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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58화 (458/541)

신을 단두대로 올려보내라(11)

“다이온은 우리더러 아즈텍과 대리전을 치르게 할 셈입니까?”

견하가 ‘다이온은 일본이 주도하는 해상방위동맹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 지원하는 배후 기지가 되어줄 수 있다’라고 말하자마자 돌아온 일본 측의 답이었다.

격앙된 어조로 보아 견하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통역이 말을 잘못 전했나 싶어 확인해봤지만, 견하의 말에 오해할만한 구석은 없었다.

요컨대 순전히 견하의 제안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는 뜻.

다이온이 제시한 협력 방안이, 일본공화국이 기대한 것보다 보잘것없었거나…… 혹은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공갈.

견하는 조유관과 시선을 교환한 후,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순망치한이라는 말을 모르진 않으실 텐데요? 이가 입술이 망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을, 입술 입장에서 ‘대리전’이라고 평해가며 반발해야 할 일입니까?”

보통 ‘대리전’을 치른다며 비아냥대는 건, 침략당한 쪽이 아니라 침략한 쪽이다. 침략한 쪽이 전쟁이 잘 풀리지 않으면 침략당하는 나라와 그 나라를 지원하는 강국을 향해 내미는 적반하장. 그것이 ‘대리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은 자기네 나라를 침략할지도 모를 나라의 입장에 서서 발언하는 것이다.

견하의 물음은 ‘당신들 지금 얼마나 기괴한 말을 했는지는 아느냐’라는 뜻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무시하기로 했는지 어쩌는 건지는 몰라도, 일본 측에선 답이 되지 않는 말을 내놓았다.

“우리는 다이온의 태평양 안보를 위해 해군력을 제공해주는 나라가 아닙니다.”

견하는 다시 조유관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 작자들 상황 인식이 대체 왜 이 모양인지.

자신이 일본에 오기 전에 고려의 입장이 제대로 전달된 건 맞는지.

조유관의 눈빛은 한마디로 ‘내가 할 일은 다 해봤다.’라는 것이다. 즉 견하가 오기 전부터 이 모양 이 꼴.

하긴 조유관과 일본 측의 협상이 부드럽게 진행되었다면 견하가 여기까지 올 일은 없었을 터.

듣기 좋게 돌려 말하기는 그치고, 단도직입적으로 상대가 만족할 타결점을 찾아야 하는가.

“……체면이니 관례니 하는 것들은 집어치우고 이야기해 봅시다.”

그렇게 운을 뗐다. 지금부터는 속내를 감추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제가 여기 온다고 듣기 전부터 저에 대한 조사는 마치셨겠죠. 네. 저는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받고 온 사람입니다. 여기서 당장 여러분이 원하는 답을 내주고 그 결과를 국내에 강요할 수도 있는 사람이죠.”

일본 측 사람들의 얼굴에 당황이 스친다.

왜 당황하지, 하면서 오히려 견하가 당혹감을 느꼈다. 당황할 이야기가 아니라 드디어 본론이 시작되었다며 반겨야 할 일 아닌가.

어쩌면 저들이 예상한 것보다 빨리 본론에 들어간 걸지도 모르겠다며 견하는 말을 이었다.

“아직 아즈텍 내전의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여러분도 세 집단 중 멕시카 자주국의 승리를 점치고 계시겠죠. 태평양의 평화를 위해선 유럽의 지원을 받은 신연방 세력이 승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습니다만 일이 그렇게 좋을 대로 풀리진 않을 겁니다.”

군사 문제에 약간이라도 ‘고민’이라는 걸 해본 인간이라면 다들 그렇게 예측하겠지.

“문제는 그렇게 아즈텍 구 연방의 영토를 통일한 멕시카가 회복까지 얼마나 휴식을 취할 것인가. 또 내전 동안 아즈텍 대륙은 얼마만큼의 손상을 입었을 것인가…… 이게 우리의 공통 관심사죠.”

멕시카 자주국의 국력 손상, 특히 군사력 손상이 극심해 ‘보복’할 여유가 없다면 주변국은 안도할 것이다. 언젠가 그 손상을 극복하고 보복에 나선다 해도, 휴식기가 길어지는 동안 주변국 역시 놀고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 기간에 경제적, 외교적 해법을 찾아 멕시카 자주국의 발을 묶어둘 수도 있고.

“아시다시피 내전의 주요 무대는 바다가 아닙니다. 대륙이죠. 몇 차례 해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내전이 끝나면 구 연방의 해군 전력 대부분은 멕시카 자주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어쩌면 신연방의 망명정부를 따라 타국으로 망명하는 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성 개인이라면 모를까 병사들 전부가 육지의 고향과 가족까지 포기해가며 망명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아즈텍 대륙이 타국에 점령된 것도 아니고, 무력으로 정권이 바뀌었을 뿐이니 약간만 뻔뻔해진다면 ‘내 나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아니니까.

“기대하는 건 육군의 손실인데, 기갑사나 파멸인의 활용에서 알 수 있듯이 손상된 육군력을 빠른 시일 내 회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게다가 내전을 막 마치고 난 군인들은 전쟁에 익숙한 ‘정예’들이죠.”

그 정예병을 간부로 발탁, 새로 징집된 병사들을 훈련시킨다면 멕시카의 육군력 회복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기갑사나 파멸인의 활용. 육군의 기계화 비율을 높인다면 전장이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를 낮출 수 있다. 파멸인은 시체를 한 번 더 이용함으로써, 다른 나라 군대의 두 배 효율을 낼 수 있게 해 준다.

“보복에 나설 날은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이온도 극북 지역을 통한 멕시카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죠.”

기갑사는 이단의 기-칠정을 동력원으로 하고, 파멸인이야 당연히 따로 동력원이 필요하지 않다. 기후를 비롯한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제약이 많을 뿐, 재래식 전력을 극북 지역에서 아예 써먹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역시 종래와는 다른 적의 전략과 전술에 부담을 느낍니다. 그래서 극북 지역의 요새화에 박차를 가하며 방위력을 강화하고 있죠.”

견하는 지금 효윤이 파견되어 감독 중인 극북 요새화 계획까지 일본 대표단 앞에 드러내 보였다. 다이온과 일본이 결국 한배를 탄 처지임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바다에서 방패 역할을 할 동안 우리는 뒤에서 물자 조금 던져주고 뒷짐만 지고 있진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도 일본이 북쪽에서 협공당하지 않도록 전선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겠죠.”

그렇기에 다이온 연방과 일본공화국 간 협력이 필요하다. 다가올 미래, 예상되는 상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협상이 어떤 난항에 부딪히든, 그래서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어지든 태평양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다이온과 일본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 불가피함이 일본 측의 기분을 거슬렀을 수도 있겠다. 다이온이 ‘당연히 너희들은 우리에게 협력할 수밖에 없잖은가’라는 태도로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면? 다이온에 너무 의존하게 된 나머지 그런 요구를 단호히 거절할 수 없게 된다면?

일본공화국이 다이온에 편입된 ‘역외오국’과 같은 처지로 전락한다면? 일본이 그런 우려를 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게라도 이해해보려던 찰나, 일본 대표단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바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일방적으로 신뢰해달라고 호소해봤자 신뢰를 살 수는 없겠죠. 그래서 우리 외무장관이 기갑사의 실전 자료, 파멸인 연구의 일부를 공유하고, 저까지 와서 극북 방위 계획의 일부까지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일본공화국과의 협력을 기회 삼아 신뢰를 배신하려 했다면,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 저희도 솔직히 말씀드리죠. 대령에게 그 정도의 권한이 있다고 신뢰하긴 어렵다는 겁니다.”

견하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준장입니다만?”

상대는 눈에 띄게 당황한다. 대표단 내에서 시선이 다급하게 오간다. 그중 하나가 자기 앞에 놓인 서류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한다.

“하, 하지만 여기 분명 대령이라고……”

일본 대표단의 다른 이가 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책상 아래로 끌어 내린다. 견하는 눈을 감았다. 상대가 저지른 추태였지만 보기 괴로울 지경이었다.

동료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주의를 준 남자는, 고개 숙여 사죄한다.

“죄송합니다. 우리 쪽 준비가 미비했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기초부터 검토하고 다시 합시다. 일단, 제가 누군지는 아시고 이 자리에 나온 겁니까?”

설마 대학교 새내기도 안 할 실수를, 국가의 미래를 건 협상 자리에서 하는 작자들이 있을 줄이야.

“그야, 감찰국장인 주견하 준장 각하시고……”

“고려에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 지금까지 어떤 공을 세웠고 어떤 작전을 지휘했는지, 당신네 첩보든 외교든 어떤 루트로든 얻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혹시, 일본에는 방첩이라는 개념도 없습니까?”

먼저 결례를 저지른 쪽은 일본이기에 견하는 거리낌이 없었다.

“제 권한을 의심하셨는데, 그쪽은 정말 외무 쪽 사람이 맞긴 합니까?”

“그게 무슨……”

“그쪽은 도저히 이런 중요한 자리에 보낼만한 업무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처럼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게 그쪽의 협상 방식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만, 협상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걸 보면 정세 파악도 안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일본 대표단은 말이 없다. 그 침묵은 분노를 담은 항의가 아니었다.

“설마…….”

경악한 조유관과 견하, 그 외 다이온 대표단의 입이 벌어졌다.

의도는 몇 가지 추측해볼 수 있다.

계속 ‘약속의 신뢰성’ 운운한 것은 오히려 자신들이 신뢰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말만 ‘대표단’이지 자기네 정부나 의회에서 협상 결과를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있는, 그런 인간들을 보냈다는 말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일본 외교의 나쁜 습관인가.

다이온과 협상에 임하는 척하면서, 듣고 싶은 정보만 캐낸 뒤에 막상 약속을 이행해야 할 때는 ‘그건 대표단의 독단이었지 정부의 의사가 아니었다’라며 발뺌할 속셈이다.

또 다른 의도가 있다면 ‘시간 끌기’.

일본 정부는 다이온에도 아즈텍 대륙의 신정권에도 종속되고 싶지 않으니, 적당히 협상해주는 척하면서 상대가 결정을 계속 미루게만 할 심산일 수도 있다.

멕시카 자주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고려 입장에선 ‘혹시라도 동맹이 될지 모르는 중립국’에 괜히 예방 전쟁을 걸 수 없게 될 테니.

-그렇다고 이따위 얕은수를…….

고려의 중요 인사 중 하나인 자신의 원한을 사서 어쩌겠다는 건가. 분노와 동시에 이들의 아둔함에 절로 연민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멕시카 자주국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곧장 침략을 결정할 테지. 고려는 일본이 이렇게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면 동맹보다는 ‘멕시카에게 항복해 위협이 되기 전에 점령한다’라는 방안을 택하는 게 낫다.

“이대로는 협상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다이온은 신뢰할 수 있는 대표단을 보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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