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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82화 (482/541)

신진(6)

가능성은 낮지만, 로마 제국과 다이온의 전쟁을 상정해보자.

최소한 페르시아는 안정적으로 확보되어 후방 기지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철도와 도로망에 대한 재검토와 확충에만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일단 여기서부터 현실성이 없다. 고려와 전쟁하기 전에 세련과의 전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가정이 필요하니까.

그래도, 어쨌든 승리했다고 치고 계속 생각을 이어 나가보자.

티베트를 통한 군사작전도 가능은 하겠지만, 험준한 히말리야라는 지형 문제가 앞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알티샤흐르, 즉 전통적인 비단길을 통과하는 방향으로 공격로는 제한될 것이다.

티무르도 이 경로에서 몽골의 태사 이성계와 격돌했었다. 무기와 전략과 전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전쟁에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요소가 있는 법이다.

그래도 그때의 전쟁은 이성계가 티무르의 칸 계승을 인정하고, 티무르가 몽골 카간의 우위를 받아들이면서 끝났지만…….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이 ‘적의 완전한 분쇄와 무조건적 항복’이라는 결말 외에 다른 결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외교관이나 군인들이 군주 한 사람에게, 혹은 귀족 과두 체제에만 책임을 지면 되는 시절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승리한 쪽이라 해도, 전쟁의 결말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적을 완전히 분쇄하고 정복한 것도 아니면서, 왜 내 형제, 아들, 아버지의 목숨을 소모했는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없다면, 이런 물음이 나올 정도로 그 승리가 미묘하다면 승리하고서도 권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승리한다면 모두가 전리품이 풍족하다고 느낄만한 승리여야 한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확고한 승리.

현대전에서의 확고한 승리란 항공 우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류는 기병을 강철의 전차로 대체한 것으로도 모자라 하늘에도 기병과 포병을 배치했다.

전근대의 용장은 기갑사라는 형태로 다시 나타났지만, 참으로 공평하게도 지상을 걷는 모든 이들은 하늘에서 내리꽂는 공격에 취약하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이단이라면 모를까.

항공 우세는 전투기나 폭격기만 많이 만든다고 확보되는 게 아니다. 당연히 그걸 탈 수 있는 조종사의 양성이 이루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날아오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공군기지 말이다.

공군기지의 건설과 관리에는 조종사와는 별개로 훈련받는 인력이 필요하다. 이 인력을 양성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어간다.

백 보 양보해서 그 지역에 이미 있는 공군기지를 사용한다 해도, 점령하자마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조종사들이 그 공군기지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기지 내 설비도 로마 제국의 사양에 맞도록 교체해야 한다.

콘스탄티누폴리를 중심으로 한 제국의 ‘본토’에서 전장에 이르는 긴 거리에 그 모든 것들을 차질 없이, 최소한 수년간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그 지역에서 전쟁을 치른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엔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은 가정을 해보자.

멕시카가 다이온을 칠 경우 말이다.

일단 알래스카를 통해, 혹은 북극을 가로질러 다이온의 극북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다. 아마 다이온에서도 이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파멸인을 전진시키는 것 말고, 살아있는 사람으로 구성된 군대를 어떻게 여기로 전진시키는가 하는 것.

가혹한 기후는 둘째치고, 북극을 통과해서 보급과 항공전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그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

다이온의 방어를 분쇄하고 상륙에 성공, 교두보를 확보한다 해도 여기서 고려나 몽골의 중심지까지 또 어떻게 보급을 이어나갈 것인가.

어찌어찌 카라코룸을 함락시킨다 해도, 그 남쪽 동명이나 칸발리크 같은 또 다른 중심지들까지는 또 한참 멀다.

앞서 가정했던 것과 같은 문제가 멕시카군 앞에도 닥쳐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멀더라도 태평양을 돌아서 오면 어떨까.

당연히 거리는 극북을 관통하는 것보다 늘어나며, 늘어난 거리만큼 선박 운용에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난다.

전투함이든 수송함이든 게걸스럽게 기름을 먹어 치우는 것으로는 따를 병기가 없으니까.

태평양을 통과할 때는 멕시카의 전쟁 수행 능력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멕시카의 외교력도 시험대에 올라간다.

일본공화국이 패권을 쥔 태평양 서부를 관통해 다이온을 노릴 경우, 필연적으로 일본과 충돌하게 된다.

멕시카의 함대가 고려를 칠 테니 일본 근해를 지나가도 이해해 달라, 이런 말을 순진하게 받아줄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일본공화국으로선 당연히 이를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전쟁에 돌입할 것이다.

해전에서 몇 차례 졌다고 항복할 나라도 아니니, 굴복시켜 길을 열게 하려면 본토에 직접 상륙해 완전히 쓸어버리기까지 수년의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 전쟁을 수행한 뒤 멕시카에 다이온을 칠 국력이 남아 있을까?

고려도 바보가 아니다. 일본이 멕시카와 싸우는 동안 인적 지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물적 지원을 아낄 리 없다.

즉, 멕시카가 광활한 바다 건너로 온 함대를 밀어 넣더라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단 말이다.

그럼 멕시카에겐 일본과 제휴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일본이 멕시카의 제안에 응할까? 일본공화국은 다이온도 아니고 멕시카도 아닌 독자적 노선을 걸으며 그 어느 쪽과도 군사적 제휴로 나아가려 하진 않는다.

그 과정에서 일본공화국 특유의 짜증스러운 행보가 이어졌지만 어쨌든, 아직 일본공화국은 누구의 공격도 받지 않았다.

전쟁은 ‘거리’를 얼마나 많은 자원과 시간을 들여 극복할 수 있는가, 그에 따른 국력의 소모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의 문제다.

외교적 수단도 강압적 수단도 통하지 않는다면 멕시카 앞에 ‘거리’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게 된다.

다르 알 이슬람이 지중해 서쪽 끄트머리에서 힌두 아대륙에 이르는 긴 거리를 감당하지 못해 멸망했다.

태평천국이 몽골과 고려, 버마에서의 지속적인 소모를 견디지 못해 멸망했다.

로마 제국과 멕시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길이 제시되었다!

이 세상에 불쑥 대가리를 들이미는 혁세주처럼, 고려-다이온의 중심부에 기습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면?

단순 타격이 아니라 권력 중추에 대한 참수 작전을 성공시켜, 다이온이라는 국가 전체에 대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 공격 자체로 ‘거리’ 문제가 단숨에 극복된 것이면서 동시에, ‘거리’를 돌파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공격 후보가 한정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연구원들의 추측이 맞다면, ‘문’은 한 번 열렸던 곳, 다이온의 경우엔 칸발리크에 열 수 있을 것이다.

-칸발리크로 단숨에 군대를 진주시킨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한 개선이 이루어져야겠지만,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효과는 말로 표현할 수 없겠지.

인류의 전쟁사를 완전히 뒤바꾸리라.

적국이 군대를 어떻게 집결시키고, 어떻게 국경으로 전진 배치하는가, 함대와 항공기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지금까진 그런 것들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면, 이후로는 갑자기 국가의 중심부에 튀어나오는 적들을 경계해야 한다.

물리적 거리와 보급로를 무시한 전쟁은 인류가 전혀 체험해 본 적 없는 것이다.

신수덕은 상상은 그쯤 하기로 했다.

딱 알맞은 시점에, 고국에서 연락이 왔다.

“넓게 보면 이 늙은이도 전우에 들어가나? 아니면 전우의 배신자라고 해야 할까?”

류성일이 보낸 짤막한 메시지 안에는, ‘귀국’이라는 탐스러운 미끼가 흔들리고 있었다.

***

“이 노인네는 자기가 우릴 조종할 수 있다고 의기양양해 있겠군.”

지난 3년 사이에, 세계 각지로 도망쳤던 부하와 동지들이 하나둘 콘스탄티누폴리로 모여들었다.

산동을 탈출했던 모든 이들이 신수덕에게 온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전향해서 미리안 정권의 하수인으로 사는 인간도 있고, 끝내 잡혀 죽은 사람도 있으며, 아예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은거를 선택한 이들도 있다.

애초에 신수덕은 인간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명백히 드러난 사실만을 믿었다.

그는 마음과 행동이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행동한다면 마음이 있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마음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지금 자신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신뢰를 느낀다면 그것은 여기 와 있다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총독 각하께선 이따위 얕은 수작에 넘어가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시간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 집단도 단련하는 법이다. 여기 모인 이들 중에는, 내전 전 신수덕에 밀리지 않는 지위에 앉았던 이들도 있지만, 지금은 다들 부하처럼 행동한다.

신수덕을 정점으로 하는 일종의 조직 체계가 갖춰진 것이다.

“……이용해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신수덕의 서늘한 눈길이 방금 말을 마친 부하에게로 향했다.

시선이 옮겨가는 그 경로상의 모든 이가 살짝 몸을 떨었다. 시선만으로도 두뇌를 헤집고 생각을 엿보는 듯한 감각.

그 감각이 신수덕을 두려워하게 한다.

두려움이 지나치면 존경으로 변한다. 그것을 경외라 한다.

신수덕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제는 사라진 식민지의 ‘총독 각하’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옳은 말이다. 우리 쪽에서 역으로 이용할 가치는 있지.”

산동을 탈출해 망명길에 오르던 때, 신수덕은 부하들에게 언젠가 귀국할 날을 대비하라 말했었다.

그때 몰래 신수덕의 망명을 도왔던 게레센제는 비참하게 죽었다.

고려와 손잡고 산동 토벌에 뛰어들었던 울제이도 칸발리크 어딘가에 구금된 신세다. 아마 평생 담장조차 넘지 못하겠지.

고려의 정치 상황도 재미있게 돌아간다.

미리안의 연인이자 칼인 주견하는 뭘 어떻게 잘못 처신했는지 실각해버렸다.

미리안은 권력을 더욱 확대하려고 새로운 업적, 몽골 병합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결국 허동주가 제시한 길을 걸어갈 자들이, 어리석은 망집에 사로잡혀 벌인 내전이었다. 이제 그 복수를 하러 고려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뜨기는 한다.

“류성일의 바람은 우리가 미리안을 제거해주는 것이고, 그 대가로 우리의 귀국을 ‘국민 화합’이라는 구실로 허락해주겠다는 건데…… 그 늙은이의 성격상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지.”

신수덕은 몇 번인가 마주쳤던 류성일을 떠올린다.

허동주와 미승휴의 서열이 정리되기 전에도 그랬지만, 각자 태사와 문하시중으로 관계가 정리된 뒤에도 양측의 견제는 여전했다.

두 집단의 갈등은 단순히 우두머리끼리의 권력 다툼이 아니라, 고려라는 나라가 품은 좀 더 깊은 문제에 뿌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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