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군작전(7)
“칸발리크에 입성함으로써 울제이 칸의 세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는 다시 말해 곧,”
“태평천국의 최고조와 같지. 전선이 너무 늘어났어.”
서쪽으로는 세 개의 한족 관리 특구를 경계하고, 남쪽으로는 새로 확보한 낭키아스의 안정을 꾀하며, 북쪽으로는 몽골 본토, 동쪽으로는 고려를 노려봐야 한다.
울제이는 정점에 서서, 그 정점을 노리는 자 모두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게레센제 카간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울제이 칸의 정신을 뒤흔들 겁니다.”
초조함은 실책을 끌어낸다.
고려는 키타이의 실책을 기다린다.
인내심 깊게.
이제는 쳐야만 하지 않나 싶을 때에도 침묵하면서.
대세가 울제이에게로 기운 것 같아도 동요하지 않고.
“상황이 거기까지 가면 울제이가 택할 길은 하나뿐이죠.”
“쿠빌라이 카간의 전례를 따르는 건가.”
“네. 스스로 쿠릴타이를 소집하고 카간을 칭하는 거죠.”
“거기까지는 ‘시간을 줄’ 셈이겠지?”
견하는 대답 없이 웃었다. 울제이는 카간을 칭함으로써 아직 ‘살아 있는’ 카간인, 그리고 양위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게레센제와 카간 대 카간으로 대립하게 된다. 타협의 여지는 완전히 없어진다.
오직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길만 남게 된다.
“뭐, 좋아. 이대로 작전을 진행시켜도 괜찮다고 봐, 나는.”
리안의 손이 루우의 어깨를 짚었다.
“폐하는 어때?”
이제는 카간으로 나아갈 각오가 되었느냐는 물음이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루우는 끄덕였다.
“몽골도, 키타이도, 낭키아스도 집어삼킬 준비는 됐어.”
견하의 시선도 루우의 얼굴로 향했다.
길었다.
그녀의 각오를 다지고, 그 각오를 뒷받침할 준비를 마치기까지.
“짐은 유일한 카간이 될 거야.”
견하는 반쯤은 장난으로, 그리고 반쯤은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에게 경배를.”
리안도 씩 웃음 짓다, 곧바로 다음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아직 우리는 게레센제 카간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지. 그런데도 마치 이미 다 이긴 것처럼 굴 순 없어. 어떻게 카간을 고려로 끌고 올 셈이지?”
이 물음엔 재연이 답했다.
“장수왕은 맹광과 갈로, 두 장수를 파견해 풍홍을 용성에서 빼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맹광과 갈로를 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보내면 늦죠. 그래서 이미 칸발리크에 배치된 맹광과 갈로를 쓰기로 했어요.”
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효윤이랑…… 그 휘하 부대 말이구나.”
리안은 한숨인지 안도인지 모를 숨결을 내뱉곤, 선언했다.
칸발리크의 또 다른 이름, 대도(大都)를 언급하며.
“……지난날 선조들이 용성왕 풍군을 들판에 머물게 한 것처럼, 오늘 우리는 대도왕(大都王) 게레센제를 불러들인다.”
리안의 눈이, 연인이 아닌 상관의 냉철함으로 번뜩이며 견하를 향했다.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
칸발리크의 정치적 격변에 관여한 모두의 눈이, 황궁에서 일어나는 교전 상황에 쏠린 이 순간.
“……아직이군요.”
태주갑의 중얼거림에도, 효윤은 대답도 미동도 없이 황궁의 상황에만 집중했다.
어디로 어떻게 침투해야 하는가, 그건 시레문 카간이 살아 있던 시절에 이미 익혀두었다. 칸발리크의 비극을 거치며 숙소처럼 들락거렸으니까.
문제는 시점이다.
-기갑사 출현!
짧은 보고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동명, 정확하게는 견하로부터 내려온 지령은 이랬다.
-게레센제는 신수덕과 거래하면서 파멸인이나 혁세주 관련 기술만 받진 않았을 거야.
-아즈텍 내전에서 보여준 대로, 기갑사 기술도 받았겠지.
-지금껏 기갑사를 꺼내지 않은 건 그 기술 수준의 부족도 원인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기습적으로 꺼내고 싶어서일 가능성이 커.
-하지만 기갑사 전력은 그 특성상, 그리고 내전과 한족 반란 진압을 막 끝낸 몽골의 역량으로는 대량으로 생산하기 어려웠을 거야. 거기 탑승할 이단의 양성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한번 꺼낸다면, 그게 게레센제의 명운을 건 승부라면 예비대 없이 전력을 꺼낼 거야.
박도를 소환한다.
부하 중 이단들도 역시 각자 무기를 소환하고, 일반 병사들은 다시 한번 총기를 점검한다.
작전이랄 것도 없다.
오직 게레센제 카간을 확보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얼마나 입든 상관없었다.
부대의 9할이 죽어도 게레센제 카간을 ‘울제이보다 먼저’ 확보해 칸발리크를 탈출할 것.
지금 효윤이 이끄는 부대에 그 목적보다 위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황궁 서남쪽에서 진입하는 키타이군과 달리, 효윤은 서북쪽에서 황궁 진입을 시도했다.
낭키아스에서 칸발리크까지 이어진 ‘대운하’의 한 지류가 황궁 서북쪽을 통해 안까지 들어온다.
효윤은 바로 여기를 노리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운하보다는 황궁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그 규모 덕분에 효윤과 부하들은 생각보다 쉽게 황궁 안으로 침투했다.
키타이군이야 국경부터 칸발리크 시가까지 울제이에게 협력하는 모든 세력이 길을 열어주었지만, 효윤에겐 아니었다.
곧바로 저항에 부딪힌다.
하지만 ‘아군의 피해를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건, ‘적의 피해는 더더욱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갑자기 나타난 또 다른 침입자들을 향해 정신없이 총을 갈기던 병사의 몸은, 대각선으로 찢겼다.
흩뿌려지는 핏줄기마저도 가를 기세로 효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기본적으로 살육에 미친 인간은 아니니만큼, 효윤도 이런 희생에 씁쓸한 기분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군인이기 이전에 전사로 키워진 사람이다.
리안의, 리안이 이끄는 고려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리안과 견하처럼 냉혹한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아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곤 하지만, 그녀는 지금과 같은 일에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카간은 대명전에 있을 겁니다.”
효윤은 태주갑의 추측에 동의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잠이나 자고 있진 않을 테니.
분명 대명전에서 참모들과 모여 상황 보고를 받고 있겠지.
견하는 ‘예비’ 기갑사는 없을 것이라 예측했지만, 예측은 예측일 뿐이다.
전장에는 완전한 예측이라는 게 없다.
하나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각오를 굳혀야 한다.
효윤이 박도를 고쳐 쥐는 바로 그 순간.
“거 봐.”
기갑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타이군을 상대하다 급하게 하나만 후방으로 빼 온 건가.
아니면 정말 만에 하나를 위해, 카간과 그 측근을 경호할 셈으로 한 기를 ‘예비’로 남겨둔 건가.
뭐가 됐든 하나라서 다행이다.
효윤의 판단은 빨랐다.
“태 중령은 모든 병력을 대명전으로! 저건 내가 맡는다.”
태주갑 역시 명령의 이행에 망설임이 없었다. 효윤은 여기서 가장 뛰어난 이단이다. 효윤의 판단은 옳다.
그리고 그는 이제 효윤의 정예였다. 즉각 부대원들을 데리고 방향을 튼다. 기갑사를 우회해 다시 대명궁을 향해 돌진한다.
그런 그들을 기갑사가 측면에서 찌르려 하지만, 갑작스러운 충격에 기갑사는 균형을 잃고 몇 걸음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소녀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량.
아니, 애초에 저런 크기의 박도를 소녀가 휘두르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그러나 이단은 원래 비현실적이다.
지금 탑승한 이단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갑사처럼.
효윤은 자세를 잡는다. 긴장이 극도로 끌어올라, 황궁 바닥에 새겨진 무늬와 처마 밑 공포의 결마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듯하다.
촉각인지 육감인지 모를 것은 그렇다 치고, 시각은 확실하게 낭키아스제인지 몽골제인지 모를 저 기갑사의 정보를 끌어들인다. 뇌는 순식간에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을 내린다.
고려군 최신형 기갑사인 C-31에 비하면 조잡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기갑사는 기갑사. 신환도역 전투에서 꽤 애먹었던 것을 효윤은 잊지 않았다.
일대일 상황. 여럿이서 덤볐을 때도 만만치 않았는데, 지금 방심하면 죽는다.
하지만 효윤은 기갑사의 공략법을 안다.
기본적으로 기갑사는 복부에 탑승한 이단의 얼굴이 자리 잡는다. 저 기갑사는 조잡한 만큼 얼굴 부분이 더욱 노출되어 있다. 그러니 얼굴을 노리기는 더 쉽다.
물론 상대방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 게다가 노출을 따지면 효윤은 그냥 맨몸이나 다를 바 없다. 어디를 공략하든 기갑사의 무기가 닿는 순간 걸레짝이 되어 죽으리라.
기갑사가 먼저 덤벼든다. 전력상 우위에 있는 기갑사가 망설일 이유는 없다. 객관적으로 봐선 그랬다. 압도적으로 몰아붙여 이단의 빈틈을 유도,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육신을 부숴버리면 된다.
기갑사를 조종하는 이단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면, 효윤은 지난 몇 년간 절대 놀고먹어 온 이단이 아니라는 것.
효윤은 일반 병사와 비교하면 신이나 다름없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거기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이단에 비해 부족한 전투력을 기갑사라는 갑옷을 두르는 걸로 해결하려는 안일한 인간도 아니었다.
루우에게 압도되었던 그 날 이후, 그 굴욕감을 잊지 않으며 이단의 ‘이’를 다루는 능력뿐만 아니라 ‘기’까지도 극한의 단련을 거듭했다. 그 부분은 리안의 영향도 있었다.
-루우에게 딱히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리안을 지키는 자로서, 루우와 최소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그렇게 강박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였다.
리안이 단련을 통해 일반인 기준으로는 한계에 닿았듯,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을 단련했다.
찌르고 들어온 기갑사의 거대한 검이, 황궁의 돌바닥을 깨부수며 처박힌다.
효윤이 피하는 바람에 그녀가 있던 자리에 박힌 것일까? 아니다.
효윤은 그 검이 자신에게 미처 닿기도 전에, 박도를 들어 위에서 아래로 찍어눌렀다.
박도의 날이 검의 날에 닿는, 거의 점에 가까운 그 접점 위에서, 허공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온몸의 근육을 한껏 수축시켜, 도약을 준비한다.
기갑사, 혹은 이단의 신체 능력보다 빠르긴 어렵다. 순간적으로 빠르고 강했다 해서 이를 전투 내내 유지할 수는 없다. 기갑사에 탄 쪽이 좀 더 지구력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 적의 상황 인식보다 빨라야 한다.
기갑사의 머리, 아니 머리라곤 하지만 그저 기계가 잔뜩 들어 있을 뿐인 강철 상자를 살짝 밟고 튕겨 올라, 적의 뒤에 착지한다.
그대로 몸을 폈다면 허리가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돌바닥을 밭처럼 갈아엎으며 튀어 오른 검이 그대로 평행으로, 앞에서 뒤로 휘둘러졌으니까.
포니테일 끝자락이 살짝 잘려 나가는 걸 느낀다.
적의 일격이 지나갔다는 신호다.
아무리 빨라도 여기에는 틈이 생긴다.
적 기갑사의 ‘조잡하다’라는 약점이 여기서 발목을 잡는다. 고려의 C-31이라면 손상되어서는 안 될 부분을 감싼 장갑이 있었을 테지만, 이 기갑사는 그냥 뒷부분에 노출되어 있다.
전선이나 관 같은 것을 마구잡이로 베어냈다.
그 충격이 탑승한 이단에게도 닿은 듯하다. 휘청, 하며 왼쪽 무릎을 꿇는다.
그럴 수밖에. 이 기계는 전기나 기름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단의 칠정을 연료로 삼으니까.
기계의 영역에 한 걸음 들어간 이단, 살점의 영역에 한 걸음 들어온 기계는 충격을 공유한다.
틈을 놓치지 않고, 효윤은 기갑사의 척추에 해당하는 부분을 깊이 베어냈다.
예민해진 감각은 박도의 날이 기계만 베어낸 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희미하게, 효윤은 탑승자의 뒤통수를 쪼개버렸음을 느낀다.
초라한 단말마를 뒤로하고, 효윤은 그대로 대명전을 향해 달렸다.