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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87화 (487/541)

인간성의 마지막 조각(2)

물론 키타이-낭키아스 민족 분화 정책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고려화, 몽골화 정책이 폐기된 건 아니다. 그 역시 계속 장려되어야 한다.

제국에 복종하고 헌신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시대를 열어야만 한다. 그것이 다이온 통합을 유지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충성스러운 인재의 추천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런 인재들도 우대를 약속하지만, 당연히 연방에 기여한 여러분 역시 ‘새로운 연방정부에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이는 최근 몽골 정계에서 벌어진, 제국입헌당과 다이온혁신당 사이의 분열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리안은 발 빠르게 몽골 정치인들을 회유했는데, 견하도 이에 맞춰 낭키아스의 관료들에게 미끼를 던진 것이다.

다이온혁신당과 손잡기 전에, 집권 여당인 제국입헌당에게서 받을 이익을 제시한다.

주견하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더라도, 주견하의 정책이 동명의 정책과 일치한다면 한 번 투자해볼 만한 사업이다.

관료들의 얼굴로 미묘한 즐거움이 퍼져나가는 걸 보면서, 견하는 안도했다. 첫 고비는 넘겼다. 이제는 실제로 어떤 성과가 돌아오는지 지켜보는 일이 남았다.

견하의 관심은 이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전에 내려왔을 때 살펴보고 나서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는 사업.

동남부 해안 요새화 사업 현장에 직접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

황제수권법 이후, 로마 제국의 수상 에반겔로스는 비서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니까 고려의 태사처럼 정부수반으로 행동해야 할 인간이, 철저히 황제의 의사를 두 의회에 전하는 전령 역할에만 충실했다는 말이다.

관료 기구도 완전히 벨리사리우스의 손아귀에 들어와, 형식만 ‘권고’일 뿐 모든 것이 황제의 ‘칙령’ 속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에반겔로스도 완전히 어리석은 인간은 아니었다.

어리석기만 했다면 황제수권법 같은 건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나름 좋은 머리를 굴려, 자기 자리를 보존할 방법을 강구해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똑똑한 이를 높은 자리에 앉히면 일이 잘 풀리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똑똑한 이는 그 좋은 머리를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쓴다.

또 어떤 이들은 기품있는 이를 높은 자리에 올리면 명예롭게 행동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겉만 번지르르한 이들은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데에나 권력을 쓴다.

에반겔로스가 바로 그런 부류였다.

그래서 에반겔로스는 자기에게 해가 될만한 일의 냄새는 기막히게 잘 맡았다.

“신수덕과 멕시카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업…… 저는 솔직히 걱정됩니다, 폐하.”

에반겔로스가 이렇게 자기 의견을 전하는 건 황제수권법의 처리 이후 참으로 오랜만이었기에, 벨리사리우스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걱정이라? 어떤 점이 말이오, 수상?”

“우리는 멀리 동방 고려-다이온과도 동맹을 맺고 있고, 멕시카 자주국과도 비밀리에 제휴한 것이지만 동맹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렇게 세 강대국이 국제정세를 통제하고 있기에 균형이 잡히고, 세계 평화도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확한 분석이었기에 벨리사리우스는 따로 말을 보태진 않았다. 그저 끄덕이며 에반겔로스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헌데 신수덕과 멕시카 자주국의 사업은 아무리 봐도…… 다이온을 겨냥한 것 같습니다.”

에반겔로스의 관점대로 국제정세의 ‘현상 유지’를 추구하려면, 로마 제국이 멕시카와 다이온 사이의 중재라도 나서야 한다.

그러나 황제는 그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외무성에는 관련 지시가 전혀 내려오지 않았다.

에반겔로스의 말을 들으며 끄덕이고만 있던 벨리사리우스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짐은 바로 그 고려와의 동맹을 추진한 당사자요. 짐 나름대로 동맹이 강력하게 유지되길 바라오. 고려-다이온의 역할은 막중하니 말이오.”

다이온 연방은 실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한다.

세계지도를 본다면 그 거대한 덩치로, 서남쪽의 공산권을 짓누르는 듯한 형세를 취하고 있다.

완충지대인 티베트가 없었다면 정말로 긴 국경을 바라트, 지금은 ‘세계혁명연합’이라 불리는 집단과 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로마 제국에게 다이온은 공산권을 동쪽에서 견제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세계혁명연합, 즉 세련은 공산주의 혁명의 빠른 전파를 통해 다이온, 로마 제국 모두와 국경을 맞댈 정도로 비대해졌다.

이것은 곧 세련이 어느 한쪽과 전쟁할 경우, 다른 한쪽에서도 전쟁이 일어나 양면전선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도 커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바라트의 전신인 무굴 제국은 다르 알 이슬람과 태평천국 사이에서 시달리다 무너지지 않았는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바라트의 공산주의 정권도 똑같은 몰락을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다이온은 굳건히 버티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억제해준다.

공산권에 대한 경계심은 부황 유스티니아노스 5세 때도 높았지만, 벨리사리우스 시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높아졌다.

그저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과 그 위성국들의 동맹 체제일 때만 해도 위협적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하나의 ‘연합’으로 묶이지 않았는가. 어찌 경계하지 않으랴.

게다가 그들의 새 국호에 ‘세계혁명’이라는 말이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의심을 버릴 수 없게 했다.

벨리사리우스는 공산주의를 경계하려면 일단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바라트의 초대 주석뿐만 아니라 현 주석 아슬란의 저서까지 모조리 읽었다.

그들 사상의 기원이 되는 게르만 사상가의 저서, 프랑스 혁명가의 저서도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 결과로 다소 사회주의적이다 싶은 정책이 로마 제국에도 도입되긴 했지만, 벨리사리우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세계혁명. 그것은 전 세계가 공산 혁명의 불길로 타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구호다.

전에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에서 보여준 것은 바라트가 일단 살아남기 위한 방편, 앞으로 더 큰 혁명을 위한 일시적인 전략일 뿐이었다. 이들에게 진심으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 따윈 없었다.

기회만 된다면 혁명의 확장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다이온과는 세력권을 확정했다지만, 그 약속이 다이온이 빈틈을 보여도 지켜질까?

“우리 임페리움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개의 대륙에 걸쳐 영토를 확보한 나라요.”

벨리사리우스의 이 표현은 로마 제국의 거대함을 말해준다.

국가의 거대함은 막강한 국력의 혜택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위정자라면 누구나 이 표현에서, 그 거대함이 가져오는 부담을 걱정할 것이다.

“거대한 영토는 동시에 긴 국경을 의미하오. 이것은 어떤 나라에서든 진리요.”

다이온과 세련이 티베트를 완충지대로 설정한 건 충돌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마주한 국경의 길이를 줄여 방위 부담도 덜어보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메소포타미아를 얻었소. 지중해와 페르시아만 사이, 두 개의 바다 사이를 잇도록 국토를 연장했지. 당연히 여기서 우리는 인구, 세금,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소. 허나,”

메소포타미아 남쪽에는 아라비아 칼리프국과의 국경선이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공산 페르시아와 맞닿았다.

“얻는 게 있는 만큼, 긴 국경선도 로마 제국의 과제가 되었단 말이오.”

“그렇기에 더더욱 공산권 쪽 국경의 부담을 덜어줄 다이온의 존재가 소중한 법 아니겠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다이온의 국력이 손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수상의 말씀은 옳소. 그러나 짐은 이런 생각도 하오. 대서양 건너편, 멕시카와의 동맹도 소중하다고.”

멕시카 자주국은 서유럽이 내전에 개입했던 일을 아직 잊지 않았다.

브라질 식민지의 유지, 중립 의무 준수를 조건으로 먼저 발을 뺀 에스파냐를 제외하면, 서유럽 각국은 마치 원죄라도 마주한 양 멕시카 자주국 앞에서 우물쭈물한다.

멕시카 자주국이 대서양 저편에서 서유럽 각국을 견제해주기 때문에, 로마 제국도 이탈리아 탈환 이후 서유럽의 반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멕시카가 그런 견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역시 다이온과 갈등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희망 사항이오, 수상.”

벨리사리우스의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희망 사항’이라는 단어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선고였다. 에반겔로스는 말문이 막힌 채 황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브리튼과 칼마르는 신성 제국 포위망이라는 오랜 견제 관계를 청산했소. 세 나라는 지난 3년간 충실히도 반(反)로마 동맹을 다져왔지. 그런데 말이오, 이들 사이에 우리 로마에 대한 적대감 말고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소.”

그 바람은 서쪽, 아즈텍 대륙에서 건너왔다.

이제는 동맹인 멕시카의 요청에 따라 ‘멕시카 대륙’으로 불러주는 그곳.

“추방된 유럽계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겠소?”

갑작스레 들어온 난민들을 수용할 공간이 있을 리 없다. 일단 난민촌을 만들긴 했지만 당장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부터 쉽게 풀리지 않는다.

당연히 기존 국민과의 갈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서유럽 각국 정부는 이것이 난민의 폭동이나, 혹은 국민의 동포 박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머리를 굴렸다.

그 결과 ‘이 모든 난리와 고생은 멕시카 대륙 때문이다’라는 극본이 완성되었다.

이 극본은 선동적인 성격이 짙었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해서, 사람들에게 잘 먹혔다.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는 난민들의 증언을 영화나 라디오, 신문에 실어 보내기도 했다.

학살과 추방…… 사람들을 더욱 경악게 한 것은 추방조차 되지 못하고 붙잡힌 이들의 노예 노동이었다.

서서히, 멕시카 대륙에서 물러난 것은 잘못이었다는 여론이 다시 들끓는다.

“참으로 줏대 없는 작자들이지 않소? 왜 남의 내전에 끼어들어야 하냐며 정부를 비난하던 자들이, 이젠 퇴각은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떠들고 있소. 그들의 정부라는 것들도 마찬가지요. 이득 좀 보겠다고 멕시카 내전에 끼어들었다가 데이고 나왔으면 그걸로 그쳐야지, 당장 눈앞의 위기를 모면해보겠다고 또 선동에나 매달리고 있잖소.”

치졸한 인간들이 벌이는 짓은 치졸한 결과만을 낳는 법이오, 라고 벨리사리우스는 덧붙였다.

“그러면 폐하께선…… 대서양 전쟁이 한 번 더 일어나리라고 보십니까?”

“안 일어나리라는 법은 없지. 상대편인 멕시카 자주국에서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멕시카에서 들어오는 첩보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멕시카 자주국의 최고지도자라는 쿠에츠팔린은, 벨리사리우스가 생각하는 집단 안보 체제, 세력 균형이 자아내는 평화를 전혀 믿지 않는다.

“신수덕과의 거래가 아니더라도 쿠에츠팔린의 머릿속은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그 너머의 고려를 칠 생각으로 가득하오. 아니, 어쩌면 순서를 바꿔서 대서양 건너 브리튼과 신성 제국을 칠 생각을 우선할지도 모르겠군.”

“전쟁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중재는 무의미하다는……?”

“유감스럽긴 하오. 하지만 짐은 멕시카도 고려도 돕지 않을 거요. 우리 로마 육군이 헛되이 극동 대륙으로 진군하지도 않을 것이고, 대서양으로 함대가 나가는 일도 없을 거요.”

“그, 그럼 폐하께선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모두가 최종 결전을 준비한다면, 우리도 최종 결전을 준비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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