻔한 기억을 공유한다면 누구나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런 시대에 태어난 내 잘못이려나.’
무일이 태어나기 한참 전이다.
잘 상상이 가지 않지만, 100년 전까지만 해도 괴수가 이 지구 상에 없었으며 허구의 생물로만 받아들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음식쓰레기를 한 주씩 집안에 모셔놔도 괜찮던 시대.
아무 미녀나 마음 놓고 봐도 죽을 걱정 없던 시대.
너무 한가해서 인간끼리 치고받고 싸웠다고 하니, 조상님들은 참 행복한 시대에 살았던 게 분명하다.
“한무일 씨. 본인 되십니까? 괴수종합보험에서 나왔습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셀러리맨이었다.
복근, 이두근, 대퇴근, 흉근…. 근육이란 근육은 죄다 생기다가 말았다. 저래서는 유사시에 가족은커녕 자기 몸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면 아내가 1종 계약자라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저 허술한 자기관리도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네, 맞습니다.”
무너진 집을 철거하려는 인부들과 불도저가 보인다.
무일이 사는 동네는 도시 외곽에 자리한 마을로, 구급차 등이 오는데 보통 20분(누군가 신고하면 15분)이 걸린다.
그런데 10분 만에 왔으니 신통방통할 수밖에.
살짝 의심스러웠으나 근방을 순찰 중이었는 식으로 수긍했다.
“유일하게 멀쩡한 부엌. 3급 사냥꾼이시니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고객과실이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보험처리가 안 됩니다.”
“큭!”
“하지만 주민들의 진술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불시착한 플라돈의 습격. 한무일 고객님의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란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후유~!”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태도가 참으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한껏 따져주고 싶었지만, 주도권은 보험회사가 쥐고 있었다. 계약서대로 하면 땡전 한 푼 못 받을 처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회사도 바보는 아니다.
고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보험!’이라며 홧김에 계약을 파기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감독한다.
“그래서 특혜를 드리고자 합니다.”
“특혜요?”
“이걸 봐주십시오.”
무일은 보험회사직원이 내미는 포스터와 계약서를 펼쳤다.
내년에 완공되는 아파트 분양권이었다.
괴수대응본부(안전지대)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다.
‘이건 좀 걸리는데….’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실내장식은 전부 최신설비였고 방도 널찍했으며 지하에는 레저시설부터 쇼핑센터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좋은 주거환경이 목숨까지 책임져주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안보대책은?
상비군과 5종 계약자가 주둔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쁘지 않은데요? 솔직히 말해서 좋네요. 이 가격에 이만한 조건이면. 그런데 어째서 여태 몰랐죠?”
“한무일 고객님이 사냥꾼이라서 위험에 둔감하신 겁니다. 이 거리면 국내에서 가장 빠른 파견으로 유명한 윤소영 양도 8분이나 걸립니다.”
“아~.”
숙련된 사냥꾼이라면 건물을 끼고 8분쯤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민간인은 괴수의 오감에 걸리는 순간, 어디에 숨든 3초 이내에 사망 확정이다.
그러니 위험 체감도가 무일이랑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한무일 고객님에게 단순히 정보만 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까짓 정보는 인터넷만 조금 뒤지면 금방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겠죠.”
정말로 금방 찾을 수 있을까?
자국의 지형과 도로 등을 기본적으로 꿰차고 있는 사냥꾼이 모를 정도면 광고를 전혀 안 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더구나 한국은 중국이나 미국처럼 땅이 넓은 나라도 아니라서 ‘비밀연구소’쯤 되지 않으면 모르기도 쉽지 않다.
‘아! 꼭 그렇지만도 않나?’
허가받지 않은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 ‘괴수밀집지대’가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여기에 사냥꾼도 드나들 수 없는 ‘수렵금지구역’까지 더해지면?
이 좁은 한국 땅덩이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다.
“그래서 괴수종합보험에서는 저희 고객님들께만 반값에 64개월 무이자할부로 저렴하게 분양하고 있습니다.”
“반값!”
방금 부서진 집의 할부금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또다시 할부의 노예가 된다는 게 안타깝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집 없는 자의 서러움을 잘 아는 무일은 계약서를 세세히 훑어본 후에 서명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한무일 고객님.”
“...이미 계약했으니 솔직하게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제가 아는 범위 내라면.”
“아파트 단지에 사냥꾼 비율을 조금이라도 높여서 안전한 주거지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 같은데, 맞습니까? 그래서 사냥꾼인 저는 반값에 해주는 거고요.”
보험회사직원이랑 대화하는 사이에 집과 플라돈의 시체는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철거하지 않은 부엌이 판자촌을 연상케 했다.
샐러리맨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한무일 고객님도 아시다시피 괴수종합보험은 평범한 민간인이 들기에는 여러모로 낭비인 보험입니다. 그래서 주로 고수입, 고위험 확정인 괴수대응본부 관계자만 이용하는 추세죠.”
“그 말씀은….”
서울 여의도에 자리한 괴수대응본부에서 먼 신축단지.
괴수에게 대응할 수 있는 주민.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져 가는 기분이었다.
“이곳은 시범도시입니다. 서울의 인구를 분산시키지 않으면 25년 전의 대참사가 또 한 번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괴수는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주요 표적이니까요. 일본처럼 진즉 추진했어야 했던 일을 이제야 하는 겁니다.”
일본의 뒤를 쫓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한국인 정서 탓일까?
그럴 정신머리가 있는 걸 보면 아직 세상이 살만하다는 뜻이리라.
서울 한복판에 8종 괴수 한 마리만 출현해도 한국 인구는 절반 아래로 줄어들 텐데 위기의식이 부족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평범한 직장인 유부남입니다. 여기.”
명함을 받은 무일은 이름과 직책을 확인했다.
말마따나 정말로 평범했다.
『한국 괴수대응본부 민원과 / 박민혁 대리』
민원과 대리보다는 배우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미남이긴 했지만.
너무 깊게 생각한 걸까?
사냥꾼의 [예감]은 괴수의 생존본능을 응용한 기술로, 위기상황에서 ‘마법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죽기 전에 딱 ‘한 번’ 틀린다.
오답이면 죽는다는 뜻이다.
생명의 위기나 위협이 없으면 감지 못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위기’인데 ‘어떤 위기’인지 도통 모르겠다.
무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박민혁 씨.”
“네.”
“지금, 본부로 돌아가실 예정이면 차를 얻어탈 수 있을까요? 수도까지만 가도 좋습니다. 오늘만이라도 저 판잣집에서 보낼 계획이었는데 밤새 얼어 죽을 것 같아서요.”
“하하! 좋습니다. 본부까지 함께 가지요.”
월급쟁이가 타기엔 지나치게 세련된 유선형 스포츠카였다.
무일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작년에 MID에서 출시한 신제품이다.
『MID(Made In Dragon)』
세계 최고만 고집하는 용(龍)의 브랜드(brand)!
그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MID 제품치고 사고서 후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거 이름이 아마, 아크라시…. 파모래? 맞나?’
정확한 명칭은, 아크라시무스 파모라(그럭저럭 빠른 돌고래)였다.
용이 지은 이름답게 쓸데없이 길었지만 아무렴 아닌가!
스포츠카는 멋지기만 하면 그만이다.
옆좌석에 앉은 무일은 진지하게 ‘민원과’로 직장을 옮기고 싶어졌다.
“소형차 신세인 저는 언제쯤 이런 걸 몰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한무일 고객님의 검-.”
“무일이면 충분합니다.”
말을 중간에 자르며 편하게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무일.
이 팍팍한 세상은, 남자끼리 단합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럴까? 하하! 무일 군의 검을 팔면 이런 스포츠카쯤 스무 대도 넘게 살 수 있을걸. 덤으로 집도.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MID의 도검 중에서 3번째로 절삭력이 높다는 카르 어쩌고 같은데, 맞아?”
여성우월시대에 태어난 남자들의 친화력!
나이와 직업은 장애가 못 됐다.
“카르세리안 레이소. 이 녀석의 이름이죠.”
괴수의 거대한 족발을 베고도 흠집 하나 없다.
그믐달처럼 휜 일체형 상아색 곡도(曲刀)는 무일의 밥줄이자 생명줄이었다. 도난방지센서가 내장되어있지만 그렇다고 안심했다가 훅 갈 수 있는 고가품.
“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 시가가 작년에 332억 5천쯤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용케도 그런 고가품을 살 생각 했네.”
“헤에~. 알아보는 사람이 드문데 잘 아시네요.”
무일이 할부의 노예가 된 이유는 별거 아니다.
사냥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대부분이 이 검으로 빠져나간다.
『카르세리안 레이소(허망하게 부러지는 손톱)』
지고하신 용왕님의 눈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어차피 3종 괴수가 한계인 사냥꾼에게는 충분히 훌륭한 무기였다.
상대가 ‘4종 대형’이거나 ‘5종’ 이상이면 날이 상하거나 부러질 것이다.
그 자리에서 330억 증발!
하지만 그런 상위괴수들은 애초에 사냥꾼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류다.
즉, 논외다.
“겨우 26살에 평생연금을 벌다니. 부러운걸!”
박민혁은 진심이었다.
저 검은 아무나 들고 다니는 싸구려가 아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괴수 사냥을 멈추면 바로 다음날 독촉장이 날아올 걸요? 주인만 4번 바뀐 중고품이라 그리 비싸게 사지도 않았습니다.”
“주인만 4번?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말끝을 흐렸다.
사연 많은 무기라면 얘기가 다르다.
“맞습니다. 그래서 97억에 꿀꺽했는데, 뒤늦게 속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인만 4번 죽인 저주받은 검이래요.”
술이라도 한 잔 사주고 싶을 만큼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일이었다.
얘기 나누는 사이에 둘은 이미 서울 시내로 진입해있었다.
“괴수가 한 번 지나가면 자동차 수천 대가 고철로 변하는 건 순식간인데 어째서 사람들이 악착같이 사는지 모르겠다.”
정체된 도로를 보며 푸념을 날리는 샐러리맨이었다.
과거, 서울에는 8차선 도로가 사방에 널렸었다는데 현재는 전부 철거하고 2차선 도로가 ‘대로(大路)’에 속할 정도로 도로사정이 열약해졌다.
이유?
사람 살 곳이 부족해서 도로에 양보할 공간도 아깝다.
그런 박민혁에게 무일은 푸른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말했다.
“괴수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서 아닐까요. 아무것도 못 해보고 죽는 것보다는 희망의 끈이라도 하나쯤 곁에 두고 싶다는 소망.”
부질없지만 말이다.
이렇게 도로가 꽉 막혀서는 두 발로 뛰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그보다 더 생존율을 높이고 싶다면 괴수를 발견한 즉시 괴수대응본부에 연락해서 현재 위치를 설명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
하지만 이론과 실기가 별개인 것처럼 현명한 사람은 적다.
『혼자 살기 바쁘다.』
그런 의미에서 자동차는 큰 위안거리가 될 것이다.
혼자서 도망치기에 이보다 나은 수단은 없을 테니까.
그때였다.
박민혁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한데 그런 거 없어.”
“네?”
“데이트비용과 결혼자금이 쌓이고 쌓여서 고급승용차를 산 것뿐이야.”
“너무 비관적인 견해 아닌가요?!”
무일은 친구란 녀석들의 생활 수준을 머릿속으로 검색했다.
그중에는 계약자를 여자친구로 둔 승리자도 더러 있었다. 반대로, 평범한 여자랑 평범하게 연애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녀석도 있다.
물론, 무일처럼 혼자 혹은 가족이랑 사는 ‘동정남’이 태반이지만.
끼리끼리 논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들이 어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떠올려봤다.
‘그, 그랬군! 자가용 수준은 여자친구로 결정되는 거였나!’
애인이 없거나 평범할수록 친구들의 승용차가 좋아졌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무일은 ‘여자친구도 없는데 소형차 신세인 난 뭐지?’라는 매우 상식적인 의문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두통이냐? 손바닥 상처부터 최우선적으로 치료했어야지. 3급 사냥꾼이면 못해도 프로인데 그런 사소한 실수로 미쳐버리면 억울해서 못 살걸.”
“아뇨. 그냥…. 왜 이렇게 사나, 싶어서.”
멋진 스포츠카도 없고 예쁜 여자친구도 없다.
뭔 말인지 눈치챈 박민혁은 무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무일 군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미녀 구하는 용사 흉내 내는 사냥꾼치고 2급 넘는 녀석을 못 봤어. 3급 사냥꾼이면 1종 계약자랑 연애하는 것도 꿈은 아닐걸?”
“연애…. 그렇군요.”
연애(戀愛)라고 쓰고 동업(同業)이라고 읽는다.
약한 1종 괴수랑 계약한 미녀에게 3급 사냥꾼은 훌륭한 ‘고기 방패’다.
아름다운 외모 이상으로 ‘순결’ 여부가 중요한 계약자들은 은퇴하기 전까지 ‘동료’ 이상의 남자를 절대 만들지 않는다.
본인을 위해서.
그리고 남자의 목숨을 위해서.
“또 우울한 표정이군.”
“괜찮습니다. 저에게는 330억짜리 여자친구가 있으니까요!”
카르세리안 레이소, 라는 긴 이름의 여자친구가!
흉흉한 소문 때문에 반값도 안 하는.
“자자, 천둥 번개를 동반한 먹구름 낀 얘기는 그만하고 앞을 보라고. 본부에 도착했는데 어디에 세워줄까?”
여기서부터는 걸어가겠습니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걸 몰라서 묻는 박민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무대로 부탁합니다.”
한시가 급해서 장갑을 안 끼고 싸운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당장 집을 잃을 판국이면 프로사냥꾼이라도 뛰쳐나올 수밖에 없다.
사냥꾼이란 직종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목숨을 담보로 한 수입은 편차가 크고, 장비 정비와 소모품을 충전하고 나면 정말 남는 게 별로 없다.
물론, 예외도 있다.
여자친구(?) 몸값만 아니었다면 무일도 적당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3급 사냥꾼이란 그런 자리다.
이 ‘3급’은 ‘3종 괴수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프로’라고 불리는 자들은 ‘3종 괴수를 혼자서 쓰러트릴 수 있는 사냥꾼’이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무일도 그 상위 0.001%에 속하는 프로사냥꾼이다.
하지만 현실은 빚에 쪼들리는….
오만가지 감정이 내포한 한숨을 푹 내쉬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찢어진 손아귀로 ‘가공하지 않은 괴수의 피’가 스며들었다. 그 오염된 혈액이 돌고 돌아 뇌에 닿으면 미쳐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잘 생각했어, 무일 군.”
“창창한 26살에 정신병원은 사양이니까요.”
곧바로 일터인 ‘경비대’로 간다고 했으면 박민혁이 말렸을 것이다.
미치는 건 정말 찰나다. 그리고 금방 제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미쳐있는 잠깐 사이 동안 주체못하는 살육본능이다.
특히, 대량살상무기를 소지한 사냥꾼이 미쳐버리면 ‘쟤 감염됐다!’라고 깨닫는 틈에 수천 명이 죽는 건 일도 아니다.
“호오~, 겨우 정신병원? 감방이나 사형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면죄부가 어느 정도 적용되지만, 순전히 부주의라면 ‘한 명’만 죽여도 무기징역이고 둘 이상이면 고문 후 사형이다.
어차피 이런 형법은 사냥꾼에게나 민감한 사항.
괴수랑 마주치면 감염될 새도 없이 100% 사망인 민간인이나, 싸움은 수호자에게 맡겨놓고 후방에서 대기 중인 계약자는 신경 쓸 필요 없다.
“과거에 세 차례 미쳐봤습니다. 익숙한 편이죠.”
“오! 말로만 듣던 특이체질인가?”
< [1장-2] 제 이름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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