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관측(1)
다이온인들은 그 푸른 빛의 공격을 시공포(時空砲)라 부르는 듯하다.
다이온 최고사령부의 예상대로 델리 3분의 1을 소멸시킨 포격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포격 직후 이어진 다이온군의 선전도 델리 정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우리의 공격 범위는 힌두 아대륙 전체다. 우리는 언제, 어떤 도시든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이번 공격은 경고다.”
이 ‘경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적의 허세인가. 혹시라도 진짜면 어쩌지…… 며칠 그렇게 의견을 나누는 동안, 다이온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정찰과 첩보로 파악한 세련군의 후방 물자 집적소, 탄약고, 지휘소 등에 동시다발적인 푸른빛 포격이 내리꽂혔다.
델리에 피해를 입힌 것보다는 훨씬 얇았지만, 수는 많았다.
시공포를 쏘아대는 기괴한 시설물은 다이온군의 두꺼운 방공망 너머에 위치했다. 세련 공군이 거기까지 침투할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빛의 포격을 막을 방법도 없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수밖에.
지휘소가 날아가고, 후방의 포병들도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대응 포격을 할 수 있을 리가. 다이온군의 진격에 전선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일단 히말라야 산맥을 내려온 적이 넓게 퍼져나가며 점령지를 넓혀 나가기 시작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만 했다.
특히 다이온군의 공세는 갠지스강으로 합류하는 지류들을 따라 남하, 특히 갠지스강의 중류와 하류에 집중되었다.
이 공세 초반에 다이온군의 피해도 막대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공세였다.
다이온 측이 미리 접촉 공작을 벌여두었던 벵갈 지역의 보수파 공산주의자들이 봉기한 것이다.
“우리는 델리를 장악한 하르샤와 그 졸개 ‘반역자들’을 규탄한다! 델리의 ‘제국주의적 통치’를 거부한다! 벵갈의 혁명 동지들은 자치를 선언하노라!”
이 전쟁을 ‘혁명과 반동의 이념 전쟁’으로 몰아가려 했던 델리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다이온군은 점령지에서 군정을 실시하는 대신, 이 벵갈 지역 보수 공산주의자들과 손잡았기 때문이다.
벵갈 인민공화국은 재빨리 다이온과 각종 협정을 맺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국가 꼴을 갖춰나갔다.
이 봉기는 두 가지 방향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첫째는 세련의 가맹국들,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각국이 전쟁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부 데칸 지역에서도 독자적인 인민공화국을 선포할 기세였다.
둘째는 버마-라타나코신 전선에 나간 세련군 상당수가 포위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버마 지역 자체에서도 어느 정도 보급이 가능하고, 바다를 통한 퇴각도 가능은 할 것이다.
하지만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버마의 바다를 틀어막고, 다이온군이 남쪽으로 전진하는 것보다 포위된 적의 처리를 우선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본토와 버마를 잇는 바닷길이 막혔다.
마자파히트의 지원을 받아 말라카 해협을 통과한 다이온의 잠수함대는, 물자와 병력을 싣고 버마를 들락거리는 세련의 수송선을 무자비하게 사냥했다.
시공포의 포격도, 다이온 공군의 폭격도, 한동안은 버마 일대에 집중되었다.
철도가 끊어지고, 주요 공업 단지가 불타올랐다.
숲으로 숨어든 저항은 무시했다.
그건 다이온에 망명한 버마의 왕과 왕당파, 그들을 지지하는 군대가 처리할 문제였다. 그들은 당당하게 수도 만달레이에 입성했다.
점령지를 옛 통치자들의 자치에 맡긴다는 전략은 주효했다.
버마의 왕은 버마인들의 왕이지만, 세련군은 외국군이었으니까.
다이온군도 외국군이지만 이들은 왕정복고를 지킬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곧바로 서쪽으로 향했다.
1938년도 10월로 접어들고 있었다.
***
“태사 주견하에게 왕작을 내린다. 요왕(遼王)에 봉한다. 태사의 지위는 반납하되 맡은 일은 태사와 같이하라.”
뒷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이것이 전근대의 찬탈 절차를 밟는 것은 아닌가 상상해본다.
그러나 절대적 신황 숭배를 주입하기 시작한 다이온에서,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앞으로 루우 테무르의 일족이 아니라면 누구도 신황의 자리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신황제도를 철폐하고 공화국으로 체제를 전환하는 것도.
조금 더 정치적인 감각이 있는 자들은 주견하의 왕 즉위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먼저 작호의 요(遼)는 요동과 요서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요서는 넓게 보면 칸발리크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도 있고, 요동이야 당연히 동명의 옛 이름이다. 즉 황국의 가장 중요한 지역을 맡기겠다는 뜻.
물론 루우가 동군연합의 주인이 되면서 왕작에 따르는 영지, 울루스 제도는 폐기했으니, 그만큼 국가에서 중요한 위상임을 강조하는 이름이라 하겠다.
또 한편으로 요는 거란이 칭한 한족식 국호이기도 하다. 즉 거란, ‘키타이’ 일대의 통치도 맡기겠다는 뜻이다.
이 역시 실제로 영지를 내리는 게 아니라, 전에 견하가 맡았던 ‘응천 행정장관’에 더해 한족 지역 전체를 다스릴 만큼 큰 권위가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태사의 지위를 거두고 ‘왕’을 칭하게 한 것은 다른 신하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태사의 일을 그대로 맡긴다는 것은 실질적 역할인 재상, 정부 수반은 그대로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말장난인 것 같지만, 말은 실제로 힘을 발휘한다.
당장 견하를 부르는 호칭은 ‘각하’와 ‘합하’를 넘어섰다.
“전하.”
각료들은 루우 없이 견하를 대면하는 자리에선, 하급자가 아니라 ‘신하’로서 그를 대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2차 세계대전을 지휘하며 멕시카 자주국의 모든 공세를 물리치고, 버마 전선에서 대승리를 거둔 그의 공을 치하히기 위함이었다.
상황의 흐름에 더 민감한 사람들은 그 이상을 읽어냈다.
“폐하께서 주견하를 부군으로 삼으시기 직전이군.”
아무리 신분제가 그 흔적만 남기고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황국의 정점, 신황의 남편이 될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서민 출신이어서는 곤란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견하의 조상 계보를 조작하는 것.
다른 하나는 주견하를 새로운 왕가의 시조로 삼는 것.
루우는 두 번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두 분이 실제로 어떤 관계인가는 둘째치고, 카라코룸의 권력은 이로써 더욱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었군.”
절차, 관례, 그런 것들을 통해 어떤 선을 넘지 않던 체제.
그러나 루우 테무르와 주견하 두 사람의 결합을 통해, 이제 모든 명령은 황궁 깊은 곳에서 결정된 ‘신성한 무언가’가 될 것이다.
황국을 통합하고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이 체제가 전쟁이 끝나고도 아주 오래 지속되리라 예감했다.
***
물론 신황 숭배와 전제황권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의외로 그것은 민족을 가리지 않고 튀어나왔다.
주로 토속 민간 신앙 쪽에서.
이른바 ‘주류 종교’라는 종파들은 교리상의 모순을 감수하고서라도 탄압을 피하고자 신황 숭배 정책을 묵인했다.
하지만 소수의 민간 신앙은 신황이 중심이 되는, 황국이 내세운 우주관을 격하게 거부했다.
“인간이 망령되이 신황이라 자처하고 세상의 중심이라 오만을 떨면 반드시 화가 온 나라에 미치게 되어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을 떠드는데, 이것 자체로는 지역 경찰이 찾아가 두들겨 패주는 것으로 끝날 문제였다.
그러나 이 민간 종교 집단이 황국의 총동원 체제, 그걸 뒷받침하는 제도적 변혁을 거부하고 옛 체제를 회복하자고 외치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는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곧장 군대가 출동해 종교 시설을 뒤엎고 교주를 잡아 죽인 후, 교인 중 쓸만한 자들은 모조리 전장으로 보냈다.
전투력 자체는 쓸모가 없었지만, 적의 탄환을 소모케 하는 데에는 쓸모가 있었으니까.
주견하의 독재 체제는 1년을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이렇듯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
“……오늘 회의에 참석한 위원은 이것뿐인가.”
델리의 혁명정신재건위원회는 절반 이상이 결석했다.
하르샤는 피로한 얼굴로, 멸망의 손이 목을 조여오고 있음을 느꼈다.
본인도 ‘대체 왜 아슬란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생각을 했을까’라고 후회하는 중이었으니까.
우두머리 같지도 않은 우두머리였지만, 어쨌든 하르샤가 그러고 있는데 다른 어중이떠중이들이 멀쩡할 리가 없다.
어제는 갠지스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이다. 보고가 아니라.
전선은 이제 통제되지 않는다.
세련의 다른 구성국 병력은 멋대로 전선을 떠나 본국으로 귀환했다. 그게 여의찮은 부대는 다이온군과 협상하여 항복, 무장 해제 후 티베트를 우회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공산주의는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목소리도 대놓고 들려올 지경이다.
몇몇 당원은 이미 비밀리에 무굴 파디샤를 맞이할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자신은 어찌할 것인가.
항복할 것인가.
망명할 것인가.
망명한들 받아줄 곳은 있을까.
이 전쟁은 자신의 무모한 모험이었다.
다이온군은 그 책임을 물으려 할 터.
남부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하르샤는 무력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오늘 회의는 이만 해산하지…….”
치욕을 겪을 것이 두려웠지만, 그 치욕을 피하려고 죽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아즈텍 연방의 마지막 통령처럼 권총으로 자신의 뇌를 날려버렸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 하르샤를 찾아왔다.
한때는 아슬란의 침실이었던 그곳이 피로 물들었다.
무력감에 침몰한 하르샤가 명백한 ‘반역’의 시도를 무시하는 동안 기회를 잡은 자들은, 하르샤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아슬란 체제의 붕괴도 전쟁도 모두 하르샤의 독단이었다고.
하르샤의 목을 들고, 그들은 다이온에 평화를 구걸했다. 정확히는 중립을 지키던 카자흐에 중재를 요청했다.
델리에서 일어난 정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카라코룸은 무굴 파디샤 계승권자에게 ‘귀국 준비’를 명령하는 한편, 관대한 마음으로 평화 협정에 응했다.
1938년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