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9)
“하긴, 안 그래도 식민지 주민들은 ‘이교도 지배자’의 통치를 받는 것만으로도 치욕스러울 테니까요.”
북아프리카에서 레반트,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식민지 주민들의 사고방식은 독특하다.
이들 대다수는 자기들이 세운 나라가 어떤 식으로 외교적인 실수를 하고 어떤 정책을 잘못 펼쳐서 패배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교도 황제가 자기들을 통치하게 된 상황을 ‘신이 준 시련’이라 여길 뿐.
그 시련에 대한 답으로 더 큰 신앙을 보여야만 현세의 상황도 개선되고, 죽은 뒤의 구원도 있으리라 믿는다.
“신앙을 동반한 저항심이 극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지.”
그 저항심을 정면에서, 철저하게 깨부순다.
“벨리사리우스 황제가 그들 앞에 보이는 모습은 지상으로 기어 올라온 악마 그 자체일세. 로마인들은 황제의 모습을 천사 같다고 칭송하지만 무슬림 주민들에겐 우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토칸은 들고 있던 시체를 멀리 던져버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만큼이나 길게 뻗은 길 위에, 방금 던진 것과 같은 시체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이교도 황제의 순방길.
벨리사리우스는 식민지의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 마을의 살림살이까지 살피려는 ‘자애로움’을 연기한다.
주민들의 신앙을 정면에서 부인하는 그 존재의 가증스러움. 독립의 열망은 종교적 열정이 더해져 몇 배는 더 큰 불길로 타오른다.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이교도 황제의 머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날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오랜만에 칼과 총을 들고 황제를 습격했다.
결과는 암살자들을 포함한 마을의 전소(全燒).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벨리사리우스는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수행원은 내버려 둔 채 홀로 마을에 진입했다.
“생존자는 소문을 퍼트리기 위해 벨리사리우스가 일부러 살려둔 자들이겠지.”
“……이런다고 해서 그들의 신앙이 깨질까요?”
“신앙을 담은 육신은 확실히 바스러뜨릴 수 있지. 그리고 아무리 강한 신앙이라 해도 ‘관념’ 앞에 ‘신처럼 보이는 실물’을 계속 들이밀면 인간은 흔들리네.”
10만 명의 신앙이 달려들어 전멸하더라도 이교도 1만을 베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신의 뜻을 지상에서 증명한 것이다. 10만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0만, 100만이 달려들어도 단 한 명을 벨 수 없다면?
그 단 한 명이 언제까지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도저히 그 악마의 위상이 추락하지 않을 것만 같다면?
신수덕은 뱀 같은 눈으로 무심한 듯, 그러나 면밀하게 현장을 계속 살폈다.
“게다가 무슬림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다 해도,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벨리사리우스 황제에겐 이득이지.”
“격렬한 반응 자체가 이득이라는 말이죠?”
“최근에는 ‘비폭력 저항 운동’이 로마 제국의 골칫거리였으니까.”
가혹하게 진압할수록 자국 군경들도 회의감이 깊어가고, 국제적인 동정 여론도 높아만 가는 비폭력 저항.
모조리 죽여서 입막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누군가 ‘양심’ 있는 로마인이 그런 만행을 사회에, 세계에 알리고 저항 세력과 뜻을 같이하겠지.
로마 제국은 어쨌든 자유세계의 일원이다. 자유세계에 속한 다른 나라의 지식인들, 이른바 문필가니 기자니 하는 이들도 많이 방문한다. 그런 이들의 눈에 ‘비폭력’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이 들어간다면? 아니 귀에 들리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 써 댈 글이 얼마나 많은 자유세계 시민들을 분노케 할지는 뻔하잖은가.
자유세계 사람들에게 식민지 주민의 비폭력 항쟁으로 훼손될 ‘로마의 안정’은 별로 중요치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비폭력이 폭력에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는 사실, 그것 하나다.
분노는 여론을 형성하고, 여론은 정치인의 태도를 결정하며, 정치인의 태도는 로마를 향한 외교 정책을 변화시킨다.
‘그따위로 통치할 거라면 식민지를 해방하는 편이 낫다!’
식민지를 지닌 나라들까지 뻔뻔스레 그렇게 주장할 테지. 콧방귀 뀌며 버티면 그만이지만, 그렇다고 타격이 없는 건 아니다. 그때부턴 외국의 비공식적 지원이 저항 세력으로 향할 테니까.
세계대전 때는 로마 제국에 힘을 보태주었던 자유세계의 양심이, 이제는 피지배자가 된 식민지 주민들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의 입막음은? 그 역시 불가능하다. 실행하면 외교적 고립 만이 로마 제국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로마는 다른 자유세계의 구성원들에게서 등 돌릴 수 없다. 우방이 되어 줄 고려는 너무 멀리 있고, 바라트를 중심으로 한 공산권은 로마의 편이 아니다.
“방법은 단 하나지. ‘폭력 진압을 하기 위해’, ‘폭력을 유도한다.’”
“뭐, 멍청한 이상주의자들은 그 폭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니까 말이죠.”
“비폭력 대 폭력이라는 형식에 집착하는 만큼, 폭력 대 폭력이라는 형식으로 살짝만 전환해도 양쪽이 똑같은 놈들이라며 비난을 퍼붓곤 관심을 저버리지.”
이상주의자들은 한쪽이 얼마나 가혹한 통치를 받고 있는지, 왜 폭력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그들은 순진하게도 서로가 폭력이 아니라 대화로 평화를 이루는 세상을 바란다. 그러나 양쪽의 폭력을 같은 것으로 취급한 순간 평화의 마지막 가능성은 짓밟힌다. 따라서 이상주의는 반드시 이상을 파괴한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질세. 그들의 신앙에 어떤 의미인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벨리사리우스가 얼마나 초월적인 이단이고 로마의 통치가 어떠한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겠지. 그저 아주 약간의 인내심이 모자라서 벨리사리우스를 공격해 로마를 도발한 어리석은 무슬림들…… 정도로 생각하고 잊어버릴 걸세.”
“벨리사리우스는 식민지의 불안을 획기적으로 안정시킨 황제로 평가받겠죠.”
“획기적, 이라…….”
신수덕은 토칸의 표현을 곱씹어봤다. 그 표현대로였다.
비폭력 저항은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의외로 독립운동 지도부의 ‘강압적인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압제자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젊은이들은 많다. 그들을 지원해 테러와 암살에 나서도록 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들의 의기를 억눌러 평화적 저항 노선을 따르게 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때를 기다리라’고 열심히 설득하더라도, 젊은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생을 뛰어넘는 세월 이후의 일을 잘 상상하지 못한다.
따라서 비폭력 저항 운동의 지도부는, 끝까지 무장 저항 운동을 고집하는 젊은이들을 ‘죽여서라도’ 그 기세를 꺾어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비폭력 저항 운동은 독립운동 세력들 사이에선 ‘제국에는 아부하고 동포는 짓밟는’ 배신자들이라 비난받기도 한다.
“그런 비난을 받는 지도부는 일반적으로 오래갈 수 없지.”
“하지만 지금처럼 로마 제국 내에서 대대적인 비폭력 저항 시위를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지도부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네.”
실로 초인적인 역량일 것이다. 동지들의 모든 불만을 억누르면서 계속해서 대규모 민중을 비폭력 저항 운동에 동원할 수 있다면, 조직가로서만 뛰어난 게 아니다. 이 운동의 지도부는 인격적으로도 존경받을만한 인사들일 터.
“지금까지는 그걸 붕괴시킬 뾰족한 수가 없었지. 방법이라곤 기껏해야 본국에서는 비열함이 지나쳐 출셋길이 막힌 낙오자들을 ‘수완가’로 식민지에 파견하는 것 정도.”
“열강들도 부끄러움은 아니까, 그들이 식민지에서 저지르는 온갖 저열한 짓거리에는 눈을 돌려왔죠.”
무엇보다도 그런 짓을 해가면서까지 유지하는 식민지는 민중을 위한 게 아니다. 식민지의 확장을 통한 영광은 어디까지나 기득권층을 위한 것. 머저리 같은 하층민들은 그 영광이 자신의 비참한 생활이나마 연명하게 해주는 거라 착각하곤 한다.
“물론 나라면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모조리 죽인다’는, 확실하고도 안정적인 선택을 하겠네만.”
이 지점에서 토칸과 신수덕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만들어진 질서의 파괴를 목표로 하는 토칸.
파괴적으로 강력한 질서의 수립을 이상으로 하는 신수덕.
두 사람 모두 논쟁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걸 알기에, 그런 차이는 넘겨버리고 계속 눈앞의 일을 이야기한다.
“여하튼, 로마 제국은 그런 지도부의 역량마저 분쇄할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대놓고 지지를 표하진 않겠지만 각 식민제국 정부가 벨리사리우스 황제를 다시 볼 계기가 되겠군요.”
“비폭력 저항 운동 지도부가 이제 무슨 수를 쓰든 폭력이 범람하는 건 막을 수 없을 걸세. 지도부는 그런 추세를 따라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하든지, 아니면 옛 동지들의 저항 속에서 완전히 분쇄되든지 택해야겠지.”
“노선을 전환해봤자 저항 운동의 생명을 약간 연장할 뿐이죠.”
“그렇지. 결국은 씹어 삼키기 좋은 먹이가 되었을 뿐이네. 각 식민제국도 완전히 똑같이 따라 하진 못하겠지만 ‘폭력을 유도하는 방법’을 강구하겠지.”
“식민지인의 문화나 종교적 측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자극해 ‘폭력을 유도한다’. 물론 그렇게 유도된 폭력을 잡아먹을 준비는 철저히 해두고.”
대응할 방법이 전혀 없을까?
로마 제국, 에티오피아, 공산권에 포위되어 세계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아라비아 칼리프국’. 신 이슬람 제국이 무너진 후 칼리프의 난립과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
그리고 그것 말고는 알려진 게 거의 없는 나라에서 이단 기술을 동원해 뭔가 꾸미고 있다면 반격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일세. 무슬림의 종교적 고집은 알아줘야 해. 그들에게도 우리가 ‘이단’이라 부르는 종류의 초능력자는 있지만, 우리처럼 체계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네. 감히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불경한 짓이라 여기니까. 결국 그게 원인이 되어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네만.”
“식민지 주민들이 벨리사리우스의 새로운 식민지 정책을 물리칠 방법은 없군요.”
“그러니 식민지의 저항이 어떻게 흘러갈지 보다는, ‘모든 저항이 분쇄된 뒤’ 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해보는 게 더 값어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