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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61화 (461/541)

신을 단두대로 올려보내라(14)

본격적인 교섭도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게 끝났다.

양측 모두 서로를 동맹으로 삼는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고, 동맹의 조건을 조율하며 신경전을 벌일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 동맹 사이에 놓인 경계선은 드넓은 대서양.

멕시카는 아즈텍 대륙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로마 제국은 유럽 대륙을 자기네 영향권으로 삼는다. 그런 대략적인 합의면 두 나라가 동맹을 맺기엔 충분했다.

특히 이탈리아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로마 제국은 서유럽 국가들이 더는 아즈텍 대륙의 문제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기로 했다.

반대로 멕시카는 내전이 끝나면, 제2차 대서양 전쟁을 일으키는 한이 있더라도 서유럽의 간섭을 저지하겠다는 식으로 압박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즉 멕시카와 로마 제국이 동서 양쪽에서 서유럽을 포위하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에스파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브라질 식민지를 지키고 싶다는 그들의 욕망을 간파하면 나머지는 쉽더군요.”

“대서양 서쪽에서 유럽의 영향력을 일소한다는 것이 당신들의 구상 아니었소?”

“때로는 타협할 필요가 있죠. 어쨌든 브라질 식민지는 잉카 대륙에 잇는 것이지 아즈텍 대륙에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걸로 서유럽은 우리의 동맹에 뭉쳐서 대항하기도 전에 배신당한 셈이군.”

피레네 산맥 이남에서 북으로는 프랑스 지역을 위협하며, 남으로는 지중해의 서부 출입구를 틀어막는다.

“우리가 에스파냐의 브라질 식민지를 보호해주기로 한 것처럼, 유럽에서 브리튼이나 신성 제국이 보복하려 들면 로마 제국이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벨리사리우스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에스파냐인들은 실로 절묘한 인간들이다.

로마와 멕시카에 협력해 자국의 안위를 지키면서도, 이로 인해 로마와 멕시카가 각각 이탈리아, 아즈텍 대륙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에스파냐는 로마가 더 큰 것을 원하며 서진하면 바로 신성 제국 편에 붙어버리면 되니까.

이 위치를 알기에 브리튼과 신성 제국도 섣부른 보복에 나서진 못할 것이다. 그때는 에스파냐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로마군을 보게 될 테니.

에스파냐인의 그런 행보가 건방지다고 생각하면서도, 황제는 만족했다.

이로써 이탈리아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던 마지막 장애물이 사라졌다.

***

대봉기가 언젠가 일어나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었지만, 봉기 자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일어났다.

교종청 규탄 시위의 기세가 사그라들던 순간이었다.

교종청은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멀어지는 것이라 판단했다. 분노는 계속 강렬하게 타오를 수 없고, 사람들은 평소의 삶으로 돌아가리라고.

신성 제국의 방첩 기관에서도 몇 명만이, 이것은 시위가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지하 조직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것이라 보고했다. 이 보고는 지나친 망상이라 무시되었다.

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독립운동과 접촉한 정황이 밝혀졌을 때 분노했던 신성 제국의 정치인들부터 먼저, 그 분노의 기세가 사그라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두 제국 간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이 그들의 판단력을 좀먹었다. 그들은 희망을 현실로 착각했다.

이탈리아 출신 장교, 부사관, 병사들이 프랑스계 장교, 부사관, 병사들을 구타했다. 감금했다. 살해했다.

여전히 나폴레옹 5세와 엑스라샤펠에 충성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반역자들을 비난하는 기개를 드러내기보다는 목숨을 구하기로 했다.

충성을 끝까지 유지한다고 해도 이미 이렇게 이탈리아의 봉기가 일어난 이상, 신성 제국군은 그들도 의심할 테니까. 진급이 막히거나 군에서 쫓겨나면 오히려 다행이고, 반란군의 첩자로 몰려 처형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신성 제국군의 이탈리아인 대부분은 ‘프랑스인의 반역자가 되어도, 민족의 반역자가 되진 않겠다’라며 한껏 허세를 부리곤 봉기에 가담했다.

봉기를 경계하던 신성 제국군이 곧바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입했다. 봉기군이 알프스 산맥에서 진압군을 저지한다는 구상이 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로마군이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동부에 상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육로를 통해서도 동북 방향에서 이탈리아 진입 시도가 시작되었다.

황제 벨리사리우스가 직접 지휘하는 최고사령부는 크로아티아에 자리를 마련했다. 땅과 바다의 작전 모두가 이 최고사령부의 통제를 받았다.

작전명은 ‘신의 징벌’이었다.

더러운 암살도 불사하며 세속 권력을 추구하는 교종에게 내리는, 신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로마 제국은 선전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교종의 죄악이 지상에 넘쳐난 것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아즈텍 대륙의 전장에서 일어나던 일이, 로마와 신성 제국 국경 사이에서 벌어졌다.

***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장을 한 국경수비대는 간단히 돌파당했고, 근처에 주둔 중이던 신성 제국군이 도착하고서야 간신히 로마군의 진격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그러나 전사한 로마군의 몸이 꿈틀대며 허여멀건 부속지가 달린 파멸인으로 변하는 모습 앞에서는, 누구라도 전의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즈텍 대륙에 파견되었다 돌아온 의용군이 전해준 경험을, 몇몇 장교들은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백병전은 피하면서, 포격을 퍼부어 파멸인의 진격을 저지한다.

방법 자체는 효과적이었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총알도, 포탄도 무한하지 않다.

대공황, 아즈텍 대륙 의용군 파병으로 안 그래도 탄약의 생산은 차질을 빚고 소모도 이미 상당한 상황이었다.

전쟁 가능성을 낮게 잡았던 국경에 많은 물자를 비축해 둘 여유는 없었다.

탄약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소모를 생각해 화력 투사가 다소 느슨해진다.

그 느슨함은 그대로 전선 돌파로 이어졌다.

틈을 놓치지 않고, 전차와 기갑사의 혼성 부대가 베네토 일대를 관통, 그대로 서진해 베로나에서 시가전을 펼치며 저항하는 이탈리아 봉기군과 합류했다.

알프스를 넘어 들어온 신성 제국군은 동쪽과 남쪽에서 큰 타격을 받고 주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로마군은 전장에서 파멸인에 의한 혼란과 그 혼란의 틈새를 찌르는 기갑사를 아주 기민하게 번갈아 활용했다.

무엇보다도 멕시카와 달리 로마 제국은 물질적으로 풍족했다. 똑같이 대공황을 겪긴 했지만 로마 제국은 신성 제국처럼 괜히 해외 분쟁에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민지 문제도 벨리사리우스의 활약으로 상당히 해결되어, 로마군은 더 막대한 물량을 이번 ‘신의 징벌’ 작전에 투입할 수 있었다.

베로나가 로마군과 이탈리아 봉기군의 손에 떨어지면 그 남쪽으로 내려가 있던 진압군은 포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동부 해안에 상륙한 로마군을 상대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상황은 시시각각 신성 제국군에 불리해졌다.

결국, 베로나 진압은 포기, 신성 제국군은 주력을 서쪽 밀라노까지 물렸다.

그래도 이탈리아 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아펜니노 산맥에 방어선을 구축하면, 최소한 로마시나 제노바 등을 지켜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아직 있었다.

그러면 로마군의 전략 목표 달성도 좌절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때까지는.

***

그래도 교종청의 무고함을 믿는 이들이 바티카누스 언덕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로마 시내 곳곳의 크고 작은 성당에서 미사를 올렸다. 민족주의자 ‘불한당’들이 뭐 하는 짓이냐며 행패를 부렸기에, 밤에 조용히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슬픈 위기가 지나가기를.

동방 황제의 탐욕 앞에 선 교종의 도시를 신께서 지켜주시기를.

감히 신의 징벌 운운하는 저들의 교만을 벌해주시기를.

그렇게 로마 시내에는 여느 때와는 다른 ‘신앙’이 고조되었다.

“본인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고, 무고한 자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악으로 몰아간다면, 반드시 신의 징벌이 있을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연일 언론을 통해 그런 선전전을 펼쳤지만, 신앙이 깊은 자들은 흔들리지 않고 매일, 매일 기도를 올렸다.

***

벨리사리우스와 신수덕은 토칸을 죽이긴 했어도, 토칸이 심어둔 씨앗들은 거두지 않았다.

거둘 방법도 없었지만, 바로 이 순간에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기에.

바티카누스 언덕을 포함한 로마시를 검은 장막이 감쌌다.

마치 상복처럼.

이 상복은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일까.

칸발리크에서 그러했듯 검붉은 하늘을 뚫고 혁세주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 기도하는 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공포를 안겨주었다.

악마의 시험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더욱 신앙심으로 마음을 다지며 서로 손을 모아 기도했다.

악마를 물리쳐달라고.

그러나 신앙…… 신에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혁세주와 파멸인을 이쪽 세상에 부르고 머물게 하는 힘이었다.

혁세주에게서 떨어진 붉은 벼락, 혹은 붉은 빛의 기둥이 미켈란젤로의 돔을 직격했다.

애석하게도 알아볼 자는 없었지만, 그 공격 형태는 색깔을 제외하고는 루우의 용이 퍼붓는 것과 아주 닮아 있었다.

***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폴레옹 5세는 로마시에서 일어난 참극의 보고를 받으며 망연자실했다. 청년과 중년의 경계에 선 이 남자는, 위대한 1세의 직계 자손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인물에 불과했다.

“정말 선과 악이 최후의 전쟁이라도 펼치는 것인가.”

칸발리크의 참극을 생각해보면, 로마시에서 벌어진 비슷한 참극의 배후에는 로마 제국과 벨리사리우스가 있는 게 확실했다.

멕시카와 같은 무기와 전술을 사용하는 다른 전선을 생각해보면, 이 점은 더욱 확실해진다.

“폐하, 우리도 선전전을 서둘러야 합니다. 전선의 장병들 사기도 생각해야 하지만, 국내에서도 이미 로마의 선전을 믿는 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각료 중 하나가 그런 의견을 제시하자, 일단 나폴레옹 5세는 손을 흔드는 것으로 시행하라는 명령을 대신했다.

프랑스야 로마 교종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의 위세가 강한 곳이라지만, 동쪽의 또 다른 속령, 게르마니아와 알레마니아는 아니었다.

신교와 구교의 다툼은 옛날 일이라지만, 신교도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교종청을 ‘바빌론의 탕녀’로 여기는 풍조가 남아 있었다.

즉 이번 참극을 정말 ‘신이 교종이라 자처하는 이단에게 내리는 징벌’이라 여기는 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 외에도 현실적으로, 신성 제국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은 게르만 독립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누군가 아주 살짝, 불을 지핀다면…….

“……프로이센 대사를 부르고, 마자르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까지 보고하게. 특히 마자르의 움직임이 수상쩍다면 보고체계 따윈 무시하고 황제에게 직접 보고해도 좋다!”

나폴레옹 5세는 평범한 재능의 남자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판을 하지는 않았다.

마자르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귀환을 꿈꾸진 않는지 경계하면서, 프로이센을 윽박질러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묶어둔다.

그렇게 해서 일단 전선을 줄인다.

당장 이탈리아의 상황을 호전시키진 못하더라도, 올바른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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