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마지막 조각(10)
참모는 우려하실만한 일은 아니라는 의미로 말을 덧붙인 거겠지만, 그건 전장에만 집중하는 성실한 군인의 한계다. 견하는 군인이면서 동시에 다이온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다이온의 정치인은 민족 문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다이온화 된 한족 출신 장병들이 과연 ‘믿을만한가’는 시간을 들여서 검증해야 할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장 각하.”
시원시원한 대답이긴 하다. 그러나 견하는 넋두리하듯 걱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덧붙인다.
“저들이 겉으로만 다이온화 되어 있으면서 속으로는 ‘한족의 연방 주도권’을 계산하며 출세를 노린다든가, 하는 건 아닐지.”
“그렇다면 한족 출신들을 위험한 작전에 우선 투입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약간 짜증이 났다. 장교, 그것도 장성까지 올라온 인간이 자신에게 아부하는 것 말고는 안목이 이렇게 좁아서야.
“한족 출신의 전사자, 부상자 증가…… 그건 다이온화 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한족 출신들을 고기 방패로 쓰더라, 라는 소문이 돌면 누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우리말을 배우려 하겠습니까?”
“그건…… 생각이 짧았습니다.”
“최선은 고려, 몽골 민족과 ‘다이온화 한 한족’을 전우애로 묶는 겁니다. 같은 전장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만한 유대감도 없겠죠.”
추억을 공유하려면 일단 살아 있어야 한다.
“공세에서 희생을 최소화할 방법을 고민해주시기 바랍니다.”
견하는 자신이 앞서 말했던 대로 이건 ‘시간이 증명할 문제’라 판단했다.
이 전쟁은 다이온을 구성하는 여러 민족에, 그들을 둘러싼 민족정책의 효과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한족이 멕시카의 공세를 계기로 내부에서 호응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악몽이다.
그러니 한족도 ‘일단 침략자를 격퇴하고 보자’라는 식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적의 공격이 한족 거주 지역에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두 번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적의 공세를 근절할 방안’이었다.
전선뿐만 아니라 적의 후방, 적이 밀고 들어오는 ‘문’까지 포격을 가할 정도로 밀어내긴 했는데, ‘문을 닫을 방법’을 모르겠다.
카라코룸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해결책을 내려주지 않았다.
끌어모은 전력으로 적을 압도, 밀어내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
적을 압도한다는 이야기는 적에 비해 전투력이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적이 아군에 비해 병력을 적게 투입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전을 겪었다곤 해도 아즈텍 대륙의 인구와 자원을 생각해봤을 때, 고작 이 정도 공격이 멕시카의 전력일 리 없다.
“예비 전력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을 터.
따라서 견하는 카라코룸과 칸발리크에서 멕시카군을 완전히 격퇴하기 전에 어딘가에 새로운 문이 열리고 공세가 시작되리라고 보았다.
적이 문을 여는 데 얼마나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별반 수고가 들지 않는다면 ‘다이온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 이런 식의 공격을 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적의 공세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운이 완전히 나쁘진 않았다. ‘단서’ 정도는 찾을 수 있었다.
응천에 보관되어 있던 명나라 황실의 장서, 그것을 오삼계의 주나라와 태평천국이 연구하고, 낭키아스 칸이었던 게레센제가 이어받아 연구하다 방치한…… 것이었다.
“명(明)나라의 건국에는 명교(明敎)라는 종교가 관여했다는 설이 있고, 이 종교는 페르시아의 마니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로아스터교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라.”
그리고 연구자들은 그 신화 속에서 시공간의 신, ‘주르반’이라 불리는 존재에 주목했다.
「쿠빌라이 문서」에서도 이 신에 대해 모르진 않았는지, 언급 정도는 했다고 하지만 연구는 그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애초에 주르반이 신종의 하나인지, 아니면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에 불과한지도 불분명하고.”
그런 신종이 있다면 참으로 무시무시하겠지만, 어차피 짐승에 불과한 신종의 정체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거창한 능력을 지니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을 걸어볼 가치는 있어.”
견하가 부르자마자 동명에서 황해를 건너 서남방면군 사령부로 찾아온 한재연의 말이었다.
육로는 전장이 되어버려서 그쪽으로는 올 수 없었다. 그나마 바닷길은 아직 잠잠하다.
“AN연구소에서 빼낼 수 있는 인력은 얼마나 되지?”
“인력을 빼내는 건 불가능해. 나랑 같이 잘린 연구원들을 쓰거나, 몰래 AN연구소에 연구를 의뢰할 수는 있겠지만.”
견하는 잠깐 황제 직속 연구소의 투글룩을 떠올렸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단서’를 공유하면 연구의 빠른 진척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견하가 천손민족협회 출신들과 여전히 교류한다는 사실을, 리안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가능한 선에서 진행해 줘.”
***
공포는 얼어붙은 바다 밑바닥에서 올라온다.
“탄약 재고는 생각하지 마라. 적이 상륙해 교두보를 마련 순간 끝이다. 계속 포격을 퍼부어라.”
견하처럼 대장 계급장과 동시에 ‘극북방면군 사령관’에 임명한다는 군령이 내려왔다.
견하와 효윤 모두 지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기보다는, 리안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감독’케 한다는 의미가 더 컸다.
그래도 지휘관다운 면모는 효윤이 더 강했다.
그녀는 이미 3년 동안 몽골과 고려, 두 극북방위군을 돌다가 이제 그것들을 통합한 ‘극북방면군’을 지휘하게 된 것이니까.
무엇보다도 극북은 이미 전쟁 전부터 ‘괴물’들의 사소한 도발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효윤이 내린 명령을 받아서 매끄럽게 수행한다.
끄트머리가 사람의 손가락 같고, 팔이었던 부분이 넓게 펼쳐져 지느러미처럼 퍼덕이는 사지를 끌며, 괴물들이 올라온다.
얼핏 물개나 바다코끼리 같은 인상이다. 그러나 잘 들여다본다면 그 기괴할 정도로 하얗게 번질거리는 몸뚱이와 시뻘건 안구에 몸서리치게 된다.
어떤 사나운 맹수라 해도 저것들보다는 친밀감이 느껴질 정도다.
북극곰의 두세 배는 되는 괴물이 올라온다. 그것도 정밀한 포격으로 터져나간다.
하얀 몸은 하얀 극북의 풍경 속에서 잘 구분이 안 되지만, 터져나갈 때 퍼지는 대량의 혈액이 구분을 도와준다. 피바다 덕에 그 위를 다시 기어 오는 괴물들도 구분된다.
포탄의 보급만 계속 이루어진다면, 이런 기계적인 대응만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극북방면군 장병들은 생각했다.
고래 형태의 괴물이 치솟아 오르기 전까지는.
물론 덩치가 크다고 해서 특별히 포탄에 강해지는 건 아니다. 그것도 포격을 맞으면 터져나간다.
저런 거대한 개체도 처음 보는 건 아니다. 몸 전체를 뒤덮은 촉수와 지느러미를 보며 겁에 질렸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강력한 이단, 그들의 여왕인 최효윤 장군이 박도를 휘둘러 갈라버렸었다.
그녀의 칼이 파도를 밀어내고 구름을 갈랐다는 전설이 될 정도로, 인상 깊은 광경이었다.
그래서 장병들은 일단 침착하게, 다른 괴물들과 다를 것 없는 포격을 계속했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하나를 무력화하는 데엔 당연히 작은 개체보다 많은 포격이 필요했다. 그 포격에 휘말려 다른 개체가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저렇게…… 저렇게 몰려들면 다른 개체가 방패가 되어 주는 동안 상륙에 성공하는 개체가 나오고 만다.
전선이 서서히 다가온다.
“저게 무슨……!”
장성 중 하나가 경악에 차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 만다.
저것들이 정말 고래였다면 지상에 올라온 것만으로도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것들은 ‘고래처럼 거대한 것’이지, 고래가 아니었다.
우스꽝스럽게 뒤뚱대면서 다가온다.
사람처럼 생긴, 사람 키만 한 눈을 수십 수백 개 달고 다가오는 모습은 전혀 우습지 않았지만.
“포탄을 모조리 쏟아붓고, 완전히 소모한 즉시 이탈, 2차 방어선으로 이동하라.”
물론 3년 동안 다이온 군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효윤은 장병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려고 ‘적이 상륙 교두보를 마련하면 끝이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과는 달랐다.
적이 상륙 교두보 확보에 성공해도, 1차 방어선이 뚫릴 위기에 처해도 그에 대응할 2차 방어선이 있었다.
게다가 아직 뚫리지 않은 1차 방어선이 좌우에서 협공하며 타격을 줄 수 있도록, 극북 요새는 정교하게 짜여 있었다.
다만 그냥 빼앗기기엔 아까우니 1차 방어선에 비축해 둔 포탄은 모조리 소모하고 오라고 명령했을 뿐이다.
2차 방어선이 뚫려도 3차 방어선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진 않았지만, 일단 일어난 이상 준비해 둔 것을 모조리 적 앞에 선보인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흔들리지 않고 지휘에 임하는 모습, 극북의 혹한에도 의연하게 맞서며 괴물들을 노려보는 모습은 장병들이 숭배하는 ‘북방의 여왕’ 그 자체였다.
그런 효윤도 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속으로 내리누른다.
비축물자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저런 괴물을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없으니 과연 충분한가 하는 불안감이다.
“현대전은, 결국 누구 물자가 먼저 떨어지는가인가…….”
***
좀 더 정상적인 전쟁.
혹은 통상적인 전쟁은 태평양에서 벌어졌다.
이곳은 그대로 ‘선전포고’라는 절차를 거쳐, 양국의 함대가 마침내 격돌했다.
멕시카 자주국은 일본공화국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자동적으로 일본이 주도한 ‘해상방위동맹’의 구성국, 즉 베트남과 다리다, 류큐, 아이누가 멕시카에 선전포고했다.
멕시카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다이온에 기습을 가했을 때, 이미 각오는 했다.
그러나 전쟁을 각오한 것과는 별개로, 일본 정계의 은퇴한 원로인 ‘선생’은 한탄했다.
“듣지도 않을 조언은 뭐하러 구하려 하는가?”
다시금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선생은 그렇게 호통쳤다.
“하지만……”
선생은 단도 하나를 꺼내서 내던졌다. 그와 후배 정치인들 사이, 다다미 위에 직각으로 내리꽂힌다. 은퇴했다고 해도 선생의 기백은 여전했다.
“지금 자결하든지, 아니면 그 칼을 들고 가 우유부단한 머저리들 멱을 따든지, 둘 중 하날세.”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찌 그러겠습니까.”
“이놈!”
이번엔 훨씬 더 긴 검을 뽑는다. 방금 말을 뱉은 후배의 머리통을 쪼개놓을 듯 달려들지만 다른 후배들이 발치에 엎드려 말린다.
“선생님! 고정하십시오!”
선생은 씩씩대며 바닥에 코를 댄 후배들을 내려다본다.
“공화국도 민주주의도, 네놈들처럼 어쭙잖게 ‘반(反)공화, 반민주도 다양한 의견 중 하나 아닌가’라며 존중하려는 것들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칼을 멀리 내던진다. 후배들은 움찔하면서도 안도했다.
“다이온과 동맹을 맺을 셈인가? 그렇다면 단독 항전을 부르짖는 것들을 죽여라. 단독 항전을 할 셈인가? 그렇다면 다이온에 가담하려는 무리를 죽여라. 항복할 셈인가? 그렇다면 항복 명령을 내리고 깨끗하게들 자결들 하게나. 항전할 셈인가? 그렇다면 아직도 협상의 여지가 있진 않은지 기웃거리는 것들을 쓸어버려라.”
대답은 없었다. 선생은 더는 볼 것 없다는 듯 경멸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타협! 타협! 그따위 발상을 하고 있으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된 게야!”
후배들이 선생의 집에서 내쫓기듯 물러난 날로부터 며칠 뒤.
일본공화국은 다이온과의 본격적인 군사협력은 하지 않겠다면서,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하겠다 선언하고, 멕시카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면서도 동시에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다이온과 멕시카 어느 쪽도 그런 일방적인 통보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