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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56화 (456/541)

신을 단두대로 올려보내라(9)

청문회는 개입 찬성파가 반대파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으로 끝났다.

전쟁성과 군은 개입 찬성파의 입맛에 맞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황제의 뜻에 부합하는 의견만을 말했다.

‘만에 하나’라는 우려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급박하게 돌아갔던 상황은, 더욱 박차를 가하며 뒤틀렸다.

원로원 의원들과 군 인사들 간의 청문회가 언론을 타고 대중에 흘러나갔다. 개입 반대파의 ‘비애국적’ 측면을 묘하게 강조하는 형태로.

개입 반대파는 단순히 국익의 측면에서만 비판받는 게 아니었다.

인륜도덕적인 측면에서도 비판이 가해졌다.

황제의 형제들이 목숨을 잃고, 부친, 즉 선대 황제마저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자들.

이탈리아 민중을 신성 제국의 잔혹한 살육 앞에 무방비로 내버려 둬야 한다고 말하는, 양심도 없는 자들.

사람이기는 하냐는 비난이 광장에서든 식당에서든 메아리쳤다.

비단 원로원을 대상으로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고대 평민회를 기원으로 삼는 민의원, 타국에서는 하원에 해당하는 곳에서도 이러한 일은 반복되었다.

이탈리아 문제 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완전히 설 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황제수권법’이 발동했다.

“……도덕적 타락, 매국적 행태를 더는 묵과할 수 없는바, 수상으로부터 반환된 황제의 권한에 더하여 조국 로마의 국체 그 자체뿐만 아니라 국가 밖에서 로마인의 정체성을 지닌 모든 사람의 수호를 위해 긴급 수단을 취한다.”

개입 반대파에 해당하는 모든 정당, 정치인들의 활동이 금지됐다.

이로써 에반겔로스를 위시한 행정 관료 집단, 원로원과 민의원을 비롯한 입법 기관 모두가 벨리사리우스의 야망을 보조할 유용한 도구로 거듭났다.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군은 말할 것도 없었다.

***

“보통 정교하게 다뤄야 할 일이 아닐 텐데?”

로마 제국에서 전해진 소식을 들은 견하의 첫 소감이었다.

총선거 승리의 여운은 짧았고, 그 짧은 여운마저 만끽할 틈도 없이 일은 쏟아져 들어왔다.

일본에서 지지부진한 교섭을 마치고, ‘연방의 헌법’을 마련해 다이온을 구성하는 각국의 지위를 규정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칸발리크의 쿠릴타이와 동명의 제국최고회의 간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몽골 제국입헌당의 어설픈 수작을 견제하면서, 고려 제국입헌당 내에서도 혹여나 리안 외에 ‘다른 인물’을 태사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은 없는지 감시한다.

류성일에게 제국최고회의 의장 자리를 내주면서 그런 쪽으로는 협의가 되긴 했지만, 견하는 류성일을 믿지 않았다. 언제든지 제국입헌당의 노장파를 모아 미리안의 지위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견하가 믿는 인간은 몇 없었지만.

물론 제국입헌당의 일부가 다른 당과 세력을 규합해 미리안 외의 다른 인물을 태사로 추대한다 해도, 황제의 승인을 받는다는 마지막 절차를 넘진 못할 것이다. 루우는 제국최고회의의 의견을 다 듣기도 전에 거부권을 발동하겠지.

하지만 그런 상황까지 간다는 것 자체를 견하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여론에 번져나가는 것만으로도 리안에게는 치명적이라고 보았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손을 쓴다.

그런 판단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거기에 또 신경 써야 할 일이 추가된 셈이다.

“벨리사리우스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정교함’이 상황이 요구하는 정도를 넘어설 수준일 줄은 몰랐어.”

로마-이탈리아 문제를 신경 쓰는 사람은 견하뿐만이 아니었다. 로마 제국 정도 되는 나라가 움직이는 이상 국제 정세의 격변은 예정된 일이고, 결국 리안을 비롯해 이제 ‘권력 중추’라 불리게 된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지?”

황제의 질문에 리안은 외무성에서 올라온 보고를 정리해서 모두에게 들려줬다.

“신성 제국의 수도, 엑스라샤펠의 정계가 발칵 뒤집힌 모양이야. 벨리사리우스가 황제수권법을 발동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인들의 ‘탄원서’가 공개됐거든. 그걸 두고 개입 여부를 논의했으니 지금 일어나는 시위의 배후에 로마 제국이 있다고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지.”

황제수권법으로 활동이 금지된 정치인들도 엑스라샤펠에 망명해 임박한 로마의 군사행동을 경고했다.

로마 제국에서는 ‘역시나 매국노들이었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이는 행동이었기에, 벨리사리우스가 몰락하지 않는 한 그들은 다시는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다.

“나폴레옹 5세를 비롯한 신성 제국의 정치인들은 ‘이런 배신이 어디 있는가’라며 연일 로마 제국을 비방하는 성명을 쏟아내는 중이야.”

“단순한 영토, 혹은 민족 거주지의 문제로 끝날 일은 아닌데…… ‘종교’라는 미묘한 문제가 엮인 일이니까요.”

“그 미묘한 문제를 미묘한 방식으로 풀어냈지. 벨리사리우스가 이번에 개입하기 전에는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교종청이 지휘해왔다는 게 밝혀졌어. 그러니 벨리사리우스를 앞에 두고도 신성 제국과 교종청이 협력할 일은 없을 거야.”

이탈리아인들이 교종청을 ‘프랑스인의 개’라고 부르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은 교종청을 ‘이탈리아 사기꾼’이라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분쟁에서 교종청이 설 자리는 없었다.

“시위가 무장봉기로 돌변하는 과정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어. 이렇게 멀리 떨어진 동쪽에선 멈출 수 없는 흐름이지.”

“신성 제국이 진압에 들어갈까요?”

견하의 이 질문은, 과연 사태가 전쟁으로 발전하겠느냐는 것과 같은 물음이었다.

“가능성이 작진 않다고 봐.”

로마 제국 내 낙관주의자들과 달리, 리안은 쓸데없는 희망으로 자기 눈을 가리진 않았다.

“제국과 제국이 부딪히는 거예요. 그 의미는……”

“……두 번째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

어전 안 어딘가 음산한 바람이라도 부는 것 같았다. 사람의 피부가 남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견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난리는 내전이 끝난 아즈텍 대륙에서 날 줄 알았는데 정작 엉뚱한 방향에서 터질 줄이야.”

“아즈텍 내전과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 그 내전에 신성 제국이 발이 묶여 있으니 기민한 대응은 못 하리라고 로마 제국의 ‘군사전문가’들은 판단했겠지.”

쉬운 작전으로 큰 전공을 세우고 출세하겠다는 야심이 그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을까? 아니면 그들도 ‘로마인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에 흠뻑 빠져든 걸까.

아니, 동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고려는, 다이온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겠죠.”

“로마 제국은 이미 열강 중에 우방을 구했어. 우리 다이온과의 제휴. 그게 벨리사리우스가 안심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바탕 중 하나가 되어주었겠지.”

“우리가 영향력을 발휘해서 다른 열강이 로마 제국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아줄 것이다? 그런 기대를 했다면 벨리사리우스 황제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겠는데요.”

희대의 멍청이로 말이다.

“거리가 있으니 직접 군사행동에 나서 주길 기대한 건 아닐 거야. 다만 ‘분위기’ 정도는 형성할 수 있지.”

괜히 나서지 말고, 로마 제국과 신성 제국 양자 간에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분위기를.

“물론 고려든 다른 나라든 최선은 신성 제국이 굴복하고 이탈리아를 뱉어내는 거야. 그러면 사태는 전쟁이 되지 않고 조기 종결되지. 여기서 신성 제국이 조금이나마 양보하기 편하게 하려면 이탈리아를 로마 제국이 직접 합병하지 않고 ‘보호국’ 정도로 두게 하는 건데…….”

그 안은 로마인들이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능성이 큰 예측은 그런 굴욕적인 평화가 아니다. 리안은 자신이 뱉은 말이지만 이 역시 희망 사항에 더 가깝다고 자조했다.

“신성 제국 측에선 절대로 이탈리아를 포기하지 않겠지.”

“그 경우엔 신성 제국이 순식간에 로마 제국을 격파하거나, 로마 제국이 신성 제국을 압도적으로 분쇄하고 알프스 이남을 점령하거나, 둘 중 하나가 희망적이겠죠.”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엔 아예 브리튼, 칼마르, 에스파냐가 옛날처럼 포위망을 형성해서 신성 제국을 분쇄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어.”

말을 뱉어놓고도 리안은 쓰디쓴 약을 삼킨 것 같은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바라트와 다이온 간 평화를 위해 버마를 희생시켰듯이, 이제는 신성 제국을 희생시키자는 아이디어를 입에 담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를 파멸시켰으면 둘도 셋도 파멸시킬 수 있다는 듯이.

“최악은 이도 저도 아니고 이탈리아 안에서 전선이 고착되고, 전쟁이 장기화하는 거죠.”

신성 제국과 로마 제국에서 죽어 나갈 수많은 목숨에도 좋지 않고, 세계 경제에도 좋지 않다. 대공황의 극복은 또 멀어진다.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같은 건 이제 영영 없어진다고 봐야지. 누가 그런 위선적인 이름의 회의에서 국제 정세를 논의하겠어.”

“평화회의가 없어진다면 브리튼이나 그 동맹국들과의 접촉 경로는 따로 알아봐야겠네요.”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굳이 누군가 유럽으로 날아가지 않더라도 접촉할 창구는 이미 있지.”

그게 뭐지, 하다가 견하는 씩 웃었다.

“에스파냐령 마카오.”

“유럽 국가가 다이온 발밑에 자그맣게 식민지를 심어두었다는 사실 자체는 기분 나쁘지만, 이런 식으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으니 짜증은 잠시 접어둘까.”

다음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견하더러 다녀오라는 말이다. 가서, 에스파냐 측과 접촉해 고려와 다이온의 의향을 알릴 것. 가능하다면 에스파냐와 브리튼의 의중을 캐올 것.

본래는 외무성이 움직이는 게 옳다. 그러나 리안은 이 경우엔 괜히 로마 제국을 자극하기보다는 비공식 경로를 통해 움직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전쟁을 막는 게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막아보려는 시도 자체를 안 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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