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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63화 (463/541)

신을 단두대로 올려보내라(16)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대봉기와 이에 호응한 로마 제국의 군사행동은 유럽만 뒤집어 놓은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접촉해 보면서 사태를 지켜보던 동명시의 정계도 벌집 쑤신 듯 소란스러웠다.

각 당은 ‘조속한 평화 회복을 바란다’라고 의례적인 성명을 내놓았지만, 미리안을 비롯한 내각은 다른 계산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교종청 궤멸’이라는 사태는 상정하지 않았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사라지지 않겠지만, 혼란은 충분히 클 터.

교종이 세상을 떠났다면 콘클라베를 통해 새로 선출해야 하는데, 누가, 어디에서 모일 것인가. 그런 논쟁이 서유럽 사회에 퍼져나갔다.

전쟁이 벌어졌는데 지금 그런 논의를 해야 하는가, 각지의 성직자들이 일단 교구 내 신도들의 마음을 추스르는 게 먼저 아닌가. 이러한 주장 역시 또 하나의 논쟁이 되어 혼란을 부채질했다.

“로마를 정복하고 나면 어쩔 속셈일까, 벨리사리우스는.”

“아마, 자기가 직접 임명한 로마 총대주교를 임명하지 않을까요.”

고대 본토인 이탈리아의 회복을 원한다면, 역시 고대처럼 교종을 포함한 다섯 총대주교가 황제의 권위 앞에 고개 숙이는 체제를 만들려 할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뭘 이루겠다는 건지, 궁극적 목표까지는 도무지 짐작이 안 되지만.

뭐, 고려도 했던 일이다.

몽골 내전이 끝날 무렵, 반란군과 협력한 카라코룸 총대주교의 자결을 강요하지 않았던가.

벨리사리우스가 벌이는 일도 크게 다른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예를 들자면 신성 제국, 에스파냐 등 가톨릭 국가들이 새로운 교종을 선출한다 해도, 로마 제국은 ‘자기네 로마 총대주교가 곧 교종’이라면서 인정하지 않으려 들겠지.

옛 시대의 분쟁은 현대에도 이렇게 또 다른 분쟁을 자아내는가.

“중재, 해야 할까.”

“당사자들이 과연 중재를 바라는가도 문제고, 중재한다 해도 ‘어떻게’ 할까가 또 문제예요.”

견하의 말대로였다. 에스파냐는 다이온-고려가 침묵해주길 바랐다. 일이 괜히 복잡해질뿐더러, 고려가 해줄 수 있는 중재는 아무래도 로마 제국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브리튼이나 칼마르의 의향도 이 부분에서는 비슷하다고 봐야겠지.

“설령 우리가 로마 제국 더러 물러나라고 압박한다 해도, 그게 통하기는 할까요.”

애써 구축한 우호 관계만 잃을 뿐이다.

벨리사리우스의 로마 제국이 도저히 동맹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면 모를까,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3개 대륙에 이르는 대제국 아닌가. 지정학적이든 다른 요소로든 놓아주기 어려운 동맹이다.

“신성 제국을 만족시키자고 쓸데없는 짓을 할 여유는 없지.”

그렇게 미리안 내각은 ‘침묵’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

“신성 제국 단독으로 아즈텍 대륙 의용군 철수 결정!”

1933년 여름도 다 가고 가을이 찾아올 무렵이었다.

안 그래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에, 고려 정부는 다시 한번 미친 듯이 정보원들이 출입하고 좀 거물이다 싶은 사람들이 수시로 회동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로써 저울은 멕시카 자주국으로 기우는가.”

일어날 일이 결국 일어났다는 식의 읊조림이었다. 미리안은 곧장 바라트의 주석궁으로 연락을 넣었다.

-계속 호데노쇼니 인민공화국을 지원하겠는가, 아니면 지원을 중단하고 그들의 망명 절차에 착수하겠는가.

아즈텍 대륙 북부에 파견된 바라트의 의용군, 호데노쇼니 인민해방군, 그리고 그 지도부까지 모두 철수시키려면 미리 준비를 해둬야 했다.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가만히 앉아서 떼죽음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그런 망명객은, 향후 멕시카와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오면 유용한 패로 쓸 수 있다.

“바라트의 입김이 강하게 미친 공산주의자들이야 어렵겠지만, 우리 다이온과 비슷한 방향으로 노선을 전환하는 이들을 포섭할 수도 있을 거야.”

그렇게 전망하며 아슬란 주석의 답변을 기다리는 사이, 이번에는 끔찍한 소식이 동명의 태사부를 강타했다.

사진 및 영상과 함께.

“……그야말로 칸발리크 사태의 재현이군.”

로마시, 바티카누스 언덕의 교종청을 끝장낸 혁세주의 공격.

칸발리크 사태를 기억하는 모두가 씁쓸한 얼굴로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견하는 더.

만약 게레센제에 대한 공작이 아주 조금만 선을 벗어났다면, 이런 사태가 다이온에서 또 한 번 벌어지지 않았을까.

본질을 더 정확히 짚어낸 건 황제 루우였다.

“이건 내 흉내야.”

“……? 혁세주 소환이?”

“아니, 벨리사리우스는 ‘구원자’로 로마시에 입성할 생각일 거야.”

다들 전에 본 적 있잖아, 하면서 루우는 말을 이어나갔다.

“벨리사리우스가 마치 천사 같은 외양을 하던 거.”

벨리사리우스가 식민지 불순분자 탄압 때 보여준 모습은 여기 고려뿐만 아니라 각국 고위층들은 다 봤을 것이다.

“내가 용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처럼, 벨리사리우스는 천사의 모습으로 로마시를 구원하려 할 거야.”

“제비 다리 고쳐준 이야기도 아니고 이거야 원…….”

착한 동생은 정말로 다친 제비를 고쳐주고 보답을 받았지만, 못된 형은 모양만 흉내 내느라 일부러 제비를 다치게 한 다음 고쳐주고 벌을 받았다는 옛날이야기.

벨리사리우스의 소행은 그걸 엄청난 규모로 벌이는 것이다.

“……벨리사리우스의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지?”

“이게 다른 사람의 소행이면 벨리사리우스는 어마어마하게 운이 좋은 거겠지.”

견하와 루우는 시선을 교환하고, 끄덕였다.

이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것을 두 사람은 서로의 표정으로 확인했다.

“토칸, 혹은 혁세주교나 알타이 반란군의 잔당이 로마 제국에 있군.”

“그럼 그걸로 압박해볼까?”

리안의 제안에 견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로마 제국은 공식적으로 로마시의 혁세주 출현을 ‘신의 징벌’이라 부르고 있으니까, 관련성을 부정할 거예요. 이건 우리 머릿속에 넣어두고, 로마 제국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으로 삼죠.”

루우는 이번에는 리안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벨리사리우스는 누가 뭐라고 하든 교종의 종교적 권위를 대체할 거야.”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럴 것 같아.”

피곤한 듯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리안은 영사기를 끄라고 손짓했다. 참상은 더 보고 있기 힘들었다.

“신의 음성을 직접 듣는 황제의 통치…… 인간 스스로의 인간 지배는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회의하듯 읊조린 말을 고개 저어 털어버리고, 리안은 모두를 돌아봤다. 위기감이 그녀의 눈에 의지를 빛을 불어넣는다.

“정말로 염려해야 할 건, 벨리사리우스를 통해 모두가 다른 세상의 괴물들을 전쟁 무기로 활용할 잠재력을 깨달았다는 거야. 이제는 전장에 얼마나 우수한 이단을 많이 내보내느냐의 문제가 아니게 됐어.”

깊이 숨을 들이쉰 뒤, 그녀는 말했다.

“이계의 괴물들로 도시 하나를 섬멸하는 전략무기, 그 군비 경쟁이 시작될 거야. 이게 정말 내가 우려하는 바야.”

***

임페라토르가 로마시에 입성한다.

“아아…….”

누군가 뜻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피비린내와 비명이 뒤덮은 도시를 정화하듯, 공중을 날아 황제는 온몸의 빛을 하늘로 쏘아 보냈다.

정확히는 하늘의 붉고 흉측한 괴물을 향해.

신수덕이 보기에 그 광경은 참으로 완벽한 연출이었다.

실제로는 이 시각 어딘가에서 이번 전쟁의 포로들, 식민지 진압 과정에서의 죄수들에게 파멸인의 고기를 먹여 혁세주의 ‘이중소환’을 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정신이 완전히 피폐해진 시민들의 눈에는 성스러운 황제가 괴물을 물리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혁세주, 파멸인 기술은 아즈텍에서의 실전 실험을 거쳐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불필요하게’ 혁세주를 소환해버리는 사태가 일어나면 안 되기에, ‘영생’ 또는 ‘영혼의 구원’을 바랄 수 없도록 완전히 시체가 된 상태에서 ‘이’만 붕괴시켜 만드는 파멸인.

혁세주를 소환해야만 할 때, 인간의 ‘신앙’을 고조시켜 파멸인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혁세주가 소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악순환 용도의 파멸인.

전자는 아즈텍 내전이나 이번 이탈리아 대봉기 등의 전장에서 쓰였다.

후자는 미리 ‘신종의 씨앗’을 배치하고, 신앙심이 모이는 일정 규모의 도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번거로운 조건이 있지만, 파괴력만큼은 확실하다.

“문제는 황제의 등장 시 다시 고조될 시민들의 신앙인데…….”

마치 신의 사자가 등장해 구원해주는 듯한 연출을 보고, 다시금 사람들이 신앙심을 불태우면 그것이 혁세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 로마시의 신앙은 혁세주교의 신앙과는 달라서인지 혁세주는 순순히 물러난다.

혁세주교는 인간이 영혼이 없는 육편에 불과함을 인정하고, ‘영혼을 갈망하는 것’.

가톨릭은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 구원을 바라는 것이다. 아마 그 차이 때문에, 아무리 신앙이 강해도 혁세주를 세상에 묶어두기엔 부족한 듯하다.

게다가 황제와 함께 투입된 군대가 효과적으로 파멸인들을 제압하면서, 혁세주의 환경 요소도 제거되는 중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안심하십시오. 로마군이 시민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이런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발음하도록, 태도까지 철저히 교육시킨 정예 중의 정예가 이번 로마시 입성 작전에 투입되었다.

황제의 후광처럼 따스한 군인들의 음색, 그리고 뻗어오는 도움의 손길이,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희가 한 짓이잖아’라며 난동을 부리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이런 다루기 까다로운 사안에 대해서도 로마군은 매우 능숙하게 대처했다. 실로 ‘대민 작전에서의 정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혁세주가 사라지고, 장막이 걷히고, 다시금 하늘이 돌아왔다.

누가 불러 모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빛을 따라 바티카누스 언덕으로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광경은 마치 신의 아들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인 군중 같았다.

빛나는 가시면류관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날개. 날개에 달린 수십 수백의 안구는 혐오감보다는 신성에 대한 두려움을 자아낸다.

참으로 신성한 신성모독.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벨리사리우스를 향해 손을 뻗는다.

모두에게 들리도록, 벨리사리우스는 외쳤다.

“나는 여러분을 악마의 공격에 숨기 급급한 인간으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구원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상태로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두의 눈에 호기심과 의문과 불안과 기대가 떠올랐다.

“나와 함께합시다. 모두 나와 같이 되도록 합시다.”

***

로마군이 로마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이것이 이탈리아 봉기 진입군들 사이에서 도는, 웃기 어려운 농담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괴물들은 사람 사는 곳에서 떨어진 전장에서나 나온다. 로마시에서 나왔다는 하늘을 뒤덮는 붉은 괴물은 아직 안 나왔다.

이탈리아 봉기 세력은 거점들을 장악하려고 개미 떼처럼 몰려나왔다가, 빈약한 무장과 훈련 때문에 물러난다. 그걸 추격하면 로마군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신성 제국군에 타격을 입힌다.

이것이 반복된다.

전황은 이렇게 격퇴당한 신성 제국군에게 불리한 듯 보였지만, 막상 신성 제국군 입장은 또 달랐다.

신성 제국군이 일부러 이탈리아 봉기군만 골라 찌르기 때문에, 로마군은 계속 기동 대응하느라 피로가 쌓여간다는 것이다.

전장의 안개는 지휘관들이 각자 좋을 대로 전황 분석을 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이런 지루한 공방전이 반복될수록, 신성 제국군의 불안이 더 커간다는 점은 확실했다.

로마시에 보여준 경고를 무시한다면, 언젠가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그 공격’을 퍼부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이 커가던 순간, 신성 제국군 각 부대는 철수를 명령받았다.

신성 제국이 굴복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추가로 이탈리아와 로마 제국을 육로로 잇는 동북쪽 회랑까지 양보해야 했다.

이탈리아 사태는 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가진 않았다.

하지만 굴욕을 감수해야 했던 신성 제국뿐만 아니라, 브리튼과 에스파냐 등 아즈텍 내전에서 피를 본 나라들까지 모두, 이 순간부터 혁세주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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