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4)
다이온과 세계혁명연합 간 전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는 세련이 티베트 혁명에 개입하고, 이에 다이온이 티베트 보호 조치를 발동하면서 열린 히말라야 전선.
둘째는 히말라야 전선의 난관을 돌파하려고 세련이 동쪽에 열어버린 라타나코신 전선.
셋째는 서쪽, 알티샤흐르 전선. 여기는 카불과 사마르칸드도 국경을 접하기에, 세련의 다른 구성국 군대도 동원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보다 북쪽, 카자흐는 중립을 선언했는데 세련은 이 전쟁에 집중하기 위함인지 그쪽으로는 ‘혁명을 확산시키려 들지는’ 않고 있다.
총동원령과 함께 새로 징집된 부대를 계속해서 서남쪽 전선에 배치하면서, 신황 루우의 최고사령부는 반격 작전을 준비해나갔다.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반격 작전을 앞당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최고사령부에 퍼진 건, 로마 제국군이 마자르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직후였다.
“멕시카가 마닐라 해역에서도 교전을 시작했다, 라.”
견하는 중얼거린다.
마닐라의 위치는 절묘하다.
북쪽으로는 다이온과 일본, 서쪽으로는 베트남, 남쪽으로는 마자파히트.
교통로이면서 해군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본 열도처럼 우리를 위협할 공군기지를 제공하긴 어렵겠지만, 적이 함대를 마닐라 쪽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겁니다.”
김천열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마닐라 측에서는 곧바로 우리와 동맹을 체결했지만, 당장 우리가 그들을 도울 방법은 없습니다.”
“제해권은 멕시카에 있으니.”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상륙작전을 전개하기에 충분한 수송선과 병력이 확보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간토 전선을 유지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건가.”
“아마 멕시카 본토에서 수송선 생산과 병력 추가 징집이 완료되어야 마닐라를 향한 대규모 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당면 문제는……”
“마닐라를 공략하려는 멕시카의 저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지.”
마닐라는 교통로이자 해군기지인 만큼, 통과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다음 목표를 위한 포석이다.
“멕시카와 세련이 동맹을 맺은 정황은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맹을 맺지 않았다기보다는 우리가 포착할 정도로 ‘드러나진 않았다’고 봐야겠지.”
“공산주의자들과 치렀던 내전 탓인가.”
신황 루우의 물음이었다.
견하는 루우 쪽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아무리 최고사령부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인간이 주견하라고 해도, 신황의 권위만큼은 철저히 높이려 한다.
“호데노쇼니 인민공화국을 배후 지원하던 게 세련이었음을 생각하면, 쿠에츠팔린은 체면 때문에라도 세련과 함께 행동하는 모습을 보일 순 없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아슬란이 주석이던 시절에는 다이온과 세련이 손을 잡고 아즈텍 대륙 내전을 최대한 길게 끌려고 했었다.
견하는 솔직히 멕시카 자주국의 저력에 놀랐다.
대공황과 내전으로 멕시카의 힘이 충분히 빠졌기에 망정이지, 쿠에츠팔린이 평화적으로 아즈텍 연방의 정권을 이양받았더라면 이 정도로 전선을 유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전쟁으로 소모되는 것도 있겠지만, 전쟁과 함께 회복하는 것도 있겠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인구와 자원을 파악한다. 파악한 인구와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반과 제도를 만든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절박한 자가 국가의 최대 효율을 추구한다.
1억의 인구를 지닌 나라가 10만 명의 군대밖에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 1천만의 인구를 가졌지만 20만 대군을 긁어모은 나라에 패망하고야 마는 원리.
“이 전쟁에서 멕시카가 과연 얼마나 효율적인 총동원 단계에 도달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최소한 바라트는 정리해야만 한다는 건 명백합니다.”
견하의 지휘봉이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말라카 해협.
라타나코신 남쪽, 마자파히트령 섬과 반도 사이에 난 좁은 해로였다.
“여길 장악하면, 공식적인 동맹은 아니더라도 두 나라의 군대가 ‘협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바다를 통해 멕시카와 세련이 손을 잡는다……. 그걸 위해 마닐라부터 공략해 들어가겠다는 건가.”
견하가 태사가 되자 전쟁성 장관 자리에 오른 효윤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신황, 태사, 전쟁성 장관…… 미리안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이 뭉친 이 체제에 감히 불만을 드러낼 수 있는 이는 이 자리에 없다.
전쟁성 장관 자리를 노리던 이들도, 침만 삼킬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일부러 ‘불평하도록 도발’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최소한 마닐라가 버티는 동안에는 끝장을 내야지 않겠습니까?”
효윤도 격식을 갖춰 태사 주견하에게 묻는다.
주견하가 말했던 ‘반격 작전’의 때는 대체 언제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견하는 신황의 허락을 구하듯 시선을 보내고, 루우가 끄덕이자마자 답했다.
“반격 작전은 ‘주르반 프로젝트’의 완료와 함께 개시합니다. 상세한 일정은…… 결행 직전에 알려드릴 것입니다. 황국 전체가 그날까지 성공적인 방어에 임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
로마군이 마자르 국경을 돌파했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순식간이었다.
마자르는 일단 신성 제국이 뒤에 있으니 로마 제국이 군사행동에 섣불리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 보았다. 설령 나서더라도 국지전으로 끝날 일이지, 여러 나라가 말려드는 세계대전으로 발전시키진 않으리라고 보았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북쪽 국경을 이루기도 하고, 판노니아 평원을 가로지르며 수도 부다페스트의 젖줄이 되는 강, 다누비우스 강을 따라 방어 계획을 짰다.
하지만 상황은 마자르의 수뇌부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일단 몰다비아와 왈라키아가, 병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로마 제국군의 국경 통과를 허용했다.
덕분에 로마군은 마자르의 동남쪽부터 동북쪽까지 넓은 국경을 전선으로 활용하며 마자르군의 틈을 파고들었다.
패전 소식이 거듭되는 가운데,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자르의 수뇌부는 이제 하나뿐인 희망에 매달렸다.
신성 제국은 참전할 것인가?
“이것이 로마 제국의, 그 군대의, 임페라토르의 무서움이다. 괜히 작은 욕심으로 큰 화를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당연히 로마 제국에서 신성 제국으로 외교 노선 변화를 주도한 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진다. 정치적 혼란, 정권 붕괴의 전조다.
그래도 수뇌부가 단호한 결의를 보인다면, 수도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희망은 있다. 정치적 위기도 오히려 반전될 수 있다.
그러나 수도를 버릴 생각을 품는다면, 이를테면 신성 제국 쪽 국경으로 수뇌부와 군의 주력을 후퇴시켜 신성 제국군의 지원을 받길 바란다면 그런 희망은 한순간에 사그라들고 만다.
‘잠시 수도를 내어주더라도 반격해서 되찾으면 된다’라는 발상은 듣기에만 그럴싸할 뿐이다.
그런 한심한 발상을 하는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다면, 지원하는 동맹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다.
멀쩡한 사람의 마음에도 기회주의를 싹트게 하는 발상이다.
이런 한심한 정부를 따르느니, 차라리 우리가 새 정부를 구성하여 침략자와 협상하자는 인간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반면 로마 제국에겐, 특히 벨리사리우스 황제에겐 밑질 게 없는 장사였다.
신성 제국이 참전하든 하지 않든 벨리사리우스는 상관없었다.
-대량의 죽음은 다른 전쟁으로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마자르를 그대로 병합해버리면 전략적으로 상당한 이익이 된다. 도움을 청하던 보헤미아까지 길을 뚫고, 프로이센의 정신머리를 붙들어 놓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번의 승전으로 벨리사리우스를 향한 로마인들의 지지는 더욱 높아지리라.
-참전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때는 준비해 왔던 걸 실컷 보여주리라.
벨리사리우스를 신, 또는 신의 사자라고 추앙하던 사람들도, 악마라고 비난하던 사람들도 모두, 그따위 것은 거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큼 대단한 것을.
마자르의 수뇌부와는 다른 의미로, 벨리사리우스는 신성 제국의 반응을 기다렸다.
***
공장의 굴뚝에서 나온 연기는 대기를 오염시킨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유럽의 대도시들이 그러했고, 석탄으로 처음 증기를 피워올리던 장강 하구의 산업 단지도 그러했다.
지금, 카라코룸의 우중충한 날씨 역시 ‘오염’을 보여준다. 상쾌하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공기다.
“마찬가지로, 칸발리크 사태의 혁세주 소환, 그와 유사한 사례, 멕시카의 공간 도약, 먼 옛 시대에 벌어졌던 혁세주 사태 모두 세계의 원리 그 자체를 오염시켰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오염시키고,
파멸인의 형태를 오염시키며,
신종마저도 세상의 경계를 분간하지 못하고 오염된다.
당연히…….
“짐도 그렇고.”
신체 기능에 이상이 생기거나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평소와 같다. 하지만 루우는 자신이 어딘가 점점 달라져 감을 느꼈다.
“‘주르반 프로젝트’는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세상을 변화시킬 거야.”
그 말은 곧, 신종의 영혼을 욱여넣은 루우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더욱 가속되리라는 뜻이다.
효윤과 견하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루우는 그렇게 자신에게 일어나리라고 예상되는 것들을 들려주었다.
“……일을 빨리 끝내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군.”
견하는 짧은 소감 한마디를 말했다.
루우는 입술을 달싹였다.
자신이 추정 중인 것을 말해야 할까 말까 망설이면서.
세계 원리의 변화, 혹은 왜곡. 그것은 견하의 구성원리…… 마저도 왜곡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주르반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이 작전은 견하를 위해서라도 빨리 끝내야만 한다.
아니, 전쟁 그 자체를.
“주견하.”
효윤이 견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루우와는 다른 관점에서 지금 상황을 우려하는 듯했다.
“네가 진행 중인 거…… 신황 숭배, 개헌, 이것들 반격 작전하고만 관련된 건 아니지?”
다른 의도가 있으면 말해보라는 질문.
견하는 별달리 망설이지도 않고 끄덕였다.
“‘내가 없어진 이후’를 생각해야 하니까.”
루우와 효윤 모두 숨을 삼켰다.
그는 왜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 걸까.
루우는 견하의 ‘오작동’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너는 우리라는 ‘가족’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우리에게도 너는 ‘가족’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간절함을 담아, 그의 손을 잡아 본다.
하지만 견하의 눈에 루우의 말을 이해한 것 같은 빛은 돌지 않았다.
-가족을 소중히 한다는 감정으로 행동에 나서는 게 아니라, 가족을 지킨다는 행위만이 남아 있는 상태.
그러니까 그 지켜야 할 대상에 견하 자신은 없다.
“나, 태사가 없어도 신황 체제는 돌아갈 거야. 신황을 중심으로 한 정치도, 신황을 중심으로 한 군도.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주견하!”
그의 말을 막으려는 듯 효윤이 외쳤지만, 견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신황에 대한 반역은 발상조차 일어나지 못해. 신황은 그 자체로 신성이자, 대원황국의 원리이고, 황국의 모든 생명은 신황이라는 두뇌를 지키는 군체로써 기능할 거야.”
삼두라는 세간의 표현은 틀렸다.
두 사람이 견하를 막을 순 없었다. 견하는 이미 자신이 말하는 신황 절대주의 체제, 그 틀이 되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