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으로 가는 길(7)
중립을 지키는 척하면서, 언제든 턱밑에 칼을 들이댈 수 있는 나라.
황해 연안에 집중된 고려 및 다이온의 산업을 생각해보면 이만한 위협이 또 없다.
군 일각에서 ‘일본 열도 선제 점령’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도 ‘위협’과 ‘전쟁’은 다른 이야기죠.”
위협이 위협으로만 남아 있는 한, 즉 전쟁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한 희망은 있다. 대화의 여지도 있다.
“우리가 위협에 반응하는 듯한 모양새가 영 나쁘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걸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다이온 체제의 안정.
그것은 내부와 외부 모두의 풍파를 가라앉혀야만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내적으로는 개혁을 서두르고, 외적으로는 멕시카와의 ‘수교’ 문제를 꺼내 들었다.
“대사관이 전쟁을 완벽하게 막을 방법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전쟁에 이르는 길까지 몇 겹의 막을 걸어둘 수는 있겠죠.”
분위기가 전쟁으로 치달아갈 때 최소한 대화를 시도해볼 수라도 있다. 그것이 소용없었던 일이라는 결론이 날지라도, 혹시 모를 ‘극적 타결’을 위해 해보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조유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미리안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평화에 이르는 길까지 가기엔 넘어야 할 언덕이 너무 많았다.
당장 일본공화국에 중재를 요청한다 해도 그들이 성실하게 응해줄지도 의문이다. 고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외교적 이익’ 때문에 고려와 멕시카 사이를 이간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저 전쟁까지 일직선으로 달려 나갈 순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수밖에.
***
내전에서의 승리, 또는 멕시카 자주국에 의한 아즈텍 대륙의 재통일.
어떻게 표현하든 그 최고지도자 쿠에츠팔린이 흔들 수 없는 업적을 세웠음을 드러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불만 많은 변두리 극우 집단의 지도자에 불과했던 그가, 어느새 아즈텍 대륙 전체의 정점에 선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전에서 승리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았건만, 학자들은 벌써 쿠에츠팔린이라는 인물과 승리 요인을 분석한 논문 및 저서를 내놓기 시작했다. 몇몇 대담한 기자들은 이 극단주의 독재자를 직접 취재해보려 했다.
야망이란 서 있는 자리에 비례해 점점 커지는 법이라서, 쿠에츠팔린 역시 이제는 한 나라의 지도자를 넘어서서 국제무대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쿠에츠팔린은 취재에 선뜻 응해, 한껏 세련된 외양과 예의로 자신을 선전하려 시도했다.
“독재자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쿠에츠팔린 본인은, 자신을 이 지위까지 오르게 한 데에는 인내심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대로 그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에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세간의 평가대로, 저는 독재자가 맞습니다. 오랜 아즈텍 연방의 민주주의적 전통을 끝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평가를 부정할 수는 없죠.”
지나치게 살이 찌면 탐욕스러워 보인다. 독재자가 되고 나서 사치만 부린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마르면 표독스러워 보인다.
그렇기에 쿠에츠팔린은 중후한 턱선이 유지되도록, 몸이 옷맵시를 제대로 살리도록 꾸준히 단련해왔다.
도저히 안하무인 독재자로는 보이지 않는 인상의 사내가 웃으며 선선히 인정하니, 기자 입장에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건 다소 위험한 발언이 아닐까요? 멕시카 자주국의 정통성 측면에서 말입니다.”
“어떤 나라든, 왕조든, 그 시작이 있습니다. 첫 1년이 없이 시작부터 100년째에 접어든 전통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기존 전통을 무너뜨렸지만, 새로운 전통을 세우려는 겁니다.”
“그 새로운 전통이 극단적 민족주의, 최고지도자의 종신 독재체제입니까?”
허허, 하고 다시금 웃음을 흘린다. 그것이 비웃음처럼 들리지 않도록, 쿠에츠팔린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를 유지했다.
이 취재에 응하기 전까지 얼마나 연습을 거듭했던가.
“거기에는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민족주의를 내세운 것은 맞지만 그 민족주의는 편협한 것이 아닙니다. 기자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우리 멕시카 자주국의 ‘민족’은 무엇입니까?”
“그야, 멕시카 민족, 혹은 아즈텍 민족……”
“우리는 ‘대륙 원주민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쪽과 북쪽의, 너무 오래전에 갈라져서 언어도 풍습도 큰 차이가 나는 민족들까지 하나로 끌어안는 개념입니다. 민족주의라는 표현을 빌렸지만, 실상은 대륙 원주민의 공동체주의에 더 가깝지요.”
실제로 태평양을 건너온 일본계의 경우 이 ‘대륙 원주민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멕시카 자주국이 동해안 일대의 ‘유럽계’에 대한 차별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유럽 각국이 ‘신연방’을 지원하다 철수한 이후 그 보복이 극심하리라는 우려도 있고요. 실제로 그 우려 때문에 망명길에 나선 유럽계 주민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오해를 빚게 되어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새 정부가 유럽계 주민들을 불안하게 한 것은 분명 우리의 책임이지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기자님. 생각해보십시오. 유럽계 주민들로부터 ‘주도권’을 빼앗는다는 말은 그들에게 본래 ‘주도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유럽 각국이 아즈텍 대륙 동해안을 따라 긴 식민지를 건설한 이래, 많은 유럽인이 대서양을 건너왔다. 하지만 그들의 수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 와중에 유럽인의 노예가 된 유럽인도 적지 않았다.
돈을 쥔 유럽인은 소수 중에서도 소수였다.
“그 소수가 아즈텍 연방 전체의 경제와 행정을 주도한다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자님께선 유럽의 빈부격차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대공황을 통해 부끄러운 얼굴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는요?”
부드러운 질문이었지만 날카로운 반격이기도 했다. 기자는 대답을 피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최고지도자께선, 유럽계 주민 문제를 민족 갈등이 아니라 계급 갈등으로 보시는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즉 우리의 혁명은 대공황이 불러온 필연이지, 저와 동지들의 권력욕이 일으킨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대공황이 아니었더라면 쿠에츠팔린은 불평불만이나 구시렁거리는 사내로 남은 평생을 보냈을 테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호데노쇼니 인민공화국의 혁명과 별 차이가 없는, 좌익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역시 오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왜 우리가 내전을 겪어야 했겠습니까? 저에게는 극단주의 독재자라는 평가가 내려졌지만, 저는 혁명을 시작한 이래 극단주의와 결별하기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계속 오해라고 하시는군요.”
“오해를 풀기 위해 취재에 응했으니까요.”
“좋습니다. 극단주의와 결별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 오셨는지요?”
“우리가 회복하고자 한 것은 어디까지나 ‘균형’입니다. 빈부의 격차, 계급의 격차…… 궁극적으로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격차가 무한히 벌어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구 연방은 스스로 이런 멸망의 길을 걸어간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격차를 없애는 좌익 이념에 동의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겐 성장하는 민족자본도 있고, 또 유럽계 자본 중에서도 독점적이지 않은, 말하자면 균형을 지키는 자본도 있습니다. 이런 자본까지 모조리 해체한다면 그야말로 균형을 잃는 일입니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그런 정책을 펼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일견 극단적으로 보이는 멕시카의 정책들도 결국은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또한, 종신 독재체제라는 평가 또한 오해가 심합니다. 물론 앞서 인정했던 것처럼 제가 독재자인 건 맞습니다. 유럽 각국이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저는 조금도 존중하지 않습니다만, 평생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역할을 다하면 은퇴해야지요.”
“그 말씀을 보증할 것이 최고지도자의 선의 말고는 없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에서는 그것을 ‘임기’라는 제도로 보증합니다만, 멕시카 자주국은 주장하는 것처럼 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상시국에 대응한다고 지도부는 따로 임기도, 선출 원칙도 세우지 않았죠.”
“차차 자리 잡아 나갈 겁니다. 어떤 나라나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고, 그 시행착오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정성을 추구합니다. 제가 독재자가 된 것은 그런 배경을 감안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얻을 이야기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멕시카 자주국의 내적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세계 각국이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이기도 하지요. 멕시카의 대외 정책,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쿠에츠팔린은 질문을 받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기자님의 그 질문은, 범위를 확실히 해야겠습니다. 외교에는 군사 정책도 포함됩니다만, 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극단주의적인 폭력 정권이라는 오해도 극심한 상황에서 군사 분야를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 봅니다.”
“오해가 심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군사 정책을 제외한, 멕시카의 대외 정책에 대해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늘 ‘피를 흘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길 바랍니다. 불가피하게 피를 흘렸다면 더는 피 흘리길 바라지 않고요. 멕시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제도적, 사상적으로 많은 이들과 다른 것은 맞지만 또한 상식적인 선에서의 공통점도 많습니다. 우리도 평화를 바랍니다.”
“그건 내전 시기 국제적 개입에 대해서 보복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군사 정책은 민감한 문제라 말을 아끼겠습니다만, 이것으로 답변을 대신할 수 있겠군요. 적절한 사과와 성의를 보인다면 우리는 언제든 평화 수교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요. 에스파냐가 그 예시입니다. 우리는 에스파냐가 소위 ‘신연방’에 ‘의용군’을 파병해 내전에서 더 많은 멕시카인의 피가 흐르게 한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며 쿠에츠팔린은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에스파냐령 브라질 식민지 유지를 보장해주었습니다. 브라질 식민지의 치안 유지를 방해하지도 않겠다 약속했죠. 이 모든 것은 에스파냐가 우리 대륙의 내전 개입을 사과하고, 평화를 바라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에스파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적용됩니다.”
“구 바라트 연방, 세계혁명연합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평화를 바란다는 메시지만 보낸다면 얼마든지 수교할 수 있습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평화로운 통상의 무대로 만들어 함께 번영할 수도 있지요. 우리의 평화 정책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다소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자신의 말을 받아 적는 기자를 보며, 쿠에츠팔린은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했다.
그 미소 너머의 생각을 측량할 수 있는 인간은 전세계에서도 아직 소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