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황(3)
벌써 세 번째인가 네 번째 병력 추가 투입이다.
지면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증원이기도 했다.
“……각하, 이 계획대로라면 수도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지역들…… 기타 요충지의 방위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원령을 확대해 병력 자체는 늘었다고 해도, 이들을 쓸만한 군대로 만드는 건 별개의 일입니다. 훈련 기간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인간은 아직 병력으로 취급할 수가 없습니다.”
우흥섭과 장해진 모두, 이러한 추가 증원에 따른 병력 공백을 염려한다.
합리적인 우려다.
모든 전략은 인간의 한계, 즉 공간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전제로 짜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멕시카의 ‘공간 도약’은 이 전제 자체를 깨부쉈다.
결국은 전국 각지에 ‘언제 공간을 가르는 문을 열고 적이 나타나나’ 허공만 쳐다보는 부대들을 나눠서 배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적이 나타난다면 빠른 기동으로 전장에 병력을 집결시켜야 하니, 당연히 각종 차량, 열차에 쓸 연료 역시 ‘비축’을 전제로 전략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방어한다’라는 전략의 위험성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통상적인 전쟁과는 다릅니다. 모든 방향을 방어하지 않으면 바로 그 부분이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방어에 불리한 국경에서는 병력을 퇴각시켜,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활용하며 방어 체계를 갖춰야 한다. 퇴각의 결과 전선의 넓이가 아군이 감당하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줄어든다면 더 좋다.
하지만 지금의 전쟁은 아니잖은가.
“‘주요 도시를 노린다’라는 멕시카군의 작전은 치명적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련한 짓이기도 했습니다.”
“우회 기동을 대신해 공간 도약으로 우리 군의 후방을 끊고 포위망을 형성했다면 정말로 치명적이었을 겁니다.”
견하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회의장 한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투글룩이었다.
몽골 내전 이후 고려로 망명한 이 사내는, 지금 다이온 연방의 모든 이단 관련 기술을 집약한 기관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견하가 신수덕에게서 넘겨받은 기술들까지 모조리 인수한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나눠드리는 자료를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투글룩의 말과 함께 최고사령부의 장성들에게 서류 뭉치가 전달된다.
“‘주르반 프로젝트’……?”
“항공기가 전장에 등장하면서 ‘방공망’의 개념이 자리 잡았듯이, 공간 도약을 통한 공격이 시작되었으니 새로운 개념의 ‘방공’ 역시 고안해야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러한 발상에서 시작합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평양의 황궁부터 폭격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교훈을 바탕으로 주요 도시마다 방공망 확충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던가.
고려의 수도인 동명시는 말할 것도 없고, 칸발리크나 카라코룸은 혁세주 사태 이후 한 번 더 강화되었다.
“문제는 기존의 방공망은 ‘일단 공간을 건너온 적’에게만 효과가 미친다는 것입니다.”
“문 너머로 공격을 가하려면 군대를 직접 몰고 들어가야 한다는 문제도 있지.”
“각하께서 말씀하신 것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을 항상 대비한다’라는 이런 상태는 우리 군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의 폭을 지나치게 좁혀버립니다.”
“요컨대, 우리가 그런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씀이신가……?”
“적의 공간 도약에 대한 걱정만 덜 수 있다면 보다 유연한 전략 수립이 가능해질 겁니다. 일단 병력과 물자부터가 여유롭게 풀릴 테니까요.”
“구미가 당기는 아이디어임은 틀림없지만, 그런 게 가능하겠는가?”
“가능합니다. 열 수 있으면 닫을 수도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투글룩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주견하의 눈치를 살폈다.
핵심을 짚자면, 이것은 미리안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극에 달한 인간의 기는 신의 개념마저도 뛰어넘는다.
어떻게 보면 광기에 가까운 사랑이다.
미리안은 그 사랑, 칠정 중 하나만으로도 적진을 가르고 공간의 문을 부수는 위업을 이뤄내지 않았던가.
“혁세주교라는 신앙결사체가 혁세주를 소환해냈듯이, 반대로 신앙에 가까운 어떤 감정을 활용하면, 그것도 대중 전체의 감정을 동원할 수 있다면 ‘공간 도약을 막는 방공망’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대중 전체의 신앙.
다이온을 구성하는 모든 개인의 신앙.
이야기는 다시 ‘신황’과 ‘황국’으로 돌아온다.
“혁세주교인들의 광증, 교종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교회의 갈망 등이 일으켰던 사태를…… 역으로 이용한다……?”
“폐하를 향한 전 국민의 충정으로 공간 도약을 막는다?”
“멕시카에서는 그저 사람을 갈아 넣는 거친 방법을 썼습니다만, 우리는 이미 입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주르반 개념을 약간만 활용하면 됩니다. 본래 공세에 임하는 자보다 수비하는 자의 힘이 덜 들어가는 법이니까요.”
견하는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눈동자에는 이미 투글룩을 향한 차가운 웃음이 감돌았다.
‘거친 방법’은 몽골도 실컷 써 오지 않았던가. 시레문 시절의 무자비한 실험에 대해 알 사람은 다 아는데 저렇게 뻔뻔하다니.
하지만 견하는 그런 생각을 ‘숙청 사유는 아님’으로 정리해서 머릿속 한구석으로 제쳐둔다.
“신황 폐하를 향한 충정이 하나의 신앙, 종교가 될 수 있도록 전국적인 강연, 집회…… 그에 따른 시설물 설치 비용 등은 추가로 편성하도록 하지.”
류성일이나 안세규 등을 작살내고 몰수한 자산이 꽤 된다. 재정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
자료는 각자 읽게 한다.
주르반 프로젝트, 일단은 일본열도 전선에서 멕시카군을 밀어낸다는 방침은 전달했다.
견하는 자리를 정리하며 덧붙였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는다’라는 개념이 아니다. ‘황국을 위해, 신황 폐하를 위해 죽겠다’가 장병들 모두의 머리에 신앙처럼 박혀야 한다. 다들 이 점 명심하고 훈시에 임할 수 있도록.”
***
집무실로 돌아오니 친위국장 원동인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원동인이 뭔가를 부탁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국장급으로 발탁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수행하지 않았던가.
정적들을 체포하는 일에서 특히.
서로 대학 동기로 지내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친구로 대하는 한재연과 달리, 원동인은 철저하게 격식을 갖춘다.
“저를…… 일본으로 파견해주십시오.”
견하는 말없이 원동인의 얼굴을 살핀다.
원동인은 꼿꼿하게 서서 견하의 머리 위쪽 어딘가로 시선을 고정해 둔 상태다.
뭣 때문에 일본으로 보내달라는 건지, 그 사정은 대충 안다.
유지나의 ‘권위’에 함부로 대들었다가,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지 제대로 맛보고 의기소침해 있었지.
말하자면 열등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다.
더 큰 공을 세워야 한다는 급박함.
충성경쟁을 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견하에겐 해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즐거운 일이다.
이 자의 야심은 어디까지 갈까.
능력이 야심을 따라올 수 있을까.
“귀관의 전투 경험은 그렇게 많진 않지.”
“각하께서 주도하시는 작전에 몇 차례 참여했습니다.”
“그건 전투가 아니다. 비무장 민간인 때려잡는 건 자네를 대신할 인간이 얼마든지 있다. 권총 들고 저항하는 적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귀관은 강도 사건 해결이 전장과 같다고 보는가?”
원동인은 침을 꿀꺽 삼킨다.
“……아닙니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신황 폐하께서도 참호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 한재연 국장도 나를 따라 죽을 고비를 넘겼고, 장교가 아니라 병사로 참전했던 이익서 국장의 경험은 말할 것도 없지. 귀관은 쿠데타군을 향해 소총 들고 돌진하는 유지나 국장을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본인이 실전경험의 부족을 느껴서 이 자리에 왔다면 칭찬할만한 일이지만, 그저 다른 사람들을 뛰어넘는 공적을 세우고 싶어서 왔다면 나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말은 원동인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던진 말이다.
마음은 이미 원동인의 청을 수락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가 우려하는 바는, 공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종종 부하의 피로 때우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야. 그런데 명심하게 원 국장. 친위국은 내가 귀관에게 빌려준 것이지 귀관더러 친위국을 가지라고 한 게 아니야.”
“네, 넵!”
“친위국 본연의 임무는 당과 각료, 나아가 신황 폐하를 지키는 데 있다. 귀관이 일본으로 파견된다면 이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는 계획이 있는가?”
원동인은 약간 더듬거리며, 열심히 자신의 부재 시 국내 친위국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를 설명한다.
약간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만족스러운 계획이었다. 견하는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수정할지 짚어준 뒤, 말했다.
“일단은 일본 내에서 민사 작전에 들어가 보도록. 우흥섭 대장에게 이야기해두지. 물론 사고 치면 귀관은 전선에는 못 가는 건 물론이거니와 친위국장 자리도 내놓아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하는 거 보고, 전선으로 보낼지 말지 결정하지.”
지휘관이라는 이름만 달고 부하들을 다그칠 뿐이라면, 원동인의 역량도 거기까지인 거다. 주견하는 그렇게 판단되면 원동인을 내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성과를 보인다면…….
나가려는 원동인을 불러세웠다.
“일본공화국은 동맹국이다.”
상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원동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멕시카군은 아니지. 그 둘을 구별할 줄 알겠나?”
“일본공화국 국민들에게는 최대한…… 친절한 인상을 남겨야 하지만, 멕시카군에는 아니라는 겁니까?”
“정답에 가깝군. 나는 멕시카의 절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열도에 상륙한 적이 섬멸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견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게 아니야.”
“각하……?”
“나는 ‘멕시카군’의 절멸이 아니라 ‘멕시카’의 절멸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견하를 따라 손에 피를 묻혀보긴 했지만, 그럼에도 견하가 하는 말의 의미가 서서히 원동인의 등골을 파고들자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적을 섬멸하겠다, 그 말은 정말로 다 죽여버리겠다가 아니라 ‘포로로 잡아서 무력화한다’라는 의미까지 포함하지. 하지만 나는 말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하고 싶군.”
“멕시카가 국가 기능을 정지한다, 우리에게 점령당했다는 의미에서의 절멸이 아니라……”
“말 그대로다. 나는 멕시카 대륙에 인간이 살았다는 흔적도 남지 않도록 파괴할 것이다.”
어렴풋이, 이것이 주견하가 행하는 복수구나, 라고 원동인은 생각했다.
“그 첫 연습을 시켜주도록 하지. 귀관이 일본공화국에 도착해서 할 일은 멕시카군 포로를 넘겨받고 전원 처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