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마지막 조각(15)
멕시카군의 공세는 카라코룸 상공에 ‘문’이 열리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세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아슬란 주석이 권력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쿠에츠팔린은 행동에 들어갔던 것이다.
로마 제국…… 정확히 말하자면 벨리사리우스와 신수덕이 함께 진행한 연구. 그것은 좋게 말하자면 우호의 증표였고,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검증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이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냥 반길 수만도 없었다.
“결국 우리더러 실험해보라는 것 아닌가.”
그럴싸한 이론을 만들긴 했는데, 부담은 지고 싶지 않다. 로마 황제와 신수덕의 그런 태도에 멕시카의 수뇌부는 한편으로는 냉소하면서도, 일단 실험이 성공했을 경우 얻을 이익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멕시카 대륙의 동서 양편에 놓인 대양들은 천연 해자다.”
그러나 이 천연 해자는 성곽 주변에 두른 인공 해자와 달리, 상대방에게도 해자로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가 멕시카를 공격하기 어렵듯이, 멕시카 또한 바다를 건너 아시아와 유럽을 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멕시카 자주국이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정복.
군사적 업적을 통한 정권의 권위 확보.
정복지에서 취하는 물질적 이익을 통해, 내전으로 망가진 경제를 복구한다.
쿠에츠팔린 정권으로서는 외면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여기에 더해, 로마 제국에서도 ‘아직 실전에 사용해보지 않았다’라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다.
“우리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것 같지만, 동시에 저들도 위험을 진다.”
멕시카는 일단 기초 기술만 넘겨받은 후 ‘실전성’을 입증한다 해도 그걸 로마 제국에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
물론 언젠가는 로마 제국도 멕시카가 도달한 지점에 이를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멕시카만의 기술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적 우위로 얼마든지 로마 제국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다.
일단은 태평양.
그다음은 대서양이다.
이 기술만 있다면 지구를 손아귀의 구슬처럼 다룰 수 있다. 그러면 세계를 정복한 이후 골치 아픈 점령지 관리도 큰 문제가 아니다.
반란이 일어나면 더 번지기 전에 그 중심지로 군대를 이동시켜 모조리 쓸어버리면 그뿐이니까.
“시작하라.”
쿠에츠팔린이 직접 참관한 자리에서, 무모한 실험은 시작되었다.
개념, 주르반.
시간을 비틀고 공간을 비집어, 신체의 한계를 초월하려던 인류사의 노력이 멕시카 대륙 한복판에서 결집하고야 말았다.
***
“태조 황제의 조부께서도 비슷한 일을 하셨지.”
의조 황제 작제건.
물론 작제건은 황제가 된 적은 없다. 왕건이 발해, 혹은 북고려와 남고려를 통합하고 황제가 된 후 추존되었을 뿐이다.
마침내 자기 앞에 와서 앉은 견하를 향해, 신수덕은 작제건의 이야기를 꺼냈다.
“변죽만 울릴 거라면 내가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는데.”
“핵심만 찌르려는 습관은 효율적이어서 좋긴 한데…… 초조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는 것도 아는가?”
“네가 나의 조급함을 즐기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나는 너를 죽이고 지휘소로 돌아가면 돼.”
신수덕은 살짝 감탄한다. 여기서 조급하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 자신이 얼마나 여유로운지 보여주는 것은 머저리의 허세다.
전장에 나선 군인이 전쟁 종결에 절박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에 절박하랴.
“핵심을 이야기하려면 일단 떠받치는 주변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이건 핵심만 파고들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네.”
견하는 턱을 한번 내렸다 올린다. 들어보겠다는 태도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 대부분의 시대와 장소에서 그것은 그저 악습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원을 따진다면 인신 공양 없이는 ‘정말로 멸망할’ 어떤 경험에서 유래했네.”
“그런 이야기는 나도 들었지. 내일 태양이 안 떠오를까 봐, 태양이 계속 떠오르도록 인신 공양을 했던 문명. 그들은 혁세주의 출현을 목격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인신 공양이 그저 공포에서 비롯된 ‘습관’으로 남았다면 차라리 이해의 여지라도 있네. 하지만 그게 ‘악’임을 명백히 인식하고서도 ‘권력욕’ 때문에 자행했던 인간은 동정할 가치가 없지.”
“토칸이나 혁세주교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것들은 그저 까마득한 후배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토칸은 이미…… 유용한 실험 재료로 그 목숨을 바쳤네.”
결국 그렇게 되었나.
견하는 의식이 전이된 공간에서 토칸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카라코룸 탈환전에서 마주쳤던 순간도 떠올린다.
그와는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되리라, 그때는 둘 중 하나만 살아남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그런가. 신수덕과 벨리사리우스의 손에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나.
약간의 동정.
하지만 그것 때문에 굳이 신수덕을 향해 복수심을 불태울 의리까진 없었다. 신수덕도 토칸도 결국 ‘제국의 적’이니까.
“이미 신화시대에서 멀어진 시대의 사람들이, 신화시대와 같은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했어야겠나?”
“고대의 왕들이 신종의 힘을 손에 넣은 걸 참고했겠지.”
“그들에게 힘을 부여한 신종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까지는 모르네. 신종의 생태는커녕 정체도 명확하지 않으니까. 혹은 인류가 신종이라는 ‘짐승과 관계해선 안 된다’는 윤리의 벽이 흐릿할 때, 인류가 먼저 접근했을 수도 있고.”
신화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접촉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인간과 짐승이 구분되지 않던 시절, 그러니까 인간이 곧 짐승이고 짐승이 곧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의 사고라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작제건은 문을 열었던 것 같네. 문을 여는 방법은 자네가 아는 것과 같고.”
“혁세주도 몸을 들이밀었을 텐데?”
“놀랍게도 작제건 혼자만의 힘으로 ‘밀어낸’ 것 같더군.”
“……이단이었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가?”
“현대의 기준으로는 측량 불가능한 이단이었든지, 아니면 우리가 아는 방법을 썼는지는 차치해두도록 하지. 중요한 건 그렇게 해서 왕씨 일가는 신종 ‘용’의 혈통을 손에 넣었네.”
“신라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권력욕’ 때문에 문을 연 사례군.”
“나는 인간이 신앙이 아니라 다른 욕망을 충족하려는 수단으로 문을 열었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멕시카에 새로운 무기를 안겨주었네.”
“혁세주의 출현 위협 없이 파멸인을 전장에 대량 양산하는 것 말이군.”
신수덕의 뱀 같은 눈이 가늘어진다. 이 남자로서는 참으로 드물게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머리 회전이 빠르군.”
“대체 왜 아즈텍 내전에서는 칸발리크 사태 같은 게 안 일어날까 의아했거든. 이쪽도 가설 단계이긴 해도 나름 연구를 했지.”
“혁세주의 강림은 단순히 파멸인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세. 하나의 조건이 더 필요하지.”
“‘신앙’이겠지?”
신수덕은 끄덕였다.
“칸발리크에서는 혁세주교가 그 역할을 했고, 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이 그 역할을 해주었지. 영혼, 구원, 환생, 영생…… 그 모든 바람이 혁세주를 끌어당긴다네.”
“‘신앙’이 없는 인간만 모아서 파멸인을 만드는 방식은 어렵겠지. 종교가 없는 인간도 무심코 사후세계 같은 망상을 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신앙을 망상하지 않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인간이 있지.”
“애초에 시체라면 신앙이 없으니.”
그래서 신수덕은 피험체가 ‘사망한 뒤’에 파멸인으로의 변이가 시작되도록 손을 봤다. 그렇게 특수 제작된 파멸인이 아즈텍 내전의 전장을 뒤덮었던 것이다.
“같은 방식을 신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네. 마침 적절한 자료도 찾아냈고.”
신수덕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신앙은 두 가지 기원이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두 경로 모두 신을 섬기게 되지만, 기원을 따지고 보면 전혀 다른 종류의 신앙이라는 말이다.
“선사시대든 고대든 신종을 목격한 인간이, 그 신종을 섬기는 것이 하나의 경로.”
또 다른 경로는 신종의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 신종이 신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되었을 때 생겨난다.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좋은 신은 선신,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신은 악신. 그런 식으로 인간들 멋대로 신종을 선악의 틀에 꽂아 넣고 이런저런 설정을 만들다가 생각해내는 걸세. 이 선신과 악신을 낳은 더 상위의 존재는 무엇일까?”
“시간이나 공간 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관념 놀이의 극치 말이군.”
“마침내 망상이 신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는 거지.”
“주르반은 그럼 인간이 망상한 결과물인가.”
“하지만 그것도 ‘신앙하는’ 순간 조건 중 절반은 충족하게 되네.”
“문을 열 수는 있게 된다는 말인가.”
“이것도 혁세주의 위협을 최소화하면서 말이지.”
견하는 신수덕의 그 표현을 놓치지 않았다.
“혁세주가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말이군?”
“글쎄, 어떨까. 아직 그런 일은 안 일어났네만.”
운이 좋았을 뿐일 수도 있다. 그 말은, 앞으로 운이 얼마든지 나빠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견하는 좀 더 정보를 얻어내려고, 질문을 던진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주르반의 사례를 응용한 거군. 신앙을 벨리사리우스라는 한 인간의 몸에 모으는 변칙을 부린 것 아닌가?”
“정답이네.”
감출 것도 없다는 듯 순순히, 신수덕은 대답했다.
***
주르반 신앙의 사제가 필요하진 않았다.
멕시카의 연구원들은 로마 제국에게서 넘겨받은 토칸의 시체 일부를 놓고 그 앞에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오래전에 이단으로 분류된 기도문을 읊었다.
그 간단한 의식만으로도 그들의 앞에 문이 열렸다.
토칸의 시체라는, 실재하는 물질.
이미 오랫동안 신앙으로 다져진 주르반 개념.
그리고 기도문이라는, 어쨌든 주변 인간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음성 조합.
그 조건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락거릴 수 있을 만큼 작은 문 너머로, 붉게 파괴된 세상이 보였다.
여기서부터가 본 무대였다.
“피험체를 진입시켜라.”
죄수들도 있었지만, 주로 내전에서 붙들린 포로였다. 그들을 하나, 하나 문 안으로 밀어 넣는다.
들어가자마자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진다.
곧 파멸인으로의 변이가 시작된다.
“계속 투입해라.”
들여보내지 말라고 울며 간청하거나, 도망치려 하거나, 저항하는 포로들이 모조리 사살된다.
‘운이 좋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라는 말 한마디에 헛된 희망을 걸고 사람들은 문 안으로 진입한다.
사람이 들어갈 때마다 문이 점점 더 넓어진다.
고통이 시작되는 순간, 변이가 시작되는 순간도 아주 약간씩이지만 늦춰진다.
인간을 진입시켜서 시체로 만들기를 반복하는,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이 실험은 어떤 미친 가설로 인해 시작되었다.
파멸인이, 신종이, 혁세주가 이 세상에 와서 주변 환경을 자기들에게 맞게 변화시킨다면,
반대로 인간이 저쪽 세상으로 가서 주변 환경을 우리 세상과 비슷하게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초의 생존자가 환희에 찬 얼굴로 들어온 문 건너편의 연구원들을 돌아봤을 때,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다.
“이번엔 기갑사를 투입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