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31화 (431/541)

아우구스투스(7)

“교종청을 이용하는 것도 문제다. 교종이 원하는 건 교종을 정점으로 한 종교 국가이지, 민주주의나 공화제가 아니다.”

“교종청이 우리를 돕는 것도 결국 그게 교종청의 세속 권력 장악에 득이 되기 때문이지, 이탈리아 민족주의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막상 독립을 이루고 나선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동지들을 탄압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전제군주에게 권위를 실어줄 가능성도 없지 않고.”

종교가 사회의 진보를 꿈꾸는 자들 편에 선다고 해서, 종교의 본질이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종교가 최우선인 세상을 원한다. 그들이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것은, 그저 보나파르트 황실이 교종청의 세속 지배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독립이 완수되고 나면 마지막 장애물들, 사회의 진보를 원하는 공화주의자, 민주주의자를 치워버리려 들겠지.

신의 왕국은 당장 신성 제국의 지배보다 못할 것이다.

반대로 독립 후 교종령을 신생 이탈리아로 편입시키는 것 역시 어려울 터. 교종령은 세계 종교의 권위를 앞세워 이탈리아 반도 통일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신생 이탈리아의 영역에 통일되지 않고 남은 별개의 세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갈등의 여지가 있다. 신생 이탈리아는 끊임없이 교종령의 합병, 종교의 국가 통제를 추구할 테고, 이에 맞서 교종령은 이탈리아의 안정을 끊임없이 흔들 테지.

“이탈리아 민족주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이 모든 측면에서 진보하려면……”

독립운동 단체마다 논쟁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거의 같았다.

“벨리사리우스 황제가 내민 손을 잡는 수밖에.”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그들도 벨리사리우스와 협력한다는 노선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탈리아의 독립이 어렵다면, 가능한 진보라도 달성하는 편이 좋다. 종교의 옷자락 뒤로 숨는 것은 혁명 정신을 훼손한다. 군주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 퇴보지만, 로마 제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했다는 것만으로도 로마 제국 내에서 상당한 양보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여론이 형성되는 데에는 벨리사리우스가 계속 추가한 혜택이 큰 역할을 했다. 자치, 공화국에 준하는 정치 운영, 이탈리아 민족주의의 존중…….

정말일까 싶을 정도의 양보를, 벨리사리우스는 내놓았다.

거기에 덧붙여 ‘로마인 내셔널리즘’이 서서히, 물들이듯 북이탈리아로 침입했다.

“애초에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의 본토이고, 우리 이탈리아인은 곧 로마인이지 않았나? 만약 우리가 로마 제국의 품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조국의 품, 동포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로마 제국으로의 회귀가 곧 독립이요, 로마 제국과 하나 됨으로써 남북 이탈리아도 자연스레 통일된다.”

그런 프로파간다가 활동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었다.

“남은 과제는 우리 이탈리아가 진정 ‘로마의 중심지’ 위치를 회복하는 것.”

이탈리아 독립운동에 벨리사리우스의 손길이 뻗자, ‘로마 제국 내에서 지위 상승’이라는 방향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교종청에서 로마 제국 정부로.”

벨리사리우스는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방해물인 형제들을 제거하고, 교종청의 영향력을 걷어냈다.

교종청이 벨리사리우스와 거래하며 이탈리아 독립운동 세력과 이어준 선.

그 선이 이렇게 벨리사리우스에겐 또 하나의 기회로, 국제 정세에는 또 다른 위기로 돌아오고 있었다.

***

살생부는 이미 작성되었다.

개봉에 장해진 대장이, 응천에 우흥섭 대장이 입성했다. 이들은 친려파 정치인들이 일단 키타이와 낭키아스 정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후원했다.

고려 황제는 키타이와 낭키아스, 두 봉국을 해체한다고 선언했지만, 그 선언만으로 나라가 단숨에 해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해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단 친려파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적이자, 고려의 다이온 주도에 반대하던 모든 인간을 고발했다. 굳이 이런저런 죄명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반역. 루우의 카간 즉위를 방해하고 울제이에게 협력했다면 그런 죄목을 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곧바로 고려군과 현지 경찰이 체포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망명한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이온 국내에 단단히 뿌리내렸기에 어쩔 줄 몰라 하다 그대로 붙잡혔다.

낭키아스에서는 이른바 ‘토호파’라 불리던 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들은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았으면……’ 하고 요행만 바라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칸발리크로 압송되었다.

응천에선 친려파 정치인들이 성장할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비교적 순탄하게 숙청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개봉에선 아니었다.

게레센제가 칸발리크로 떠나는 바람에, 어린 바이다르가 고려와의 협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응천에는 친려파가 성장했다.

그러나 울제이는 개봉의 정계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다. 잠시 칸발리크 중앙 정계에 진입했던 때에도, 개봉과 키타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의 감독을 받았다. 때문에 친려파 정치인이 성장할 여지 따윈 없었다.

개봉은 루우에게 굴복하기로 한 키타이 관료들이 장해진 대장의 군정에 협력하는 체제를 한동안 유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키타이에서의 숙청 대상은 끝까지 고려에 대항하는 자들, 혹은 어느 쪽으로도 거취를 밝히지 않은 자들이 되었다.

만약 이전의 다이온 연방이 같은 숙청을 시도했다면 어마어마한 반발에 부딪혔을 것이다. 지방에서는 토호들의 반항으로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완전히 마비되었겠지.

그러나 ‘풍군작전’은 그 반발의 씨앗을 짓밟아버렸다.

“의도한 건가?”

칸발리크의 태사부 집무실. 리안의 물음에 견하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글쎄요.”

솔직하지 못한 답이다. 마치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그런 효과도 내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듯한 말투와 행동.

울제이가 난리를 치면서 낭키아스와 칸발리크의 구태 정치인들이 쓸려나갔다. 그런 울제이가 쓸려나가면서, 고려가 어떤 정치인을 심든 견제할 장치가 소멸했다.

토호가 제아무리 세력이 강해도, 그 지역 폭력배를 모조리 동원할 수 있다고 해도 군인의 총구 앞에선 무력하다.

책상물림 징집병의 총알 하나가 근육질 무도가의 이마를 손쉽게 헤집어 버릴 수 있다. 그것이 군대의 힘이다.

키타이와 낭키아스의 지방 세력은 울제이와 고려에 두 번이나 군사적 패배를 겪은 처지였다. 군대의 압도적 힘, 그것도 패잔병을 향해 행사되는 힘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일차적으로 위험 요소를 제거한 뒤엔, 이 과정에서 승자에게 빌붙으려는 기회주의자들을 제거할 거야. 물론 혼란에 혼란을 더하는 셈이니 적절한 대책은 필요하지.”

“네. 몽골 제국입헌당. 당 총재인 시반을 비롯한 혁명가 집단을 칸발리크로 불러들일 거예요.”

“혁명 조직 및 정당을 이끌어 본 경험이, 행정관료로서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

고려의 제국입헌당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태사 또는 문하시중을 정점으로 하는 철저한 관료 집단이었기에 정당 정치에는 익숙지 않았다.

만약 리안의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황제 루우를 끌어들이지 못했더라면, 1929년의 총선거에서 제국입헌당이 대승리를 거둘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정치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야당들이 제국최고회의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겠지.

그렇기에 반대로, 정당 정치에만 익숙한 자들이 관료 역할을 얼마나 잘 해낼지 염려할 수밖에.

“혁명으로 기존 체제를 무너뜨린 많은 신생 민주정이 결국 ‘무능’하다는 평을 받고 몰락한 건, 경험의 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을 거야.”

“부패하고 사악하긴 해도 구체제 세력이 ‘유능’해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죠.”

“어쨌든 일 처리에 있어 경험은 많이 쌓였을 테니까. 신진 세력이 경험을 많이 쌓을 기회, 몇 번이고 다시금 정권에 도전할 기회만 있다면 경험의 격차는 줄어들고, ‘무능’하다는 딱지도 뗄 수 있겠지.”

“하지만 구체제 세력도 그 정도는 알고 있죠.”

“그래. 그래서 반혁명은 반드시 ‘기회’를 가혹할 정도로 박탈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그게 지나쳐서 다시 혁명이 반복되겠지만, 시간과 비용, 목숨이 너무 많이 낭비된다.”

리안의 강렬한 시선이 견하를 똑바로 향했다. 그녀가 주문하는 바는 분명했다.

“몽골 제국입헌당의 ‘기회’를 지키라는 거군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관료 경험이 많은 이들 중에서 사상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을 골라 당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있겠죠. 이때는 사상적으로 다소 미흡하더라도 몽골 제국입헌당 수뇌부가 이해해줘야겠지만…….”

견하는 말꼬리를 흐렸다. 몽골과 고려의 두 제국입헌당은 이름과 당적을 공유했지만 그 성향은 완전히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고려 제국입헌당은 우익에, 몽골 제국입헌당은 좌익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당이 추구하는 바가 흐려지는 걸 그들이 받아들일까. 주 국장도 그런 생각인 것 같군.”

“네.”

“나도 그래. 성향이 다른 관료가 당의 방침과 계속 충돌하는 것도 큰 문제고.”

“시반 총재에게 일임하고 성장을 기다리는 편이 좋을까요?”

“무난한 답이지만 거기에도 문제가 만만치 않아. 우리는 언론을 검열하고, 그들의 정적인 황정회 대부분을 숙청해 줄 거야. 하지만 그들의 무능이 극에 달한다면? 몽골인들의 불만도 극에 달해서 몽골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난다면? 주 국장은 어떻게 하겠어?”

진압한다…… 는 답변은 내놓을 수 없다.

몽골인들이 고려군이 자기네 땅에서 활개 치는 걸 참아주는 건, 루우 테무르를 옹립하고 질서를 확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레센제나 울제이, 심지어 시레문보다 더 나은 시대를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도 있다.

그렇기에 볼로드와 황정회 같은 자국 정치인을 마구 숙청해도 그들은 참아준다.

하지만 더는 참지 못하게 된다면? 내전의 기억도 희미해진 뒤, 다시금 외세인 고려와 그 꼭두각시 정권을 쫓아내자는 여론이 형성된다면?

“사회주의자들의 지나치게 실험적인 정책관도 문제야. 그들은 정책을 ‘실험하다 실수도 좀 해볼 수 있는 교실’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

얼핏 보기엔 겸손한 태도 같다.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며 고집을 부리는 오만보다는 나은 측면도 있겠지. 전 인민과 함께, 실수를 수정해나가며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간다는 태도는 훌륭하다.

혁명의 이상도 그런 태도라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정책은 위험한 실험실이 될 수 없다. 실험실이 된다고 해도 그 위험성을 철저히 제한한 실험실이어야 하지. 왜냐하면 정책에는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야.”

“실패한 정책의 피해자에게 정치인은 ‘앗 미안’하고 끝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피해를 본 사람의 인생은 영영 돌아오지 않죠.”

“그래. 그래서 그 무모할 정도의 실험 정신을 좀 억누를 필요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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