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마지막 조각(11)
사출기가 미친 듯이 전투기와 뇌격기를 하늘로 쏘아 보낸다.
그런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함선들이 바다에 이질적인 거품 무늬를 그리고, 보다 근접한 전함이나 순양함이 함포에서 불을 뿜는다.
해전의 광경이다.
현대 지상전이 전선 전체에 걸쳐 길고 긴 사람과 병기의 띠를 만든다면, 해전은 여전히 어딘가 전근대의 회전을 닮은 구석이 있다.
양측의 전력이 집결하고, 결전을 치른다.
물론 이러한 해전에도 지상전과 같은 조건이 작용한다.
국가는 바다 위의 전선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배들은 미친 듯이 기름을 먹어대고, 함재기도 그러하다. 함재기의 탄환과 폭탄, 함포의 포탄에는 모두 철과 화약이 들어간다.
그 자원을, 그것도 무기를 만드는 데 적절한 품질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장에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이온의 총동원령에 자극받은 일본공화국 역시 동원령의 수위를 높여가긴 했지만, 태평양에서 전면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 되어서도 태도는 여전히 모호했다.
물론 멕시카에 대한 민중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이르러, 자발적인 멕시카 규탄 시위뿐만 아니라 징집에도 기꺼이 나서고 있다.
-그러나 폭탄은 목표에 이르러 터져야만 한다.
간단한 진리지만, 이 진리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것은 간단치 않다.
국가총동원령에 이른다 해도 군대로 모조리 끌고 갈 수는 없다.
모든 남자를 전장으로 보내고 모든 여성을 공장으로 보내는 지경에 이르면 국가는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자멸을 향해 간다.
폭탄이 목표 지점에서 터지게 만드는 장치…… 신관을 만드는 데에는 단순히 철을 다루는 것 이상의 정교함이 요구된다.
포신이 자기가 내뿜는 포격에 걸레짝처럼 찢겨나가지 않게 하는 데에도 상당한 기술이 요구된다.
그리고 당연히 기술은 ‘사람’의 것이다.
사람 없이 기술이 있을 수 없기에, 기술자가 사라지면 기술도 사라진다.
요컨대 폭탄을 만들 기술자들을 대거 전장으로 징집하면, 막상 전장에서는 군인들이 폭탄을 쓸 수가 없다.
공장에 숙련공 하나를 남겨 놓아 ‘새로 뽑은 직원들’을 교육하게 하고, 다른 기술자들을 전장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처음부터 숙련공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숙련공이 신입들을 교육하고, 신입들이 일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폭탄의 생산은 차질을 빚는다.
이것은 폭탄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손상된 배를 수리하고, 그 배가 수리될 수 있도록 정비시설을 관리하고, 침몰한 배를 대신할 새로운 배를 만들고…… 그 과정에 모두 ‘기술을 지닌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사람의 장벽이라도 새워 볼 수 있는 지상전과 달리, 인간은 바다의 생물이 아니다. 따라서 바다 위에서 싸우려면 배를 타야 한다. 항공기조차도 육지를 대신할 배, 항공모함에 실려야 한다.
만약 거듭된 해전으로 누적된 피해를 회복할 수 없다면, 어떤 대규모 해전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함대가 섬멸된다면?
그래서 일본이 바다를 지킬 수 없게 된다면?
***
“그때는 일본의 상황이 절망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참모장교의 의견에는 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기에, 리안은 그저 끄덕였다.
일본으로부터 온 모호한 제안.
“아마도 그들은 전쟁 중에 다이온 연방에 흡수되는 걸 경계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다이온 연방과 일본공화국이 군사동맹을 맺어, 함께 멕시카에 맞선다면 확실히 지금보다는 효과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군사동맹은 ‘통합최고사령부’를 창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필연적으로 누가 동맹의 최고사령관이 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사령부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게 될 것이다.
아마도 국력이 더 강하고 지상군의 규모도 더 큰 다이온 쪽에서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더 높겠지.
그렇게 되면 일본군은 통합최고사령부의 명령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다이온군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꼴이 된다.
일본군이 일본을 위해 움직이지 않고, ‘동맹 구성원 모두를 위한다’라는 미명 아래 다이온을 위해 움직이게 된다.
즉 ‘언젠가는 되찾아 주겠다’는 그럴듯한 약속을 하면서 일본열도의 방어를 포기하고 일본군을 모조리 대륙 방어에 투입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다이온이 일본열도를 함께 방어해주기로 하는 상황 역시 달갑지 않다. 그때는 다이온의 지상군이 일본열도에 상륙해 방어를 지원할 것이다.
만에 하나 해전에서 패배라도 한다면, 더욱 많은 지상군이 투입되겠지.
하지만 일본공화국 정부가 다이온 정부와 의견충돌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다이온 정부 입장에서는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것이라면? 혹은, 다이온군 내부에 이미 ‘일본 역시 연방에 들어와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무리가 있다면?
일본 내부에, 비록 소수지만 ‘대아시아주의’니 뭐니 하며 다이온 연방 가입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인간들까지 ‘다양한 의견’이라며 감싸주는 일본공화국의 체제에는 헛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그런 인간들이 있기에 쿠데타를 염려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일본에 주둔한 다이온군을 등에 업을 수 있다면, 소수 의견은 더는 소수 의견이 아니게 된다.
일본에 말 잘 듣는 친원(親元) 정권을 세워둘 수 있다는 건 확장주의자라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가정이긴 하다.
리안 앞으로 온, 일본의 모호한 답신은 그런 염려들을 담고 있었다.
“이 자칭 민주주의자들은 엄청난 착각들을 하고 있군요.”
민주주의는 무턱대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정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쳐 죽여야만 성립할 수 있다.
왕정도 독재정도, 왕정이나 독재에 반대하는 모든 인간을 쳐죽이는 것을 목표로 유지된다. 이것은 어떤 체제만의 성질이 아니라, ‘체제라는 것 자체’가 살아남으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민주주의 혁명, 혹은 공화 혁명의 붕괴는 바로 이것을 착각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왕정이나 독재를 지지하던 자들이 살아남아 ‘그러면 너희가 왕, 독재자와 무엇이 다르냐’고 발악한다. 자신들의 생명이 ‘민주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껄인다.
“벌레 울음소리만큼의 가치도 두지 말고 두개골을 으깨버려야 하는 것을.”
리안이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을 살려두는 것은 그들이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1929년 체제’에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리안의 친위혁명을 부정하고 루우의 황통을 부정하는 무리는 남김없이 쓸어버렸다. 신수덕과 그 무리가 고려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고.
“하지만 일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다 같이 살아가는 쪽을 택했죠.”
공존이니 공생이니,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일본의 정치인 중에 그 말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는 자가 몇이나 될까?
바로 거기서, 리안은 일본공화국 체제의 허울을 꿰뚫어본다.
“이게 그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자유로운 농민국가의 실상이자 한계인가.”
세 차례에 걸친 중세 다이온의 일본 원정.
고려와 몽골의 군대는 끝내 수도 교토를 정복하고, 그들의 군주를 말발굽 아래 처형했었다. 귀한 피가 땅에 스미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일본의 많은 영주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최후를 맞이했다.
다이온의 지배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마침내 중세 다이온이 해체될 때 일본의 농민들은 들고일어나 압제자를 몰아냈다.
농민들은 군주를 다시 세우지 않고, 각 지역 농민 대표들이 모여 합의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이런 체제를 거부하는 일부 무사, 영주들과의 내전도 있었지만 어쨌든 농민들은 승리했다.
농민공화국.
일본인들은 다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체제를 만들어냈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그 체제가 정말 ‘공화국’으로서 작동할 수 있었을까?”
리안은 오늘날 일본공화국이 보여주는 추태를 보면서 아니다, 라고 단정지었다.
“중간중간 민주주의 개혁을 거치며 투표권을 확대해 온 건 사실이죠. 문제는 그렇게 투표로 뽑힌 자들이 어떤 인간들이냐는 겁니다.”
농민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자작농, 혹은 빈농을 대표로 뽑지 않았다.
지주, 혹은 지주의 형태로 모습을 바꾼 과거 영주들, 그러니까 지역 유지들을 뽑아서 의회로 보냈다.
그들이 자작농, 소작농들에게 불리한 법을 만들어도, 그래서 분노에 차서 쟁의를 일으키더라도, 다음 선거에서는 어김없이 그 유지를 뽑았다.
유지의 아들과 손자를 뽑아서 대대손손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투표가 민주적 의사 표현이 아니라, 그냥 지역 유지들 체면 세워주는 통과의례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일본의 정치인들과 민중 사이는 괴리될 수밖에.
“멕시카에 대한 적대 의식을 불태우며 시위에 나서는 민중조차 다음 선거에는 ‘멕시카와의 화평을 주장한 우리 지역 유지’를 뽑을 겁니다. 그게 일본공화국 체제의 실체입니다.”
그런 정치 속에선 이런 기괴한 외교가 튀어나오고 만다. 국내 정치에서 했던 짓을 외교 무대에서도 반복한다.
왜냐하면 외교란 대상이 국민에서 타국으로 바뀐 정치이기 때문이다.
“일본 민중이 자기네 같은 빈농 출신, 뜻있는 민주주의자를 대거 뽑아서 의회로 보내면 모를까…… 아니, 지금 있는 민주주의자들이 합심해 구태 지주들을 쓸어버렸다면 모를까…….”
리안은 일본의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원로를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지만, 두 사람은 여기서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문제는 일본 체제의 한계가 외교 문제로만 끝나진 않는다는 겁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일본의 정치가들은 공업화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농민들이 도시로 흘러들어와 공장 노동자가 되면, 그때부터는 지역 유지에게 투표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해군력’만큼은 길러야 한다는 데 동의했고, 일본의 공업도 해군력을 뒷받침할 만큼은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 닥친 전쟁까지 뒷받침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누구든 ‘글쎄’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당장 방공망, 항공 전력까지도 일본의 공업력으로 확충, 아니 유지는 할 수 있을까요? 지상전이 벌어졌을 때 징집병 전원에게 소총은 지급할 수 있을까요? 전선에 대포는 배치할 수 있고?”
참모장교들이 ‘지상전이 벌어질 경우 일본의 상황은 절망적’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다.
일본의 공업력이 형편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믿을만한가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전쟁 기계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이 물음을 두고, 리안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신진을 비롯한 몇몇 장교들의 말대로 ‘일본에 대한 선제 점령’에 나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