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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36화 (436/541)

동군연합(1)

몽골 제국입헌당의 칸발리크 입성.

이와 함께 숙청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되었다.

시반 총재가 그 누구의 이의 제기도 없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몽골 타이시로 선출되었다. 쿠릴타이에 남은 황정회 잔당은 ‘고려의 의사를 거스를’ 생각도, 힘도 없었다.

그렇게 시반이 타이시가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루우는 이를 승인했다. 아직 정식으로 몽골 카간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법적 문제를 걸고넘어질 용감한 원칙주의자 역시 남아 있지 않았다.

시반이 정계의 정면으로 떠올랐다는 건, 곧 그의 그림자에 숨어 데렘칭과 차파르도 칸발리크 정계에 스며들었다는 말이다.

일선 혁명가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해오던 데렘칭은, 그들과 함께 일종의 자경단 조직을 만들었다. ‘몽골혁명군단’이라는 이름의 그들은 칸발리크의 치안을 담당하는 한편으로, 언제든 출동해 2차 숙청을 실행할 준비를 마쳤다.

“고려 측에서는 볼로드나 울제이의 입김이 스며든 기존 경찰 조직은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더이다.”

이제는 당에서 ‘삼두’로 불릴 정도로 정점에 이른 세 사람의 회동 자리. 차파르는 다른 두 동지를 향해 그렇게 운을 뗐다.

당 지도부와 외부 세력 간, 이념적으로는 도저히 맺어질 수 없는 물밑협상을 담당해오던 차파르이니만큼, 이제는 고려와 견해차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어찌할 것인가.”

데렘칭이 단숨에 핵심을 파고든다. 일선 혁명가다운 날카로움이다. 그는 차파르의 말에서 고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냄새를 맡아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우리의 혁명이 성공해서는 아니지. 그저 노선을 잘 탔을 뿐이오.”

그렇기에 기반이 미약하다. 고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카라코룸에서 당의 대중적 기반을 확보해왔소만, 그게 제대로 다져지기도 전에 고려가 너무 빨리 움직였소.”

“동의하오. 몽골의 다른 지역에 어떻게 뿌리내리기도 전에 칸발리크 전체가 우리에게 떠맡겨진 셈이오.”

“당의 역량은 부족하고, 우리가 필연적으로 고려 정계의 지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미 펼쳐졌소. 그러니 당은 답을 내놓아야 하오. 어떻게 하면 고려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을 것인가.”

몽골 내전에서 고려, 게레센제와 손을 잡고 승자에 편에 선 후, 몽골 제국입헌당은 정식으로 칸발리크 정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게레센제의 치세 동안에는 쿠릴타이를 구성하는 여러 정당 중 하나였을 뿐, 영향력은 미약했다. 불법 정당이 아니게 된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게레센제와 울제이를 확실히 몰락시키기 위한 풍군작전이 실행되면서, 그들은 일시적으로 칸발리크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그리고 작전이 마무리되자 다시 칸발리크에 들어와 이렇게 여당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선거도, 혁명도 거치지 않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여당…… 그게 지금 우리의 신세이지요.”

데렘칭과 차파르의 대화를 보고 있던 시반이 입을 열었다.

말끔한 얼굴에 듣기 좋은 목소리를 지닌 그는 쿠릴타이에 내보내기 위한 간판이었지만, 동시에 동지들 간 갈등을 다독이는 역할도 줄곧 해냈다.

밖에서 보기 좋은 간판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묘한 흐뭇함을 자아내는 법이다.

“일전에 동지들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주견하라는 인물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소. 그 비상한 청년은 혁명가 한 사람이 아쉬운 우리 운동에는 무척이나 부러운 인재지. 그처럼 이론과 실행 양쪽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가 우리 당에도 한 사람 있었다면 벌써 여기에 인민들의 공화국을 세우고도 남았을 거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의 역량 부족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곧 당과 함께해 온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미리안이나 루우 테무르 이전에, 아직 그 부하에 불과한 주견하 한 사람에게도 미치지 못한다.

“미리안 타이시와 대립할 방법은 없소. 그랬다간 볼로드와 같은 최후를 맞이할 뿐이오. 루우 테무르 카간과는 더더욱 대립할 수 없지. 우리가 그분의 신하라는 이름을 걸고 있기에, 우리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큰 반발 없이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오.”

길게 돌아가는 이야기였지만, 데렘칭과 차파르는 시반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고려의 도구가 되는 추세 자체는 막을 수 없다.

따라서 고려 전체와의 대결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대결의 범위를 좁혀야 한다.

고려와의 대결이 아니라 고려 내 ‘어떤 요소’와의 대결이어야 한다. 다이온이라는 큰 틀 내에서의 대결이어야 한다.

“……동지의 말은, 주견하를 견제하는 데 집중하자는 거요?”

데렘칭이 물었다. 시반은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번 풍군작전도 그 청년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들었소.”

“풍군작전에 내재한 ‘몽골 완전 병합’, 혹은 괴뢰화의 위험한 냄새…… 그것이 주견하라는 인간의 작품인가…….”

“물론 주견하의 독단은 아닐 것이오. 카간이나 고려 타이시의 묵인이 있었겠지.”

“그러나 카간과 고려의 타이시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할 터. 우리가 주견하와 대립한다 해도 그를 지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거요.”

“하지만 그 말은 우리의 반항을 참아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과 같소.”

주견하와 대립한다. 그렇게 범위를 좁힌 것까진 좋다. 그러나 그와 ‘어떤 식으로 대립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방법은 한정적이다. 그들은 게레센제나 울제이가 그랬듯이 고려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알타이 자유공화국이 그러했듯이 독립의 깃발을 세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고려의 우위. 다이온 연방. 이 전제는 깰 수 없다.

“요컨대 우리는 당의 역량을 강화할 ‘시간’을 버는 데 집중해야 하오. 주견하와 사사건건 정면에서 부딪히는 방식은 고려의 ‘의심’을 살 우려가 있소.”

그리고 그 의심은 특히 위험하리라. 게레센제나 울제이 비슷한 무언가가 되려는 낌새만으로도 고려는 자신들을 짓밟을 것이다.

세 사람 사이에 한참 침묵이 흘렀다.

입가를 한 손으로 쓸던 데렘칭이 가장 먼저 침묵을 깼다.

“신뢰를 사면서도 효과적으로 시간을 벌 방법이 있소.”

다른 두 사람이 데렘칭을 향해 의문에 찬 시선을 보냈다.

“지나친 예의는 무례함과 같다는 말이 있지. 마찬가지로 지나친 복종은 저항과도 같소.”

“지나치게 복종한다……?”

“당장 우리에게 고려가 내민 과제가 있지 않소.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어찌어찌 게레센제, 울제이 시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2차 숙청 말이오.”

시반과 차파르는 데렘칭의 말을 곱씹어봤다. 숙청에 지나치게 복종하라는 말은 곧…….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더욱 철두철미하게. 고려 정부가 당혹스러워할 만큼.”

“그건…….”

차파르는 뭔가 말을 꺼내려다 다물었다.

그런 짓을 한다면 몽골 제국입헌당은 ‘고려인의 앞잡이’라는 꼬리표를 영영 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앞잡이 꼬리표를 단다고 해서, 그걸 빌미 삼아 몽골 제국입헌당을 대체할 세력이 어디 있지?

어디에도 없다.

고려는 몽골 제국입헌당 앞에, 그렇게 해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몽골혁명군단’으로 경찰 조직을 장악하겠소. 간부 중 충성심이 의심되는 자들을 잘라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식이면 되겠지.”

주견하가, 고려가 손을 쓰기 전에 먼저.

그러면 확실히 상황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무언가를 성과를 냈기에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집단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결국은 카간 폐하와 다이온 연방에 대한 충성으로 받아들여질 것이오. 우리와 주견하의 대립은 일종의 ‘충성경쟁’이 되는 셈이지.”

“고려의 정책 목표 달성에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면, 고려는 우리를 없애거나 통합하길 부담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병합 후 직접 통치보다는 우리를 통한 간접 통치를 추구할 가능성이 크오.”

괴뢰화는 피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합병을 막을 수는 있다.

데렘칭의 설명을 듣고 있던 차파르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는 고려 타이시 미리안과 담판을 지어보겠소. 우리가 이런 일들을 처리한 대가로 다이온 연방 내에서 고려와는 별개의 국가로 남을 수 있는지, 확답을 받아야겠지.”

데렘칭과 차파르,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보던 시반이 덧붙였다.

“류성일이나 안세규와도 접촉해보는 게 좋겠소. 특히 안세규는 ‘병합’에 부정적인 입장일 테니.”

***

견하는 칸발리크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보고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호오’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체포, 체포, 체포, 사살, 체포, 가택연금, 체포, 체포…….”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라며 견하는 곁에 선 지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놓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이네요.”

“맞아. 여기 ‘사살’이 유일한 도주 시도인데, 놓치지 않고 잘 끝냈군. 해외로 망명해서 ‘고려의 침략 실태’라느니 ‘몽골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이라느니 떠들어대면 그건 그것대로 짜증 나거든.”

저지른 학살이 있어서 여론전은 펼치지 못하는 신수덕의 존재도 충분히 짜증 난다. 여기에 또 다른 성가신 존재를 추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 ‘가택연금’. 당장 의심스럽긴 하지만 일단 살려두고 언젠가는 써먹을지도 모를 인간은 이렇게 처리했어. 유연해. 체포나 사살 밖에 할 줄 몰랐다면 평가를 좀 낮췄겠지만…….”

과격하기만 했다면 그 결과물은 몽골 제국입헌당의 독재체제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리안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독재자의 후계자이며 또 다른 독재자임을 잘 아는 만큼, 민주주의로의 ‘연착륙’을 바란다.

권위주의 독재의 한계는 명확하다. 리안의 백부인 미승휴는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고, 그 체제는 허동주나 신수덕의 대두를 견제하지 못했다.

그러니 모순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몽골에서도 민주주의 개혁을 원하지 않는 이를 ‘독재적 수술’로 제거하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했다.

몽골에서의 숙청은 다이온 대개혁의 첫 단계이기도 했다. 리안은 더는 볼로드처럼 개혁에 미적지근한 인간을 참아줄 생각이 없었다.

견하도 국가 기능의 측면에서 민중을 정치에서 배제하려는 귀족적 사고방식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리안과 견하의 의중에 비추어 보았을 때, 몽골 제국입헌당은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종합해보자면,

몽골 제국입헌당의 수완은 제법이었다.

몽골 제국입헌당은 ‘제법’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주도권을 쥐고 뭔가 할 수 있는 집단임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거지.”

견하의 시선은 이번엔 한재연 쪽으로 향했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는 한족 정책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지만…… 몽골 제국입헌당이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재연은 그렇게 의문을 던졌다. 견하는 턱을 괸 채 재연에게서 이익서로, 양수영으로 시선을 차례로 옮기다 대답했다.

“숨 고르기를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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