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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69화 (469/541)

황국으로 가는 길(6)

“무리한 개혁인가 아닌가, 그건 지금 시점에서 따질 일은 아니야.”

재연은 수영에게 리안을 압박할 ‘첫 번째 상황’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이어나갔다.

“중요한 점은 어쨌든 개혁에 반발하는 무리가 있다는 거지.”

“그 반발을 억누르려고 태사는 정치감독청장을 응천으로 보냈다, 마침 우리 청장님은 원동인을 데리고 갔고.”

“카라코룸 천도는 견하도 바라는 바니까.”

우정이 변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재연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정이 갈망을 가로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재연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애초에 견하도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을 자신의 세를 불리는 데 써 오지 않았던가.

세력 확장에서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즉 ‘머릿수’를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이 채워주었다.

그뿐이랴. 견하는 허동주 이하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이 쌓아 온 조직 구성의 요령도 흡수하지 않았던가.

살아남기 위해, 역적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그들은 7년 동안 실로 헌신적이었다. 견하의 작전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제 그 헌신의 보상을 요구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들이 제국입헌당의 애송이 청년 당원들로 입당한 지도 4, 5년이 지났다. 그 시간은 보상을 요구할만한 자격과 실력을 쌓기에 충분했다.

물론, 재연은 시건방진 짓거리에 목숨을 걸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그간 고생한 데 대한 보상 요구는 ‘견하가 바라는 방식’과 일치하도록 조정했다.

“견하와 원동인이 벌이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카라코룸 천도 여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거야.”

“뭐 그건 지켜봐야겠지만…… 태사를 압박할 ‘두 번째 상황’은 뭐야?”

“내전 이래,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황제와 태사는 마치 한 몸과 같은 동지로 자리 잡았어. 두 사람은 사적으로도 친구 사이고, 서로의 활약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는 제국의 대들보라고들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상상력이 빈약해서가 아닐까?

“황제 없는 태사 체제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야.”

미리안의 백부 미승휴가 억지로 끌어왔던 체제. 그 체제는 루우의 즉위와 함께 끝을 고했다. 사람들은 임시 조치에서 벗어나 정상화되었다고 인식할 테니까.

정상을 임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웬만한 비상사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태사를 배제한 황제 체제는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수영은 재연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진 못했다. 그의 말을 곱씹어보는 데 시간이 걸렸고, 이윽고, 그 의미를 알게 되자 숨을 삼켰다.

“황제와 태사 사이를 이간질하겠다는 말이야?”

“아마 그렇게 되진 않겠지. 두 사람 다 자기가 상대와 결별하면 그 이상의 타격이 없을 거라는 점은 잘 알고 있어. 내가 건드리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인식’이야.”

사람들이, 황제와 태사의 의견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믿게 한다.

사람들이, 황제가 태사를 배제할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사람들이, 황제가 태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통치할 수 있다고 믿게 한다.

“황제의 직접 통치체제를 촉구하는 시위를 조직해볼 순 있겠지.”

“……그게, 가능하겠어?”

“가능할까 아닐까는 사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굳이 대답해보자면 가능하다고는 봐.”

로마 황제 벨리사리우스가 그간의 입헌군주제를 철폐하고 직접 통치에 나선 지도 3년째에 접어들었다.

신성 제국으로부터 이탈리아를 빼앗은 이후, 서유럽 각국과의 외교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의 통치에 별다른 문제점은 없는 듯하다.

내외의 잡음으로 흔들릴 것이라던 일각의 예상과 달리, 벨리사리우스는 조용히 전제군주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벨리사리우스가 루우의 영향을 받았다면, 누군가는 또 벨리사리우스가 벌인 일에 영향을 받는다.

“그보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인식’이야. 그 인식이 ‘어디를 지향하는가’이고.”

카라코룸 천도, 황제의 직접 통치 모두 ‘연방’이 아니라 ‘단일국가로서의 다이온’을 지향한다.

카라코룸으로 다이온의 수도를 정함으로써 동명과 칸발리크에 각기 놓였던 정부는 하나로 통합된다. 하나의 정부는 다이온이라는 단일한 국가만을 대표한다.

다이온 ‘연방’이라는 체제 아래에서 ‘민족을 유지할 자유’를 누리던 한족에게, 단일한 국가의 철퇴가 내리쳐져야 한다. 단일한 국가는 그 자체로 한족의 민족 자치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시위에 깃발 하나 세우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생각은 많이 달라졌어.”

다이온 강역기.

다이온의 국토 모양을 그린 그 깃발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나뉠 수 없는 우리의 영토’라는 인식을 퍼트렸다.

그렇게 3년 만에, 한재연은 또 다른 인식의 단초를 흘려보내려 한다.

“문구 몇 마디 추가하는 것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기대해보자고.”

***

“죄, 죄, 죄, 죄, 죄송, 죄송합니다…… 우리는 시골 무지렁이라 뭣도 모르고 그저……”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누렇게 뜬 멍 자국과 딱지가 앉은 입술은 그들이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알려준다.

원동인은 그 한족 지주들을 조금이지만 동정했다. 당국에서 이들에게 구타를 가한 것은, ‘구타하는 정도로 겁을 주고 풀어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총알을 먹이면 될 일에 왜 힘들게 주먹을 쓴단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쉽고 편하게 가야 했을 사람들이 이런 고생을 했으니, 동정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해서 처형이 면제되는 건 아니니까.

“하하, 무지렁이라니, 겸손들이 심하군요. 당장 여러분 목숨도 고려어로 구걸하고 있고, 뭘 잘못했으며 어떻게 모면할지도 굴릴 머리가 있는데 말이죠.”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비아냥이든 어떠하랴. 지주들은…… 아니 여기서는 지주라기엔 그저 골병든 불쌍한 노인네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연신 원동인의 말이 옳다며 굽신거렸다.

“예, 예,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희가 잠깐이나마 미쳐서 마음을 나쁘게 먹었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뉘우쳤습니다. 성스러운 황제 폐하께서 베푸신 교화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원동인은 짐짓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응이 없자 지주들은 슬쩍 고개를 들어 고려에서 왔다는 이 젊은 관리의 얼굴을 본다.

“우리 폐하께서 베푸시는 교화의 빛은 닿지 아니하는 곳이 없소만, 교화되었다 해서 용서될 수 있는 죄가 있고, 또 없는 죄가 있지요.”

“……모, 목숨만은, 목숨만은 부디……!”

원동인의 빙빙 돌리는 말에서 죽음의 기척을 느꼈는지 지주들의 자세가 더더욱 처절해진다. 하지만 원동인은 그 모습을 보며 마치, 어린 시절 벌레를 갖고 놀다 죽였을 때의 재미 비슷한 것만을 느꼈다.

“우리는 참 당신들한테 많은 것을 베풀었는데 말이야. 그 전쟁을 벌여놓고도 ‘살아있을 수 있게’ 해주었고, 뉘우치기는커녕 반란까지 일으켰는데 자치를 줬어. 이젠 잘 살라고 개혁까지 선물해줬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지?”

지주들은 엎드려 벌벌 떨 뿐 말이 없다. 죽음은 피할 수 없이 목덜미까지 다가왔다.

“당신들 죄목은 반역죄야. 태사비방죄가 아니라. 그리고 우리 정치감독청은 역적들을 다른 절차 없이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본래는 루우나 리안, 견하 본인을 향해 기습적으로 가해지는 공격에 긴급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만, 견하는 이를 확대 해석, 적용했다.

개혁에 순응하는 한족 민중을 두고 ‘민족의 긍지를 잃었다’라는 식의 비판까지도 장차 반란을 다시 일으키려는 음모라 몰아붙였다.

이미 한 번 대륙을 뒤덮는 한족 반란을 겪어 봤던 사람들은 견하의 그런 극단적인 논리에 반박할 수 없었다. 누명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아도, 한족은 실제로 반란을 일으켰으니까.

-곰팡이는 티끌에서 시작해 온 집안을 뒤덮는 법이다.

그렇게 말하는 제국의 실세 앞에 누가 감히 한족 지주들의 발언을 감싸주겠는가.

여기에 더해 원동인 개인의 적대감도 한몫했다.

한족에 대한 그 적대 의식에는 분명 한재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고려나 몽골에는 한족 때문에 상을 당하지 않은 집안이 없다는 사실이 적대 의식의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원동인의 경우에도 한족에게 참혹하게 학살당한 친척 어른이 몇 명이고 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는 그런 사람들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한족 독립운동가들은 말한다.

30년이나 지났으면 이제 잊어버리고 미래를 지향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그 30년 만에 일어난 반란에 죽어간 군인도 있고, 그렇게 상갓집이 된 집안도 있다.

한족 반란은 ‘원한을 용서하고 잊는 것은 어리석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원동인은 굳이 말로 명령하지 않았다. 턱짓 한 번에 지주들이 끌려 나가고, 원동인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어느 구석에서 총살당했다.

그들의 집에는 손바닥만 한 종잇장 하나가 전해져 사형집행이 이루어졌음을 통보한다.

물론 사형집행으로만 끝나진 않는다.

처형된 지주의 자제들이 공직에서 일하고 있다면 퇴직이 ‘권고’된다. 또한, 친위국 직원들과 주둔 고려군, 몽골군이 지주의 자택으로 파견되어 ‘자산 압류’에 나선다. 명목은 ‘반역 행위 자금을 몰수한다’는 것이다.

대원철도주식회사가 만든 철도를 타고, 개혁의 가혹한 칼바람이 옛 낭키아스 각지를 파고든다.

***

개혁이 확실하고도 빠른 속도로 완성을 향해 간다는 찬사와, 미리안 정권이 지나치게 폭압적이라는 비판. 상반된 반응이 동명으로 올라왔다.

개봉을 중심으로 한 구 키타이 지역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제국최고회의에서 갑론을박이 오가는 상황과는 별개로, 태사부의 리안은 당장 그 문제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다시금 아즈텍 대륙과의 외교 문제가 들이밀어 졌기 때문이다.

“일본공화국을 중재자로 내세워서 멕시카 자주국에 수교 의사를 내비친다…….”

몇 가지 문제점이 예상되긴 하지만, 현재로선 그게 최선이라고 리안은 되뇌었다.

“주 청장이 했던 보고대로 일본이 멕시카와 일종의 ‘밀약’을 맺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들도 전쟁은 피해야 했겠죠.”

“그렇게 이해해줄 만한 일이면 좋겠습니다만…… 밀약 너머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는, 경계하셔야 한다고 봅니다.”

견하는 일본과의 협상이 결렬된 이래, 지속적으로 ‘일본이 멕시카의 앞잡이가 되었을 가능성’을 주장해왔다.

외무장관 조유관도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 주장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지 않음으로써 간접적인 지지를 보냈다.

“에스파냐의 사례를 보면, 확실히 그렇긴 하죠.”

에스파냐는 기존의 동맹을 배신했고, 그 결과 브리튼에만 의존하던 외교에서 벗어나 신성제국과 로마 제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으며 3년째 평화를 지켜오고 있다.

어느 쪽이 보복하려 들면 다른 한쪽으로 붙어버리면 그만이니, 참으로 지혜롭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그게 막상 당하는 입장이 되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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