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2)
“최효윤 중장 각하!”
그녀가 찻집 안으로 들어서자 줄줄이 일어나 경례를 올려붙이는 장교들이 보인다. 이들이 바로 신진 장교들이다.
효윤도 리안의 측근이기 때문인지, 이들은 그녀 역시 ‘신진’ 군인의 거두로 취급하는 듯했다. 그들의 모임에 초대받은 것도 그래서인 것 같고.
“누추한 곳으로밖에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 다들 앉지. 요즘 시국엔 오히려 적절한 곳이야. 괜히 ‘방탕하다’고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면 곤란하니.”
‘신진’ 세력을 걱정한다는 듯한 말로 이미 그들 속에 녹아든 듯한 인상을 준다.
뭐 그런 의도가 아니라 해도 술이 들어갔다가 괜히 사고라도 나면 난감하다. 이들의 나이는 효윤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정도.
술을 마시고 울분을 토해내다 불온한 말을 내뱉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제시킬 역량이 아직은 부족할 것이다.
‘장성’으로 몇 년을 살았고 정계 핵심층과 오래 교류해 온 효윤이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자제심을 얻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들 앉자마자 민감한 이야기가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주 청장 각하가 물러나신 일에 대해,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습니까?”
“우리 신진 장교들이 한직으로 밀려나지 않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이 주 청장 각하십니다. 그런 분을 위해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의 입지도 불안정해질 겁니다.”
신진 장교는 분명 미리안에 충성하는 군인으로 양성된 자들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들은 견하의 은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 입장을 지지해주시는 최고회의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만, 별다른 수는 없는 듯합니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자고…….”
그런가.
제국최고회의 의원 중 ‘신진’이라 불리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었나.
신진 의원들의 뒷배는 견하다. 견하는 제국입헌당의 젊은 당원들을 동원해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이 신진 의원들을 떠받쳐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신진’은 이름뿐인 집단이 아니다. 견하라는 구심점을 통해 하나로 묶인 집단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어떤 장교의 말에, 효윤도 귀를 기울였다.
“정치감독청에선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이 대거 잘리긴 했는데, 남은 국장들도 주 청장의 심복이랍니다. 그 중 친위국장 원동인 밑으로 해고된 직원들이 다시 모인다고 합니다.”
“아니 그럼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다가 장교들은 입을 다물고 효윤의 눈치를 살폈다.
은밀히 세력을 모은다. 그 말은 자연스럽게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주견하가 쿠데타를 계획한다면 자신들도 부르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 최효윤 중장도 그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효윤은 일단 고개를 저었다. 이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주 청장의 태사 합하를 향한 충성은 절대적이지. 쿠데타를 강요받아도 거부할 사람이야.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공백 때문에 발생할 다른 변란을 견제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추측하는 투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효윤의 위치 때문에 그 말에는 상당한 무게가 있었다.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긴 이 기회를 틈타 주 청장 각하께서 올린 법안을 무산시키려는 자들도 있으니까요.”
“법안뿐이겠습니까? 우리 ‘신진’에 대한 견제도 들어올 겁니다.”
“평소 자기네는 ‘정통 과정’을 밟아 온 장교고 우리는 뜨내기, 가짜 장교라 취급해 온 놈들이니 말이죠.”
“우리야말로 태사 합하, 나아가 황제 폐하의 근위 세력인 것을…….”
지금 오간 말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는 기존 장교들과 신진 장교들 사이의 벽이 두껍고 높다는 것. 신진 장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지만…… 글쎄, 기존 장교들도 이 신진 장교 양성은 정부가 지나치게 군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침해한다는 불만을 품고 있다.
둘째는 이 ‘신진’의 자긍심이 상당하다는 것.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충성파라 여긴다. 그 충성이 적절한 지위로 보답받지 못한다면, 이들의 반응은…….
“중장 각하, 불손하지만 질문 하나 올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각하께서도 처음에는 합하의 경호원으로 발탁되셨고, 그에 따라 처음에는 대령 계급을 받으셨다 들었습니다. 또 내전 중에 바로 중장으로 진급하셨잖습니까.”
“나한테는 없었냐는 말이지.”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아니, 하급자에게 참고가 되는 조언을 해주는 게 상급자의 의무니까. 그래, 내가 태사 합하와 숙식을 함께하는 경호원이니까 대놓고는 못 하지만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들은 있었지. 가짜 군인, 계급장 소꿉놀이…… 주 청장도 처음엔 그런 취급을 받았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극북을 돌며 그쪽 방위군에게 인정받은 효윤과 달리, 견하는 여전히 권모술수로 얻어낸 준장 취급을 받는다. 그런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난 게 구종환 사건이다.
“완전히 없어질 수야 없겠지만, 누그러뜨릴 수는 있지. 실력으로 입증하는 거야. 주 청장도 나도 내전, 칸발리크 사태에 투입되고 전공을 쌓으면서 계급 관련 뒷공론이 많이 줄었으니까.”
“……역시 그렇습니까.”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이들도 실력을 입증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건가.
다른 장교가 말을 받는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가서 싸우고, 전공을 세우고 실력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기회.
군인에게 있어 실력을 입증할 방법은 무엇일까?
행정이나 훈련에서도 입증할 수 있겠지만, 그게 실력으로 인정받으려면 보통의 성과여선 안 된다.
그리고 보통이 아닌 성과를 그 분야에서 거두는 건 극히 소수다.
여기 있는 모두가 실력을 입증받을 기회는…… 나라의 큰 변란, 전쟁 같은 것 정도겠지.
효윤이나 견하, 심지어는 태사인 리안도 내전을 지휘하며 애송이가 아님을 입증했고, 황제 루우도 산동 전선에 나가 그저 귀하게 자란 공주님이 아닌 전사임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나갈 전장은 어디인가……?
“‘예방 전쟁’ 이야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효윤도 조유관이나 태주갑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다.
다른 장교가 눈을 빛내며 그 말을 받는다.
“멕시카가 태평양을 건너와서 일본을 병합하고 우리의 위협이 되기 전에, 혹은 일본이 멕시카와 손잡고 길을 터주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일본을 쳐야 한다는 이야기 말이군요.”
“해군 확장을 서두르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습니까?”
“단기간에 배수량을 늘린다 해도 일본의 해전 역량을 따라잡긴 어려우니, 해군을 보조할 공군의 확충도 진행되고 있죠.”
이날의 대화는 젊은 장교들이 약간의 불만을 토로하고, 효윤이 대충 맞장구쳐주는 선에서 끝났다. 별달리 대단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아직 신진 장교들은 그 정도 영향력은 없으니까.
그러나 효윤은 호텔이 아니라 태사부로 차를 돌리라고 운전병에게 명령했다.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다.
기존 장교와 신진 장교의 ‘경쟁’ 분위기가 과열되어, 마침내 전공을 세우기 위한 ‘전장’을 요구하게 된다면?
방어하는 쪽이 된다고 해도 전쟁은 달가운 일이 아니지만, 전쟁이 우리의 일본 공격으로 시작된다면 그거야말로 악몽이다.
외교의 파탄은 피할 수 없고, 파탄된 외교는 교역의 파탄으로 이어지며, 교역의 파탄은 경제의 파탄으로, 경제의 파탄은 보급의 파탄으로, 보급의 파탄은 전략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한 사람의 장성으로서, 나라가 그런 상황에 몰리는 것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
***
황제와 고려 태사의 칸발리크 기습 방문.
두 사람 모두 칸발리크에 들어온 것은 게레센제와 울제이의 몰락, 동군연합의 성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칸발리크 방문의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동군연합을 넘어선 두 정부의 결합…… 을 논의하러 왔다곤 하지만, 실상은 어떤 구상인지 들려주러 왔을 뿐이다.
이러저러하게 결정되었으니 따를 준비를 하라, 는 통보.
미리안이 혼자 왔다면 몽골 정부에서 항의도 하고 통합 과정에서 자기 몫도 더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안이 황제를 앞세우고 칸발리크에 입성한 시점에서 저항은 무의미했다.
동군연합 성립 이래 3년. 시반 타이시의 정부도 혁명가 집단의 틀을 점차 벗어나고 있었지만, 미리안의 노련함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했다.
혁명당을 이끌던 역량만으로는 7년에 걸쳐 제국을 경영해 온 리안을 당해내긴 어렵다. 안세규가 출중한 능력이 있어도 미리안을 당해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년간 황제의 신뢰를 얻어보려고 개수작들 부려댔지만, 나한테는 그럴 수 없을걸.
견하를 견제해본답시고 정치감독청의 ‘지나친 처사’에 대한 정보를 동명 정계 곳곳에 뿌린다든가 하는 짓뿐만이 아니었다.
교통이나 경제 측면에서 몽골과 고려의 분리를 조장할 법안을 은근슬쩍 올린다든지, 역외사국 혹은 역외오국에 대해 고려와 충돌하는 정책을 내놓는 일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대원철도주식회사는 두 나라의 경계에서 열차가 검문 없이 신속히 통과하길 원했지만, 시반 타이시 정권은 동군연합 이전의 검문 절차를 유지하도록 한다든가.
한족 특구에 주둔 중인 고려 장교들에게 대민 친화 명령이 내려가면 몽골 쪽에서는 자기네 장교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협조에 응하지 않게 한다든가.
물론 소심하기 짝이 없는 저항이었지만, 저들은 최근 견하의 해임이 자기네 견제책의 성과라 쾌재를 불렀을 터.
주제 파악 좀 하라고 황제와 고려 태사가 직접 칸발리크에 왔다.
그런 저항으로는 고려와 몽골의 통합 시기를 늦출 수 없다는 깨달음을 줄 것이다.
루우가 어좌에 앉아 말없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리안은 서류들을 시반 앞으로 내밀며 일방적으로 말을 꺼냈다.
“몽골 정치인들이 일방적으로 자리를 내놓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몽골의 오랜 정치적 전통을 존중하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제국최고회의와 쿠릴타이는 양원제 형태로 결합할 겁니다.”
이는 리안이 얼마 전에 해임한 천손민족협회 출신, 한재연의 구상에 기반한 것이다.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과 그 후속 계획들……. 천손민족협회를 잘라낸다 해도 그 영향력이 제국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혔는지 리안은 통감했다.
이번만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는…….
“……양원제 형태로 결합한다면?”
착잡한 얼굴로 묻는 시반을 향해, 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름을 ‘연방의회’로 바꿀 겁니다. 쿠릴타이는 그대로 연방의회의 상원, 즉 참의원이 됩니다. 제국최고회의는 하원, 즉 민의원이 되고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통합에 따른 임시적 배치일 뿐이다. 1937년 총선거를 거치고 나면 다이온 전역에서 선출된 참의원과 민의원이 민족과 관계없이 양원에 섞여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협력회의는 그 역할을 마칠 겁니다. 출석한 모든 나라에 연방의회에 보낼 대표단을 선출하라고 알리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