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군작전(13)
바이다르는 칸발리크 정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향해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칸발리크 일부를 장악하고 있던 게레센제 측근들은 와해 됐다. 그 후 울제이 정권 내에서 본격적인 아수라장이 시작되었다.
어른들의 아수라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기에, 아이의 시선임에도 바이다르는 꽤 정확하게 상황을 꿰뚫어 보았다.
게레센제 측근들의 와해는, 울제이를 중심으로 간신히 붙어 있던 연합이 균열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대 카간의 측근들을 와해시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울제이의 카간 즉위, 그리고 고려 측의 침묵은 그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한 요인이었으니까.
게레센제가 고려군의 수중에 있는 이상 고려를 대놓고 적대할 수는 없다. 게레센제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혹여나 고려가 게레센제를 ‘꼭두각시 카간’으로 남겨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려가 울제이를 비방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선’을 넘지 않으니, 즉 그를 반역자로 선언하질 않으니 게레센제 측근들의 명분은 날이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고려가 이대로 울제이의 카간 즉위를 어영부영 묵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다이온 연방의 유지라는 고려 정부의 야망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크진 않다. 그러나 이대로 보르지긴 황실이 둘로 ‘분단’된 상태가 고착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울제이가 카간이 된 사실 자체도 게레센제 측근들의 의욕을 무너뜨렸다.
대세는 이미 정해졌다. 게레센제는 망했다. 게레센제의 아들인 바이다르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전략도 불가능해졌다.
이제 남은 건 울제이에게 충성할 것인지, 아니면 게레센제에게서 양위를 강요할 루우 테무르에게 충성할 것인지, 정하는 것뿐.
몰래 울제이 측에 협상을 제안하는 게레센제 측 인사들이 늘어나고, 심지어 그들 중에는 귀중한 기갑사 전력까지 들어 바치는 이도 나왔다.
“공격의 적기라는 신호입니다.”
울제이의 참모들보다 앞서 볼로드가 그렇게 의견을 올렸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방심하여 황정회에 밀려났지만, 본래 볼로드는 시레문 아래에서 전시 관료로도 일했던 자다. 군사적 능력으로는 황정회보다 훨씬 탁월하다.
볼로드는 그런 자신의 역량과 평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울제이의 참모 집단에 머리 숙여 들어가길 자청했다.
지금 의견 상신도 울제이의 기존 참모 중 말석에 앉아 올리는 것.
의도는 분명했다. 볼로드는 이번에는 황정회에 호락호락 당할 생각이 없었다. 괜히 다시금 ‘타이시’가 되어 앞에 나섰다가 황정회의 집중 공격을 받아내는 상황은 피해야 했다.
그렇기에 울제이의 치세에서 정부수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참모진의 일원으로 자신의 자리를 정했다.
이는 당장 쏟아질지도 모를 황정회의 화살을 피하는 동시에, 울제이의 참모 집단에 소속되어 그들을 자기 편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물론 울제이와 참모 집단 역시, 이것이 볼로드를 확실히 자기네 편으로 묶어둘 기회임을 알아차렸다.
어차피 새로운 칸발리크 정부는 울제이의 참모들이 내각에 들어서는 형태로 조직될 것이다. 황정회에도 일부 자리를 양보하겠지만, 확실한 울제이 충성파가 아닌 기회주의자들은 점차 밀려나겠지.
번왕국의 참모들에 불과했던 자들이 중앙정부에서 자리하려면, 기존 중앙정부 수장의 권위가 필요했다. 울제이와 참모들이 볼로드를 받아들인 것은 그래서였다.
볼로드에게 타이시 자리를 내주지 않더라도, 정계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의 위치만 인정해준다면 무난한 연합이 가능하리라 내다보았다.
볼로드 역시 정계 전면으로의 화려한 복귀는 어렵다고 내다보았기에, 볼로드와 울제이 참모 집단은 별다른 조정 없이도 타협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타협의 결과, 울제이 카간은 볼로드의 상신을 받아들여 칸발리크 전역을 장악하기 위한 공세를 명령했다.
볼로드는 공격 의견만을 올렸을 뿐, 공격 작전 자체는 울제이의 참모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볼르드는 여기에 자신의 영향 아래 놓인 인사들을 참여토록 해, 참모들의 작전을 지원했다.
이것으로 칸발리크 정계 두 집단의 타협은 물질적 증표까지 확보한, 굳건한 동맹으로 발전했다.
……하는 듯, 했다.
***
게레센제의 측근들이 사실상 ‘소멸’해버리고 나서, 동맹은 결국 균열을 드러냈다.
“고려는 힘으로 선대 카간을 납치하였고, 이에 폐하께선 천하 만민이 어버이를 잃고 방황할까 염려하시어 급히 천자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폐하께서 그런 결단을 내리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으며, 어좌에 오르는 길에 얼마만큼의 눈물을 뿌리셨는지는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하나,”
긴 서두는 말하는 이가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알려준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태도 뒤에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던 본론이 숨어 있다.
“고려의 간교함으로 인하여 폐하의 천명에 참람한 의심을 품는 무리가 고개를 들고, 천하의 안정을 바라는 폐하의 마음을 왜곡하는 자들이 천하 평정을 계속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속히 폐하의 승리를 공고히 하고, 만민을 위로하는 정책을 펼치시어 명분이 고려가 아닌 몽골에 있음을 미련한 자들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이 본론조차도 카간에게 올리는 상소의 성격상 여러 번 돌려 표현한 것이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개혁에 착수하라.
고려보다 먼저 성공적으로 개혁을 완수해, 그 성과로 고려의 악선전을 무용지물로 만들라.
결국 몽골의 차세대 지도자로는 울제이가 적격이었음을 증명하라.
그리하여 감히 고려가 울제이의 카간위를 흔들지 못하게 하라.
볼로드의 상소는 타당했고, 울제이를 비롯한 참모들의 미래 구상에도 포함된 요소였기에 내용 자체는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개혁은 민생을 안정시키는 효과만 있는 게 아닙니다. 향후 고려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합니다.”
참모들의 그런 의견도 있었지만, 울제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개혁하긴 해야 한다.
그래야 키타이와 낭키아스, 울제이가 장악한 몽골 일부 지역의 역량을 온전하게 동원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관습을 철폐하고, 민족 간 갈등을 완화해 막대한 인력과 자원으로 고려의 야심을 막는다.
고려를 반드시 거꾸러뜨릴 필요는 없다. 울제이의 마음속에서도 고려까지 포함한 다이온 체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고려의 선전 공세를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명분은 좌절된다.
고려가 움켜쥔 게레센제라는 변수에는 시간제한이 있으니까.
대다수 사람은 아무리 부당한 상황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단념해버린다.
울제이가 카간이 된 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울제이가 카간 자리를 오래 지키면 지킬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게레센제는 폐위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울제이가 결함투성이 쿠릴타이를 거쳤어도 카간이라는 사실을.
개혁은 체제의 변화를 불러오고, 그 변화가 고려가 약속한 것 못지않다면 사람들이 굳이 루우 테무르를 택해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루우 테무르와 고려의 개혁이 좀 더 매력적으로 비친다 해도, 이미 자리 잡은 울제이를 끌어내려 가며 바꿔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다.
“……굳이 이 시점에 꺼내봤자…….”
당장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울제이의 입장만 곤란해진다. 울제이 카간은 약간의 짜증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볼로드, 황정회, 자신의 참모들로 구성된 연합정권이니만큼 대놓고 볼로드에게 비난의 날을 세울 순 없었다. 울제이가 칸발리크에 입성하는 데 세운 공도 공이거니와, 그가 어느 정도는 세력구도의 균형추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정회의 구성원 중 울제이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이들을 제하더라도, 나머지 구성원들은 여전히 세력이 강한 구 귀족층이었다. 개혁이라 부르든 토사구팽이라 부르든, 앞으로 이들과는 어떤 식으로든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볼로드를 버리면 황정회의 힘이 너무 강해진다. 몽골은 개혁은커녕 시레문 이전, 아니 형제들의 아버지 호오샤이 카간 이전 시대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반대로, 황정회를 지금 시점에서 버릴 순 없었다.
황정회의 세력이 더 커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서는 그들을 버리지 못할 이유로 작용한다.
울제이가 당장 황정회를 버리고 몽골 남부에서 키타이, 낭키아스에 이르는 드넓은 영토를 장악할 방법은 없었다.
“균형 상태를 한동안 이어가길 바랐건만……. 애초에 볼로드는 개혁에 그다지 적극적이지도 않았잖은가.”
울제이의 불평대로, 볼로드는 개혁에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보수성은 어디까지나 시레문 시대를 모범으로 삼는 데 있지, 그 이전으로 돌리는 데에 있진 않았다.
볼로드는 고려의 미리안에 의해 촉발된 다이온 대개혁의 흐름 속, 그에 맞서 자신이 주도하는 개혁을 시도하려던 게레센제와 몽골 제국입헌당의 압박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에 볼로드는 불가피하게 소극적 개혁에 손을 댔던 것인데, 황정회의 보수파 입장에선 게레센제의 개혁 의지를 꺾기 전에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요컨대 볼로드의 개혁 주창은 진정 개혁에 의지가 있어서 나온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몰아낸 황정회 보수파를 개혁을 통해 밀어내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당연히 황정회 내 보수파는, 볼로드가 내세운 개혁이 자신들을 향한 칼춤임을 모를 리 없었다.
“선대 게레센제 카간은 여전히 고려의 손아귀에 놓여 계시오. 고려로부터 어떤 양보도 받아내지 못한 지금, 언제라도 큰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데 개혁 논의네 뭐네 혼란을 일으키는 건 가당치도 않소이다.”
“언제라도 큰 싸움이 일어날 수 있기에 더더욱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전에 나온 말 아니오?”
“개혁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과연 고려와의 결전 전까지 효과를 볼 수나 있겠소? 또한 개혁이 어떤 성과를 거둔다고 한들 그 시초에는 반드시 혼란이 따르는 것 아니오?”
울제이는 황정회 보수파의 말을 들으며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저들도 뻔뻔하게 개혁 자체에 반대하진 못하는군.
아마 저들이 마각을 드러내는 건 더는 카간이나 다른 정파, ‘미천한 백성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을 때일 것이다.
물론 게레센제를 ‘선대’ 카간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울제이를 포함한 모두가 기만적이었다.
정치에 있어 권모술수는 필연적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근원적인 부분에서는 중심을 잡아주는 이상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최소한의 ‘진심’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런 게 없었다.
울제이 및 그에게 충성하는 무리는 카간 자리와 권력만을 바랐고,
볼로드는 오래 지켜온 타이시라는 이름과 그에 따른 권력을 바랐으며,
황정회 보수파는 구시대 귀족의 특권을 더욱 확대할 권력을 바랐을 뿐이다.
기만, 가식, 필요에 따른 연합으로 만들어진 정부.
울제이 카간의 치세, 그 민낯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