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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37화 (437/541)

동군연합(2)

고려 내전 이래…… 어느덧 5년 차다. 정신없이 달려왔다.

“고생스럽긴 해도 대부분의 일은 우리 뜻대로 되어 왔어.”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승리의 기세에 취해 모든 걸 멋대로 하려 들다간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법이다.

“몽골 제국입헌당이 자기만의 세력을 다져나간다 해도 한계는 명확해. 동군연합이 성립된 이상, 울제이나 게레센제처럼 우리에게 대항하는 거대한 세력을 꾸리지는 못하지.”

그렇기에 저들의 반항은 과도한 복종이라는 왜곡된 방향으로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우리 대로 커진 덩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 비만한 조직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근육을 다진 조직이 될 것인가. 나는 올해 총선거를 기점으로 그 후 4년을 내다봐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여차하면…… 아직 견하와 감찰국에는 「화림 계획」이라는 패가 남아 있다.

그 계획의 실행은 다이온 연방의 권력 구도를 단숨에 재편성할 것이다. 확실한 효과가 있으니만큼 그 패는 일단 아껴두자.

“바다 건너편에서 진행 중인 아즈텍 내전의 향방도 지켜봐야 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다이온은 그때를 위해 힘을 비축해둬야 해.”

따지고 보면 고려 내전, 몽골 내전, 한족 반란과 풍군작전…… 이런 굵직한 사건들은 정말 운 좋게 빨리 끝났다.

오히려 저렇게 시간을 끄는 아즈텍 대륙의 양상이 내전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기다리자. 다음 할 일이 올 때까지.”

***

보르지긴 가문의 수장이자, 몽골과 다이온 전체의 신성한 지배자가 내린 명령.

모든 보르지긴 왕공은 칸발리크로 집결하라는 그 명령을 위반한 자는 없었다.

“왕공에게, 황실의 친인척에게 울루스를 분봉하는 제도를 영구히 폐지한다.”

늙은 황족들에게야 충격적인 내용이었겠지만, 대부분의 황족은 키타이와 낭키아스가 폐지되는 것을 보며 이러한 조치를 예감했다. 중세적 영지 분봉은 참으로 오래도 살아 있었다.

“허나 왕공의 작위는 명예직으로서 유지된다.”

즉 어디 어디의 왕이라는 식으로 자칭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영지는 몰수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왕공이 울루스의 지배자로서가 아니라 사업가로서 토지를 경영하는 경우, 교육자로서 학교를 건립한 경우 해당 토지는 몰수 대상으로 삼지 아니한다.”

그러니 땅을 빼앗기기 싫거든 공장을 짓고 열심히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하든지, 학교를 지어서 교육 보급에 힘쓰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봉토는 일단 국유지로 전환되겠지만, 젊은 황족들을 중심으로 교육과 산업의 열기가 살아나면 그건 그것대로 상당히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이 있었다.

“당장 생계가 곤란해진 황족은 칸발리크나 동명의 황궁으로 들어오라. 한동안은 황궁에 거주하며, 노쇠하지 않은 자라면 직업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구시대의 황족도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루우는 ‘황제라는 이름의 국가기관’으로 재정립된다.

이상의 칙령은 보르지긴 가문의 수장 루우 테무르의 입에서 나왔지만, 모두들 그 뒤에는 고려 정부가 있다는 걸 잘 알았다.

반발심을 품은 자도 있었겠지만 누구도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다. 왜냐하면 이상의 조치는 뜨내기 정치가, 책상물림 이론가의 개혁정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군사적 승리를 바탕으로 한 명령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두 단계에 걸친 숙청, 그리고 황족의 처우 결정을 마치고 나자, 칸발리크에서의 일은 마무리되었다.

제대로 된 즉위식, 전통적인 쿠릴타이를 위해 루우는 칸발리크를 나와 북상했다.

옛날처럼 말을 타고 이동했다면 몇 달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행렬이지만, 이제는 살아있는 말 대신 철마, 즉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카라코룸으로 향하던 중 다시 차로 갈아타고 또 동북 방향으로 한참을 달려, 황제와 그녀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은 오논 강가에 도착했다.

“말을 타고 왔다면 볼이 남아나지 않았겠어.”

빨갛게 터버린 볼을 비비며 리안은 그렇게 불평했다. 그러다 견하의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린다.

“코가 빨개.”

손바닥을 내밀어 견하의 코끝을 살짝 문질렀다. 추위로 굳어버린 견하의 뺨마저 웃음 짓게 할 만큼, 리안의 그 동작은 발랄했다.

웬만큼 최고 권력 집단에 접근하지 않고서야 볼 수 없는, 두 연인이 서로에게 장난을 치는 광경.

의식이 시작되기까지 아주 잠깐이지만, 리안과 견하는 여기서 겨울 여행을 온 평범한 연인이 되었다.

입김마저 얼음 결정이 되어 떨어질 것만 같다.

삼한반도 남쪽에는 이미 봄이 왔겠지만, 이곳 몽골 본토, 오논 강 인근은 여전히 삭풍이 불었다.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이, 그들의 황제는 바람을 정면에서 받으며 의식을 거행한다.

하긴 용이 어찌 찬바람 따위에 굴하랴.

새로 선출된 카라코룸 총대주교가 의식을 돕는다. 이 의식은 전통적인 몽골 카간의 즉위식이면서, 동시에 고려 황제의 관에 몽골 카간의 관을 더하는 대관식이기도 했다.

고려 태사 미리안이, 몽골 태사 시반이, 그 외 황족 원로들이 ‘루우를 카간으로 추대한다’라고 소리높여 선언한다.

그리고 루우가 이를 받아들이면, 신하와 왕공들이 루우를 어깨 위로 떠받들고 제단을 향해 나아간다.

여기에는 견하도 참여했다.

이는 카간 본인으로부터 그 공이 대단하다고 인정받은 것이면서 동시에, 제국 내에서 주견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였다.

-또 각국 정보기관이 바쁘게 움직이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견하는 쓴웃음을 삼켰다.

이미 자신을 주목해왔던 자들도 있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주견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본격적으로 파고들려는 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경계를 강화하고, 은밀함과 신비함으로 자신을 감싸야 한다.

모습도, 의중도 드러내지 않는 자 앞에서는 누구든 행동을 조심하기 마련이니까.

루우는 침착한 얼굴로 총대주교가 내미는 관을 받아 쓴다.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면서 몽골의 전통에도 유럽적인 색채가 많이 덧씌워졌다고 들었다. 본래 텡그리에게 즉위를 고하던 것은 크리스트교의 신에게 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간 몽골인들이 섬기던 천신(天神) 텡그리가 곧 크리스트교의 신이었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하늘에 고하고, 신하들을 향해 돌아서서 즉위를 선포한다.

게레센제의 즉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술데가 바람에 흔들린다.

고려 황제로 즉위할 때의 단아함과는 또 다른, 야성미가 이 강변을 가득 채웠다.

옛 초원 전사 집단의 기풍이 그대로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루우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동정심’이지.”

루우를 올려다보면서, 태사는 그렇게 견하에게 속삭였다.

목숨 걸고 칸발리크를 구한 영웅이면서도, 숙부인 게레센제 및 울제이에게 황위를 빼앗겼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그녀를 동정했다.

반면 게레센제와 울제이는 별다른 활약을 한 것도 없으면서 황위 계승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불청객’으로 여겨지며 인심을 잃었다.

게다가 게레센제와 울제이 형제는 황위를 두고 추한 다툼을 벌이기까지 했다. ‘과연 그들이 카간으로서 적합한가’라는 의심이 퍼져나가는 게 당연했다.

반면 루우는 오래 침묵을 지켰다. 어디까지나 두 숙부를 돕는 역할에만 머물렀다.

고려의 선전전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애초에 게레센제와 울제이가 스스로 충분히 인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금만 더 똑바로 행동했어도 풍군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으리라.

“루우를 카간으로 지지하는 심정은 ‘차라리 루우 테무르가……’ 정도의 기분일 거야. 그래서는 한계가 명확해.”

“이번 쿠릴타이로 그 인식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거군요.”

엄청난 수의 촬영 장비가 동원되어 이 의식의 전 과정을 담고 있다. 가까이로는 카간의 아름다운 얼굴부터, 멀리는 거의 사단이 집결한 듯한 장엄한 전경까지.

이 장면은 선전영화 수준으로 다듬어져, 다이온 전역의 극장과 방송국에 보내질 것이다.

루우가 왜 굳이 이 의식을 치르고 싶어 했는지, 견하는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높은 곳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는 저 금빛 눈동자는 앞으로 무엇을 꿈꿀까, 하고.

견하가 보기에 루우는 이미 삶의 최전성기에 이른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이 순간을 절정으로 여길지, 아니면 또 다른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초석으로 여길지…… 견하는 그게 궁금했다.

***

모두에게 바쁜 나날이었다.

루우는 카라코룸으로 향해 류성일의 보고를 받으며 도시의 상황을 살폈다. 어쨌든 고도(古都)이자 또 다른 황궁이 있는 곳이면서, 시레문이 시작한 산업화의 기점이었으니까.

게레센제나 울제이의 계승자가 아니라, 시레문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루우에겐 반드시 들러봐야 할 장소였다.

그러고 나선 대원철도주식회사의 사업을 치하하며 다이온 전역을 아우르는 철도망 건설에 힘써줄 것을 주문했다.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한 대륙철도의 건설사업에도 원철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몽골 본토에서의 일이 끝나자마자, 루우는 동명으로 귀환했다. 몽골과 고려 모두의 군주가 되었다고 해도 동명은 그녀가 처음 수도로 삼은 곳이었다.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카간 즉위, 몽골과 고려 간 동군연합이 성립되었음을 알리는 황제의 라디오 방송. 이는 황제의 포고라는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고려 국민에 대한 보고’이기도 했다.

반응은 당연히 열광적이었다.

모든 여론 조사 지표는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 그리고 다음 총선에서 제국입헌당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명에서의 일을 마치자마자 황제는 다시 칸발리크로 움직였다.

‘제2차 동아시아 평화회의’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무는 다른 이들이 하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다이온의 국가원수로서 회의를 주재해야 했다.

카라코룸, 동명, 칸발리크. 이렇게 세 도시를 오가는 황제의 바쁜 일정을, 그녀의 측근들도 정신없이 소화했다.

리안은 류성일과 만나 카라코룸의 실무를 논의하고, 동명으로 돌아와 제국최고회의에 성과를 보고하는 한편으로 밀린 일을 처리했다. 외무장관 조유관을 대동하고 칸발리크로 와서는 곧장 동아시아 평화회의 준비에 착수했다.

이렇게 리안이 정신없이 격무에 시달리는 사이, 견하는 얼마 전에 생각해두었던 것을 상소문으로 정리해 황궁으로 나아갔다.

제국최고회의 의원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태사부 소속 공무원인 그는 이런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했다.

“태사 미리안은 폐하를 도와 황실을 굳건히 하고, 안팎의 난을 평정하며 역적들을 토벌함에 있어 세운 공이 개국장절공 신숭겸에 비길 만합니다. 이에 다른 신하와 동렬에 머물 수는 없는즉, 각하라는 호칭을 거두고 합하라 불릴 수 있기를 태사부 관원 모두가 소망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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