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2)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 부자연스러움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단이라 불리는 초능력자.
성리학, 각종 신화와 종교로 설명되는 기이한 초자연적 현상.
세상의 경계를 찢어버리고 대가리를 들이미는 괴물들.
이 모든 것에 경악하고 공포에 질려 바라보더라도, 근본적인 의문은 던져지지 않았다.
그렇다. 지금껏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만 집중해 왔다.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원인을 캐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당장 피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면서.
얼핏 이는 대단히 효율적인 대처 방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무엇이며 왜 일어났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니, 고개를 돌린 게 아니다.
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무리 기이해도 꿈 그 자체에 의문을 품진 않는다.
초능력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
괴물이 세상을 공격한다는 사실 그 자체.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 우리는 체념이라도 한 듯 그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역사. 초능력자가 존재해 온 역사. 초능력이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는 체계를 잡아 온 역사. 대략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 역사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러나 리안의 의문은 다른 의문에 가로막힌다.
애초에 그런 세상이지 않았냐고. 세상 자체가 그렇게 구성된 것은, 인간이 체계적으로 설명하게 된 역사와는 별개다. 인간이 끝내 체계화에 실패했더라도 세상은 애초에 그러했던 것처럼 계속 그런 방식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다시 고개를 흔들며 자신을 현혹하는 의문을 떨쳐버린다.
지금 자신이 던진 의문은, 언제부터 우리가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려는 노력을 포기했느냐는 것이다.
“만약 세상이 한바탕 꿈이라고 한다면, 저는 꿈에서 깨어나 여기 온 걸까요? 마르코 폴로, 당신이 나를 깨운 건가요?”
“꿈에서 깨면 자신의 기이한 체험이 꿈이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꿈을 꾸었다는 지각 자체가 손바닥 위의 물처럼 빠져나가.”
그러니 꿈에서 깨기 전에, 꿈 안에서 꿈을 자각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자각이 곧 꿈의 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자각과 꿈의 경계,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지. 마치 내가 세상과 세상의 경계 사이를 떠도는 것처럼.”
고려 태조 왕건의 조부, 작제건은 이 점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용 사냥을 ‘한바탕 붉은 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혁세주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기는 끝내 어렵겠지만, 그러나 인간은 이 꿈같은 세상의 경계를 떠돎으로써 그 거체를 좀 더 잘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세계도 마찬가지다.
발 딛고 살아가는 그곳에서는 알기 어렵다. 다른 세상에 대해서도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구체적인 가닥을 잡긴 어렵다.
아니 애초에 여기 마르코 폴로가 남긴 「쿠빌라이 문서」가 아니었다면 그런 상상 자체가 가능하긴 했을까?
인류는 쿠빌라이 카간과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를 추적해왔다.
어떤 이는 군사적, 정치적 패권 확보를 위해, 어떤 이는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어떤 이는 세상을 망가뜨리려고.
그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리안을 이 자리에 있게 했다.
이 자리에서 마침내 리안은 이단이라는 초능력자가 존재하는 세계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게 되었다.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한 셈이다. 세상을 향한 이해를 한층 진보시킬 시야를.
“그렇게 해서, 제가 세상의 부자연스러움을 눈치채는 단계까지 도달한 거군요.”
리안의 연인 견하가……
생각하다 말고 리안은 주저앉았다.
아무리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 해도, 그렇게 된 세상만의 일이라 해도, 그것을 인지한다고 해도, 마음이 입을 다물게 한다.
그녀가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얼굴이 산산이 조각난 처참한 시신.
절대로 알고 싶지 않았던 내용물을 드러낸 단면.
‘이단이나 파멸인이 존재하지 않는 쪽’에서 견하는 그대로 세상을 떠났지만, ‘존재하는 쪽’에서는 아니었다.
상처에서 꿈틀거리며 돋아나 온 사방을 휘젓던 그 혐오스러운 살점.
정말로 괴물이 되어버린 연인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토감이 올라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역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죄악감을 자극한다.
식도의 쓰라림을 간신히 억누르며, 리안은 간신히 말을 이었다.
“견하가 죽고 나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세계와, 죽지 않고 괴물이 되어버리는 세계가 있군요.”
“많은 가능한 세계 중 둘이지.”
“둘뿐이라 해도 어쨌든 ‘존재하는’ 거죠. 제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어느 한쪽을 닮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마르코 폴로는 그 말에 직접 답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너라면 어떻게 할 텐가.”
“견하가 죽지 않는 길을 걷게 해야죠.”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그들의 경우엔 ‘일이 벌어지고 나서’ 후회한 것이지만.”
마르코 폴로의 말을 곱씹어보던 리안의 눈이, 다시금 경악으로 커다래졌다.
“‘어떤 미리안’은 견하를 되살리려 했군요. 하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아까 본 세계 중 하나에서도, 견하는 ‘괴물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견하는 그전에 죽은 것이다.
파멸인은 시체일 뿐이다. 그 촉수들은 견하의 죽은 몸을 멋대로 약탈한 기생충에 불과하다…… 고 리안은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혼이란 없으니까.
지금 눈앞의…… 환상인지 무엇인지 모를 마르코 폴로라는 자가 「쿠빌라이 문서」를 통해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남긴 이야기가 그것 아니던가.
그러니까 환생도 부활도 초혼도 불가능하다.
“……나 자신을 불가능한 망상에 빠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견하가 죽는다면 자신이 택할 길은 둘 중 하나다. 생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리든지, 남은 평생을 출혈이 멈추지 않는 상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든지.
“하지만 너는 ‘수단’이 주어진다면 도전해보는 인간이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 리안은 의문에 찬 시선만 던졌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세상이 그러한 ‘원리’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종처럼 영혼을 지니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구성 ‘원리’가 그렇기 때문이지.”
리안의 총명한 두뇌는 단숨에 마르코 폴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찔렀다.
“‘원리’ 그 자체에 도전한 미리안도 있다는 말이군요.”
“게다가 너는 제국의 최고권력자이기도 하다. 수단이야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지.”
세상을 밑바닥부터, 근본 원리부터 재구축한다.
몇몇 순간, 혹은 필요한 용도에 따라 세상의 원리를 조작하는 이단의 초능력을 세계 단위로 확장하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부활에 필요한 ‘영혼’이 있는, 그런 ‘원리’의 세상을 만든다.
파멸인이나 혁세주 따위는 영혼을 지니고자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실험으로 탄생했다고 들었다.
이단은 그런 실험의 결과, 영혼을 몸 안으로 넣진 못해도 무기의 형태로나마 지닐 수 있도록 한 게 아니었던가.
어디의 어느 멍청이가 그런 일을 시작했을까 궁금했는데, 그게 어딘가의 또 다른 자신일 수도 있다니.
“하지만 지금 제가 사는 세상에도 생물의 육신에 영혼이 없는 걸 보면, 그런 시도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군요.”
리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생각보다 어리석은 사람이었네요. 결국은 견하와 재회하지 못할 텐데.”
“‘그 자신’이 재회를 바란 미리안은 없었다, 미리안.”
기묘한 형식의 문장에 리안의 눈이 의미를 찾아 흔들리는 사이, 마르코 폴로가 설명을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가 어떤 시점에 ‘그 세계의 자신’이 연인과 재회한다는 희망을 포기했지. 어떤 시점에 ‘기존의 원리를 비트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세계였던’ 것으로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아예 다른 세상, 새로운 세상이 건설될 때 밑바닥부터 그렇게 되도록 간섭하는 수밖에.”
리안의 앞에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미리안의 모습이, 다른 세상, 또 다른 가능성의 미리안들이 스쳐 지나갔다.
중년 여인이 된 미리안이 있다.
노파가 된 미리안이 있다.
비슷한 또래의 미리안도 보인다.
그리고…… 하나같이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 눈에는 희망을 담고 어딘가를 바라본다. 마르코 폴로가 그렇게 되도록 영상을 배치한 것일까. 마치 모두가……
지금 여기 미리안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녀들은 모두 ‘다음 미리안’이 연인과 재회할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했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생애에 다시는 사랑스러운 연인을 만나지 못 하리라는 걸 잘 알았다. 그 모든 노력이 성공하더라도 자신은 만날 수 없다.
새로운 세계에서 ‘나와는 다른’ 미리안이 주견하를 만나리라는 희망만 간신히 품을 수 있을 뿐.
그 희망이 이루어진다는 보장 또한 없었으며,
실제로 모두의 희망이 좌절되었다.
자신은 몇 번째 미리안일까.
자기 삶을 오로지 ‘다른 나’의 행복을 위해 던질 수 있는, 아니, 아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 주견하를 위해서. 그를 위해서. 그가 살아서 미리안과 함께하는 세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신기루 같은 희망을 위해서.
“포기한 사람은? 포기한 사람은 없었나요?”
리안의 목소리는 다급해졌다. 그녀들은 대체 왜 그런 삶을 살았단 말인가? 자기 삶을 산 사람은 없나? 아프겠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삶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결정과 비극의 연쇄도 어딘가에서 끊기지 않았을까.
“시간은, 세상과 세상은 선형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미리안.”
준엄한 선고 같은 대답이었다.
“포기한 미리안도 있지. 하지만 ‘어떤’ 미리안이 넘긴 희망을 ‘다른’ 미리안이 거부한다고 해서 그 선이 끊기는 건 아니다. ‘또 다른’ 미리안이 희망을 받아내지. 무한히.”
일단 존재한 이상, 선후 관계에는 의미가 없다. 넘겨주는 자가 있으면 받는 자가 있고, 반대로 받는 자가 있기에 반드시 넘겨주는 자가 있다고, 마르코 폴로는 말했다.
“이 모든 일이 어떤 미리안이 시작했기에 일어난 일인가. 그렇게 묻는다는 내 대답은 ‘아니오’다. 시간은 그렇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미리안이 주견하에게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떤 세상에선 원리를 바꾸고 이단을, 파멸인을, 신종의 씨앗과 혁세주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반대로, 그런 세상이 오는 ‘결과’를 마련하기 위해서 주견하가 죽고 미리안이 그를 살리려 시도한다는 ‘원인’이 필요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원인과 결과는 선형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