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529화 (529/541)

무제한(1)

1938년도 6월로 접어들었다.

그간 다이온의 전쟁성 장관 최효윤은 ‘어떤 작전’의 검토를 마쳤고, 최고사령부와 논의하여 그 실행을 승인했으며, 이제 슬슬 그 성과를 보고받고 있었다.

그 ‘어떤 작전’이란 해군에서 올라온 하나의 아이디어였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

처음 그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효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도 장교로 교육받으면서 전쟁사 정도는 공부했다.

태평천국이 무슨 어리석은 짓을 벌이다가 아즈텍 연방과 일본공화국을 도발했고, 결국 멸망했는지도 안다.

“이미 일본공화국은 우리의 동맹이고, 아즈텍은 멸망해 그 자리를 대신한 멕시카가 우리와 전쟁 중입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불러올 외교적 파장을 경계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해군 장성들의 그런 반론에, 효윤도 일단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멕시카가 마닐라 공략, 나아가 마자파히트 공략까지 서두르는 이때, 우리는 저들의 해상 수송 능력을 분쇄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우리 해군은…… 송구한 말씀이오나,”

“……우리 해군으로는 멕시카의 해군에게서 제해권을 빼앗아 오긴 어렵지. 항공모함까지 건조했지만 말이야.”

“일본공화국과의 해전으로 단련된 저들을 꺾기엔 우리는 경험도 배수량도 부족합니다. 이것은 뒤집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잠수함이라는 변칙적인 요소로 적을 꺾겠다?”

“마닐라에서 마자파히트, 봉래에 이르는 서태평양 전체로 작전 범위를 확산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간토 앞바다에서만, 그것도 우리 공군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면 간토에 상륙한 멕시카의 대군을 말려 죽일 수 있다.

“일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면 그때부터는 활동 영역을 서태평양 전역으로, 혹은 바라트 연안까지 확장해도 될 겁니다. 바라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때는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태평양 전체를 노려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평천국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처음에는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아즈텍과 일본의 탐지 기술 발전으로 무너지지 않았었나?”

“당연히 잠수함도 그에 대항하기 위해 발전합니다. 소음을 줄이고, 잠항 능력과 기동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기술 발전은 꾸준히 이뤄져 왔습니다. 동맹과의 기술 제휴도 이미 활발하기에 적의 잠수함 탐지 능력을 상회하는 잠수함 생산은 가능합니다.”

바다에 면한 국토가 좁아서 대규모 해군을 양성하기 어려웠던 몽골이나, 섬나라이면서도 일본처럼 대규모 함선을 건조하기 어려웠던 마자파히트, 마닐라 등에서 잠수함 기술이 발전해왔다고 한다.

최근엔 봉래에서도 멕시카의 침략을 우려는 해야 하는 상황이라 넌지시, 군사 동맹까지는 아니어도 협력을 제안해왔고.

성공 가능성을 따지지 않아도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통해 일본 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다이온군 전체에 숨통이 트이게 된다.

결국, 효윤은 끄덕였다.

오늘 받은 보고는 그때의 끄덕임이 옳은 판단이었음을 증명해주었다.

“뭐, 우리 해군도 피해가 없는 건 아닙니다.”

신황이 주재하는 최고사령부 회의.

그 자리에서 효윤은 김천열과 주견하, 신황 루우를 보며 오랜만에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 피해를 상회하고도 남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간토 지역에서 적의 공세는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상륙한 적에게 가는 보급 선단을 전멸에 가깝게 격침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간토의 멕시카군 일부를 마닐라 상륙작전에 동원하려는 시도도 저지되었다.

물자를 가득 실은 수송선뿐만 아니라, 간토에서 ‘나가는’ 병력을 잔뜩 실은 수송선도 무수히 격침되었기 때문이다.

“적 또한 우리 잠수함에 대응하려 하지만, 멀리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적의 항공기가 일본 열도에서 출격한 우리 공군에 대항해 우세를 점하긴 어렵습니다.”

항공모함은 잠수함의 기습을 피하고자 일본 열도에서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간토 지역의 제공권 역시 다이온군 쪽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정묘한란의 마지막 승리를 재현할 수 있을 겁니다.”

효윤은 고려에 상륙한 명나라 군대가 결국 자살이나 다름없는 퇴각 작전을 벌이면서 패배한 전투를 언급한다. 이 패배로 명나라는 멸망하고 순나라, 주나라의 내전 시대로 접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일본 열도에서 해군은 바다를 막고, 육군과 공군이 대공세를 펼쳐 멕시카군을 섬멸한다면, 그것이 멕시카 멸망의 시작이 아니겠느냐는 게 효윤의 말이었다.

신황 루우는 김천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간토의 적을 섬멸하면 다른 작전에 돌릴 수 있는 여유는 얼마나 생기지?”

“일단 반격 작전뿐만 아니라 잠정 중단된 알래스카 상륙작전의 재개도 노려볼 수 있을 듯합니다. 서태평양에서 멕시카 해군의 활동 범위도 위축되기 때문에 상륙작전에 동원할 수송선단의 호위 문제도 어느 정도는 해결될 겁니다.”

태사 주견하는 따로 의견을 덧붙이지 않았다.

신황 루우의 승인만으로도 작전이 발동되도록 하는 게 이번 회의의 의의였으니까.

“적을 일본 열도에서 완전히 멸하고, 점령지의 일본 국민을 해방하라.”

***

중립국 카자흐의 어느 마을에서, 다이온의 정치감독청장 유지나는 페르시아 인민공화국 쪽에서 파견된 사람을 만났다.

신경전을 벌일 틈 따위는 없었다.

‘세계혁명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바라트에 묶인 페르시아 인민공화국 입장에서는, 이 접촉 자체가 반역으로 간주되는 일이다.

들킨다면 페르시아 공산당의 대표들이 바라트의 수도 델리로 ‘소환’되는 선에서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이온의 제안에 응했다는 것은, ‘반역’을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

각오가 섰다는 것은 그 이유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대화는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귀측이 ‘페르시아인들이 언제까지고 바라트의 지배 아래 있을 것인가’라고 던졌던 말은, 우리 당의 마음을 움직였소.”

다이온이 내민 제안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

지나는 예의를 갖추면서도 사무적인 어조로 다시 강조한다.

“바라트는 곧 멸망합니다. 거기에 페르시아인들이 굳이 휘말려 피를 흘릴 필요는 없죠.”

공산주의는 ‘민족 감정’을 초월한다고 떠들지만, 그 이상을 자기 나라에 실천해야 할 공산주의 정치가들은 ‘민족’이라는 관념을 잘 떨쳐내지 못했다.

대부분은 빠른 권력 장악을 위해, 시간이 걸리는 ‘인민을 교육하는 과정’ 따위는 넘겨버리고 민족 개념에 호소한다.

공산주의자들이 그토록 ‘과학적’이라며 자부심을 품는 그 이론. 그것을 인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하는 모순.

민족공동체라는 더 쉬운 개념에 의존하기에, ‘세계혁명연합’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도 바라트와 다른 ‘인민공화국’들 간에는 도저히 통합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바라트의 초대 주석이나, 아슬란 정도가 그 한계를 벗어난 인간일 것이다.

여기 지나 앞에 나타난 페르시아인은 한계를 못 벗어난 인간이고.

“우리는 페르시아 인민공화국에게 아무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육로든 해로든 봉쇄는 없을 것이고 교역도 이전과 같을 겁니다. 체제 전환 등을 획책하지도 않을 겁니다. 공산주의든 뭐든 페르시아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이 누리고 싶은 국가 체제를 누릴 겁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하며 지나는 덧붙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전쟁에서 발을 빼달라는 겁니다. 독립을 선언해주십시오. 그 독립은 우리가 보장해드리겠습니다.”

페르시아인의 눈에 약간의 의문이 깃든다.

“다이온은 공산국가와 전쟁 중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엄청나지 않겠습니까?”

“황국은 이 전쟁을 반공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르샤 개인의 ‘제국주의적 침략행위’일 뿐입니다. 아닙니까?”

페르시아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그렇군요. 우리는 그러면 하르샤와 바라트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이 약속은 다이온이 확실히 승기를 잡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바라트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다이온을 위해서도 희생하진 않을 겁니다.”

“곧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다이온의 대승리를 목격하시게 될 겁니다. 다만 승리의 ‘부담’까지 짊어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중전선을 피하는 데 목적이 있지 점령지 관리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

이런 식의 접촉은 카불, 후라산, 사마르칸드, 호레즘 등 중앙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이루어졌다.

다이온의 제안은 한편으로는 전쟁에서 벗어날 기회였고, 또 한편으로는 바라트의 지배에서 벗어날 기회이기도 했다.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딱히 그 약속을 다이온이 어긴다 해도 손해 볼 건 없었다.

공산귀족이라는 비난을 받는 그들은 ‘공산’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내고 정말 귀족이 되면 그뿐이었으니까.

공산당에서 탈당해서 새로 그럴싸한 당 하나 만들어서 계속 집권해나가면 된다.

다이온이 해준 약속의 중요한 부분은, 어쨌든 바라트하고만 협력하지 않으면 그 외 국가의 권력 상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믿을 만했다.

다이온의 약속 그 자체를 믿는 게 아니라, 그런 약속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믿는 것이었다.

다이온은 티베트와 버마 정도만 세력권으로 두고, 바라트에서는 ‘하르샤’와 쿠데타 세력만 제거한 채 평화조약을 맺을 가능성이 컸다.

그들의 추측은 꽤 정확했다.

그런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제외하면.

***

푸른 하늘을, 그보다 더 푸른 빛이 가른다.

그 푸른 빛은 다이온 전역의 크고 작은 사원에서 시작되었다.

마을에 어느 정도 종교시설다운 격식을 갖춘 곳부터, 간신히 모양만 갖춘 전선의 간이 시설까지.

분명한 것은 강요된 신황 숭배라 할지라도, 그것이 실제로 신을 섬기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상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신황이 각종 신종의 영혼을 뜯어다가 억지로 고깃덩어리 안에 쑤셔 넣은 존재라면 더욱 그렇다.

주르반 프로젝트.

혹은 반격 작전이라 불리는 일이 진행될 때, 신황 루우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고 황궁 깊숙한 곳에 홀로 있었다.

이곳은 카라코룸 천도 후 루우가 새로 만든 곳이었다.

푸른 빛이 하늘을 가를 때 루우는 붉은 피를 흘린다.

피부 곳곳을 찢고 나오는 비늘.

머리에서는 이제 뿔이 나기 시작했다.

고통에 찬 비명은 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렇게 하려고 루우가 특별히 주문한 방이었다.

누구도 짐의 고통을 알지 못 하리라.

견하는…… 더더욱 몰랐으면 한다..

신종의 영혼을 담지 못할 육체가 왜곡을 일으키고, 루우는 한참을 바닥에 엎어져 버둥거렸다.

끈적이는 피가 그녀가 팔다리를 휘저을 때마다 바닥에 무늬를 그린다.

바로 그 시각.

황국 각지에서 모인 푸른빛이 히말라야 산맥의 한 봉우리에 설치된 사원에 모였다. 이 사원의 설치는 친위국장 원동인이 감독했다.

지체없이, 거대한 푸른 빛줄기가 남서쪽으로 쏘아 보내졌다.

빛은 세련의 수도 델리 외곽에 직격.

도시의 동쪽 3분의 1을 소멸시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