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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25화 (425/541)

아우구스투스(1)

“고려에서 들어온 소식은 늘 나를 놀라게 하지.”

부관 요르요스의 보고를 들은 벨리사리오스의 눈이 짐짓 놀란 듯 커졌다.

요르요스는 황자의 저 눈이 정말 놀라서 커진 건지, 아니면 자신에게 보여주려고 놀라움을 연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때로는 모든 걸 예측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지금 이 보고도 그저 예측을 확인해주는 절차일 뿐, 벨리사리오스는 자신이 나름 입수한 정보를 종합해 이미 결론을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르요스는 보고 끄트머리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보았다.

“……국력 차를 생각한다면 결국 다이온의 주도권을 쥐는 건 고려가 아니었겠습니까.”

“결국은 그렇게 되었겠지. 하지만 이렇게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네.”

게레센제와 울제이 형제 모두 오십을 넘지 않았다. 예순이나 일흔까지 바라볼 수 있는 정치인의 삶을 생각하면 아직 젊은 축이다. 그들이 늙어 젊은 고려인들을 상대할 수 없는 지경이 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루우 테무르도 젊다기보다는 어렸다. 그녀는 이제 막 10대를 벗어나지 않았던가. 20대 중반에 들어서는 미리안에게 의존해야 할 텐데.

“하.”

유쾌한 웃음 한 토막을 뱉으며 벨리사리오스는 한 청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주견하. 자신에게 와서 미래와 야망의 이야기를 나누고, 조직과 정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간 청년.

벨리사리오스의 이야기를 들을 땐 지적 욕구로 반짝이는 학생의 눈빛을 하다가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땐 원대한 계획을 바라보는 깊은 눈이 되던 청년.

어쩌다 권력 핵심에 접근한 애송이가 아니라 이미 그 무렵에 냉철한 정치 기계로 성장하고 있었다.

“주견하가 제대로 해냈군.”

정보를 종합해보자.

고려 장성 살해사건. 정보부에서 복무하던 군인이라고 들었다. 상황은 거기서부터 급변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불명이지만, 어쨌든 고려는 낭키아스의 정계를 뒤흔드는 것으로 대응했다.

누구라도 범인일 수 있겠다, 고 벨리사리오스는 생각했다.

게레센제가 자신의 뒤를 캐고 다니는 고려인 첩보원을 죽여 고려에 경고를 보냈을 수도 있고, 울제이가 판을 흔들어보려고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고려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미리안의 결단도 결단이지만, 구상 자체는 주견하의 것이라고 봐야겠지.”

자신도 북이탈리아를 대상으로 해볼까 말까 망설이고만 있는 작전을, 수단을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미리안은 수단을 가리는 사람이지.”

수단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면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다른 수단을 충분히 탐색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주견하는 달라. 주견하는 미리안 앞에 선택이 하나밖에 남지 않도록 상황을 몰고 갈 남자다.”

침략. 몽골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 주견하가 벌인 일은 국제 사회에서 그렇게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주견하는 루우 테무르를 등에 업고 중세, 근세에나 볼 법한 ‘왕위 계승 전쟁’을 벌였지만, 국제 정세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변명의 여지 없는 ‘침략’으로 규정될 일이었다.

“혁세주 사태도 아마 의도한 것이겠지.”

실제로 혁세주나 파멸인에 의한 피해는 관측되지 않았다지만, 현상 자체는 칸발리크를 뒤덮었던 것과 매우 유사했다.

“주견하가…… 설마 그런 것까지 의도했겠습니까?”

요르요스는 아무리 주군의 분석이라지만 미심쩍다는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벨리사리오스는 생각해보라는 듯 손을 펼쳤다.

“양측의 대군이 볼 수 있는 자리에 폭주한 게레센제가 와서, 거기서 혁세주 사태를 일으켰네. 평화 회담을 위해 양측의 주요 인사들, 외국의 기자들까지 잔뜩 찾아온 자리 말일세. 이게 우연이라고 보는가?”

절묘하긴 했다. 그전에는 울제이가 게레센제를 향해 비난을 늘어놓더니, 마치 보라는 듯 회담장에서 게레센제가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게레센제와 울제이, 두 형제를 억지로 끌어내리려면 그 정도가 아니고선 어렵네.”

“울제이는 울제이대로, 게레센제는 게레센제대로 카간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었군요. 그리고 그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아주 충격적이어야 하고.”

“사소한 흠결로 취급하고 넘어갈 일이어선 안 된다는 거지.”

그래서 울제이는 수도를 기습하고 형의 자리를 찬탈한 인간으로, 게레센제는 반란군과 모의하고 극도로 위험한 괴물들을 세상에 풀어놓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정확히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몽골도 고려도 혁세주 및 파멸인 관련 기술에 있어선 상당한 진전을 보인 모양일세.”

그리고 그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사람이 지금 로마 제국에 체류 중이다.

“토칸과 신수덕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습니다.”

“감시도 감시지만 그들에게서 뭔가 정보를 더 캐낼 수는 없는지 알아봐야겠군.”

벨리사리오스는 그렇게 말하곤 턱을 괸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선은 요르요스가 아니라 다른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것이다.

요르요스는 충직한 부관답게 벨리사리오스 앞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천천히, 턱을 괸 손을 내리며 요르요스에게 초점을 맞췄다.

“주견하 말일세, 대단하지 않나?”

“대단하긴 합니다. 스물을 조금 넘긴 나이에 그 정도라니.”

“초대 아우구스투스께서 정계에 발을 들이신 나이가 불과 열여덟이었지. 주견하를 초대 아우구스투스에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참으로 대단한 인물일세. 존경스러울 정도야.”

그에 반해, 하면서 벨리사리오스는 무언가 말을 이으려다 삼켰다.

잠시 뒤에 다시 입을 열 때, 그는 어조에 힘을 주고 있었다.

“자기 비하를 할 때가 아니지. 미리안도, 주견하도 각자 조국에서 나보다 저만치 앞서나가 있지만, 내가 할 일은 마냥 부러워만 하는 건 아닐 걸세.”

벨리사리오스의 그 말에 요르요스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주군이 스스로 기운을 북돋고 야망을 되새기는 것은, 가신의 입장에서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저기서 준비만 해 왔던 일들을 본격적으로 하나로 엮어야겠네.”

벨리사리오스가 자신의 연구소에 감춰둔 신종, 데우스.

북이탈리아 민족주의 운동을 지원하며 뿌리내린 기반.

로마 교종청과의 밀약.

감시에 넣고 있는 신수덕 및 토칸.

이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연결한다. 거미줄만큼이나 가늘고 섬세한 실로.

잘 끊어지지 않으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그런 실.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어느새 한 구석에 커다랗게 자리한 거미집처럼.

***

늘 그렇듯이 일이 하나 끝나고 나면 그 뒷정리에 많은 시간이 들기 마련이다.

“기자들 앞에서 의뭉 떠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무척 피곤하다는 듯 어깨를 돌리며, 리안이 사령부 막사로 들어왔다.

기자들은 사태를 가라앉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루우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 어쩔 줄 몰랐지만, 리안은 철저히 자기 선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처리했다.

-이번에 일어난 사태는 칸발리크 사태와 같은 현상인가?

-그렇게 봐도 좋다.

-게레센제 카간은 어떻게 되었나?

-비극이다. 사태를 일으킨 게레센제 카간은 사망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망했는지?

-그 점은 밝힐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의 비극은 게레센제 카간과 울제이 칸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점이다. 고려 정부와 다이온 연방은 두 사람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게레센제 카간은 몽골 및 다이온 연방의 군주이지 않나?

-군주라도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울제이 칸은?

-구금 중이다.

-몽골 및 다이온 연방의 카간은 고려 황제가 계승하나?

-그렇다. 고려 정부를 비롯한 다이온 연방 구성국은 준비 절차를 밟고 있다.

그 밖에도 황당한 질문과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리안은 질문의 바다에서 정신을 바짝 긴장시켜야 했다. 나름 교묘한, 혹은 뻔뻔한 대답을 앞세워 어찌어찌 대처하긴 한 것 같다.

“울제이의 상태는 어때?”

리안도 이제는 그를 칸이라고도 불러주지 않는다. 그는 폐위될 것이다. 죽임을 당하진 않겠지만 평생 ‘좁은 궁궐’에 갇혀 살겠지. 그래도 그 가족은 황실의 구성원으로서 우대받고 살 것이다.

“의욕을 완전히 잃은 것 같아요.”

견하의 대답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사실 그대로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물들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형마저도 끔찍한 괴물로 변하여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그걸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조카가…… 신화에서나 나오는 영웅이 되어 물리쳤다.

“자신은 경쟁자조차 아니었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더군요.”

“자기 자신을 꼴사납다고 생각하는 것, 그만큼 마음을 아프게 후벼 파는 칼날은 없지. 그나저나 형제의 반응이 참 다르군.”

하나는 최후의 발악을 하다 괴물로 죽었고, 다른 하나는 넋이 나가 싸움을 포기했다.

“우리는 ‘게레센제의 죄’와 함께 ‘울제이의 죄’도 필요해. 이 상황은 이해하지?”

리안의 질문은 견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너머, 견하와 리안을 둘러싼 측근들. 그 ‘청년들’ 중심에 앉아 있는 루우를 향한 질문이었다.

루우는 걸상에 걸터앉아, 오른무릎만 끌어당겨 안고 있었다. 그러다 리안이 물음을 던지자 천천히 시선을 옮겨 그녀를 바라봤다.

망설이는 얼굴은 아니다.

착잡함이 아주 약간 남아 있긴 했지만, 고개를 드는 그 잠깐 사이에 완전히 지워버렸다.

루우는 게레센제가 라디오 방송을 하도록 꾀어냈을 때 이미 그의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보르지긴, 황금 가문의 수장으로서 짐은 죄를 지은 가문 사람을 처단했다.”

담담하지만, 강인한 선언이었다.

“짐은 고려의 황제, 몽골의 카간을 넘어 다이온 전체의 군주가 된다. 아니, 군주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천명한다.

“다음 절차는 칸발리크 입성인가?”

“그래. 칸발리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볼로드를 잡아들이고, 시반을 비롯한 몽골 제국입헌당을 총동원해서 임시 내각을 구성해야지.”

“그러고 나면 카라코룸으로 향하겠어.”

예상치 못한 루우의 말에 리안은 주춤했다. 카라코룸?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울제이도, 게레센제도 치르지 못한 제대로 된 쿠릴타이.

카라코룸까지 신하들과 함께 올라가 성대한 연회까지 여는 전통적이고도 신성한 쿠릴타이.

시레문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제대로 된’ 계승 의식은, 루우의 정통성을 더욱 드높이리라.

“울제이를 만나보겠어?”

게레센제를 베고 신종의 씨앗을 제거한 직후, 붉은 공간이 걷혀나가자마자 고려 측은 울제이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괴물과 신종, 루우의 용 같은 것들을 본 충격 탓인지 울제이와 그 측근들은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대로 포로가 되었다.

특히 방금 견하가 말한 것처럼 울제이 본인이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게 컸다. 그는 멍한 얼굴로 고려 군인들의 구속을 받아들였다.

울제이가 그렇게 무너져버리자 회담장까지 그를 수행한 측근들도 하나둘 무기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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