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마지막 조각(24)
다이온군의 거친 공세가 붉은 흙먼지를 말아 올린다.
멕시카군의 저항도 격렬하다. 다이온군에게 문을 변조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문만 닫고 도망칠 수가 없다. 저쪽에서 이 붉은 세계에 수도 쿠아우테목을 타격할 문을 새로 열 기회를 주어선 안 된다. 그런 각오가 엿보인다.
어떤 곳은 지루한 참호전이 이어진다.
또 어떤 곳은 폐허를 사이에 두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멕시카가 구축한 신전 단지를 겨냥하고 다이온군의 포격이 쏟아지고, 그런 다이온군 포병을 향해 멕시카 측의 대포병 사격이 또 이어진다.
다이온의 폭격기와 멕시카의 요격기가 공중에서 뒤얽히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 전장의 한가운데, 지휘는 참모들에게 맡겨두고 백병전에 뛰어드는 무모한 대장이 하나 있다.
멕시카군의 저격수나 관측반마저도 당황케 하는 움직임이 아닐 수 없었다.
견하는 한계까지, 한계라고 생각되는 순간에 더욱 한계까지 자기 능력을 몰아 붙었다.
그가 소환한 것들은 이제 촉수의 형태보다 다른 형태를 더 많이 취했다.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견하가 적을 공격하는 모습을 계속 봐 온 자들은 그게 꽃잎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것은 포격마저도 견디는 판막이면서, 동시에 칼날이었다.
때문에 견하는 선두에 서서 돌진하고, 뒤를 따르는 부대는 기갑사나 전차가 아닌 이상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견하는 적이 기댄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슬쩍 넘어섰다.
절망한 그들의 얼굴과 몸을 난도질한다.
참혹한 공격이 수 차례 이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멕시카군은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선다.
견하와 근접한 아군은 어쩔 수 없다. 저건 이미 죽은 거다. 그렇게 자기합리화하며 아군의 피해를 감수하고 견하를 향해 화력을 집중시킨다.
물론 그게 주견하를 저지하진 못한다. 아군의 등짝만 터져나간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견하에게 화력이 집중되면 다른 곳에는 자연히 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틈을 기갑사와 전차가 비집고 들어온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견하를 선두로 한 다이온군의 공세가 뾰족하게 멕시카군의 전선을 돌파하려 시도 중이었다.
그 첨단부는 멕시카의 신전 하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추가 병력이 견하 앞을 막아선다. 삼면을 포위하고 포격을 때려 붓고, 다이온군의 기존 전선과 공세 사이를 끊어서 완전히 포위시키려는 역공세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서남방면군 사령부에서는 잘 파악하고 있었다.
***
“……대단하군.”
참모 하나가 그런 감상을 입에 올린다. 솔직히 여기 있는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에서 단신으로 전황을 만들어 나갈 줄이야.”
“하지만 현대전은 현대전입니다. 이단 한 사람의 힘으로는 목표까지 닿을 수 없죠.”
다른 참모의 말대로 견하가 주도하는 공세는 멕시카군의 저항에 막히는 듯 보였다.
“전술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략적인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선 충분한 의의가 있지.”
그 말대로 적의 전력이 견하에게 집중되었기에, 전선의 다른 곳은 비교적 얇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대로 더 밀어붙여도 좋겠지만…….”
참모들 모두가 불편한 시선을 한구석으로 보낸다. 여전히 엄중한 구속과 감시 속에 있는 사내를 향한 것이다.
신수덕.
그는 이 상황이 뭐가 좋은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신수덕을 전부터 알았던 이도, 몰랐던 이도 모두 그 웃음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 느낌은 뱀을 보고 굳어버린 포유류의 감각에 가까울 것이다.
참모 중에서 나이가 좀 있고 걸걸한 성품의 장성 하나가 신수덕에게 다가간다.
“이보게 수덕이.”
두 남자의 눈이 마주친다.
“허동주 등에 업고 날뛰던 자네 세상은 지나갔어. 그러니 그만 웃게나.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신수덕의 웃는 입매가 더욱 깊은 주름을 만든다.
더 젊은 장교 하나가 분위기를 식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나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자,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신수덕, 당신이 말한 다음 순서는…… 틀림없겠지?”
“나는 틀림이 없네. 내가 알려준 걸 성공시키는 건 자네들한테 달렸지.”
모두가 못마땅한 표정이 되었지만, 별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신수덕의 말대로 일의 성패는 이제 참모들의 역량에 달렸으니까.
***
“파멸인은 더 못 만드는 건가.”
내전에서야 급하니까 아군 시체로 만들었다 치고, 태평양 섬 공세에는 내전에서 잡은 포로나 정치범들을 썼을 테고, 여길 개척하는 데에도 그 사람들을 썼겠지.
하지만 포로가 무한정 공급되진 않는다. 공간도약을 이용한 다이온 공격은 포로를 끌고 가기 힘들고, 태평양 섬 공격은 수비대의 전멸로 끝나는 일이 잦은 데다 포로를 확보해도 많지가 않다.
“그럼 파멸인을 이용한 변칙적인 공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견하는 급하게 구축한 진지 안에서, 잠시 적의 공세가 잦아든 틈에 상황을 검토해본다.
“적의 목표는 무엇인가, 적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거기서 적이 일으킨 오판이, 이번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1937년도 이제 절반이 넘게 지나 한여름이다. 여기, 붉은 세상을 무대로 한 특이한 전장은 계절의 느낌이 전혀 없지만.
일본공화국에서의 쿠데타 시도는 성공했다고 들었다. ‘신진’ 장교들이 열정적으로 주장해왔던 일이 결국 실행되고 만 것이다.
반대해왔던 사람들, 동조하지는 않았던 사람들도 전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이상 고를 수밖에 없는 계획이었지.
문제는…….
“교토 이외의 지역, 당장 ‘합류파’에 충성하기로 한 부대 외에는 신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불투명하다는 건가.”
일본에서 내전이 시작된 건 아니다. 물론 그 정도 반감을 품은 이도 있겠지만 당장 멕시카라는 적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반란을 결심하긴 어렵겠지.
무엇보다도 이전 정권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자가 없다. 정말 운 좋게도 전 정권이 ‘평화적으로’ 신정부에 권력을 이양한 덕분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당장 ‘연방 합류’를 주장하긴 어렵겠군.”
쿠데타가 조국 일본을 위한 게 아니라 다이온의 합병 야욕을 위한 매국 행위에 불과하다고 판단된다면, 일본인 대부분은 돌아서고 말 것이다.
그건 좋지 않다.
어쨌든 일본은 겉껍데기만이라도 ‘동맹’으로 남아있는 편이 낫다.
“정식으로 동맹을 맺었다곤 하지만, 애매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다른 나라들도 파악하고 있을 터.
특히 멕시카는 더더욱 민감하게 파악했겠지.
“이번 쿠데타에 반감을 품은 세력에게서 항복을 받고, 혹은 괴뢰 정권으로라도 주권을 지키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끌어들인다면…….”
내전은 바로 그 시점에 시작된다.
서태평양을 장악하고 다이온 공략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일본열도 확보는 꼭 필요하다.
다이온이 일본열도 확보에 선수를 친 것과 거의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적의 방어 태세도 이해가 되는군.”
적은 격렬하게 방어에 임하고 있지만, 그 격렬함은 어디까지나 ‘방어의 격렬함’이다.
방어를 역공으로 이어 나갈 정도의 기세는 없다.
“여기서 다이온군의 발목만 잡고 있으면 된다는 듯한 태도…….”
멕시카는 일본열도에 상륙할 생각이다. 멕시카의 주력은 바로 그 작전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일본열도 상륙이 완료되기까지 시간을 끌기 위한 것.
그 전에 수도 쿠아우테목이 함락되는 일은 있어선 안 되니까, 일단 방어에 집중하는 것이다.
“어쩐지 기습 공격이 쉽게 격퇴된다 했어.”
정말로 그걸로 다이온의 수도 세 개를 끝장내려 했다면, 공세는 더욱 대규모로, 매섭게 이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공간도약 공세는 어디까지나 다이온군의 ‘시선’을 잡아두는 것.
다이온군의 예비 병력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적을 경계하느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이번 일본 쿠데타 지원도 대규모였다고는 하지만 그건 ‘정권을 뒤엎을 때 충분한’ 규모다. 일본열도 전체의 해안을 방어할 정도는 아니다. 일본에서 내전이 발발하거나 멕시카군이 대규모로 상륙했을 때 대응하기엔 부족하다.
“꽤 머리를 굴렸군, 쿠에츠팔린.”
지금까지 전쟁의 흐름을 봤을 때는 확실히 훌륭한 전략이다. 다이온군은 움직이지 못한다. 멕시카의 막강한 국력을 정면에서 받아내야 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일본을 점령할 수만 있으면 그때는 기존의 전략 전술과 공간도약을 모두 활용해 본격적인 다이온 공략에 나설 것이다.
“그런 계산이었겠지만, 이미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했겠지.”
첫째로 미리안이 결국 기존 방침을 포기하고 일본 내정에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둘째로 자신이 신수덕과 제휴해 붉은 세계에 직접 공세를 가했다.
당황한 사람은 물론, 감정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일종의 선입견이 작용한다.
자신이 생각한 수준대로, 자신의 사고 과정대로 적이 생각하리라는 선입견이.
왜냐하면 자신이 판단 근거로 삼은 것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자기가 했던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지독한 순환논리인가.
“쿠에츠팔린은 자신이 군대를 보내 카라코룸, 칸발리크, 동명을 공격했듯이, 우리도 군대를 보내 수도와 아즈텍 대륙을 점령하려 든다고 생각한다.”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군대’를 보낼 생각도, ‘점령’할 생각도 없는데 말이지.”
자신이 붉은 공간에 끌고 온 대군은 멕시카군의 착각을 유도하기 위한 것.
쿠아우테목 시를 향한 공세를 펼친다고 ‘보이기만’ 하면 된다.
“전쟁은 절멸 전쟁이다, 쿠에츠팔린. 나는 내 정적들에게도 그랬고, 당신이라고 예외는 아니야.”
***
멕시카의 수도 쿠아우테목 상공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시민들은 처음엔 그 반점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사실 너무 작아서 하늘만 계속 쳐다보고 있던 사람이 아닌 이상은 눈치채기도 어려웠다.
시민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어 손으로 그 반점’들’을 가리키기 시작했을 땐, 반점 하나가 건물 하나의 면적만큼 넓어졌을 때였다.
도시의 하늘 절반이 붉은 반점들로 덮였을 때.
그것들이 갑자기 넓어졌다.
도시의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누군가 지구 바깥에서 아즈텍 대륙을 관찰할 수 있다면, 대륙 절반을 덮으면서 퍼져나가는 붉은 원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였고,
아래에서 직접 겪는 사람들에게는 광증의 발현이었다.
붉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한다.
왜 나에겐 영혼이 없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부자도 빈자도 선인도 악인도 모두 무(無)가 되고야 만다는 그 막막함.
바다에는 바닥이 없고 하늘에는 덮개가 없다.
추락도 추방도 영원히.
그러니 제발,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죽음 ‘이후’에 대한 보장을.
무심코 갈구하는 순간 목에서는 사람이 아닌 것의 비명이 나온다.
온 대륙에 비명이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