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5)
리안의 의문에 이번엔 재연이 직접 앞으로 나섰다.
“관리 임용에는 몽골어와 고려어 성적이 필수이기 때문에, 실상 한족 학생들에게 두 언어는 필수 과목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선택 과목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반발을 줄이기 위한 조치죠.”
재연의 대답에 견하가 다시 의견을 덧붙였다.
“키타이와 낭키아스에서 진행하던 몽골화 정책도 계속 유지됩니다. 우리는 거기에 ‘고려화 정책’을 덧붙일 뿐이고요.”
“각하께서 세워두신 「대타협 계획」에 따라, 한어 과목도 약간 수정이 가해질 겁니다.”
“한어 과목에 수정을?”
“네. 「대타협 계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족이라는 거대한 민족집단을 ‘키타이 민족’과 ‘낭키아스 민족’이라는 두 집단으로 나누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며 재연은 슬쩍 리안의 눈치를 살폈다. 리안은 재연이 그 계획을 어떻게 해석했든지 상관없다는 듯, 계속해보라며 턱짓했다.
“한족의 거주 범위는 실상 몽골 남부와 역외사국까지 이를 정도로 넓고, 또 인구도 많습니다. 이에 따라 방언도 다양하지만, 한어는 구 수도인 응천을 중심으로 표준어를 설정하고 있죠.”
응천은 명나라, 오삼계의 주나라, 태평천국에 이르기까지 500년 넘게 한족 국가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당연히 언어도 응천을 기점으로 일정한 양식을 형성해왔다.
리안은 단숨에 재연이 하려는 말의 요점을 알아차렸다.
“한어를 ‘키타이어’와 ‘낭키아스어’로 분리한다?”
“네. 응천을 중심으로 한 화남의 표준어는 새로 ‘낭키아스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대신 그간 개봉 일대, 화북의 방언에 불과했던 언어는 ‘키타이 민족의 표준어’로 삼도록 하는 겁니다.”
“공통의 표준어를 쓴다는 데서 오는 동질감, 그걸 지워버리겠다는 거군.”
“북쪽 방언을 ‘표준 키타이어’로 재탄생시킬 언어학자들에게, 의도적으로 낭키아스어와의 차이를 벌리도록 주문해야 합니다. 고려나 몽골의 한어 학자들도 이 과정을 감독하게끔 해야겠죠.”
방언 간 격차가 크다고 해도, 공통의 문자를 쓰고 있다는 건 분명 동질감의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미묘하게 달리 쓰는 어휘부터, 문법적 습관까지 약간의 차이라도 새 표준어에 반영해야 한다.
“다이온이 이런 분리 정책을 100년간 유지할 수 있다면, 분명 두 집단의 분열은 가속할 겁니다.”
“이 정책을 더욱 효과적으로 적용하려면 몽골어와 고려어 교육을 두 집단에 차등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견하가 덧붙인 의견에 리안이 호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호기심의 표현이다.
“어떤 방식이지?”
“언어에 고려의 색, 혹은 몽골의 색을 입히는 겁니다.”
당장 고려어에도 쿠데타, 아이디어, 깡패 같은 외래 어휘가 많이 들어왔듯이, 키타이어와 낭키아스어에도 고려어, 몽골어 어휘를 주입한다. 그런 어휘가 세련되게, 지적으로 들리도록 언론을 비롯한 각종 매체를 총동원함은 물론이다.
“좀 더 상세한 논의가 있어야겠지만, 이를테면 낭키아스에서는 고려어 교육을, 키타이에서는 몽골어 교육을 강화해 둘 사이의 차이를 벌려 나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인위적으로 하나의 민족집단을 찢어버릴 이야기를 나눈다. 만약 어떤 한족 지식인이 이런 논의를 듣는다면 곧장 죽을 각오로 고려군 앞에 뛰어들겠지.
무서운 계획이다. 한, 수, 당, 송, 명, 주, 태평천국…… 이른바 역대 ‘중화 통일 왕조’라 자칭해 왔던 자들이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들어오려 했던 것. 천하가 어지러워져도 반드시 통일된 나라를 만들어왔던 한족의 원동력.
그것 자체를 완전히, 체계적으로, 근대 언어학을 비롯한 인류 지식의 총체를 동원해 분쇄하겠다는 계획.
그런 계획이 리안과 루우가 교환한 눈짓 한 번, 리안의 끄덕임 한 번에 승인되었다.
“전체적인 가닥은 잡혔군.”
새로 확장한 영토, 지방의 일은 방침을 정했다.
“이제는 중앙의 일이야.”
다이온은 고려 황제와 몽골 카간의 기묘한 동거를 끝냈다. 두 옥좌는 한 사람이 차지했다. 따라서 그에 걸맞은, 새로운 ‘연방 정부’의 구성 문제가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
여덟 아들 중 일곱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만으로도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5세에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소식은 노인의 미약한 생명을 완전히 꺼버릴 폭풍이었다.
그 아들들은……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악마, 또는 사교의 악신을 숭배하는 의식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 추문만큼은 알려지지 않길 바랐는데, 어째서인지 로마 국내뿐만 아니라 온 유럽에 그런 소문이 퍼져나갔다.
로마 정부와 황실은 공식적으로는 그런 추문을 부인했지만, 사람들의 의심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곱 황자를 암살한 배후가 교종청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교종청이 뭔가 낌새를 알아차렸으니 먼저 손을 쓴 게 아니냐는 의심이 피어오르기 마련이었다.
“칸발리크에서 일어난 사태로 인류의 존속을 우려하는 서방 교회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자, 벨리사리오스가 황실을 대표해 기자들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 로마 황실, 그리고 동방의 정교회 또한 그런 우려에 동의했고, 교종청의 요청에 따라 인류 존속을 위한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검은 옷을 걸친 채, 조용히 종이에 적힌 글을 읊조리는 마지막 황자.
그러나 침착하던 그의 목소리도 서서히 분노와 슬픔으로 떨려 간다. 진심을 담은 걸까, 아니면 연출일까. 연출이라면 그야말로 무서운 선동가라 할 만하다. 진심이라면, 자신의 진심마저도 이용하는 괴물일 터이다.
“그러나 그 우려가 지나쳐, 교종청 일부의 광신도들이 제국의 영토에서 황족을 살해한 이 비극에 대해, 전 로마는 분노를 표합니다. 만약 고대였다면 우리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은 교종, 로마 총대주교를 향한 전쟁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벨리사리오스는 말을 끊었다. 결코 짧지 않았던 그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벨리사리오스의 여러 감정을 상상했다. 분노, 슬픔, 그것을 억누르고 세계인의 이성에 호소해야만 한다는 책무감.
모두가 이 젊은 황자를 동정했다.
최대한 동정을 끌어냈다는 계산이 섰을 때, 벨리사리오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초대 아우구스투스께서 황제를 제1 시민으로 정의하셨듯이, 우리 류리크-팔레올로고스 황실 또한 로마 시민입니다. 황실이 누리는 공적 지위 이전에, 저와 제 아버지가 형제와 자식들을 잃은 것은 시민의 사적인 분노와 슬픔일 것입니다.”
듣기에 따라선 아리송한 말이었다.
벨리사리오스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복수를 포기하겠다는 건가? 용서하겠다는 건가? 덮고 넘어가겠다는 건가?
“우리는 전제군주가 아니고, 따라서 사적 원한이 지극히 공적인 영역, 즉 정치의 연장선상에 놓인 전쟁으로 곧장 이어지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헬레네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사지로, 트로이로 몰아넣은 메넬라오스가 아닙니다.”
트로이 신화까지 인용하는 고풍스러움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요구 사항이 이어졌다.
“교종청은 즉각 이 사태의 배후를 밝히십시오. 로마 제국 정부의 진상 조사에 적극 협력하십시오. 그리하여 교종청 스스로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극단주의자들을 적발하여 오명을 씻고, 지금 로마 제국이 겪는 슬픔과 분노 앞에 사죄하십시오.”
벨리사리오스는 다시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은 고요가 아니었다. 목에 뭔가 걸린 듯, 소리 없는 흐느낌이었다.
“신성 제국, 나아가 모든 크리스트교권 국가들에게도 호소합니다. 세계는 지금 분열의 위기 앞에 있습니다. 동방과 서방의 교회가 분열하던 때보다 더한 위기입니다.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밝혀져야만 할 진실에 주목해주십시오.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을 일으킨 자들 앞에 정의를 세워주십시오.”
벨리사리오스의 성명서는 연민과 찬사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만약 벨리사리오스가 증오와 복수를 부르짖었다면, 가톨릭권에서는 로마 황족이 대거 죽어 나갔다는 충격은 뒤로 하고 불쾌하게 여겼을 것이다.
반대로 정교회권에서는 황족 암살범들이 교종청이 비밀리에 기른 암살자들이라는 것 자체로, 이 문제를 종파 간 갈등으로 비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벨리사리오스의 슬픔을 담으면서도 침착한 성명은 먼저 신성 제국, 에스파냐를 비롯한 가톨릭권에서, 나아가 이른바 신교권이라 불리는 브리튼과 칼마르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감히 ‘교종 본인’을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목소리를 모아 교종청 내부의 극단주의를 배척하고 진상 파악을 촉구했다.
이만하면 벨리사리오스의 일 처리는 꽤 지혜로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늙은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5세에겐 아니었다.
세계대전의 영웅치고는 너무도 허망하게, 아들들의 소식을 들은 직후 의식을 잃은 그대로, 유언 한마디조차 남기지 못하고 황제는 세상을 떠났다.
진범이 막내아들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
벨리사리오스가 로마시에서 무엇을 가져갔는지 알고 있던 교종청은,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사망한 일곱 황자가 정말로 악마적 사교 의식과 관련이 없는지부터 조사해야 하지 않는가. 이번 사건은 교종청의 개입 이전에 불온한 의식이 빚어낸, 칸발리크 사태와 유사한 사고일 수도 있다.”
벨리사리오스도 감춘 게 있으니 이렇게 반박하면 움찔하겠거니 하는 짧은 생각으로 던진 말이었다. 이렇게 생각 짧은 반응을 보일 만큼 교종청도 당황했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최정예 ‘베드로의 검’을 몰살했단 말인가?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죽였는가는 분명했다. 벨리사리오스였다.
알 수 없는 것이야말로 공포의 근원이다. 베드로의 검이 산산이 부서진 그 날, 로마 제국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여하튼 교종청이 우왕좌왕하며 어설픈 대응을 내놓자마자, 곧바로 교종청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바티카누스의 교종청은 보다 책임감 있는 태도로 이 사건의 해결에 협조하길 바랍니다.”
신성 제국 수상이 직접 발표한 담화문이었다. 정중한 어조였지만 ‘책임감’을 언급한 점에서 이미 ‘교종청은 책임감 없는 행동을 했다’는 비판을 담았다.
언론은 좀 더 직접적이었다.
-시대를 착각한 교종청? 누가 교종청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나.
지금이 중세라는 착각에 빠져, 광신도들을 동원해 타국의 황족을 암살할 만큼 정신이 나가버린 건 아니냐는 비난이었다.
-세계의 구원자라는 망상에 빠진 교종청.
아무리 칸발리크 사태 이후 인류 존속의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는 해도, 이번 일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었다.
-일은 저질러 놓고 피해자에게 덮어씌우는가.
오히려 벨리사리오스를 향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우기는 모양새가 뻔뻔하다. 그런 질타였다.
벨리사리오스는 자신의 편이 되어 주는 여러 목소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듯, 동조하지도 않고 감사도 표하지 않은 채 조용히 황궁에 머물러 있었다.
“인내 속에 분노는 숙성한다.”
자신에게 들려주는 듯도 하고, 부관 요르요스에게 들려주는 듯도 한 읊조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