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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407화 (407/541)

풍군작전(12)

견하가 제안한 풍군 작전은, 그리 완성도 높은 물건은 아니었다.

고태용과 견하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태용 사후 견하가 들고나온 작전은 고태용과 함께 만든 게 아닐 것이다. 고태용쯤 되는 사람이 관여했다기엔 조잡했으니까.

남자친구지만 이건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풍군작전은 조잡하다.

그래서 리안은 직감했다. 이건 급조된 작전이구나.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했다.

물러나고, 물러나고, 또 물러나며 울제이가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도록 유도한다. 정치에도 ‘공세종말점’이 있다는 견하의 발상은 옳다. 이제 카간이라는 정점에 선 울제이는 그 자리를 방어하거나, 내려와야 한다.

그러나 견하가 던진 미끼를 울제이가 덥석덥석 받아 문다는 걸 전제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상대를 깔보는’ 작전이다.

오만인가.

아니면 확신인가.

리안은 바로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견하는 변했다.

점진적인 변화였을까. 너무 느리게 변화가 진행된 나머지, 자신은 견하가 몇 년 만에 크게 달라졌다고 새삼 놀라고 있는 걸까.

갑작스러운 변화일까. 이번 풍군작전이 어떤 계기가 되어…… 돌변한 걸까.

그냥 오만해서라면 차라리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점이다. 확신에 차 있어서 그런다면 자신감 넘친다고 칭찬할 수라도 있다.

그런데 리안의 뒤통수를 당기는 이 느낌은…… 견하의 태도는 뭔가,

인간적이지가 않다는 점.

‘뭐가 어떻게 인간적이지 않다는 거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은 궁하다.

우습군. 자기도 설명하지 못할 모호한 느낌으로 사람을 판단하다니.

그래. 말이 안 되더라도 억지로 설명을 이어붙이자면, ‘당연히 자신이 말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느낌이다.

오만이나 확신과는 다르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과거의 일을 담담히 말하는 느낌에 더 가깝다. 전에 본 영화의 재미있는 장면을 회상하는 것과도 비슷했다.

-하늘 위에서 멀리까지, 바닥의 먼지 하나까지도 구별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마음에 걸리는 건 상황이 견하의 뜻대로, 어긋남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세상이 견하의 말을 확인해주기라도 하듯.

-말도 안 되는 소리.

리안은 고개를 저어 지금까지 했던 걱정들을 쓸데없는 생각으로 치부하고 털어버렸다.

견하는 성장했다. 유능한 인재로 자라났다. 견하의 천재성, 그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생각을 ‘현실적인 문제’로 돌렸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고 해도 풍군작전은 승인할 수밖에 없는 작전이었다.

고태용의 죽음 직후에 이미 리안은 각오했다.

자신이 「대타협 계획」 등을 통해 구상한 대로, 오랜 시간을 들여 다이온 연방을 변화시켜 나가긴 어렵겠다고.

다소 불안한 구석이 있어도 덮어두고 지나가는 길을 택하진 못하리라. 고태용의 죽음은 리안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즉 고태용의 죽음이 상징하듯, 이 다이온 체제는 최소 한 번은 파탄의 위협을 받을 것이니…… 돌파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었다.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신속하게.

피를 흘려야 한다면 내일도 모레도 아닌 오늘.

그런 마음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작전이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문제야.

고려인들의 콧대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건 아닐까.

물론 국민 대부분은 고려와 몽골의 동군연합. 고려의 완전한 주도권에 만족할 것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견뎌냈으면 그 과실을 거두고 나누길 원하지, 또 고난을 겪길 원하진 않으니까.

그러나 어디에라도 예외는 있다.

내전을 통해 허동주와 천손민족협회를 확실히 짓밟았지만, 이제껏 없던 고려의 대승리에 취해 스스로 허동주와 같은 발상에 도달하는 자가 나올 수도 있다.

‘고려 제3제국에 영원한 승리를!’ 같은 싸구려 구호나 외치면서…….

-게다가 감찰국엔 살아남은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이 있다.

견하가 철저하게 사상을 검증하고, 리안도 감시의 눈길을 거두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불안 요소라는 사실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허동주라는 이름만 없을 뿐, 리안의 정권에 기생하면서 허동주의 사상을 고려 전국토에 깊이 뿌리내린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들이 제국입헌당의 당원이라는 사실도 신경 쓰였다. 견하는 그들의 리안에 대한 충성을 강제하고, 또 당의 통제하에 둘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당의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능력을 기르고, 수를 불려가면서 말이다.

태사와 황제 앞에서 풍군 작전에 관해 설명하던 한재연은, 그런 리안의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견하에겐 미안하지만 천손민족협회 출신 인간들을, 서서히 밀어내야겠어.

풍군작전이 끝나는 대로 감찰국을 비롯한 정치경찰실 개편 작업에 착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작전 성공에는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장점도 당연히 따라올 테니까.

고려인들의 콧대가 높아지는 것 이상으로, 작전의 총책임자인 리안의 권위와 권력은 절정에 다다를 것이다.

총선거의 압도적 승리야 당연하겠지.

그렇다면 리안은 사실상 자기 마음대로 국정을 주무르는 게 가능해진다. 아마 아무도 리안의 뜻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고려뿐만 아니라 다이온의 전면적 개혁까지도.

다이온 연방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출범하면서 ‘개혁’은 온 동아시아의 과제로 떠올랐다.

개혁은 통치자가 기분이 좋아서 내리는 상도 아니고, 피통치자가 불쌍해서 내리는 은혜도 아니다.

개혁은 체제 그 자체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 개혁에 실패하면 마지막 생존 본능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혁명이고.

제6차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를 전후로 바라트와 정식 수교를 맺었다곤 하지만, 그 혁명의 확산은 리안에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려나 몽골의 사회민주당, 공산당과 손잡아 그들이 바라트와는 ‘다른 노선’을 걷게 했다. 개혁을 통해 ‘혁명의 필요성’을 꾸준히 감소시켜 왔다.

이제 다이온과 바라트가 직접 경계를 접하게 된 이상, 개혁이라는 과제는 매일 시급해져만 간다.

헌법, 그에 기반한 새로운 군주의 규정과 민주체제의 정착. 이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다이온은 혁명의 물결에 쓸려나가리라. 리안은 그렇게 확신했다.

대공황으로 사람들의 삶이 무너져가고 있을 땐 더더욱, 새로운 체제가 기둥이 되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모두가 폭풍을 두려워해 바다에 나가지 않을 때도, 굳이 만선을 해내겠다며 출항하다 침몰하는 어부가 있다. 바다에서 수십 년을 살아도 갑자기 죽을 자리를 향해 찾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길게는 수백 년을 다스려온 왕공 귀족 가문 중에도, 멸망의 길을 향한 고집을 꺾지 않는 자들이 있다.

“몽골에는 황정회. 볼로드도 크게 다르지 않고, 낭키아스에는 토호파가 있었지. 울제이는 입헌 개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 본질은 군벌에 지나지 않아. 그 밑의 관료들도 실상은 군사령부의 참모들이고. 그러니 황정회, 볼로드와 제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

그런 자들과 함께한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 개혁에 힘을 기울여도, 일관성도 없고 효력도 의심되는 결과물만 양산될 뿐이다.

“이번 풍군작전이 성공한다면 ‘승자의 권리’로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다.”

낭키아스 토호파와 게레센제의 군사 참모들은 울제이에 의해 힘을 잃었다.

볼로드와 황정회는 칸발리크에서 반목하다, 고려에 의해 쓸려나간다.

울제이라는 거대 군벌도 마찬가지로.

대몽골 제국, 혹은 예케 몽골 울루스라는 중세의 유산도 마침내 현대의 정치체제로 거듭나는 것이다.

“민주주의 원칙 확립이 비민주적인 강압에 의해 이뤄진다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하지만 환상을 품지 말아야 한다. 헌법이든 민주주의든 확립되기 전에 ‘그런 원칙’으로, 그 원칙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하면 반드시 무너진다.

인류 역사상 수없이 많은 개혁과 혁명의 노력이 무너진 건, 개혁가나 혁명가가 반개혁, 반혁명 세력을 새로운 체제의 원칙에 따라 대하려 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새로운 체제를 무너뜨리려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활용한다. 그런데 정작 개혁가니 혁명가니 하는 무리들은 이미 새로운 체제가 확립되었다는 환상에 취해 스스로 손발을 묶는다.

자비 그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자살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숭고함도 없다.

멍청한 짓을 했다는 역사의 비웃음만이 남을 뿐.

“안세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

바로 이 점에서 리안은 세규를 고평가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지향하면서도, 동지들을 그런 원리로 이끈다는 멍청한 망상에 휘둘리지 않았다.

결국 그 덕분에 당수가 되고 제3제국 체제에 참여하여, 고려를 개혁하는 한 축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추진해온 개혁도, 온전히 내 발상이라기보다는 안세규와 야당에 의해 유도되어 온 면이 적지 않다고 봐야겠지.”

리안은 그 점에서는 절대로 오만해지지 않았다. 보수의 거두이나 개혁을 펼치는 정치가가 자주 빠지는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혁이 자신이 베푸는 은혜이며, 자신의 지혜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착각.

실상은 야권 세력이 가하는 압력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었는데도, 오만하게 그런 착각에 빠져선 안 된다.

리안이 오만한 착각에 빠진다면, 그녀에겐 실각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번 작전이 성공해도 긴장을 풀어선 안 돼.”

총선거에서 당연히 승리하리라 방심하면 그걸로 끝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려의 국가적 위상을 드높이고 다이온 체제를 완성한 리안에게 마땅히 다음 태사 자리도 주어져야 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은, 또 한쪽에선 이제 ‘리안은 주어진 역할을 완수했다’고 여길 수 있다는 말이다.

난세에서 치세로 돌아가니, 난세의 정치가는 물러나고 치세의 정치가가 안정적인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그러니 개혁은 ‘역외사국’을 재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해.”

다이온이 하나의 군주, 하나의 체제로 거듭났다 해도 아직 남은 과제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보우슈엥과 대예, 탕구트처럼 다이온 연방의 ‘참관국’이 된 나라들뿐만 아니라, 중립 완충지대인 티베트까지도.

더 나아가 서쪽의 알티샤흐르나 카자흐까지도 개혁의 물결을 전파하여, 남쪽에서 올라오는 공산혁명의 물결을 막아야 한다.

다시 한번, 이번 작전이 성공해야만 하는 작전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풍군작전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내가 정권을 내놓는 정도로 끝나진 않아.”

고려와 다이온 전체의 명운을 건 작전이다.

어찌 보면 도박성이 짙은 작전.

리안은 도박을 싫어하지만, 주사위를 던져야만 하는 순간에 망설이는 인간도 아니었다.

“도박은 권장되지 않지만, 도박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도망치면 그 순간 ‘도박이라도 해볼 기회’마저 사라지고, 강제로 모든 걸 빼앗긴다는 결말만이 기다리니까.

리안의 입가에 자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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