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군작전(16)
용성의 사령부, 태사를 위해 마련된 집무실에서 리안과 효윤, 견하는 그 연설을 듣고 있었다.
들으면서, 견하는 지금까지 자신이 진행한 이 풍군작전을 돌아보았다.
풍군작전은 몽골의 약점을 물어뜯고, 그 나라를 능멸하여 끝내 병탄에 이르는 악행이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되뇐다. 악행이다.
자신은 개자식이고.
아즈텍 연방은 내전으로 망하고, 서유럽과 바라트는 그 내전에 개입하느라 정신이 없고, 로마는 고려와 밀약을 맺고 묵인해주었기에 지금까지 별 탈이 없었던 것이다.
국제 정세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면 외교 무대에서 추방되어도 할 말이 없는 악행이다.
1935년에 열릴 제7차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가, 고려 대표단 앞에서 문을 닫아걸어도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추악한 침략이다.
지금 이렇게 일이 무난하게 진행된 것도, 예상 범위 내에서 작전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잘나서가 절대 아니다.
견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작전이 차질없이 진행된 건 전적으로 보르지긴 루우 테무르, 고려의 황제 덕분이다.
고려의 황제가 ‘보르지긴’이었던 덕분이다.
보르지긴 루우 테무르를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칸발리크의 영웅으로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일부 몽골군까지 이 작전에 참여하진 않았겠지.
아니 몽골군의 지지는커녕, 전국적인 반(反)고려 항쟁에 직면했을 것이다.
민중의 항쟁.
그것은 울제이가 ‘자처’한 의군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의병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그런 의병 운동에 직면했다면, 그 저항을 압도적인 전력으로 모조리 격파한다 해도 최소 2천 회 이상의 교전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제국정보사령부는 예측을 제출했다.
사태가 그렇게 되면 당장 고려군 내부에서부터 회의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병사들도 대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불평할 테고, 군은 말도 안 되는 병탄 작전을 비판하겠지.
군대뿐이랴. 누적된 피로감이 국민을 덮치면 내년 총선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이 싸움은 ‘보르지긴 가문, 황금 가문 사이의 투쟁’으로 제한되어야 했다.
루우의 연설문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고려에선 고려식 이름 ‘왕서라’를 그렇게 강조했는데 말이지.”
“고려인의 황제여야 했으니까요. 지금은 몽골인의 카간이 되어야 하고.”
연설문은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보르지긴 루우 테무르’라는 이름을 강조했다. 그녀는 보르지긴의 구성원이며, ‘시레문 카간의 딸’이라는 것을.
울제이가 ‘호오샤이 카간의 세 아들 중 하나’임을 강조했던 사실에 착안해, 호오샤이 카간의 손녀라는 사실도 집어넣었다.
“이 일이 잘 끝나도, 그때부턴 몽골인의 카간과 고려인의 황제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고생 좀 하겠는걸.”
효윤이 그런 의견을 내놓자, 리안과 견하 모두 끄덕였다.
루우 개인만 고생하게 되는 건 아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정부가 서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관계를 맺을 것인지 힘겨운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두 민족을 어떻게 하나의 체제 안에서 묶을 것인지도.
그러고 보니 한재연은 몽골인들에게 ‘한족의 관리자’라는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루우의 연설이 끝났다.
“……이제 울제이의 반응을 기다려보죠.”
***
누구나 예상했듯이, 반응은 격렬하게 터져 나왔다.
리안이 울제이의 전진 배치에 맞서 고려군을 더 서쪽으로 움직였기에, 울제이 측의 반응은 더 격렬했다.
일촉즉발. 그 말이 딱 들어맞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양쪽 군대는 대치했다.
-이는 게레센제 카간이 고려의 협박에 못 이겨, 그들이 시키는 대로 구술한 것이다!
-게레센제 카간의 연설 자체에도 조작이 가해졌다!
울제이 측에서는 이런 식으로 게레센제와 루우의 연설에 대응했다. 두 가지 진술 모두 사실에 가까웠지만, 곧 이런 반론을 맞닥뜨렸다.
-그렇다면 고려의 루우 테무르 폐하도 이런 만행에 협조하고 계신단 말인가?
-아니면 고려 정부는 자기네 황제도 협박했다는 말인가?
이런 반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루우의 연설은 게레센제의 연설과 딱 맞아떨어졌으니까.
게레센제는 아직 카간 자리에서 물러난 게 아니며, 울제이의 선동에 넘어가지 말고, 게레센제 카간이 다시금 칸발리크의 권좌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호소.
고려와 루우 테무르의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루우 테무르의 호소에 마음이 움직인 몽골인도 많았다.
물론 이 모든 사태는 ‘보르지긴 가문 내부의 다툼’이니 지켜보자는 냉철한 의견도 있었지만, 그런 의견은 어디까지나 소수였다.
울제이 측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반론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울제이 측의 그런 대응에 의구심을 품어갈수록, 울제이와 각료들의 초조감도 더해만 갔다.
한편으로 고려 측에서 내보내는 방송의 울제이 비판 수위는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마침내 방송되는 게레센제의 목소리가 대놓고 울제이더러 ‘카간 즉위를 무효화하고 칸발리크에서 물러나라’고 명령했을 때, 울제이는 자신이 감춰두었던 패를 꺼내 들었다.
‘게레센제와 신수덕의 협력 관계에 대한 자료’를.
***
“고태용이 살해당했을 때, 소지품 중에 중요한 정보들은 사라지고 없었지.”
풍군작전이 실행된 이래 가장 굳은 얼굴로 견하가 말했다. 효윤은 말없이 끄덕였다.
“아마 그 자료들은 미처 본국에 보고하지 못한 게레센제 관련 자료들이었을 거야. 키타이 측에서 넘겨받은 것도 있고, 독자적으로 모은 것도 있겠지. 일부는 정보사를 통해 들어왔지만…….”
전부 다 들어온 것은 아니다. 게레센제를 압박할 결정적인 정보라기엔 한참 부족한 것들이었다. 견하는 결정적인 정보들은 아마 고태용이 살해당하기 직전에 보유하고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고태용이 칸발리크에서 보인 마지막 행보나, 효윤과 논의했던 대책들을 놓고 보면 그렇다.
“그 자료들은 고태용을 죽인 사람이 가져갔을 거야.”
“그래서 한동안은 게레센제가 살인의 배후라고 생각했었지.”
그렇게 말하고 효윤은 눈을 들어 견하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자신이 했던 것과 거의 일치하는 생각이 들어 있었다.
“‘우리가 게레센제를 의심해서 움직여주기를, 상황이 격변하기를 바란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의심을 하기 전까지는.”
그 말을 들은 리안이 씩 웃었다.
“처음부터 울제이 따위는 안 믿은 게 아니고?”
“그렇게 따지면 여기 있는 사람들 말고 믿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어쨌든, 하면서 견하는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의 목적은 울제이를 몰락시키는 것뿐만이 아니야. 게레센제도 몰락시켜야 하지.”
“그런데 증거가 부족했고.”
“신수덕의 탈출에 협력했다는 의심은 거의 확정적이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들어오질 않았어. 그리고 그건 게레센제가 아니라 울제이의 손에 있지.”
루우를 게레센제에게 보내 대화를 나누게 한 이유 중 하나는, 게레센제가 고태용 살해 명령을 내렸는지, 고태용이 지녔던 정보들에 대해 아는지 캐보기 위함이었다.
그와 루우의 대화에서 그런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울제이가 정보를 토해내게 해야 했구나.”
“어지간히 궁지에 몰리지 않는 이상 게레센제의 정통성을 흔들 수도 있는 정보를 발설하진 않을 거라고 봤어.”
애초에 울제이는 게레센제가 루우에게 자의든 타의든 양위하는 것을 방해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번에 직접 군을 지휘하며 전진 배치한 것이고.
웬만해선 게레센제의 입지를 약화하는 행동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고려는 양위를 받기 전에 게레센제를 협박해서 한껏 위신을 깎아두어야 한다. 그 과정을 도울 이유는 없다.
따라서 고려 측에선 울제이가 ‘발작적’으로 방어에 임하기를 유도할 수밖에 없다.
“울제이가 내세운 명분은 어디까지나 게레센제가 카간의 책임을 다할 수 없으니 자신이 급히 카간의 자리를 대신했다는 거지.”
즉, 실상이야 어찌 되었든 울제이는 형의 자리를 ‘계승’했다 내세우고 있다.
그런 입장이기에 대놓고 자신을 향한 비방에 맞불을 놓진 못하고, 견하가 그랬듯 은근히 정보를 흘린다.
풍문인 것처럼.
“울제이 정도 되는 인간을 압박하려면 방송을 통한 비방만으로는 안 돼. 이런 여론전이 타격을 줄 수 있을진 몰라도 그것만으로 울제이의 정신을 궁지에 몰아넣을 순 없지.”
그래서 볼로드를 버렸다. 칸발리크에 고립된 볼로드가 제 발로 울제이라는 대안을 찾아가도록.
칸발리크의 군사적 장악을 포기했다. 고려군이라면 서부군의 기동력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황정회를 온전히 울제이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응천의 사태에도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요구사항이 많은 인간들을 울제이에게 떠넘기기 위해서.
그 결과 울제이는 서로 악감정이 최고조에 이른 인간집단을 억지로 규합한 정부를 지니게 되었다.
결코 단기간에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투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칸발리크는, 이 시점에서는 오히려 내부의 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 군사적 압박이 들어간다. 리안이 군을 몽골 국경 안으로 밀어 넣었고, 이는 외부에서 울제이의 신경을 갉아 먹는 요소로 작용했다.
“전방위에서의 압박을 가하고서야, 겨우 이 정보가 손에 들어올 수 있었어.”
팔랑팔랑, 견하의 손에서 서류들이 흔들렸다. 신수덕의 치청 탈출을 구체적으로 게레센제가 어떻게 도왔는지, 탈출 이후 아시아를 떠나기까지 무엇을 얼마나 지원했는지, 그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지까지 상세히 적힌 자료였다.
“게레센제가 기갑사 전력까지 꺼내준 덕분에 물적 증거도 확실하고.”
“울제이가 풍문의 형태로 흘려 줬으니까 대중에 퍼져나가는 것도 시간문제야.”
“신문사나 방송국에 조금씩 흘려주면 더 효과적일 테고.”
대중이 알게 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울제이의 가면은 게레센제가 벗기게 하고, 게레센제의 가면은 울제이가 벗기게 한다. 모든 몽골인은 이 두 카간 형제에게 실망한다.
실망은 희망을 찾아 나서는 법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건 없건 사람들은 저절로 대안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역시 루우 테무르뿐이었어!
그런 결론에 이르기만 하면 된다. 가만히 내버려만 둔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것도 언론의 힘을 빌리면 단축할 수 있다.
이상이 견하가 울제이에게 보내는 세 번째 선물이었다.
답례로 게레센제를 향한 ‘악의적 소문’은 잘 받았다.
“그러니 이젠 ‘네 번째 선물’로 다시 답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