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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522화 (522/541)

영혼기관(1)

1938년 새해를 축하하는 행진이 콘스탄티누폴리의 거리를 뒤덮었다.

행렬은 대황궁, 거기 연결된 전차경기장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옛 시대의 문화를 재현할 때만 전차 경주가 벌어지는 그곳은 오늘 시민들로 가득 찬 축제의 장이었다.

시민들은 외친다.

“신이여, 황제를 보호하소서!”

먼 옛날 로마인들의 고향 이탈리아를 되찾았던 전설적인 장군 벨리사리우스. 그 장군과 똑같은 이름을 지닌 황제는 다시 한번 이탈리아를 되찾았고, 아라비아를 정복해 이슬람의 발흥지를 없애버렸다.

그들이 신성시하던 검은 육면체도 불사르고, 칼리프라는 지도자도 시체조차 남지 않을 폭격으로 없애버렸다지 않은가.

임페리움을 몰락의 길로 처넣었던 그 저주받을 종교에, 황제께선 정말 시원한 복수를 안겨주셨다.

어찌 칭송하지 않으랴.

하지만 그 칭송을 받고 감동하든 기뻐하든 해야 할 황제 벨리사리우스는, 지금 집무실 안에서 다른 문제를 처리하느라 바빴다.

“영혼기관(靈魂器官)의 발생으로 추정되는 현상…… 이라.”

아직 세 건에 불과한 보고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목할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보고된 사례는 모두 다이온과 멕시카가 공간 도약을 통한 공방을 주고받은 후에 발생한 것이었다.

“자연사한 시체에서 백색 괴물이 튀어나왔다…….”

하얗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그저 미끈한 것이 두 개. 파멸인이 되려는 듯 돌기가 튀어나온 것이 하나.

“쿠에츠팔린은 전쟁에서 이길 생각으로 혁세주 기술을 이용했겠지만, 어쨌든 그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혁세주 기술은 전쟁만 바꾸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좀 더, 세상의 본질적인 부분을 바꾸었다.

“우리는 아마 ‘기본 세계’를 가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벨리사리우스 본인이 자기 머리에 든 내용을 정리하려고 내뱉는 독백.

그것을 최측근인 요르요스만이 듣고 있다. 전에는 이 자리에 신수덕과 토칸이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기본 세계, 즉 우리 세계에서도 ‘이질적’인 요소들이 아예 없는 세계를 말한다. 이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의 법칙에 있어 ‘예외’라고는 허용되지 않는 세계. 그런 세계에서라면 인간의 진보는 억 단위의 세월을 헤아려야겠지.”

그러나 쿠에츠팔린의 사례에서든, 아니면 역사의 누군가에 의해서든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갖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인간을 초월시키는 ‘수단’이 필요했고, 벨리사리우스는 인류를 초월시키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들로 인해 인류의 진화는 촉진되었다.”

촉진 과정에서는 시행착오도 있는 법이다.

그 시행착오가 세상 하나를 통째로 파멸로 몰아넣는다면 지나치게 대가가 크지만.

아니, 세상이 무한히 있다면 그쯤 하나 없어진다 해도 사소한 일 아닌가.

영겁으로 반복되는 종말 속에서 단 한 건의 종말은 실로…… 자그마한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파멸조차도 육신의 죽음을 대량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진화를 촉진했지.”

왜냐하면 죽음 직전만큼 생을 갈구하는 순간도 없을 테니까.

사(死)를 초월한 생을 바란다.

그것은 영원한 삶, 영혼의 존재를 바라는 행위에 가깝다.

“그런 행위가 일어날 때, 인간은 진화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진화는 불완전하지.”

세계는 근본적으로 ‘기본 세계’와 다르지 않다.

요컨대 하나의 세계만으로는 이단도 초능력도 없는 상태가 기본이라는 말이다.

세계에 이단의 힘을 불어넣고, 그들이 세상의 이치 자체를 건드리게 하려면 다른 세상에 의지해야 한다.

종말로 중첩된 세상들을.

“영혼기관은 결국 육체에서 진화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 걸쳐져 있는 기관이지.”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신종을, 혹은 다른 세상의 존재를 맞이하기 위한 ‘문’의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진화란 참으로 기이하지 않은가. 반드시 최적의 형태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대충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다소 비효율적인 요소라도 일단 후대로 유전시키니.”

너덜너덜한 살 조각을 세상의 틈새로 늘어뜨린 결함품.

그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영혼기관이다.

“겁은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는 데 이르는 아주 긴 시간을 의미한다지. 하지만 세상을 아주 빠르게 멸망시킬 수 있다면, 찰나의 순간에 세계가 멸망한다면 그 시간은 찰나이면서 곧 겁 아닌가?”

영겁. 겁의 무한한 중첩.

겁을 찰나의 순간에 일으킬 수 있다면 영겁 역시 찰나일 것이다.

“우리는 이 실험에 종지부를 찍는다.”

주군의 말을 듣는 요르요스의 눈이 빛났다.

주군은 어느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고 있었다.

“우리는 전 인류를 이단화하는 것을 넘어선다. 전 인류의 영혼기관을 온전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전 인류를 신종화한다. 우리 또한 신종으로 거듭날 것이다.”

서류 더미 속에서 독백하던 벨리사리우스의 시선이 똑바로, 요르요스를 향했다.

“그러니 더 많은 실험, 진화를 촉진할 죽음이 필요하다.”

***

“신종은 진정한 의미에서 영혼을 지닌 존재라고들 말하지.”

그렇다면 신종은 죽어서 사후 세계에 가거나 환생도 한단 말인가?

견하는 굳이 그런 질문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루우의 입에서는 이미 답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너도 알아야 해, 라면서 그녀는 견하를 불렀다.

격무 중 잠깐 담소를 나누는 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듣는 이야기는 무거웠다.

“반쯤은 맞는 이야기야. 사실 신종이 죽었을 때 그 영혼이 자연 상태에서는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몰라. 하지만……”

“……인위적으로 뭔가 조작을 가한다면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애초에 신종에 영혼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어.”

루우의 체념한 듯한 웃음 너머에 어떤 감정이 있을까.

견하는 짐작할 수 없었다.

짐작하지 못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용을 잡아서 애완동물처럼 부리기 시작했다면, 목적이 달성됐다고 해서 그 용을 풀어주겠어? 아니면 자자손손 용을 부릴 방법을 찾겠어?”

“……아무래도 후자겠지.”

“뭐 시도가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야.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처럼, 선녀는 결국 나무꾼을 뿌리치고 하늘로 올라가 버리는 법이지.”

하지만 조상 중에 선녀가 있었다는 걸 안 나무꾼의 자손들은 어떨까?

선문답 같은 루우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가문에 흐르는 선녀의 피를 더 짙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지 않겠어?”

1차 세계대전으로 멸망의 위기에 몰렸던 몽골, 보르지긴 황실은 그런 발상에 다다랐다.

건국 시조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벼랑 끝에서 살아남아 나라를 세우는 영광을 누렸을까.

정말로 자신이 몽골의 마지막 카간이 되는 줄로만 알았던 시레문은 기적을 바랐다. 다시 한번 신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카간이 몽골에 태어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텅 빈 육신으로서의 내가 태어난 거야.”

“하지만 원래 인간은……”

“영혼이 없지. 맞아. 하지만 영혼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는 영혼기관은 있어. 모든 인간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진화의 끝에서 영혼을 갖게 될 무언가가.”

신종은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자신들의 영혼기관을 발전시킨 끝에 영혼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영혼기관은 다른 세상에 존재를 의탁해야 할 정도로 허술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스스로 영혼을 발생시킬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는 육체’를 만들어내는 시도가 가능했다.

인간을 다른 세상에서 완전히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니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모체 역시 ‘단절’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 루우의 모후는 각종 의료 장비에 의존하여 생을 이어가다, 칸발리크 사태 때 시레문과 함께 사망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텅 빈 육체가 준비되었다. 그럼 이제 영혼을 넣어보는 거지. 딱히 거기에 이론이 있다든가 학문적인 근거가 있다든가 한 건 아니었어. 운 좋게 포획한 신종, 두 종류의 영혼을 강제로 추출해서 마구 뒤섞은 다음 텅 빈 육체에 집어넣으면 최강의 이단이 탄생하겠지? 그런 무식한 추측으로 진행된 실험이었지.”

루우는 이런 추측을 덧붙인다.

“아마도 내겐 오라버니들이 있었을 거야.”

오라버니 격인 육신들, 이라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네. 루우는 그렇게 말을 이어 나갔다.

“성공한 실험체는 나 뿐이었어. 유감스럽게도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부황, 시레문 카간은 딜레마에 빠졌지만.”

루우 테무르를 폐기하고 새로 실험을 진행한다 해도 다음 ‘그릇’이 성공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루우의 말대로 이것은 제대로 된 이론을 정립한 실험이 아니라 중세의 불완전한 지식을 바탕으로 밀어붙인 미신에 더 가까웠으니까.

무엇보다도 고려 황실의 혈통이 짙은 루우의 모후가 실험을 더 버텨낼 수 없었으리라. 그 모체마저 잃고 나면 고려에선 전멸한 황실 사람을 다시 구할 수도 없었을 거고.

견하는 문득 전에 루우가 지나가듯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남동생이 태어난다면……

그 말을 전에는 그저 루우의 카간위 계승을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였는데, 어쩌면 그때 루우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폐기될 공포 속에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여자인 나를 태자로 삼을 것인가? 동생들이 있는데 참 난감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보르지긴 황실이 만들어낸 궁극의 이단인 나를 그냥 평생 공주로만 살게 하긴 아까웠겠고…….”

그 뒤에 이어진 일은 견하도 잘 아는 이야기다. 그녀가 고려의 황제가 되고 몽골의 카간을 겸하기까지의 이야기.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의문은 남아 있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견하의 물음에 루우는 웃옷을 조금 걷어 올렸다. 마침 제복이나 용포가 아니라 평범한 셔츠였기에 그냥 편하게 올릴 수 있었다.

매끈하고 날씬한 허리…… 아니 탄탄하게 근육이 잡혀 날씬한 건 여전하지만, 매끈하진 않았다.

견하는 오래전, 훈련 후에 자신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옷을 벗어 던지고 씻으러 가던 루우를 떠올렸다.

그때도 허리 뒤, 등줄기에 살짝 보였던 비늘들.

그 비늘을 보고 견하는 나름 추리한 것들을 리안에게 보고했고, 리안은 루우와 직접 담판을 지었지.

그렇게 해서 루우는 보르지긴과 왕씨 황실의 후예라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 비늘들이, 이제는 옆구리를 감쌀 정도로 퍼져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견하의 물음에 루우는 키득거렸다.

“그야 네가 내 몸을 볼 일은 그날 이후로는 없었으니까. 보면 안 되기도 하고.”

“나는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야. ……특수 제작했다고 해도 그냥 사람의 몸이지. 거기가 신종의 영혼 무더기를 쑤셔 넣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게 과연 오래 견딜 수 있을까? 라고 루우는 견하를 향해 되물었다.

견하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더는 가족을 잃을 수 없다는 강박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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