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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40화 (440/541)

동군연합(5)

“바라트와 다시 한번 마주하는 수밖에 없나.”

어쩌면…… 바라트의 주석인 아슬란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상 최초로 공산권 바깥의 지도자가 공산권 국가원수와 만나는 회담.

그 정도로 파격적이라면 바라트에서도 알티샤흐르 문제를 걸고넘어지기 전에 고려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것이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라 해도 상당한 거물이라면 일단은 어서 오시라 하는 법이니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다음 손님이 리안의 집무실로 안내받아 들어왔다.

차파르였다.

그가 꺼낼 이야기는 대충 짐작하고 있다.

“……결례를 각오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꺼내는 말은 결례를 저지르던데.

“합하께선 고려 정부와 몽골 정부 간 관계를 어떻게 두실 생각이십니까?”

합하, 합하라.

견하가 루우에게 상주하고 루우가 제국최고회의에 ‘논의를 명한’ 태사의 새로운 호칭 문제.

루우가 내린 조칙의 초안인 견하의 상소는 ‘리안의 호칭을 높여야 할 이유’를 꽤 성실하게 대고 있었다.

그녀가 새운 공로는 다른 신하들과 다르며, 따라서 다른 신하들보다 높아야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태사를 ‘합하’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태사라는 지위에 어울린다.

뭐 이런 식으로 근거가 확실히 마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국최고회의는 이례적으로 태사의 호칭을 높이는 문제를 빨리 통과시켰다.

야당 쪽에서 다소 ‘우려’를 표하긴 했다. 그마저도 아주 조심스럽게 ‘태사의 국가에 대한 헌신의 정신을 오히려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식이었는데, 결국 강한 반대 의사가 되진 않았다.

그렇게 제국최고회의는 만장일치나 다름없이, 국민의 환호 속에서 태사에게 ‘합하’라는 칭호를 올렸다.

“어떻게 두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한 분의 폐하를 모시는 두 국가의 연합 아닙니까.”

“합하께선 말을 곧게 펴는 분이시라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원론을 앞세워 마음 깊은 곳을 드러내지 않으시려는 듯합니다.”

리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차파르는 자신이 지금 의뭉 떤다고 생각하는 걸까.

“제가 동군연합 내에서, 나아가 다이온 내에서 두 국가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몽골 태사의 대우를 고려 태사와 동등하게 할 것’을 우리 최고회의에 요청하진 않았겠죠.”

리안의 말대로, 그녀는 자신의 합하 칭호를 받자마자 제국최고회의에 다시 ‘몽골 태사에게도 같은 대우를 보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즉 고려의 법으로 두 나라 정부는 여전히 대등하며, 다만 군주가 두 나라의 황위를 겸하였을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일각에서 제기된 ‘우려’에 대한 답이면서,

동시에 견하에게 보내는 응답이기도 했다.

-나, 미리안에 대한 숭배가 도를 넘어선 안 된다.

그 정도로도 충분한 대처가 되었다고 여겼는데, 막상 몽골 정부에선 그렇게 여기지 않은 걸까.

“저를 비롯한 몽골 정부는 모호한 암시를 바란 게 아닙니다. 저는 확답을 듣고자 합하 앞에 왔습니다.”

차파르의 다소 조급한 듯한 태도를 보며, 리안은 견하의 얼굴을 떠올렸다.

견하의 행보. 리안의 묵인. 아니, 리안도 바랐고 부추겼던 흐름. 적극적으로 바랐고 가담한 루우.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낸 고려의 패권 확장.

결과적으로 고려의 경쟁자들, 특히 몽골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지도자들과 주요 정치세력은 모조리 분쇄되었다.

-이 시점에선 누구라도 고려의 몽골 병합을 예상한다.

-확답이 필요한 시점인가.

견하가 연인으로서 자신에게 얼마나 신실한지, 부하로서도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리안은 잘 안다. 그러나 이제 제동을 걸 때다.

‘그 1936년’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설령 그와 자신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더라도.

“확답을 드리죠. 이번 동아시아 평화회의에서는 지난 회의에서의 ‘독립보장선언’을 다시 확인할 겁니다. 아니, 독립을 보장한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려는 결코, 몽골을 포함한 구성국을 병합하지 않는다’고 선포하죠. 이번 평화회의의 가장 강렬한 장면이 될 겁니다.”

***

“이론에서 멈출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오고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이론은 이제 충분히 다져졌다는 게 한재연의 생각이었다.

수영은 재연의 얼굴이, 자주 짓는 표정이 요 며칠 사이에 많이 변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여전히 여자처럼 선이 가는 얼굴이다. 미소년이라 불리던 시절의 얼굴은 ‘시간’과 그에 따른 경험을 더하며 사내다운 기백이 감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얼굴이 짓는 표정은 전과 달랐다.

재연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몽골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한족 통치에서 협력을 구하려면 동군연합이라는 ‘형식’은 중요해. 그걸 모르진 않아. 하지만 저렇게……”

‘하나로 통합되는 일은 절대 없다.’라는 듯 못 박아버리면, 「계획」은 완성되지 못하고 다이온 또한 애매한 연합체 상태로 머물고 만다.

재연의 불만은 바로 얼마 전에 칸발리크에서 들려 온 소식에서 비롯되었다.

태사 미리안이 동아시아 평화회의에서 선포한 ‘합병 없는 연방’의 원칙.

그 소식이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화제가 된 만큼, 재연의 분노를 자극했다.

“다르긴 하겠지. 게레센제나 울제이가 각자의 영지를 거느리던 봉건 국가 연합과는 다를 거야. 하나의 황제를 둔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졌어. 하지만,”

말을 끊고 수영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이를 악무는 듯하다.

“‘하나가 되는’ 과정은 멈춰선 안 돼.”

하나의 황제, 하나의 정부, 하나의 행정체계와 의회. 하나의 군대. 하나의 정책.

그런 말들을 늘어놓는 재연을 보며 수영은 새삼 그가 천손민족협회의 촉망받던 회원이었음을 기억해냈다. 강경파와 노선을 달리한다 해도 그는 고려민족 제일주의자, 국수주의자다.

이론가라고 할지언정 총을 쥘 줄 모르는 자가 아니다.

한재연은 수영이 아직 말단 회원이던 시절, 존경하고 선망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부서지고 무릎 꿇고 더럽혀졌을지언정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고려를 중심으로 한 다이온의 통합. 이걸 멈추고 어정쩡한 연합체 상태로 두면 결과적으로 이득 보는 집단이 어디일 것 같아?”

답은 어렵지 않다. 수영은 대답했다.

“한족이겠지.”

“맞아. 키타이와 낭키아스의 해체 이후 두 지역은 고려에도, 몽골에도 속하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고려에서 친려파 한족 유력자들을 내세웠지만, 어쨌든 이들 새로운 행정구역은 ‘다이온 연방’의 직속이야.”

새로 창설된 강회 한족 관리 특구를 포함한 네 개의 특구에는 몽골, 고려 및 역외오국이 공동으로 ‘군정’을 행한다. 여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문제는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따로 특구로 편성된 것도 아니고 몽골이나 고려에 병합된 것도 아닌 나머지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황제가 풍군작전의 종료 직후 발표했던 대로, 새로운 행정구역 ‘도(道)’로 재편되는 중이었다.

그런데 원래 고려의 산동 식민지였던 발해도와 그 주변을 제외하면, 그런 새로운 도들은 고려의 영토에도, 몽골의 영토에도 편입되지 않았다.

그저 ‘다이온의 새 행정구역’일 뿐이었다.

즉, 새 행정구역은 고려나 몽골 정부에 책임을 지지 않고, 다이온 연방에만 책임을 진다.

다이온 연방에는 통합 정부도 의회도 없으니 평화회의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렇기에 평화회의를 주재하는 고려가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들 지역을 통치하는 셈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평화회의는 1년에 한 번 모이는 국제기구에 가깝다. 이런 기구를 통한 간접 통치로는 전체적인 방침만을 정해줄 수 있을 뿐, 세심한 곳까지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연방 직할령에서는 ‘자치’가 행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친려파 한족의 집권을 배후 조종한다 해도, ‘자치’로는 한계가 분명해.”

뻔뻔하기 짝이 없는 친려파라도 일단 각 도의 자치가 시작되면 ‘한족 주민’을 완전히 무시한 정치를 펼치긴 어렵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친려파 또한 자기도 모르는 새 대다수 동포의 경향을 따라가게 된다는 말이다.

“세심하게 조절해야 하는 민족 정책은 또 어떻고.”

공직자에게 고려어나 몽골어 사용만을 강요하는 정책. 한족의 문화를 촌스러운 것으로, 고려와 몽골의 문화를 도회적인 것으로 선전하는 문화 정책. 한족의 죄악상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는 역사 교육.

이 모든 것이 강력한 정부가 통일된 의지로 행해야 한다. 정부가 ‘자치’를 허용해 통제를 느슨하게 하면, 한족들은 중앙정부의 민족정책을 따르는 ‘시늉’만 하면서 ‘행정적 편리’를 추구하고 말 것이다.

거란인들이 화북에서 자기들의 언어와 문화를 강요했지만, 일선 거란인들부터 한족 주민들을 대할 때 편하다는 이유로 ‘한어’를 쓰고 말았던 것처럼.

그러다가 서서히 한족 사이로 스며들어가, ‘키타이’라는 이름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것처럼.

이제 하나의 틀 안에 들어온 몽골인과 고려인이, 거란인들처럼 사라져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 있는가?

문화도 언어도 다 고유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개소리 말라고 해라.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짐승처럼 죽여대는 한인(漢人)의 민족성은 그 성질을 거세하거나 물리적으로 말살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존재만으로도 범죄적인 민족을 어찌 동아시아의 다른 민족과 동등하다고 말할 것인가?

재연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수영이 꿰뚫어 본 대로, 재연은 29년 4월의 그 날, 골목에서 한족을 살해하던 그때와 본질적으로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대타협 계획. 말은 그럴싸하지. 키타이 민족과 낭키아스 민족으로 분리한다? 그렇게 숫자를 줄인다? 그런 계획은 그 두 민족을 서로 반목하게 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어. 하지만 태사의 대타협 계획이 추구하는 건 ‘다이온 내 모든 민족의 화목’이지.”

분열하고 반목해야 의미가 생기는 한족 분할 정책.

그러나 다이온이 추구하는 바는 분할된 한족을 포함한 민족 간 화합.

모순이다.

“이름만 분할하고 실질적으로는 화목을 추구한다면, 그들이 키타이와 낭키아스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할까? 아니면 한족이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민족국가를 이루었던 시절을 추억할까?”

길들이려는 노력을 포기한 짐승은 야생화한다!

재연은 그렇게 단언했다.

듣고만 있던 수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다 옳다고 쳐. 어떤 식으로 태사한테 반항할 건데?”

재연에게 다시 절망을 안겨줄 반론. 가슴 아프지만 해야만 한다.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도 살기 위해. 그나 자신 같은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을 살리기 위해.

하지만 신입생 환영회 때 절망으로 술을 들이붓던 모습과는 달리, 재연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수영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상황은 4년 전과는 달라졌어.”

재연은 수첩 비슷한 것을 손가락에 끼워 눈앞에서 흔들었다.

“제국입헌당 당원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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