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단두대로 올려보내라(5)
하지만 어떻게 죽이지?
기세 좋게 벨리사리우스를 죽이겠다고 다짐은 했는데, 벨리사리우스를 끝장내는 광경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다.
토칸 자신이 직접 정면에서 벨리사리우스와 붙는다? 일대일 결투?
토칸은 주견하와의 대결을 떠올려 본다. 그 녀석도 만만치 않았지.
그런데…… ‘직접 신종을 이용한 힘을 얻은’ 벨리사리우스를 토칸이 상대할 수 있을까?
“승산이 없을 것 같은데…….”
정면에서 붙든 기습을 하든 말이다.
벨리사리우스의 식민지 순행을 몰래 따라다니면서, 토칸은 그가 암살 시도를 어떻게 분쇄했는지 여러 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 암살 시도에는 이단 역시 많이 가담했었다. 이슬람은 종교적 이유에서인지 이단을 체계적으로 양성하진 않는다는 걸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 벨리사리우스는 너무도 압도적이었다.
그 모든 암살 시도를 로마 황제는 단신으로 해치웠다.
“불을 쏘아대는 게 아니야. 온도의 이를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그리스인들의 고대 신화에 그런 게 있잖은가. 제우스의 본 모습을 본 여인이 신의 위광에 불타버렸다는 이야기.
벨리사리우스 자신의 위광이 적대자들을 태워버리는 것만 같은 그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은 기습으로 방향은 정했다.
로마 제국 안에서는 도저히 기습할 수 없었으니까.
벨리사리우스의 강력함 이전에, 요즘 로마 제국, 특히 수도 콘스탄티누폴리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
계엄령이 내려진 것도 아닌데 삼엄하기 짝이 없는 도시다.
아마 황제의 형들이 죽은 탓이겠지. 경찰도 군도, 최고조의 경계 태세를 보인다.
웃긴 건 삼엄한 건 그들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까지도 마치 경찰이라도 된 양 눈을 희번덕거리지.”
그렇기에 콘스탄티누폴리의 분위기는 ‘열정적 삼엄함’이라는, 말하기에도 기묘한 것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자유를 자유롭게 헌납하여 자유로운 계엄을 만들어 나간다.
도시들의 여제는 다시는 고귀한 사람들을 잃지 않을 것이며, 칸발리크에서 일어난 비극을 되풀이하지도 않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다.
“잘못된 거야, 그건.”
기습을 못 해서가 아니라, 그 전에, 사람이 그렇게 군주가 편리한 방식대로 놀아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아니지만, 토칸은 그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황제 한 사람의 잘못된 의지로, 모든 신민이 그 마음마저 황제의 손가락 끝처럼 움직인다면…… 그것만으로도 황제가 죽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니까 교종인지 뭔지 하는 자와 황제의 머리 바로 위에 떨궈주마.
토칸은 전에 로마 시내 곳곳에 심어둔 신종의 씨앗을 며칠 동안 점검했다.
그러면서 북부 이탈리아 주요 도시 곳곳에 보낸 부하들에게서도 계속 보고를 받았다.
“혁세주교가 직접 뿌리를 내렸다면 좀 더 규모를 키울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대규모로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혼돈을 만들어내기엔 충분하다.
황제의 이탈리아 방문 일정을 점검한다.
거리에서 산 신문에는 황제와 교종 간 갈등의 극적 타결을 바라는 기사가 1면을 장식했다. 콘스탄티누폴리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 이후 이렇게 전격적으로 황제가 방문할 거라는 예상들은 못 했을 테니.
기대가 최고조에 이른 순간이야말로 절망의 낙폭 역시 최대에 이른 순간이다.
이탈리아는 독립의 열망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온 정신이 팔리겠지.
로마는 즉위 1년 도 안 된 황제를, 신의 은총을 받은 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황제를 잃어 세계 자체가 무너지는 기분에 사로잡힐 테고.
유럽 열강은 예상하지 못한 이 사태에 대서양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나는 신수덕과 달라. 그자는 벨리사리우스에게 겁을 먹고 도망쳤지만, 자신은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혁세주 앞에서도 어디 그 잘난 눈깔 날개를 뽐낼 수 있는지 보자고.”
***
“지금쯤 저항 영웅이 된 기분에 사로잡혀 있겠지, 토칸.”
벨리사리우스는 홀로 방 안에서, 그의 절망에 건배하며 포도주를 죽 들이켠다.
“네놈이 짐을, 짐의 체제를 얼마나 혐오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아니, 군주라는 존재 자체가 그대에겐 혐오의 대상이야.”
그러나 토칸에게도 모순은 있다.
아마 인간 중에 모순 없는 인간이야 없겠지만.
“너 자신이 무심결에 모순 없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짐을 막을 자로 너 자신을 지목한 점에서, 너는 이미 한 명의 왕이다.”
왕관과 왕좌가 있어야만 왕이랴.
“이미 로마 내셔널리즘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건 짐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야. 로마인들이, 스스로를 로마인이라 믿는 사람들이 자기네 ‘상상의 고향’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걸 짐 한 사람을 죽이면 해결된다는 발상을 떠올린 시점에 이미 네놈은 그토록 혐오하는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거다.”
대외적으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표정, 비웃음이 벨리사리우스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 같으니. 혼돈? 질서? 그런 구분이 다 무슨 의미냐. 목표가 있고 과정과 수단이 있다. 네놈의 목표는 뭐지? 혼돈으로 뭘 달성하고 싶으냐. 결국 사춘기 어린애의 반항심과 무엇이 다르냐.”
네놈 자신도 모를 테지. 두 번째 잔을 비운다.
조직을 이끄는 놈이 조직력이 아닌 ‘자신’을 너무 의존한다.
어떤 관점에서는 부하들의 책임을 덜어주고 자신이 책임을 지는 모범적인 지도자의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토칸의 조직에서는 부하들이 바라는 바와 우두머리인 토칸이 바라는 바가 크게 어긋나 있다. 애초에 토칸의 부하들이 바라는 것은 귀국이나 알타이 자유 공화국의 독립 아니던가.
“부하들의 욕망을 이해할 생각도 없고 자신의 욕망을 이해받을 생각도 없는 놈. 그러니 네놈의 성장은 거기서 한계에 부딪힌다.”
조직이 무엇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지.
조직의 지도자로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토칸이 놓은 혼돈의 불길은, 토칸을 불태우고 끝날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나 해라.
“네놈은 자신이 증오하던 자들을 닮았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
연락이 끊겼다.
처음에는 한 명. 늦잠이라도 잤나 싶었다.
두 명째. 원래 농땡이 치던 놈이다.
세 명째. 병?
네 명째부터, 토칸은 스스로 다른 녀석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간신히 경고만을 나머지 부하들에게 던져두고 말이다.
상황이 위험하게 돌아간다.
누군가 토칸의 행동을 눈치챘다.
네 명의 부하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
나머지 부하들도 토칸의 경고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죽을 것이다. 이제는 따르는 부하들도 없다고 봐야 한다. 철저히 혼자다. 뭐지? 벨리사리우스의 소행인가?
아니다. 벨리사리우스가 움직인 기미는 없었다. 그 정도 감시는 자신도 하고 있다. 애초에 그의 이탈리아 방문 일정은 아직 좀 남았다.
뭐지?
다른 누군가가……?
***
신수덕은 피로 떡진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서 얼굴을 확인했다. 토칸과 교류하면서 안면이 있는 남자다.
“잘 처리해주셨군요.”
통역이 이탈리아어로, 이 도시의 이탈리아 독립운동 조직원들에게 신수덕의 치하를 전했다.
“황제께서도 안도하실 겁니다. 이탈리아 전역을 지옥으로 만들려던 테러 시도가 저지되었으니까요. 여러분 덕분에 말입니다.”
“우리가 약속받은 건 두 가지다.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일단 여러분을 위한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고……”
신수덕이 턱짓하자 벨리사리우스의 부하들은 트럭에서 돈 가방과 무기를 내려 이탈리아인 조직원들에게 전달했다. 무기도 돈도, 약속한 것에 좀 더 얹어주었기에 조직원들은 만족한 얼굴로 끄덕였다.
“황제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셨다가, 봉기가 일어나는 날에는 도시의 자치를 맡기실 겁니다. 다만,”
“‘국가로서 기능하려면 도시 간, 조직 간 연계를 확실히 하라’. 기억하고 있어.”
“네. 프랑스군에 각개격파 당해선 곤란하니까요. 물론 여차하면 로마군이 직접 오겠습니다만, 그건 여러분이 먼저 스스로를 지킬 의지와 힘을 보여준 다음이 되겠죠.”
간단히 눈인사하고 신수덕과 이탈리아인들은 헤어졌다.
“용병 일도 나름 적성에 맞는 것 같군.”
애초에 그런 걸 느낄 사람도 아니었지만, 신수덕은 자신이 먼저 토칸에게 ‘떠나겠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에 가책보다는 즐거움을 느꼈다.
속임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벨리사리우스는 토칸에게 신수덕의 행선지를 알고 있진 않은지 집요하게 캐물으며, 신수덕이 로마 제국을 떠났다고 생각하게끔 했다.
다른 한편으로 벨리사리우스는 자신이 토칸보다 신수덕을 더 위험하게 여긴다고 믿게끔 했다.
“그럴 리가 없잖은가. 내가 얼마나 유용한데.”
아는 것도 토칸보다 많고, 그리고 만일에 대비한 외교적 카드로서도 유용하다.
“벨리사리우스 황제가 개인적인 친분을 이유로 고려에 무한하고 조건 없는 우호를 베풀 분이시던가?”
혹시라도 고려가 기대를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 신수덕이라는 판을 뒤흔들 패를 장만해 놓는 것이 옳지 않나.
그에 반해 토칸은 어떠한가. 벨리사리우스의 체제에 대해 그렇게 적대감을 드러낸 인간이, 왜 벨리사리우스가 자신을 위협으로 여기리라는 발상은 못 했을까.
게다가 벨리사리우스는 두 속임수에 더해, 토칸이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을 수단을 사용했다.
이탈리아 민중들로 구성된, 독립운동 조직들을.
“취해 있었던 게지. 황제만 죽이면 된다는 생각에, 그걸 자신이 해낸다는 생각에.”
황제수권법이라는 법을 없앨 수 없고, 그렇게 되게 만든 체제를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그리고 그런 것에서 멀어져야겠다는 ‘비정치적 인간’의 한계.
자신을 악당, 반영웅이라 무의식중에 단정 짓기까지 했으니, ‘이름 없는 민중’의 반격을 당할 거라는 상상조차 못 했을 거다.
토칸에게 황제의 방문 일정, 이탈리아 독립운동 조직과 접촉한다는 일정을 흘렸듯이, 이탈리아 독립운동 조직들에도 토칸과 그 부하들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여기가 가장 아슬아슬한 부분이었는데 말이지.”
벨리사리우스의 부하들이 아예 안 움직일 수는 없었다. 당장 이탈리아어 통역도 그렇고, 여기까지 물자를 운반하는 단순한 작업에도 사람이 필요했다.
“황제 본인이나 요르요스가 움직였다면 토칸도 눈치챘겠지만.”
바로 여기서, 실상 로마 제국 국경 바깥으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던 신수덕이, 황제와 요르요스를 대신하여 움직였다.
신수덕이 이미 제국 내에 없으리라 단정 지은 토칸은 당연히 그를 감시한다는 발상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벨리사리우스가 무서워 도망친 남자에게, 자신은 다르다며 과시할 생각만 가득했을 뿐.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로다…….”
신수덕은 드물게 흥얼거리듯 말하며, 제거 대상자 목록을 점검했다.
신속히 행동해야 한다.
아마 토칸은 부하들과 정기적인 연락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연락망이 얼마만큼 끊어져야 그가 숨어들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죽여두어야 한다.
하지만 신수덕의 목록에는 토칸 본인은 없었다.
“오호, 이건. 용병이라기보다는 몰이꾼에 더 가깝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