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마지막 조각(25)
신종은, 혹은 대량의 파멸인이나 혁세주는 인간에게 깨달음을 준다.
그 깨달음은 치명적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알려주는 지식이 아니라, 본능 그 자체에 작용하는 지식.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을 구성하는 원리의 어떤 부분을 건드려,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것이다.
종교, 신을 향한 믿음은 그런 과정을 거든다.
예를 들어 신에게 구원을 바란다면, 그것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본능적 깨달음을 자극한다.
영혼의 도야를 바란다면, 인간의 영혼은 절대로 도야할 수 없다는, 즉 도야할 영혼 자체가 애초에 없다는 깨달음을 자극한다.
토칸의 무리가 칸발리크에 공작했던 혁세주교는 그런 작용에 특화된 것이었다.
이 말은 적합한 종교나 신앙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상황을 완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서양 전쟁의 영웅 쿠아우테목은, 중세 아즈텍의 종교를 개혁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대규모 인신 공양을 유지하던 아즈텍 종교를 ‘바칠 몸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라는 방식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몸을 바치는 제의 역시 거대한 신전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에 나서는 방식으로 변화시켜, 대서양 전쟁에서 아즈텍 군대가 그 용맹성으로 유럽 군대를 무찌르고 동부의 유럽 식민지를 정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근대로 접어들면서 연방공화국을 지탱하는 시민 개개인의 투지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문제는 그 투지가 연방공화국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도 그대로 작용했다는 점이겠지만.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신 공양이 인간의 대량 도축에서 자기 헌신으로 그 ‘방식’은 바뀌었을지라도,
‘왜 바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아즈텍의 종교가 다른 대륙의 종교들처럼 영혼의 구원을 바라며 자신을 바쳐댔다면, 칸발리크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순식간에 아즈텍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희생자를 제외하곤 붉은 하늘을 보면서도 버틸 수 있는 건, 아즈텍의 종교가 영혼의 구원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신이 자신들의 몸을 바쳐 세상을 유지했듯, 이제 세상의 유지는 인간의 몫이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를 바쳐 세상을 유지해야 한다.’
죽음의 지향, 믿음의 방향 자체가 다르다.
근대에 이르러 ‘세상’은 ‘나라’나 ‘민족’으로 대체되었지만, 어쨌든 아즈텍인들은 자신이 사후세계에서 얻을 무한한 영광을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세상을 위해 죽는다. 바꿔 말하자면 세상의 작동을 위해 ‘죽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게 첫 번째 난관일 걸세.”
신수덕은 차근차근 주견하의 참모들에게 설명했다.
“칸발리크나 이탈리아에서처럼 쉽지는 않다는 말이지.”
“대륙에 남아 있는 일부 유럽계 주민이나, 아시아계 주민들은 파멸인화 하지 않겠나? 그들의 신앙이나 종교적 관습은 아즈텍계 민족과는 다를 테니까.”
“물론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걸세. 파멸인의 전투력은 훈련된 부대나 이단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파멸인 구속에서 문제가 발생한 연구소들이 어김없이 대참사를 겪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아즈텍 대륙 곳곳에도 참극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지. 자네들이 섬기는 ‘주견하 대장 각하’의 목표는 멕시카의 멸망 아니던가?”
주견하는 전장으로 나서면서 그 점을 참모들에게 분명히 설명했다.
이 전쟁은 상대에게 큰 타격을 입혀서 어쭙잖게 평화협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멕시카 자주국이 그럴 생각이 있어도 자신은 아니라고.
다이온에 이따위 공격을 시도한 나라는 완전히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여줘야, 그 누구도 다이온 연방을 노리지 못할 것이라고.
그 정도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다이온 연방은 비로소 하나의 나라로 거듭나리라고.
“……그럼 그 ‘첫 번째 난관’을 극복할 방법은 있는가?”
다른 참모의 물음에, 신수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즈텍 대륙 주민들의 의식 속에 아무리 옛 종교가 만들어준 방패가 있다고 해도, 방패는 계속 내리치면 결국 찌그러지고 갈라지는 법 아니겠나?”
***
자기 휘하 부대를 장악한다. 자기만의 세력을 만들어 정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축이 된다.
측근들에게는 그렇게 잘난 듯이 떠들었지만, 견하의 마음 상태는 요약하기엔 복잡했다.
함께 쌓아 온 시간이 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어찌 리안에게만 아픔이겠는가.
견하는 충동에 몸을 맡기듯, 최전선에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 펼쳐 보였다.
거인의 척추뼈 같은 채찍이 전선을 내리찍는다. 그 육중한 채찍에 깔린 적병은 짓이겨진 고기 조각이 되어버리지만, 멕시카군의 사기와 훈련도는 무시할 게 아닌지 계속 그 틈을 메우려 몰려든다.
오히려 견하의 채찍이 멕시카군의 집중된 화력에 중간이 끊어져 버린다.
견하를 둘러싼 칼날 같은 판막도 생성되기 무섭게 터져나간다.
그럴수록 견하는 더욱 자신을 두터운 칼날의 성채로 감쌌다.
마치 갑옷처럼.
계속해서 적의 총과 포탄을 두들겨 맞는 견하의 갑옷은 점점 더 두꺼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거대해졌다.
“……기갑사 같군.”
견하의 전투를 뒤에서 지켜보던 다이온군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그 말대로 얇은 칼날의 갑옷은 아래로 두꺼워지면서 견하를 들어 올렸고, 양팔을 감싼 갑옷도 기갑사의 팔처럼 길어졌다.
그 안에 든 견하가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기갑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지막지한 공격에 파손되어도 스스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견하는 꼭 전선의 첨단부에만 있지 않고, 적이 옆이나 뒤의 취약한 부분을 끊으려 들면 그쪽으로 가서 다시 전투에 임했다.
덕분에 견하는 갑옷을 벗을 틈도 없이, 아주 약간씩만 휴식을 취한 채 계속 전투를 치렀다.
“각하, 이러다간 포탄이 아니라 각하의 육체가 먼저 지쳐 쓰러지십니다!”
누군가 그렇게 진언했지만, 갑옷의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 견하는 이제 완전히 이 변종 기갑사 속에 파묻혀,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견하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이건 그저 몸을 학대해서 당장의 우울함을 떨치려는, 어리석은 발작일 뿐이라는 걸.
“……이 기갑사 같은 형태는…… 내가 삼켰던 그 기갑사를 도로 뱉어낸 건가.”
갑옷 안에서 견하의 혼잣말은 둔탁하게 울린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견하는 느끼고 있었다.
왼팔부터 시작된 변화는 자신이 능력을 발휘하면 할수록 몸 전체를 침식해온다는 걸.
자신의 추측도 아마 거의 맞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갑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에서, 기갑사를 오래 탄 이단이 겪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으니까.
감정의 마모.
칠정에는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고 권력이고 복수고…… 다 모르겠다.
이 미친 짓을 계속하고 나면, 고통이 사라졌기를 바라는 걸지도.
자신은 고통이 사라져간다는 그 감각에 취해서 이렇게 날뛰는지도 모른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신수덕이 확실히 쓸모는 있군.”
시야는 갑옷 너머로 만들어낸 또 다른 시각이 뇌에 보내는 것이다. 처음엔 흐릿했던 것도 점차 또렷해져 간다.
붉은 하늘이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멀리서부터 불길하게 일렁임이 전해져 온다.
반동.
공간 도약의 길이 아즈텍 대륙에서 아시아 대륙까지 뚫렸다지만, 그것은 세상의 어떤 부분이 늘어져 다른 부분에 닿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작용 역시 발생할 터.
이 반동을 이용해서 다시 아시아 대륙에서 아즈텍 대륙으로, 주르반의 ‘반대 체계’에 속한 신화 개념을 쏘아 보낸다. 그게 신수덕의 발상이었다.
-애초에 아즈텍 대륙 고유의 신화 체계에 속했던 자들이 주르반을 쓰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걸세.
신수덕의 말대로, 문을 열고 공간을 도약하는 전체적인 원리는 주르반 개념을 사용하면서, 그 힘을 얻어낼 때는 붉은 세계 안에 아즈텍 신앙의 신전을 건설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여기에는 반드시 ‘틈’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단 한 번의 ‘튕겨내기’로 저쪽의 방어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게 신수덕의 설명이었다.
“저 너머에는 지옥도가 펼쳐졌겠지.”
그 여파가 여기 붉은 세계까지 밀려 들어오는 게, 바로 지금 하늘에 보이는 일렁임이다.
물론 지옥도는 저 너머에만 펼쳐지지 않는다.
신전들이 섬광과 함께 폭발한다.
이 역시 반동의 여파다.
그 폭발에 휘말려, 푸른 불꽃 속에서 춤추듯 타오르는 인간들. 저렇게 되면 반쯤은 이미 시체라고 봐야 한다.
“자,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신수덕을 끝장낼 방아쇠는 그 곁에 배치해뒀다. 만약 사태가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흘러가면 죽이라 명령했다.
견하는 체계나 체제라는 말을 늘 좋아했다. 자신이 없어도 자기 뜻대로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 견하가 멈추더라도 그 시스템은 계속 움직인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딱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견하의 무릎이 무너졌다.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시켰으니, 당연히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갑옷 외곽에 만든 ‘시각’을 움직여, 갑옷으로 만든 몸을 살핀다.
“이 싸움이 끝나면 내 정신도 육체도 인간이 아닌 뭔가가 되어버리는 건가…….”
인간성의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리안을 향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좌절? 배신? 모르겠다. 이제 뭘 어떻게 느끼는지? 느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지면이 흔들리는 것 같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듯하다.
두통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발을 구르는 이단이 보인다.
하늘에…… 썩어버린 피 같은 시커먼 무언가가 뒤섞인다.
뭐지?
뭐지?
뭐지?
***
파괴된 뇌로, 마지막 사고를 움켜잡는다.
웃으면서 넘어진 기이한 시체가 되어가면서, 신수덕은 사력을 다해 비웃는다.
말 그대로 사력이다. 자신은 죽어가고 있으니까.
방금 주견하의 참모 중 하나가 신수덕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면, 신수덕이 뭔가 꾸민 것 같거든 바로 죽여라.
훌륭하다.
본인이 자리에 없어도 확실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 능력.
고작해야 스물다섯 살짜리가 갖출 수 있는 능력은 아닌데.
그런 상대 앞에 나서서 살아나갈 방법은 없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주견하의 계산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애초에 신수덕은 살아남을 생각이 없었다.
물론 망명을 떠나던 날에는 돌아와 원수들에게 복수하고, 허동주의 뜻을 다시 세우겠다고 각오했었다.
그러나 루우 테무르나 미리안을 향한 경멸과 증오와는 별개로, 아무리 계산을 거듭해도 그들이 구축한 체제를 붕괴시키고 동지들을 끌어모아 허동주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만 나왔다.
그렇다면 ‘살아서 뜻이 이루어짐을 보는 건 포기하자’라고, 신수덕은 마음먹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위장해 주견하에게 접근하자.
그들의 목숨은 끊을 수 없겠지만, 그들의 이상만큼은 무너뜨리자.
그들이 결국 허동주가 제시했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자.
-살아서 결과까지 보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신수덕의 사고는 끊어졌다. 그는 생명 활동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