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마지막 조각(26)
칸발리크 근처, ‘문’의 앞.
기괴한 건축물들을 보며 리안은 숨을 들이켰다.
지금 견하가 문 안으로 끌고 들어간 대군은 어디까지나 멕시카군의 눈을 속이기 위함이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뒤, 그러니까 문 바깥에서는 이 건물들을 지으며 뭔가를 준비한 것이다.
그 어떤 문화권에도 속하지 않은 건축 양식.
건물이라기보다는 기괴하게 비틀린 철골과 콘크리트의 적치물에 더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안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신전의 기능을 한다고.
“뭘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은 아니겠지.”
문이 반듯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린다. 딱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문에 신전들이 푸른 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진입한다.”
“합하!”
만류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리안은 왼손을 들어 기각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이 안에 견하가 있다. 그녀에겐 그것만이라도 문을 통과해야 할 충분한 이유였다.
차에 올라 달린다. 그녀는 호위로 차량화보병 부대를 데리고 문 안으로 들어섰다.
칸발리크 사태의 경험대로라면, 이 안에서는 이단이 별반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느냐에 따라 이단은 전투 불능일 수도 있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살풍경은 리안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하늘이.
죽어서 반쯤 굳어버린 피를 섞어놓은 듯한 하늘이 문제였다.
부대를 더욱 재촉해 견하의 서남방면군 사령부에 닿았다.
거기서 대략적인 상황을 듣고, 신수덕의 시체를 확인했다. 별다른 감상은 들지 않았다. 죽을 놈이 죽었을 뿐.
하지만 그놈이 자기 죽음을 ‘의도대로’ 끌고 갔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죽음을 계획 위에 배치해 놓은 놈은, 죽은 뒤에 진행될 일에 그만큼 자신이 있는 법이니까.
“현 전선을 유지하도록.”
그렇게 짧은 명령만 내려두고 리안은 이제 견하가 있다는 전선으로 향했다.
전선에 어느 정도 접근한 이후로는 차에서 참호 안으로 내려가 걸어야 했다. 지면의 차량이 적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거기서 안내를 받아 들어간다.
곳곳에 부상자처럼 쓰러져 있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했다.
그래. 루우와 효윤도 칸발리크 사태 때 두통과 환각을 호소했었다.
지금 그들이 겪는 것도 그 비슷한 증상이겠지.
견하도 비슷할 거라고 각오한다.
그러나 리안이 견하의 앞까지 안내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각오가 먼지처럼 흩어져버리는 걸 절실히 느껴야만 했다.
“견…… 하……?”
그는 비늘 달린 커다랗고 하얀 짐승, 살아 숨 쉬는 기갑사가 되어 있었다.
머리 같은 부위에는 파멸인에게서 자주 보이는 그 특유의 섬뜩한 안구마저 보이지 않는가.
“주견하 사령관은 저 안에 탑승해 있습니다.”
안내한 장교의 설명을 듣고서야, 리안은 약간 안도했다. 그래. 그저 조금…… 특이한 형태의 기갑사에 탔을 뿐이야.
뭔가 끔찍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건 아니야.
아직 내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건 그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이야.
리안은 견하 쪽으로 다가섰다.
그 거체의 안구가 리안을 향하는 듯했다.
머뭇머뭇, 손을 들어 그 하얀 표면에 올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달래듯.
***
눈을 한 번 감았다 뜨자, 전에 한 번 봤던 광경이었다.
“너는…….”
눈앞에 있는 존재가 마르코 폴로가 아니라는 점이 다를 뿐.
위와 아래가 구분되지 않고, 지평선 또한 보이지 않는 무한한 공간 어딘가.
그 안에서 리안은 한 여자와 마주 본다.
소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어린 얼굴. 작은 체구. 엉덩이를 넘어서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
자신과 똑 닮은 여자를.
아니, 리안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많이 닮은 게 아니다. 그녀는 바로,
“나군.”
또 다른 리안은 쓴웃음을 짓는다. 내가 쓴웃음을 지을 땐 저런 얼굴이 되는구나…… 리안은 그런 기이한 느낌을 받으며, 찬찬히 다른 자신을 살폈다.
“왜,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너와 마주하게 된 거지?”
“……그야 방금 네가 나와 닿았으니까.”
리안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다른 리안이 양손을 펼쳤다. 가슴 앞에서 뭔가를 받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곧장 리안과 그녀 사이에 무한한 공간이 생겼다.
무한하다고 인식하면서도 그 안에서 펼쳐지는 특정한 사건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사건이다.
“인간에게 영혼은 없어.”
아주 먼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리안의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귀에 뚜렷하게 들렸다.
“새삼 무슨 이야기를.”
이제는 다들 아는 이야기 아닌가. 결국 인간과 파멸인 사이에는 그걸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못하느냐의 차이 정도밖에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견하를 살리고 싶었지. 견하가 살아남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지.”
리안은 대답하지 않고 눈앞의 광경에 집중했다.
실험이 반복된다.
빈껍데기.
실험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육신을 내다 버린다.
다시 실험이 반복된다.
이번에도 빈껍데기.
내다 버린다.
태사의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 만든 연구시설은, 인간의 목숨을 무수히 빨아먹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어. 인간에겐 육체를 잃어도 윤회를 거듭하는 영혼은 없지만,”
“……육체의 일부를…… 영혼으로 만든다고?”
다른 세계의 리안이 도달한 결론에, 리안은 경악했다.
“인간도 생물이니만큼 진화해. 창자, 뇌간, 영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아. 이렇게까지 육체에 얽매인 종은 한 단계 더 위로 나아가려면 영혼을 신체 기관으로 발달시키는 수밖에 없으니까.”
다른 리안은 리안의 얼굴을 보며,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이 웃었다.
“우리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진화를, 조금 앞당겼을 뿐이야. 수백만 년 혹은 수천만 년. 그래봤자 이 행성이나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찰나야. 부작용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지.”
리안의 두뇌는 필사적으로, 다른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려 한다.
“육체 일부를 변화시켜 영혼을 만들 수 있다면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런 당연한 결론에 다다랐어. 아,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뭔지 알아?”
무수한 실험을 반복하던 광경은 사라졌다.
다른 자신은 어느새 자신의 코앞에 와 있었다.
입이라도 맞출 것처럼, 약간 허리를 낮추고.
견하의 시점에서 나는 이렇게 보이는 걸까.
지금 견하를 생각하는 건 아마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이 귀에 박히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지식이 이해가 되어버리는 이 순간을.
“온 육체를 영혼기관으로 만들면, 세계를 뛰어넘는 게 가능해져. 신종처럼. 파멸인처럼. 혁세주처럼.”
“뭐……?”
다른 자신이 하는 말은 결국, 그러니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텐데.
다른 세계의 자신들은 자기 세계에서 견하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 소망을 계속해서 다른 세계의 자신들에게 넘겨왔을 것이다.
지금 바로 자신도 그런 존재일 터인데.
리안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눈앞의 또 다른 리안은 키득거렸다.
“설마. 본인이 직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욕망한 미리안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눈앞에 있는 리안의 형상이 허물어진다. 하얗게 표백된다.
리안은 이 모습을 한 것을 기억한다.
견하를 습격해 쓰러뜨리고, 이단으로 만든 존재.
견하가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환물.
무수히 죽음을 반복하는 자신의 꿈.
왜 자신은 견하를 감싼 ‘하얀 갑옷’을 만지자 다른 자신과 조우했나.
다른 리안은 곧 원래 형상을 회복했다.
“이단들이 부리는 무기가 곧 영혼이라면, 그 영혼들은 어디서 왔을 것 같아? 왜 이단은 이질적인 존재인 영혼을 계속 다루는 데도 큰 문제가 없는 걸까?”
“너…… 아니, 우리가 됐든 누가 됐든 결국 영혼기관에 도달한 자들, 이니까. 신종의 영혼이 아니라.”
“정답이야. 역시 나야. 이해가 빠르구나?”
다른 리안은 양손을 가슴 앞에 기도하듯 모았다.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견하에게 도달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공간을 뛰어넘었는지 너는 짐작도 못 할 거야.”
“하지만 어떻게? 문을 여는 데에는 분명……”
어마어마한 설비가 든다. 당장 견하가 설치한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아니면 어마어마한 희생이.
리안의 질문을 받은 다른 리안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그러다가 다시 미소와 함께 풀린다.
마치 야단맞을만한 일을 들켰다는 듯한, 민망한 웃음.
“동력원이 충분하면 가능하지. 이를테면 전 인류를 동력원으로 삼는다든가?”
***
신수덕이 다이온측에 뭔가 해를 끼치는 짓거리를 하긴 했지만, 그것은 아즈텍 대륙에서 진행되던 일이 중단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굳게 닫힌 문을 밀어내듯이, 붉게 물든 하늘이 가하는 압박은 계속 이어졌다.
“커헉……!”
누군가 그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입에서 피를 왈칵 쏟으며 쓰러졌다.
살가죽이 뒤틀리고 터지는 역겨운 소리와 함께, 변이는 천천히 시작된다.
어떤 뼈는 지나치게 연장되고, 또 어떤 뼈는 바스러진다. 관절과 관절이 어긋난다. 그 삐그덕대는 소리, 고통에 찬 비명이 주변 사람들을 한층 공포와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히, 흐힉, 헉!”
물론 당사자의 뇌에는 자기 몸에서 나는 소리보다 붉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깨달음의 속삭임이 더 크게 닿는다.
머릿속에 깨달음이 차오르는 동안, 욕망 역시 비례해서 부풀어 오른다.
아즈텍의 종교가 다른 대륙의 종교와는 많이 다르다고 해도, 아예 사후세계의 안식에 대해 무시하는 건 아니기에,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영원하고자 하는 욕망.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망.
마침내 변이가 완료된 괴물은, 눈앞의 아직 변이하지 않은 인간들을 본다.
그것은 아직은 멀쩡한 육체에 대한 질시인가.
아니면 자신과 같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경멸인가.
어느 쪽이든, 방금 전까지 부모였던 그 괴물은, 겁에 질린 자식에게 칼날처럼 변한 사지를 휘두른다.
혹은 자식이었던 것이 부모에게.
형제에게.
주변의 모든 인간들에게.
두려움은 구원의 욕망으로 이어지고, 다시 이런 변이를 가속한다.
이것이 지옥도가 아니고 무엇이랴.
신수덕의 뇌가 작동을 중지하는 바람에 못다 한 생각은 이런 것이었으리라.
모조리 멸망해라.
***
“……미쳐버렸군.”
다른 세계의 자신을 보며 리안은 그렇게 단정했다.
씁쓸한 미소가 되돌아온다.
“너는 아직 잃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반론하려다, 말문이 막혔다.
방금 꺼내려던 말을 하려면, 자기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자신은 견하와 만나겠다는 사사로운 욕망 때문에 전 인류를 희생시키는 짓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거 봐.”
다 안다는 듯한 어조.
“장담 못 하잖아.”
다른 리안은 두 팔을 펼쳤다.
“게다가 이 결론은 나만 닿은 게 아니야. 너도 이미 알지 않아?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하고야 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