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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73화 (473/541)

황국으로 가는 길(10)

고려, 몽골에 있던 다양한 자본들이 옛 키타이와 낭키아스로 유출되어 ‘농업자본화’한다.

물론 고려와 몽골의 자본가들에게 다이온의 토지 개혁, 한족 지주 제거는 하나의 기회다.

한족 지주들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이려고 헐값에 땅을 내놓는다. 그런 땅은 가난한 한족 농민이 아니라 고려 및 몽골 자본가의 손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즉 개혁이 한족 농민들에게 땅을 분배하는 게 아니라, 한족 지주를 고려인 지주, 혹은 몽골인 지주로 교체하는 결과만 낳은 것이다.

“그따위 수작을 부리는 자들이 개혁의 취지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을 겁니다.”

‘몰랐어요’라는 변명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이 최근 주견하와 그 휘하 조직의 업무 성향이었다.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보면 공명정대하다고, 법을 엄하게 집행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법을 어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저렇게 강경해서야……. 당장 우려를 표할 순 없겠군.’

주견하와 정치감독청이야 자기네 초법적 권한이 어디까지나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주장하겠지만, 글쎄, 그 말에 과연 모두가 동의할까.

“국가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기업이 있고, 자유도 있습니다. 국가 위에 기업의 이윤과 자유를 들이밀려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허동주에게 동조한 자들과 똑같이 처단해야 합니다.”

지금 주견하가 말하는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정치감독청이나 권력의 중추부까지를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이것은 앞으로 ‘반역자’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박차를 가하겠노라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 ‘우리’가 고려 또는 다이온이라는 국가 전체를 의미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위험하다. 정치감독청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정치감독청의 의향에 반하는 모든 이를 ‘국가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미가 되니까.

위험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위험성이 3년 사이에 이토록 빨리 자라날 줄이야.

주견하라는 나무는 거목으로 자라기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향해 바르게 뻗은 나무로는 자라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그야 나무를 흔드는 폭풍이 있기 때문이다.

세규는 주변을 돌아봤다.

몇몇 심약한 의원은 주견하의 강경한 발언에 하얗게 질려버렸고, 또 어떤 이들은 이 기회에 주견하를 등에 업고 자본가를 때려잡을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세규는 주견하의 말에서 다른 걸 느꼈다.

초조감.

시간제한이 있는 업무를 맡은 이 특유의 초조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세규는 그 조초함의 정체를 안다. 세규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든 아니든 분별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이온을 덮쳐오는…… 아니,

세계를 덮쳐오는 위기의 정체쯤이야 간파하고 있겠지.

멀리는 유럽의 로마 제국, 그 황제 벨리사리우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가 끝내 넘어간 뒤, 신성 제국과 로마 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유럽 대륙의 분쟁은 일단락됐다.

순진한 이들은 그 ‘국경 재조정’이 앞으로 펼쳐질 평화 시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세규를 포함한 ‘지각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건이 다가올 전쟁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아주 잠깐, 전쟁 발발 전에 준비할 시간을 번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새 전쟁을 로마 제국이 일으키지 않더라도, 일단 이렇게 불이 붙은 유럽의 분위기를 틈타 무력으로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자는 많았다.

당장 신성 제국만 해도 브리튼과의 오랜 견제 관계를 청산하고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는 중이다. 브리튼 역시 에이레의 독립을 존중하면서 신성 제국이 내미는 손을 반갑게 맞잡으려 하고.

신성 제국의 보복 혹은 반격, 그 뒷배가 되어줄 브리튼. 이들이 조금만 마음을 잘못 먹으면 유럽은 동서 대전쟁의 무대가 되고 만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마자르는 또 어떤가.

그들로서는 나폴레옹 1세의 숨통을 끊을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 모든 것을 망쳐놓은 로마 제국도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러나 신성 제국 황위와 알레마니아의 주도권을 모조리 빼앗긴 뒤에 그들이 의지할 언덕도 로마 제국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당장 미워할 쪽’으로 나폴레옹의 보나파르트 황가를 골랐다.

지난 사태에서 로마 제국이 자신들의 발흥지인 이탈리아를 수복했듯이, 마자르의 합스부르크도 한때 ‘오스트리아’라 불리던 땅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나아가 나폴레옹이 강탈한 신성 제국의 황위도.

이에 호응하듯 알레마니아 일대에선, 그간 주목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민족주의 운동이 세력을 크게 불렸다. 합스부르크가 황실이던 시절 그들은 제국의 지배 민족이었지만, 보나파르트의 찬탈 이후 그 지위를 프랑스인들에게 빼앗겼다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알레마니아뿐만 아니라 북방의 게르마니아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동쪽 국경 너머의 프로이센을 민족 운동의 주축으로 삼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당장 베를린의 호엔촐레른 왕가가 호응한 건 아니지만, 이들도 이탈리아 사태 같은 기회가 한 번 더 온다면 망설이진 않을 것이다.

게르마니아의 민족 운동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더 있다면, 알레마니아까지 포함한 ‘범 게르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지역의 게르만 민족이 하나가 되어 들고 일어서야 한다는 말인데, 보나파르트 황가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협적이다.

두 지역의 민족 운동이 활력을 얻은 계기가 바로 이탈리아 사태이니, 신성 제국은 게르만 민족주의를 억누르면서 동시에 이탈리아 문제에 다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가, 유럽에서 아직 전쟁의 불길이 사그라지지 않은 이유이다.

주견하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고려의 자본, 몽골의 자본, 다이온의 자본은 국가의 연방화 사업을 방해하는 데 쓰여선 안 됩니다. 그 자본은 다가올 위기를 타파할 군수산업에 돌아가야만 합니다.”

일단 한 번 한족의 지주가 된 자본은, 거기서 거둔 이익을 고려로 돌리지 않는다. 그들은 옛 키타이와 낭키아스에서 ‘재투자’, 즉 더 많은 땅을 사들여 더 큰 지주가 되는 데 힘쓸 것이다.

자연히 ‘군수산업’에 동원되어야 할 자금이 한족의 농지 위에서만 돌게 된다. 주견하의 지적은 옳다.

“……하, 하지만 우리 자본가들이 한족의 지주로 들어선다면, 다이온의 한족 장악력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조심스러운 반론을 제기한다. 세규는 조금 놀라 그 발언을 한 자를 바라봤다.

고려국민당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의원은 제국입헌당의 이른바 ‘원로’에 속하는 사람이다. 최근 설립된 농업회사에 주주로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자살이나 다름없는 말을 내뱉다니.

아니나 다를까 주견하는 아까보다 더욱 격노를 드러내며 탁자를 내리쳤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반역을 입에 담는 자는 누구인가! 반역 행위에는 의원의 면책특권 따위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가! 즉각 처형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겨울에 문을 열어젖힌 방처럼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씹어먹을 듯이 회의장에 앉은 의원 전부를 노려보다, 주견하는 다시금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몽골과 고려의 자본이 한족 지역 농토에서 행하는 ‘재투자’는 한족 농민을 소작농으로 늘려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고려의 자영농이 해당 지역에 정착하는 사례는 드물고, 설령 정착하더라도 그 수익은 미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자본의 한족 지역 투자는 ‘식민화’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공손한 어조로 돌아가긴 했지만, 누구도 주견하의 마음까지 공손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고하는 듯하지만, 저것은 통보다. 이러저러하니 우리는 반역자를 처단한다. 그렇게들 알고 있어라…… 라는 거다.

문제는 주견하의 말이 ‘옳다’는 점이다. ‘식민’은 고려나 몽골인이 그 땅으로 건너가 정착하고, 인구를 늘려나가면서 ‘본토화’를 진행해야 의미가 있다.

그렇게 해야 식민지는 점차 제국이 ‘쓸 수 있는 땅’이 되고, 본토는 본토대로 인구 과잉에 따른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식민화는커녕 식민지 주민의 생활 기반을 흔들어 치안을 불안케 한다면…… 주견하의 말마따나 반역이나 다를 바 없다.

‘나중에 또 한족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군인들이 죽어 나가도 당장 내가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떠랴.’ 그런 태도가 반역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한족 지역의 ‘연방화’도, 군수산업 분야의 투자 확대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국책 사업입니다. 의원님들께서는 당을 초월해 국가적 위기를 돌파할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럴싸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결국 정치감독청에서 제출한 법안에 동의해달라는 말이었다.

***

“이런 횡포가 있을 수 있습니까!”

당사로 돌아온 세규는 담담히, 고려국민당 지도부의 분노에 찬 푸념을 듣기만 했다.

“법의 취지가 옳고 그르고, 그런 걸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어디서 행정부의 관료가 감히…… 제국최고회의 의원들을 윽박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확실히 주견하의 행동은 문제가 많았다.

이 나라가 아무리 민주주의를 발전시켜나가고, 겉으로나마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진다 해도, 결국 독재 권력이 모든 걸 찍어누르는 나라다…… 이런 평가를 해도 할 말 없는 행동이었다.

“주견하 청장만의 뜻이었겠습니까? 결국 그자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리 날뛸 수 있는 것이지요!”

배후에는 미리안 태사가 있다…… 즉 주견하가 내놓은 법안도, 주견하가 의원들을 대하는 태도도 미리안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세규는 당장 다른 의원들의 말에 반박하진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보았다.

즉, 주견하의 독단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주견하의 행동에는 초조감과 더불어, 또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자신이 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그러나 이 의무감이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감각으로 변질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세계 각지 수많은 혁명가가 바로 그 의무감과 자만의 모호하고도 얇은 경계를 넘어서서 독재자가 되곤 한다.

주견하 역시 독재자…… 아니, 그러기엔 아직 권력이 작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찾자면, ‘후계자 놀이’일까.

물론 자각한 단계는 아닐 것이다. 그런 오만을 자각하고서도 행동을 그치지 않을 만큼 어리석은 인간은 아니니까.

권력의 무서운 점은 그 독에 물들어가면서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행동은 이미 오만해져 있는데, 자신은 여전히 겸손하다고 착각하고 마는 것이다.

오만하다는 손가락질도, 자신이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할 악평이라 여기게 된다.

주견하가 좀 더 나이를 먹는다면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는 권력이 너무 일찍 주어졌다.

만약 그의 행보가 미리안이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다면…… 몰락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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