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군작전(18)
결국은 전쟁이 벌어지고야 마는가?
용성의 통합사령부 안에 불안에 찬 시선이 오갔다. 몇몇 용감한 사람들은 조심스레 전쟁에 대한 전망을 속삭인다.
-전력 자체에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수도 칸발리크가 타격을 입고 내전 기간도 고려에 비해 길었던 몽골의 군사력은, 고려를 당해낼 수 없었다.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절반이 알타이 자유 공화국 편에 붙었다가 날아갔다. 그러고 나서도 남은 절반이 이제는 고려 편에 붙었다.
몽골이 본래 지녔던 전력의 4분의 1.
여기에 키타이군과 낭키아스군을 모조리 끌어 온다고 하더라도 고려의 전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전력이 명백히 우위라 해서 전쟁이 답이 되어선 안 된다!
이런 의견이 미리안 휘하 군사 참모들, 각료들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전쟁 발발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재무성 장관 차무룡이 그런 여론의 선두에 섰다.
“관세 동맹과 그에 기반한 다이온 경제 체제는 완전히 정지됐습니다! 간신히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으니 잊어버리고들 있는 모양인데, 우린 아직 대공황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고려의 내전이 대공황의 기폭제로 작용했듯이, 다이온의 혼란은 더 심각한 경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차무룡의 말이었다.
물론 차무룡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쯤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한 이래, 세계 각국은 그 충격을 완화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의 결과로도 안정을 찾지 못한 아즈텍 연방은 세 갈래로 갈라져 내전을 계속하는 중이다.
신성 제국을 비롯한 서유럽은 이 아즈텍 내전에 개입하면서 대공황의 타개법을 찾아 나섰다.
로마 제국을 종주국으로 하는 동부 유럽은, 당연히 종주국에 기댔다. 그들의 종주국인 로마는 새로 얻은 ‘이교도 식민지’를 쥐어 짜내며 충격을 완화하는 중이고.
바라트와 페르시아를 비롯한 공산권은 자기네 특유의 경제정책으로 해법을 궁리했다.
그 이북의 중앙아시아는 공산 혁명을 받아들이거나, 유럽과 몽골을 잇는 미완성 무역망의 혜택에 기댔다.
그리고 고려를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은 관세 동맹, 거기서 발전한 다이온 연방을 통해 대공황의 충격을 완화하고 있었다.
대공황이라는 질병이 관세 동맹을 통해 억눌려 왔다면, 관세 동맹의 기능 정지는 그 질병의 증세가 다시 심각해짐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 증세는 고려나 동아시아 정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이 서로의 영역에서 제 앞가림에만 바쁜 듯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뜻하지 않게 서로의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6차 평화회의 때도 경제 관료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지금까지도 종종 협의해왔기에 더 큰 재난으로 번지지 않았던 겁니다!”
간신히, 정말 간신히 그랬다. 아주 약간의 부담만 더 얹어도 와르르 무너질 만큼 불안한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만일 이대로 고려의 경제가 무너진다면, 그 여파는 일본으로, 중앙아시아 각국으로, 로마로, 서유럽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정말로 ‘세계 자본주의 붕괴’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경제는 망가지는 데 드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친절한 신사가 아닙니다.”
언제라도 붕괴할 수 있다. 차무룡은 그렇게 말했다.
“교역망이 끊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기업도 노동자도 버틸 만합니다만, 금융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융은 실제로 기업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노동자들의 생활 형편이 어떤지에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융은 기대와 공포로 움직인다.
보르지긴 황실이 완전히 둘로 갈라선다.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든 아니든, 결정된 사실이든 아니든,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든 없든 금융은 ‘공포’를 느끼고 위축된다.
모든 일이 잘 풀리리라 예측하며 투자를 늘리는 사람들보다, 최악의 상황…… 그러니까 다이온 연방의 해체와 관세 동맹의 단절을 두려워하며 발을 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도저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지요. 각하께서 여론전이라는 수단에 손을 대셨기 때문입니다.”
리안은 씁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견하는 여론전이 울제이를 격동시켰다며 의기양양해졌다. 그의 생각대로 울제이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카간 자리에 올라섰으며, 게레센제 잔당을 향한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고, 이제는 군을 국경으로 전진시켰다.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공짜 만병통치약은 없다.
아무런 대가 없이 계속 쓸 수 있는 탁월한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울제이가 압박을 느끼고, 양측 간 긴장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불안도 깊어져만 갑니다. 그리하여 금융이 망가지면 생각 이상으로 경제 전체의 붕괴도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죠?”
긴 침묵 끝에 리안이 내놓은 것은 질문이었다.
견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작전이 완수될 때까지 태사가 ‘버텨 달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한 자로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봐야 했다.
“알 수 없습니다. 경제가 무너질 날을 가늠할 수 있다면 애초에 무방비한 상태로 대공황을 맞이하진 않았겠죠. 내일 무너질 수도 있고, 각하께서 바라시는 대로 작전이 완수될 때까지 버틸 수도 있습니다.”
“최선책은?”
“당장 이 작전을 중단하는 것…… 입니다만, 각하께선 채택하지 않으실 거잖습니까.”
굳이 긍정하거나 부정하지도 않고, 리안은 물끄러미 차무룡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차선책은 그저 ‘붕괴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뿐입니다. 전 세계 경제 관료들과 하루가 멀다고 연락을 취하고, 기업들을 압박해 물자의 생산을 세심하게 조정하고, 그러면서도 함부로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계획경제의 실행이다.
하지만 국가의 필요 앞에 경제가 납작 엎드려 헌신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경제정책의 이념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그렇군요. 버텨주세요.”
간단하게도 말한다. 속으로 혀를 찼지만 차무룡은 자신이 달리 어쩔 수 없음을 잘 알았다.
이 ‘풍군작전’에 대한 태사의 의지는 절대적이다. 그러니 이렇게 용성에 나와 있는 태사와 만나려면 자신도 동명을 오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여론전에서 조금 배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외교적 해법을 찾고 있다고. 아니, 조만간 극적인 타협이 있을 거라고만 해주셔도 됩니다.”
***
리안은 차무룡 앞에서는 그러겠노라며 끄덕였지만, 당장은 울제이의 움직임에 대응해 군대를 전진 배치하여 맞섰다.
교전을 상정한 진지 구축. 고려군의 지휘를 받기로 한 몽골군을 적절히 배치하는 한편으로, 제국최고회의에 추가 병력과 물자를 지원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 결과 동명과 칸발리크를 잇는 신철도를 따라, 속속 병력과 물자가 국경을 넘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질문입니다만. 김 장군, 교전이 벌어진다면 우리가 내세울 전술은?”
태사의 질문을 받은 김천열은 무덤덤한 얼굴로 대꾸했다.
“특별할 것 없는 전술입니다. 교과서적 형태의 우회기동을 펼쳐 적의 측면, 후방을 꺾고 전면에서 들이칠 뿐입니다. 가능한 울제이와 칸발리크의 연락선을 끊어 고립시키는 게 좋겠습니다만.”
다소 성의가 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김천열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전력 자체는 고려군의 압도적 우위다. 전투가 벌어지면 반드시 이긴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 압도적 우위는 전투라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준비된 것이기도 하다.
울제이의 저항 의지를 꺾고,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것.
“……울제이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죠. 김 장군은 교전에만 대비해주시면 됩니다. ‘교과서적 형태의 우회기동’이 울제이에게 먹힐지, 아닐지 말입니다.”
“울제이 역시 낭키아스 진격이나 칸발리크 진격에서 상당한 기동력을 보여주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철의 지원에 기댄 것이었습니다. 당장 원철을 내쫓고 그 시설들을 접수했다고 해도, 전문적으로 철도를 다루는 인력이 하루아침에 양성되는 건 아닙니다. 물자의 보급, 전력의 확보, 어디서든 차질을 빚겠죠.”
기책도 기책을 발휘할 충분한 여건이 갖춰져야 쓸 수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 발휘한 기책 대부분은 멍청이의 무모한 도전으로 끝난다.
기책이 역사에 남을 수 있는 건, 그 승리가 기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후세의 군사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말들을 붙여서 그 기책이 성공할 수밖에 없던 ‘필연적’인 이유를 만들어내지만, 김천열은 그 말의 절반이 개소리라 생각했다.
실제 전장은 사관학교에서 배우는 전술과는 전혀 다르다. 전장은 어떤 상황이 주어지고, 거기에 어떤 전술로 대응할 것인지 답을 써서 내는 수업이 아니다.
적은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내 행동에 따라 반응하는 또 다른 전술가다.
그러니 믿을 것은 풍부한 물자와 높은 훈련 강도, 사기뿐.
“울제이가 어떤 기책을 짜내든 반드시 ‘틈’이 생길 겁니다. 고려군은 그 틈을 찌를 충분한 여력도 있고, 실제로 그러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울제이는 그 틈을 줄이기 위해 동쪽 국경부터 칸발리크 북쪽까지, 상대적으로 짧은 구간에 전선을 마련했다.
그런 처지에 있는 군대는, 예를 들어 한 점에 집중한 돌파를 시도하면 반드시 측면을 노출하기 마련이다.
고려군이 깊이 유인해버리면 후방마저 끊어버릴 수 있다. 울제이는 전선의 돌출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연결할 여력이 부족할 테니.
“게다가 저는 한 번 울제이와의 승부에서 승리를 거둔 바 있습니다.”
누가 카라코룸에 먼저 입성할 것인가 겨루었던 승부.
알타이 자유 공화국의 멸망 이후 카라코룸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경쟁. 그때 김천열은 미리안을 도와 기동전을 훌륭하게 수행해, 그녀가 울제이보다 먼저 카라코룸에 입성하게 했다.
기동전 면에서는 울제이보다 우월하다, 김천열은 그렇게 자신하는 듯하다.
리안도 그런 그의 자신감이 크게 틀리진 않았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지금은 조건도 다르고 울제이가 그간 어떻게 성장했을지 알 수 없지. 자신감은 좋지만 그게 자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예. 그렇지만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도 마련해둔 ‘기책’이 있지 않습니까.”
인력과 물자가 풍부한 고려는 그 ‘기책’을 사용하는 데 있어 울제이보다 자유롭다. 기책이 실패로 돌아가도 다른 작전을 취할 여유가 있으니까.
“……그건 그때 가서 이야기합시다.”
아직 꺼낼 화제가 아니라는 듯, 리안은 그렇게 말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